해괴한 망상의 둥지 0010-그 곳의 안쪽(2)완

NEOKIDS 작성일 06.09.27 04: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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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3일째.
“시험 잘 봤냐?”
“응? 어, 뭐 그럭저럭.”
책가방을 바쁘게 싸고 있는데 한 놈이 다가와 말한다. 평소 나와 성적을 다투던 놈.
“그럭저럭? 네가 그런 말을 다하니까 이상하다.”
“사실 요즘 몸이 좋지 않다.”
“하긴 그래 보인다. 어쨌건 몸조심은 해야지.”
나는 정확히 오늘 새벽에, 그 자식이 초저녁 즈음의 때로 보이는 자신의 방에서 공부를 하다 말고 동물의 왕국을 보면서 자위행위를 하던 영상을 본 걸 떠올리고는 속으로 비웃음을 흘렸다. 맙소사. 동물의 왕국이라니. 킥킥. 변태자식 같으니라고.
“그래야지. 잘 가라.”

다시 집으로 향하면서, 정말 어깨가 뻐근하도록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평소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던 책가방의 무게를 그렇게 느낀 것이다. 이틀 동안을 그 물건에 집중하느라고 시험은 망친 것 같다. 하지만 그것도 대단치는 않다고 생각할 정도로 나는 이 물건에 푹 빠져 있었다. 어차피 이번 시험이야 망치더라도 다음 시험에서 잘 보면 된다는 생각으로 위로를 하면서. 그래, 난 아직 벗어날 수 있어.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점점 그것을 보기 위해 집으로 다시 가는 시간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은 조금씩 고통스러워졌다. 오늘도 겨우 이 시간들을 때웠다. 다음은 어떻게 또 이 고통을 견뎌내야 할까.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 물건을 이용해가면서 여러 가지 사실을 알아냈다. 실제로 이걸 이용해서 자위행위를 해 본 적도 있다. 그 느낌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진짜 여자랑 하면 이런 느낌인 것인가 생각했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그런 것 따위가 아니었다. 정말 세심하게, 집중을 해서 만져주었을 때 그 입구는 남자의 성기가 들어가는 정도의 그런 것보다 훨씬 더 크게 벌어졌다. 처음엔 열쇠구멍 만했던 것을 점점 더 크게 벌려져서 주먹이 들어가는 정도까지 벌린 게 최근-이라고 해도 오늘 새벽녘의 아침-의 기록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는 어떤 영상들이 펼쳐졌다. 나는 그것을 보는 재미에 조금씩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아주 조그만 구멍으로 보는 것이 마치 열쇠구멍으로 훔쳐보는 것 같은 느낌이기도 하고 잘 보이지도 않아서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 집중도를 투자하는 시간과 염원이 아주 강해질수록, 이 구멍과 그 영상을 볼 수 있는 시간이 길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을 깨달은 지 또 조금이 지나서, 나는 그 영상들이 내가 생각한 어떤 주제들에 맞추어 그걸 아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걸 깨달은 계기는 내가 좋아하는 학교의 젊은 교생 선생님을 생각하면서 이 물건을 만졌을 때이다.

이 물건은 즉시 무언가를 보여줬다. 그런데 뭔가가 이상했다. 조그만 방 같은 곳이었고, 조그만 냉장고와 화장대의 거울의 모습도 보였다. 그리고 그 어둑함 속에서 여자 선생님의 신음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내가 그걸 보길 원하자 마치 내가 시선을 옮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풍경이 바뀌었다. 침대 위에서의 선생님은 왠 호리호리하고 날건달같이 생긴 놈과 열심히 그 짓을 하고 있던 것이다. 그것도 항문으로. 나는 당연히 흥분해서 그것을 계속 보았다. 그리고 그 날건달이 절정에 달했을 때, 나도 똑같이 절정에 달하고 말았다. 그 뒤로 몇 번 보기는 했지만, 사실 그렇게 계속 보고 싶지는 않았다. 그건 정말 그 선생님을 좋아하고 있는 나로써는 죄책감이 느껴지는 일이었고 그 무게를 감당해내기는 어려웠으니까.

그 외에도 아주 우스운 것들을 많이 보곤 했다. 아버지나 어머니는 물론이고, 주위의 모든 사람들, 역사 속의 인물들에 대한 뒷모습-예를 들어 프로이트 같은 사람들의 이론이 실제로는 그 환자가 되는 여성들과의 섹스를 통해서 이루어졌다는 것, 그가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자신을 모르는 인간들과 벌이는 섹스파티의 광이었던 시절의 모습들, 또는 이순신 장군이 왜군을 더 죽이지 못하고 화가 나 자기 분을 이기지 못해 자살을 하는 장면 따위나, 뭐 그런 등등의 것들이다-들을 영상으로 보기도 하고, 그 외의 인간의 수많은 모습들을 보면서 감동받기도 하고 혐오하기도 하고. 그러는 사이 시간은 또 흘러가고.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인가 하면서도, 그 물건의 클리토리스 부위를 계속 애무하면서 그것들을 보고 있으면서, 빠져나올 수 있다는 따위의 생각은 점점 지워져 버리고 있는 듯 했다.

시험 5일째.
“이럴 수가......”
내 방에 앉아서, 나는 내 손가락 사이에 집혀진 그 총알을 망연자실하게 쳐다보고 있다. 그 총알에서 풍겨 나오는, 뭔가 화약의 냄새 같은 것과 노르망디의 어딘가로 보이는 해변의 모래알과 피와 바닷물의 짠 내음이 어우러져 콧속을 후비고 있다.

잠시 그 총알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나는 즉시 컴퓨터를 켜서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보았다. 검색의 내용은 2차 대전 당시 미군이 사용하던 M1소총의 실탄 사진이었다. 사진이 화면에 뜸과 동시에 나는 내 손가락에 들려있는 총알과 그것을 비교했다. 다른 점은 하나도 없었다. 이것은 M1소총의 탄환이 맞았다. 나는 한층 더해진 떨림에 그 총알을 떨어뜨리고 그 물건으로부터 몸을 멀찍이 떨어뜨렸다. 그 물건은 다시 자그마한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내가 2차 대전 당시의 그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잔혹하고 생생한 전쟁터 영상을 보다가 땅바닥에 떨어진 걸 보고는 호기심에 그 물건 안쪽으로 팔을 넣어 집어오기 전의 그 모습으로.

이 물건이 보여주는 영상은 내가 생각한 주제대로, 내 구미에 맞는 영상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었다. 진짜 있었던 일들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내가 그 안에 팔을 뻗어 집어온 이 총알이 그 증거였다. 역사건, 가까운 사람의 뒷모습이건, 모든 인간의 모든 시간대를 내가 생각하기만 하면 보여주는 것이었다. 나는 순간 내가 좋아하던 여자 선생님이 항문으로 남근을 받던 기억을 떠올렸다. 방 한구석에 놓인 쓰레기통을 붙잡고 치밀어오는 구토를 쏟았다. 눈물이 같이 흘렀다. 더러운 년. 더러운 년.
“어머, 얘가 왜 이러니? 너 괜찮아?”
어머니가 방문을 열고 들어와 내 엎드린 모습을 보았다. 제길, 자꾸 이러면 의심받게 돼.
“아, 아니야. 점심 때 먹은 게 잘못되었나 봐요. 우유 같은 거.”
“유통기한 똑바로 본거니? 뭘 어떻게 먹었기에 이래!”
약을 찾아야 한다느니, 병원에 빨리 가 보자느니 하고 호들갑을 떠는 어머니는 아직 내 책상 위의 그 물건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 같다. 이대로 시선을 계속 끌면서 그것을 자연스럽게 숨겨야 했다. 나는 몸을 일으켜 손을 책상으로 짚는 척 하면서 그걸 손바닥 밑으로 숨겼다.
“아뇨, 괜찮아. 좀 토하고 나니 기분이 나아졌어요.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죄송한데 이것 좀 치워주세요.”
쓰레기통을 떠맡기고 나서도, 그것을 뒤처리하고 다시 어머니는 내 방을 수시로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그걸 계속 쓸 수도 없었고, 또 그렇게 그 더러운 년을 조금씩 잊어버리기로 생각을 하면서, 내 속은 진정이 되고 있었다. 정말 괜찮아지는 안색을 보던 어머니는 실로 손을 한 번 따주시고는 다시 주방 쪽으로 나가셨다. 한 10분 후 실려 오는 냄새를 맡으니 죽을 끓이시는 모양이었다.

푸근하게 퍼지는 죽의 냄새와 달리, 나의 머릿속은 깨질 듯 했다. 그럼, 프로이트도, 이순신도, 그 모든 것이 진짜란 말인가? 나는 머릿속에 생기는 그 검은 의혹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나는 다시 그 물건을 시험해 보기로 했다. 아버지를 떠올렸다. 아버지에 관한 영상은 그 때 한 번 지하철에서 젊은 여자를 상대로 추행을 하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섬세하게 그 물건을 매만지면서 다시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려 집중했다. 아버지의 모습이 또 다시 그것의 안쪽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번엔 아버지의 모든 모습이 순식간에 지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게는 그렇게 빨리 지나가는 모든 것들이 머리에 우겨넣듯이 모두 보였다. 믿을 수가 없었다. 이 사람이 나의 부모라니. 나는 그를 잊어버리려 어머니를 떠올렸다.

나는 다시 깨끗해졌던 쓰레기통을 붙잡고 아까보다 더욱 거세게 토악질을 해댔다. 이 사람들이 내 부모라니. 정말로 나를 낳은 내 부모라니. 믿고 싶지도 않았다. 그들의 더러운 과거, 그들의 더러운 모습. 그들의 더러운 야합. 그 결과물인 나. 그들의 속에 있던 계산. 그들의 머릿속에서 사랑이라 믿었지만 실은 아무것도 아닌 그 지저분한 사고들. 당신은 돈이나 벌어오시지. 내겐 이미 나를 즐겁게 해줄 상대가 있다고. 어린애긴 하지만 당신보다는 재미있어. 돈이나 몇 푼 쥐어주고는 끝내는 그런 관계. 훗, 늙을수록 재미없어지는 여편네. 하지만 나도 나름대로의 짜릿한 시간들을 즐기고 있지. 당신의 쳐진 엉덩이보다는 더 탱탱한 엉덩이들이 그득해. 그 모든 단어와, 상황과, 추악함들이 너무 빠른 슬라이드쇼 같은 광경을 보고 있는 내내 내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와 넘쳐버리고 나를 미치게 만들 것 같았다. 그것은 결국 내 배에 있는 것을 다 게워내게 하고 나서야 끝이 났다. 어머니는 다시 내 방문을 두드렸다.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뿐. 나는 용기를 짜내어 방에 들어온 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머니.”
“왜 그래, 왜 그러니? 어디가 아픈 거야? 응? 말 좀 해봐!”
“......박재상이 누굽니까?”
내 말투는 완전히 타인을 바라보며 추궁하는 것 같은 투였다. 내 이런 행동이 무례한 만큼 그것이 진실이 아니길 바랬다. 그래. 어쩌면 이 따위 흉물스런 물건이 내 정신을 흩뜨리고 지배하려고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잖아. 그래. 하지만, 다음 순간 내 눈은 모든 것을 다 찢어발기고 싶을 만큼의 증오로 가득찼다. 어머니는 그 이름을 듣고 순간 흠칫하면서 말했던 것이다.
“네가.....어떻게 그 사람을?......”
뱃 속의 검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것 같은 울림. 그것이 목구멍을 타고 나와 절규가 되었다.
“나가!!!!!!!! 꺼져버려!!!!!!!!!!”

시험 6일째, 마지막 시험일.
내 방문은 내가 가져다 가로막은 책꽂이와 걸상 같은 것들로 인해, 들어오지도 나가지도 못하게 되어 있다. 학교엔 당연히 나가지 않은 상태고, 나의 손끝에는 계속 그 물건이 만져지고 있다. 이 방 밖은 바깥대로 엉망일 테지. 내 방문을 억지로 열려는 아버지에게, 큰 소리로 나는 임영희씨가 누구냐고 물어보았고, 그걸 따지는 어머니에게는 박재상이 누구냐고 물어보라고 아버지에게 말해두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욕을 해주었다.
“이 개 같은 인간들아!!!”
그것으로 내 더러운 기분이 씻겨져 나갔냐고? 전혀 그렇지 않았다. 어제 꽤 시끌벅적하고 뭔가 다 두드려 부수는 소리가 나더니 지금은 왠지 조용하다. 누구 하나가 집을 나갔던가, 아니면 둘이 서로 칼을 찔러 죽였든가. 뭐가 어떻게 되었든 나는 이제 전혀 상관하지 않을 거라고, 그렇게 다짐하면서 계속 그 물건만 매만진다.

단 하나라도, 희망을 줄 수 있는 모습들을 찾으려 애썼다. 성스러운 자의 모습이라도, 무엇이라도 좋았다. 하지만 모든 것의 종말은 결국 좋지 않은 것들이었다. 그 안에서 내 눈에 비춰졌던 사람들은 스스로는 모르고 있지만, 모두 두 가지 중의 하나로 빠져 들어갔다. 하나는 허영, 하나는 추악.

그 두 가지의 모습을 스스로가 키우고 즐거워 하면서도 결국 스스로를 속인 채, 그렇게 같잖은 자기 방어와 왜곡을 일삼으면서 자신들이 옳다고 가증스럽게 살아가고 있는 모습들이었다. 매만지면 매만질수록, 나의 머리는 터져나가려고 했다. 수많은 정보들과 수많은 영상들이 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 중 내게 희망을 주는 어떤 사고와 영상들도 보이지 않았다. 이미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그 때, 문득 나는 어떤 한 가지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것이 맞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앉아 있던 책상에서 비틀거리면서 일어나서는 옷걸이에 걸어둔 교복 바지의 주머니에 손을 뻗었다. 그 주머니에서 집히는 종이. 아직 있었던 것이다. 나를 진정한 친구라 생각하는 녀석. 나보다 먼저 이런 세상들을 보았던 그 녀석. 그래, 이제야 이름이 기억이 난다. 석진이. 나는 조심스레 종이를 펼쳤다. 그리고 녀석이 그 쪽지에 휘갈긴 말을 다시 되새겼다.

‘여기보다 더 좋은 곳이 있다는 걸 알았어.’

나는 녀석이 어떻게 했는지를 보기 위해 다시 집중해서 살살 그 물건의 겉부터 매만져 주었다. 그리고 그 속으로 석진이 녀석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석진이는 화장실의 천정으로 올라가 그것을 계속 매만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윽고 그 물건은 점점 그 안쪽을 넓게 벌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한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살짝 좁은 동굴입구의 크기만큼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 속을 이 물건은 보여주지 않았지만, 그 곳에서 나오는 빛과 휘황찬란하게 반짝이는 가루들 사이로 석진이는 황홀한 표정을 지으면서 이내 그 속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그리고 하반신, 다음 어깨와 머리가 그 속으로 모두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물건은 석진이가 그 속으로 모습을 완전히 감춘 후, 천천히 원래의 크기대로 되돌아오고 있었다. 거기까지 보고나서야,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완전히 감을 잡을 수 있었다. 너무 집중해서 보았는지 안 그래도 따끔거리는 눈이 이젠 거의 떠지지 않다시피 했다. 눈 속에 흐르는 물이 모자란 탓인 것도 같았다. 하지만 딱히 눈이 보이지 않아도 괜찮았다. 나는 눈을 감은 채로 그 물건을 다시 매만지기 시작했다.

“제발, 이곳보다 더 좋은 곳을 보여줘.”

평소 때의 배는 집중했다. 애무도 훨씬 더 섬세하고 부드럽게 했다. 안팎을 구석구석 혀로 핥다시피 하고 민감한 부분들을 집중적으로 애무했다. 그리고 좀 더 부드러운 입김과 혀놀림을 쓰기 시작했다. 내 속에 있는 간절함만큼, 나는 최선을 다하려 애썼다. 그리고 조금씩, 그 물건이 커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제는 부풀만큼 부풀어오른 클리토리스의 부분이나, 외음부의 주름, 내부의 질 주름 같은 것들이 죄다 손바닥에 느껴질 정도였으니. 하지만 그렇게 금방 넓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만큼의 오랜 시간동안, 그 물건을 붙잡고 씨름을 했다. 한 두 시간여가 지났을까, 나는 감은 채였던 눈에 빛이 비춰오는 느낌을 느끼고는 살며시 눈을 떴다.

그 곳의 중심부가 내가 들어가기에 충분할 정도로 크게 넓어져 있고, 그 안에서는 빛이 보였다. 마치 별빛 같은, 어둠 속에서 총총히 빛나는 무수한 광점들의 향연. 어쩌면 우주의 한 가운데처럼 보이기도 하는 광활한 풍경. 아무 것도 없을 것 같은, 조용한 풍경. 무거운 눈두덩이 사이로 눈웃음이 번졌다. 이 곳이야말로, 이 곳의 안이야말로 내가 정말 안식을 찾을 수 있는 그 공간. 나는 의자 위로 올라가, 한 발을 조심스럽게 넣었다. 그리고 또 다시 나머지 한 발, 그리고 어깨와 머리를 모두 그 곳의 안으로 들이밀었다. 모든 것이 나를 삼키고, 입구는 점점 작아지더니 닫혔다.

잠시 나는 하늘에 떠있는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떨어지고 있지는 않았다. 그 안쪽의 바닥이 나를 잡아당기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토끼를 따라 들어갔던 구멍 속으로 떨어지는 기분이 아마 이랬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조심스레, 팔과 다리를 움직였다. 여전히 빛나는 점들은 나의 눈앞에서 마치 강이 흐르는 듯한 띠 모양을 이루고 있다. 뭔가 점점 몽롱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내 손을 눈앞에 가져다 대 보았다. 그리고 그제서야, 그 손이 점점 작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손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온 몸이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나는 내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챘다. 나는 점점 어려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무섭지는 않았을 뿐더러, 오히려 점점 편안한 기분이 되고 있었다. 손가락은 어느새 아주 작아지고, 내 목에는 힘을 줄 수가 없었다. 다리는 똑바로 펴기 힘들게 구부정하고 작게 되어 있었고, 발가락의 발톱들은 너무나 귀엽게 변하고 있었다. 너무 편하구나. 점점, 편해지게 되는 거야.

눈이 어느덧 보이지 않았다. 피부도 이상하게 변질되고 있었다. 만들어졌던 핏줄들이 도로 사라져가는 듯 했다. 거기까지가 내가 내 눈으로 확인한 나의 마지막 모습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내 의식도. 나는 이 뒤의 모습들을 상상했다. 아마도, 수정체의 모습이 될 것이고, 수정체의 안쪽에서 분화를 일으키던 성분들이 다시 모여들고, DNA는 다시 모여 조그만 단백질 구조 속에 응축되겠지. 그리고 그건 어느새 꼬리가 달려서 난자 밖으로 떨어져 나가게 될 거야.

모든 건 이렇게 되어야만 하는 거였다. 눈과 뇌란 것이 그 생겨난 모습으로부터 다시 원래의 단백질 덩어리들로 사라지기 직전, 나는 다시 이렇게 태어나지 않기를 바랬다. 그 바램이 이루어질 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건 그거였다.

그래. 이게 바로 내가 원한 곳. 이게 바로 내가 원한 시작이자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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