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괴한 망상의 둥지 0011 - 괴수

NEOKIDS 작성일 06.12.09 22:2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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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괴한 망상의 둥지 - 0011 괴수



“엄마, 우리는 왜 괴수라고 불려?”
엄마는 내 질문에 한동안 대답이 없었다. 단지 내가 잤던 자리를 치우느라 분주할 뿐이었다. 하지만 엄마의 눈이 멍한 것으로 봐서는 뭔가 엄마가 깊이 생각하고 있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뿐이었다. 나는 내가 물어봐서는 안 될 것을 물어보았나 하고 그냥 입을 다물었다. 이윽고 자리가 다 치워지자, 엄마가 말했다.
“우린, 그냥 생긴 게 괴수니까 괴수라고 불리는 거야.”
“인간들이 인간들처럼 생겼으니까 인간이라 불리는 것처럼?”
“그런 거지.”
“그런데 왜 인간들은 우리만 보면 공격하는 거야?”
“우리가 하는 일이 맘에 들지 않는가 보다. 아마도 자신들의 안전을 위협받으니까 그런 거겠지. 우리가 인간들의 건물들에 위협감을 느끼는 것처럼.”

엄마는 그 날 인간들의 도시에 나갔다가 많이 다쳐서 왔다. 살아서 돌아온 것이 다행이라고 주변 어른들이 그랬다. 이웃집에 사는 어른이 좋은 약이라면서 인간들이 우라늄이라 부르는 것을 좀 캐왔다고 놓고 갔다. 엄마를 간호하면서, 나는 우리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답답해지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그건 우리가 괴수라 불리는 것만큼이나 이미 촘촘히 짜여 있어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 같았다. 우리가 왜 싸우고 있는 것일까. 왜 우리가 그렇게 힘들여 영역을 개척해 놓으면 왜 인간들은 거기에 트집을 잡고 날아다니는 것들을 보내고 우리만큼이나 힘이 센 어떤 것들의 보호를 받는 걸까. 하지만 그 날은 엄마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엄마는 다시 기운을 차렸다.

“엄마, 오늘 또 나가?”
"응. 나가야만 돼.”
“엄마. 나 정말 궁금한 게 있어.”
나가려던 채비를 하던 엄마에게 나는 정색을 하고 말했다. 엄마는 내 얼굴을 한 번 힐끗 보더니, 모든 걸 잠시 멈추고 내 앞에 앉았다.
“왜 우리는 이렇게 맨날 싸워야만 해? 그냥 인간들이랑 사이좋게 지내든가, 아니면 우리끼리 살 수 있는데 가서 그냥 숨어살면 되잖아. 왜 하나뿐인 목숨을 걸고 싸워야만 하는 거야? 우리 종족의 영역이 그렇게 중요해? 우리가 인간들에게 위협 받는 그게 그렇게 중요하냐고.”
엄마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엄마도 너 만할 때 그런 생각을 가져봤단다. 그리고 인간들이랑 친해져보려고도 노력했어. 하지만 그럴 수가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단다."
"어째서?“
“인간들이 엄마를 잡아가려고 하더구나. 그리고 연구라면서 나를 죽이려고 했단다.”
“하지만.....”
“엄마가 단순히 그런 것 때문에 이렇게 목숨을 거는 건 아니란다.”
엄마는 되려 나보다 더 정색을 하고 말했다.
“엄마도 너와 같이, 우리가 왜 괴수라고 불릴 수밖에 없는지 생각했어. 엄마도 너처럼 우리의 영역이나 그 모든 것들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단다. 그런데 누군가와 대화를 하면서 알았어. 그것들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걸. 그건 다음에 이야기해 줄게.”

그 뒤로, 나는 다시는 엄마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다. 엄마는 그 날 나가서 울트라맨과 메카고지라의 협공을 받아 폭발해서 돌아가셨다. 같이 나갔던 어른들은 시신조차 찾아올 수 없었노라며 내 앞에서 울먹였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여전히,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세 번의 같은 계절이 흘렀다. 이젠 꽤 어른 축에 들게 된 나는 마을로부터 소집명령을 받았다. 정기적으로 한 달에 두 번 이상, 인간들의 도시에 나가 그들의 세력이 확장되는 것을 막아야 했다. 인간들의 건물을 부수고 그들의 군대를 유린하며 돌아오는 사이, 나는 어느새 역전의 용사 정도로 마을 사람들 사이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마을 사람들의 칭송과 최상급 우라늄이 내게 주어졌다. 딸이 있는 집들마다 나와의 혼사를 이야기했지만, 나는 누구도 돌아보지 않았다. 내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내가 죽음으로서 가족들이 뒤에 남겨지는 그런 미래를 상상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내 마음 속에서는 그 답답함이 풀리지 않았다. 어머니를 잃고서 복수심에 불타서 수많은 인간들을 벌레 밟듯이 밟아 죽이기는 했지만, 그것도 시간이 흐르자 무의미해지고 있었다. 요근래에는 임무를 마치고서도 부서진 건물들을 보면서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을 때가 많아졌다. 이런 짓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무슨 발전이 있는가. 점점 그런 정기 소집에 나가는 것조차 싫어지고 있었다.

어느 날 소집명령이 떨어졌을 때, 나는 이번 일을 마지막으로 해야 겠다고 결심했다. 어딘가로 숨어 살 수 있는 곳이 있다면, 그런 곳으로 떠나야겠다고. 그렇게 결심하고는 먼저 짐을 꾸려놓았다. 그리고는 바로 인간들의 도시 중 하나로 이동했다. 바다를 이용해 이동해서 보니 해안가는 먼저 도착한 날개 달린 동지들이 1차 타격을 가한 뒤였다.
‘마지막이니까.’
그런 마음으로 전보다 더 열심히 부쉈다. 마지막 건물 하나까지, 마지막 인간 하나까지.

제대로 부숴놓고 나서 보니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퇴각하자고 누군가 외쳤던 것 같은 생각이 그제서야 났다. 이렇게 오래 지체하고 있으면 그 놈들이 온다고 한 걸 떠올렸지만, 시간은 결국 늦을 대로 늦어 있었다. 눈부신 빛이 비추었고 나는 잠시 눈을 가렸다. 그리고는 혀를 짧게 찼다. 제일 우려했던 상대들, 울트라맨과 메카고지라가 하늘을 날아와 내 앞에 내려앉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이런, 아주 제대로 헤집어 놨구만.”
울트라맨의 빈정대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지막이었으니까.”
무표정하게 말하는 내 태도에 울트라맨이 유심히 나를 뜯어보았다.
“오, 넌 그녀의 아들이었군. 이거야 원.”
“그녀?”
“너의 어머니는 혹시 메길로돈이라 불리는 암컷 괴수 아니었나?”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나의 어머니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나의 어머니를 알고 있나?”
“뭐, 조금 인연이 있지.”
호기심이 일었다. 죽도록 싸우기 전에 아직 시간은 어느 정도 있으니까. 계속 질문을 이었다.
“대체 나의 어머니를 어떻게 알고 있지?”
“그럴 수밖에 없는 게.....너의 어머니도 너랑 똑같은 소리를 했거든.”
“뭐?”
“마지막이라고 했다고. 내가 아직 너의 어머니를 기억하고 있는 것도 신기하지. 하긴 그녀와도 이야기를 나누었으니 너라고 못할 것은 없나. 마침 너희 편도 아무도 없으니 오붓하게 이야기나 해보자고. 그동안 이야기를 나누려는 괴수가 참 없었어. 내가 몇 마디만 하면 죄다 화만 내고 덤벼드니 말이야.”
울트라맨은 담배를 물면서 메카고지라의 스위치를 껐다. 메카고지라의 고개가 푹 숙여졌다.

폐허 위에서 우리는 마주앉아 있었다. 정유공장에 붙은 불이 계속 타오르고 있었기 때문에 추운 겨울임에도 그다지 추운 걸 느끼지는 못했다. 일렁이는 불길을 울트라맨은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이야기를 하자고는 했지만 나도 뭔가 말을 꺼낼 것이 없어 가만히 앉아 있었다. 울트라맨은 피우던 담배를 비벼 끄고는 내게 물었다.
“너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하는 거냐?”
“나도 그게 궁금했어. 하지만 할 수밖에 없었지.”
“그녀에게서도 너와 같은 대답을 들었어. 하지만 나는 어느 정도 너희들과 싸우는데 이유가 있지.”
“이유가 뭔가?”
“난 너희들이랑 싸우고 나서 얻는 것들이 좋아. 물건? 욕망? 혹은 어떤 지위라고 해도 좋지.”
나로서는 그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고작 그런 것 때문에 목숨을 건다니. 어리둥절함을 느끼는 걸 안다는 듯이 울트라맨은 미소를 지었다.

“난 다른 별에서 왔고, 메카고지라 이 녀석은 인간들이 고지라라는 네 선조를 연구해서 만든거야. 물론 그 연구 자체도 고지라를 죽이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지만. 나는 몰라도 왜 인간들은 메카고지라를 만들었을까? 답은 간단해. 인간들이란 것은 권력에 대한 욕구라든가, 영역에 대한 욕구라든가, 이런 게 엄청나요. 누구나 가지고 있지. 킬킬.”
“그게 너와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우습게도, 나도 그들이 가진 것들의 달콤함을 알아버렸어.”
울트라맨은 다시 담뱃갑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 입에 물었다.
“자본주의니, 민주주의니, 수많은 인간들의 형식과 제도들은 다 자기들의 잇속을 채우려고 하는 것들이야. 거기서 나는 모든 게 그들보다 우월한 존재지. 뭐 여차하면 내가 그들의 행정부를 없애버리고 지배를 할 수도 있어. 하지만 그것도 상당히 귀찮은 노릇이야. 얼마나 신경 써야 할 게 많은데. 나는 딱히 어른도 아니고, 그런 것을 할 필요도 없던 별에서 왔어. 아니, 불시착했다고 하는 표현이 맞겠지.”
“.......”
점점 더 이해가 가지 않는 것들만 말하고 있었다. 그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투로, 아니, 무척 신이 난다는 투로 그는 말을 이었다.
“괜찮지 않냐 말이야. 나는 적당히 내 힘을 이용해서 그들의 잇속을 채우는 일을 봐주고 그들은 그 대가로 내 뒤를 봐주고. 내 정체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 어느 정도의 사람들은 알고 있고 나도 그들에게 편의를 얻고 있거든. 귀찮은 것들도 없고, 생활은 편하고, 가끔씩 너희 같잖은 것들만 상대해주면 스타도 되고. 밤마다 여자들의 쾌락에. 이번에 들어온 수비대 대원은 아주 예쁘장한 게 잘 빠졌거든. 킬킬킬.”

이제야 모든 것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주체할 수 없이 몸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러니까....우리를 없애는 대신 그들에게 얻을 것을 얻는다?”
“뭐 그런 거지. 인간들의 말로는 보호세 같은 거랄까? 그리고 너도 이쯤 되면 이제 흥분할 듯한데.”
“그럼 넌 왜 내가 흥분할 만한 이야기를 한 거지? 어째서 나 같은 놈을 붙잡고 이야기를 하고 있냐는 거다.”
입에 물려 있던 울트라맨의 담배에서 담뱃재가 떨어졌다. 손가락에 그것을 옮기고 나서 울트라맨은 말을 이었다.
“이런 말을 터놓고 할 수 있는 상대가 없었거든. 인간들이란 건 생각이 많고 반발도 많은 놈들이라서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여론이란 게 아주 매도를 해버리니까. 이런 생각을 인간들에게 말하는 그런 바보 같은 짓은 할 수 없지. 게다가 내가 이야기하고 있는 건 이미 너도 겪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해서. 너희도 인간들을 공격하는 괴수들 중 특출난 애들한테는 뭔가 여러 가지 떼어준다며?”
울트라맨은 두 번째 담배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리고 그것을 발로 비벼 껐다.
“그런데 너의 어머니가 한 말이 참 기억에 남았어. 그런 건 우리가 인간을 공격하는 야만보다 더 나은 것이 뭐냐고. 그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봤다. 지금은 결론을 냈지. 그런데 그걸 그 질문을 던진 괴수가 아닌 그 아들놈에게 말해주게 될 줄이야. 가끔씩, 세상은 재미있어.”

그 말을 들으며 나도 천천히 일어났다. 이 말을 마지막으로, 대화는 끝날 것이라는 걸 느꼈다. 이제는 대화는 더 이상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이 일이 마지막이 될 수 없을 것이라는 것도, 내가 절대 괴수들의 세계를 떠날 수 없으리란 것도, 깨달았다.

“그런 건, 결국 아무 것도 아닌 거잖아? 이익에 따라 움직이고, 편한 대로 따라 움직이고. 그건 너나 너의 어머니나 나도 마찬가지였다는 거.”

울트라맨이 주먹을 쥐었다. 나도 온 몸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해주려던 말들의 의미. 그것을 이만큼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깨달은 것이다.

“이젠 됐지? 그럼 슬슬 붙어보자고.”
나와 울트라맨은 더욱 거리를 벌렸다. 나는 그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해 돌진했다. 먼지와 연기가 폭풍처럼 뒤섞여 우리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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