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안의 그녀.16

니뿡간지 작성일 06.12.10 12: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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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하나 없는 밀폐된 공간. 철로 된 문.
게다가 먼지와 함께 콧속으로 들어오는 쾨쾨한 지하실의 냄새가
이곳이 밀실이라는 걸 말해주고 있다.
그런 곳에 팔이 꽁꽁 묶여진 체 천장에 매달려 있는 남자. 선욱이다.
고개가 축 쳐져있는 걸로 봐서 정신을 잃은 것 같다.
그리고 바로 앞에는 군복차림의 남자 두 명이 매달려 있는
선욱을 올려다보고 있었는데 왠지 일재시대의 잔혹한 고문의 한 장면을
떠오르게 하는 모습이었다.

철문 앞에는 군복을 입은 사내들이 어깨에 총을 둘러매고 버티고 있다.
그리고 그런 남자들 사이에는 까만색 정장을 입은 여자가 한명 서있었다.
특이하게도 그들의 가슴부근에는 “Z” 라는 휘장이 박혀있었다.

“깨워”

여자가 각목을 든 사내들에게 명령을 내리자. 그들은 지하실 한쪽구석에 놓여있던 양동이를 가져와서는 선욱의 얼굴에 들이부었다. 선욱은 몸을 한차례 부르르 떨더니 힘겹게 눈을 떴다. 그는 약간 놀란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강선욱. 정신이 들으셨나요?”

여자는 선욱에게 가까이 다가오더니 질문을 했다.
말투는 존댓말이었지만 높낮이가 없었다. 사무적인 말투라고 해야 하나.
선욱은 정신이 들기는 했으나 상황파악이 되지 않았다. 멍한 기억을 더듬어 보니 분명히 길을 걷고 있다가 둔탁한 충격에 정신을 잃었던 것 같았다.

“여기는..??”

“아직도 정신이 멍한가 봐요?”

“에..??”

여자가 사내들에게 슬쩍 눈짓을 하자 다짜고짜 그들의 각목이 선욱의 등짝을 내리치기 시작햇다.

“퍽! 퍼억!!”

“아악!!”

선욱의 짧은 비명이 들리는가 싶었지만 그들의 각목은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결국 그의 등을 수십 차례나 더 왔다 갔다 하고서야 겨우 매질을 멈췄다.
선욱의 얼굴은 곧 일그러 질대로 일그러졌다.
엄청난 고통이 엄습해 왔기 때문이었다. 그의 옷 위로는 피가 배겨 나오기 시작했다.

“!!!”

선욱은 맞는 도중에 그들을 자세히 둘러보았다. 그제 서야 그들의 옷차림이 너무나 낯에 익다는 걸 깨달고서는 잘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를 쥐어짜며 말을 꺼냈다.

“ "Z” ??“

“역시 맞고 나니 정신이 좀 돌아온 것 같군요”

“어...어째서..?”

선욱은 맞은 자리에서 느껴지는 고통으로 말까지 더듬거렸다.

“어째서 라니요. 그럼 00367을 도와주고도 무사할거라고 생각했나요?”

“!!!!!!!”

선욱은 순간 머리에 5톤 정도의 망치를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어째서냐고 물어 본건 바보 같은 질문이었다.
이런 일은 예리와 “Z" 에게 연관되기 시작했을 때부터 어느 정도 마음 한구석에서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으니까.

“예리...예리는...어떻게??”

선욱은 상황이 파악되고 정신도 말똥해지자 필연적으로 예리가 떠올랐다.
아직 자기 자신이 살아 있는 걸로 봐서는 무사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걱정되는 마음은 지울 수는 없었다.

“당신 걱정이나 하지. 00367은 왜 물으시나요? 그렇게 궁금하신가요?”

선욱은 기억을 더듬어서 왜 그녀와 떨어져서 거리를 걷고 있다가 이들에게 잡혔는지를 떠올렸다. 분명히 예리를 대리고 돈을 번다는 것은 불가능 하다는 걸 깨닫고 고향집에 부탁해서 생활비를 가불받고는. 가불 받은 돈을 찾으러 은행을 가기위해 잠시 예리를 여관 방안에 나두고 나왔다가 습격을 받은 것 같다. 그녀는 그럼 아직 여관방에 있는 건가?

여자는 그런 선욱을 바라보다가 다시 군인들에게 손짓을 했다.
그러자 다시 각목이 선욱을 내리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등짝만이 아니고 아무 곳이나 보이는 대로 구타당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기 시작했고 선욱은 그만 고통에 다시 정신을 잃었다.
갈기 발기 찢어진 옷 사이로 피가 조금씩 떨어졌다.
각목에 의해 살이 멍들다 못해 터져버렸다.
그들은 정신을 잃은 선욱에게 다시 물을 뿌렸다.

“당신 덕분에 00367의 소개가 파악이 안 되서 한동안 곤란했던 것 알아요?
우리가 고생한 걸 생각하면 이런 구타정도로는 성이 안차지만......”

그녀는 가까스로 다시 정신을 찾은 선욱에게
기분 나쁜 미소를 지으며 말꼬리를 흐려버렸다.

“성이 안차면 어떻다는 거야? 그럼 그냥 죽이라고!!”

선욱이 악에 바쳐 소리쳤지만 여자는 그런 선욱의 모습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의 주위를 한 바퀴 빙빙 돌더니 입을 열었다.

“죽일 수야 없죠. 거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들어보실래요?”

“듣기 싫다면?!”

선욱은 쓸데없는 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소리를 질러 거부했다.
그리곤 그녀의 얼굴에 침을 뱉어버렸다.
그러나 여자는 의외로 얼굴을 한번 닦아낼 뿐
선욱의 행동자체는 그냥 무시해버리곤 자기의 말을 계속 하기 시작했다.

“첫번째 이유는 당신은 00367를 유인하는 좋은 먹이라는 거에요.
00367를 그냥 상대하는 건 우리도 버거웠는데
덕분에 좋은 기회를 제공해 주어서 고맙기는 해요.
후후. 00367은 당신을 구하러 오다가 미리 준비된 함정에 걸려 죽어버리는 거에요”

“.......이....!!!!!!”

“아...안돼.....그녀를 더 이상 괴롭히지 말아! ...안돼...안돼!!”

선욱은 묶여있는 팔을 흔들며 심하게 발버둥 쳤지만 그럴수록 밧줄이 살을 파고들뿐이었다.

“00367은 죽게 돼 있는 거니까 그렇게 발광하지 마세요. 당신은 모르겠지만.
00367은 이 세상에서 존재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00367은 이 세상 모든 것의 적이니까.
그것도 모르고 00367을 도와주다니 기가 막혀서”

“무...무슨 소리야! 예리를....예리를 그렇게 만든 건 너희들이잖아?
예리를 예리를 제발 가만히 나줘.....예리는...”

“풋....”

“푸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

선욱의 약간 울먹거리는 말에 밀실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웃기 시작했다.
확실한 비웃음 이었다.

“당신. 웃기는 소리하지 말아요. 00367이 어떤 존재인지나 알아요?
그녀는 초능력자 따위가 아니에요.
00367은 살아있는 것 자체로 전 인류가 위험해지니까.
우리는 고맙게도 세상을 대신해서 제거해 주는 거라고요”

“웃기지마!!”

“당신은 이해할 필요도 더 이상 알 필요도 없는 사실이에요”

“당신이 알아야 할 건 우리가 당신을 죽일 수 없는 두 번째 이유지요”

“뭐??”

“당신은 ”Z" 의 실험체로 연구소에 들어갈 꺼 예요.
원래는 당신의 정신을 조작해서 당신스스로 00367을 죽이려고 하였는데...
어떤 초능력도 먹히지 않더군요.
그러니 연구대상이 될 수밖에요.
그러니까. 당신은 당신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는 거예요“

실험체라고?
예리는 죽고 자신은 마음대로 죽지도 못하는 실험체?
선욱은 허탈했다. 이것이 최후란 말인가?
그녀의 말을 듣고는 선욱은 한동안 할 말을 잃어버렸다.
지나가 죽을 때 다짐했던 그 마음.
어떻게 해서든 “Z"를 부셔버리겠다는 맹세.
그러나 역시 불가능한 일 이었던 것 같다.
선욱은 허탈감에 그만 웃음이 쏟아져 나오고 말았다.

“하하하하....하...하..”

선욱은 혀라도 깨물고 죽을 수 있을 때 죽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리가 마음에 걸리지 않았다면 아마 정말로 혀를 깨물었을지도 모른다.
그로서는 예리가 함정에 걸리지 않고 도망가주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이미 잡혀버린 자기는 어떻게 되도 좋으니까. 예리만은 살아주기를 바랬다.
그녀에게 지금까지 이 세상은 지옥 그 자체였으니까.
살아서..살아서 행복해질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묶여있어서야 예리를 도와줄 그 어떤 방법도 없었다.
그저 예리가 아예 자기를 구하러 오지 않기를 기도하는 것 정도밖에는..

선욱의 허탈한 웃음소리에 “Z"는 기분이 나빠졌는지 다시 그를 구타하기 시작했다.

“퍼...퍽...퍽!!”

뼈와 각목이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선욱은 다시 정신을 잃었다 깨기를 반복해 갔다.
끝도 보이지 않게.
.
.
.
.
예리는 한참을 기다려도.
금방 오겠다던 선욱이 나타나지 않자 점점 짜증과 함께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예리는 안절부절 가만히 잇지 못하고 여관 방안을 쏘다니기 시작했다.
선욱이 곁에 없으면 너무나 불안했다.
그가 옆에서 웃어주지 않으면 너무나 불안했다.
어느 사이엔가 그렇게 되 버렸다.

그도 나를 버리고 가버린 걸까.

예리는 손가락을 깨물었다.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너무나 불안했다.
배신.
그 추악한 행위는 그녀가 살면서 너무나도 많이 겪었던 일중의 하나다.
역시 인간이란 그런 거라고 생각해버리면 다겠지만.
그건 옛날의 일이었다.
그를 믿어 보겠다고 결심하던 그날만 해도.
선욱이 배신이라도 한다면 가차 없이 죽여 버릴 것이라 다짐했었지만.
그래 그건 옛날의 일이다.

싫어....

그녀는 고개를 세차게 가로질렀다.
선욱이 사주었던 옷을 내려다보았다.
괜히 옷을 움켜쥐어 보았다.

결국 예리는 여관방을 나섰다. 찾아보면 되는 거다.
찾아서 조금은 화내주고는 옆에 두지 않으면 도저히 마음이 진정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저기!!”

여관비를 계산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예리가 나가려고 하는 모습을 본 여관주인이 예리를 불러 세웠다.

하지만 예리는 그를 돌려보더니 그대로 죽여 버렸다.
예리의 입장에선 가뜩이나 기분이 좋지 않은데 말을 거는 것들이 제일 싫었다.
기분이 나쁠 때 말을 걸 수 있는 건 오직 그 뿐이니까.

곧 여관의 카운터 앞이 피를 뭉개졌다.
곧 비명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예리는 신경조차 쓰지 않곤 곧바로 거리로 달려 나왔다.
높은 곳을 찾아서 올라가 보았지만 보이지 않는다.
그 잘난 파안으로 사방을 뒤져보지만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가버린 거야.
혹시라도 그가 돌아 왔을까봐 여관 쪽을 살펴보았지만 역시 나타나지 않았다.
게다가 여관 쪽에 예리가 너무나도 싫어하는 존재들이 모여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발견하고는 다시 여관으로 달려갔다.
예리가 너무나도 싫어하는 존재란 당연히 “Z" 였다.

설마 그들이 선욱을 어떻게 한건 아니겠지?
생소한 감정.
불안함.
누군가를 걱정한다는 건 예리에게 있어서 너무나 생소한 감정이지만.
그러나 너무나 괴로웠다.

그녀는 그들을 다짜고짜 노려보았고.
곧 하나둘씩 터져나가 버렸다.
한사람만을 남겨둔 체로.
예리는 어느새 그에게 다가가 멱살을 움켜잡았다.

“너희들 여기 왜 온 거야”

동료들의 죽음을 목격한 제트의 군인은 공포에 극심하게 온몸을 떨면서
예리의 질문에 대답을 했다.

“선욱이라는 사람을 대리고 있으니까
오지 않으면 그를 죽이겠다는 말을 전하러.....“

“뭐야?!!”

예리는 자기도 모르게 멱살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선욱을 잡아갔다고?
갑자기 머리에 피가 몰리는 느낌이었다.
그녀의 파안이 너무나도 빨갛게 갈라지기 시작했다.

“커...커억”

“어딨어. 그는 어딨어!!”

“이....이거...조...노...놓고..”

“어딨어!!!!”

어느 사이에 군인의 힘이 쭉 빠지더니 늘어져 버렸다. 죽어버린 것이었다.
예리는 선욱이 있는 장소를 듣지 못했다.
멱살을 잡고 있던 인간을 집어던져 버리고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모두 죽어있었다.
예리의 주위에 있는 것은 낭자한 피 뿐이었다.

“기가 막혀서.”

그런 예리의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정장A였다.
그녀의 특기인 텔레포트로 나타난 것이리라.

“선욱은?”

예리는 정장A를 돌아보고는 다짜고짜 다그쳤다.

“그러니까. 그가 있는 장소를 알려주러 온 군인들은 왜 다 죽이냐고? 덕분에 나까지 힘들게 하고 있어”

“시끄러!!”

정장A의 말에 예리의 살기가 점점 짙어져갔다.
정장A도 예리의 숨 막히는 살기를 느끼고는 급하게 말을 돌렸다.

“너...너의 능력을 쓰지 않는게 좋을껄? 그 남자가 있는 곳을 영원히 알고 싶지 않다면 말이야”

정장A의 목적은 예리를 도발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도발하게해서 따라오게 해야만 했다.
예리가 선욱이 있는 곳을 모르게 된다면
“Z" 로서도 기껏 세운 계획이 물거품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비꼬는 말을 해서 예를 자극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예리는 그런 정장A의 말에 훌륭하게 넘어가서는
끓어오르는 분을 억지로 참으면서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어디에 있어....”

“훗. 그렇게 나와야지. 따라와”

정장A는 면면에 웃음을 짓고는 몸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그 뒤를 예리가 뒤따랐다.
단순한 예리로서는 함정이 준비되어 있을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 상태였다.

“푸슝...”

“????”

한참을 걷던 그녀의 발 옆으로 총알 한발이 꽂혔다. 탄환이 땅속을 파고들어 반짝인다.
예리가 무슨 흡혈귀라도 되는 마냥 너무나도 반짝거리는 은제탄환이었다.

예리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느 사이에 주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보통의 번화한 사거리인데도 사람의 그림자 하나 없이 조용했다. 눈이 빨갛게 갈라짐과 동시에 거의 초정밀 망원경이 되는 그녀의 파안으로도 총을 쏜 사람을 발견하지 못하였다.

“잘해봐..후후”

정장A는 탄환을 발견하고는 기분 나쁜 말을 남기더니 사라져 버렸다.
폭풍전야 같이 조용한 거리. 그녀를 빼고는 살아 있는 생물은 없는 것 같다.
예리조차도 본능적으로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침을 꿀꺽 삼켜 내렸다.

“쉬이이잇....”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어디선가 또다시 총알이 4발이 날아왔다.
그녀가 피했다고 하기보다는 총알이 예리를 빗겨나가 땅속으로 박혀버렸다.
총알이 날아온 방향으로 봐서는 한 두 군데에서 쏜 것이 아닌 듯 했다. 예리는 사방을 살피며 저격수를 찾으려고 하였지만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파안의 능력에 상당히 대비를 했는지 엄청나게 먼 거리에서 조심스럽게 한발 한발을 쏘는 모습이었다.
덕분에 저격의 정확도는 조금 떨어졌지만 그들의 작전대로 예리는 도무지 저격수를 찾지 못했다.

“슈........ㅇ ”

다시 또 4발의 총알이 바람을 갈랐다.
이번에는 한발이 예리의 배 부분을 꿰뚫어 버렸다.
예리는 총알이 관통한 부분을 한손으로 움켜잡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벌써 쓰러져야 했겠지만 그녀는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총알을 명중시키고도 저격수들은 전혀 서두르지 않았다.
또 조용한 시간이 찾아왔다. 너무나도 조심스러운 저격수들. 예리에게 위치를 파악당하는 것을 극히 꺼리는 모습.

배를 움켜쥔 예리의 손바닥 사이로 피가 넘쳐 나와서 땅으로 뚝뚝 떨어졌다.
예리는 그런 몸을 질질 끌고 앞으로 전진 했으나 이번에는 사방에서 연기가 퍼져 올랐다
최루탄? 연막탄? 무엇이든지 간에 예리의 시야를 가리기 위함인 것 같다.

“공격!!”

“sir!”

조용한 거리앞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더니 곧 엄청난 총알들이 거리를 짙게 매운 연기 속에서 예리에게 쏟아졌다.

“두드드드드드드”

“타앙 타앙 탕 탕 타앙”

“퍼...퍼엉. 푸슈유윳!”

하지만 예리의 파안은 연막 정도로는 막을 수 없었다. 예리는 총을 쏴대는 “Z"를 마구 터뜨렸다. 한동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연기 속에서 사람이 터지는 소리와 총의 발사음 등등이 어우러져 전쟁터가 되었다.

그래도 아직까지 예리는 그다지 치명상을 입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연기 속에서 폭발음이 들려왔다. 예리가 있는 방향이었다.
“Z" 쪽에서 수류탄과 박격포를 예리에게 집중 발사했다. 게다가 원래부터 폭탄을 묻어놓았는지 땅속에서부터 폭발이 일어났다.
조금 전과는 비교도 도지 않는 폭발음이 고막을 찢어 버릴 듯이 울려 퍼졌다.

“퍼어엉”

“콰아아앙”

“콰앙!!”

그러기를 얼마 후.
다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거리가 조용해졌다.
서서히 연기가 걷혀져 시가지의 모습이 선명해 지기 시작했다.

길 군데 군데 구덩이가 파여 있었다. 수류탄과 박격포. 등등의 흔적인 듯 했다.
주위의 건물 대부분이 마치 폭격을 맞은 것 같이 부서져 있었고 잔해들은 모두 예리 쪽으로 쌓여있었다. 예리 바로 앞의 아스팔트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거대한 구덩이를 만들어 논 것으로 봐서 그곳에 가장 큰 폭탄을 장치해 놓은 모양이었다.
아스팔트가 파헤쳐져 흙덩이들이 사방으로 튀어있었다.

수류탄과 기관총을 난사하던 “Z" 쪽에서는 상당수의 군인들의 시체가 너저분하게 깔려있었다. 피가 아스팔트를 타고 예리 쪽으로 흘러내려 갔다. 그렇지만 시체의 수로 봐서 상당수의 군인들이 무사히 모습을 감춘 것 같았다.

그리고...
수많은 구덩이들 위로 서있는 예리의 모습은 너무나 처참했다.
옷은 거의 갈기 발기 찢어져 피범벅이가 되어 있다. 그리고 다리와 팔은 심하게 찢어졌고. 폭발의 여파로 긴 머리도 완전히 그을러 버렸다. 얼굴은 많은 총알이 스쳐 지나갔는지 군데군데가 긁혀있었다. 몸 군데군데는 심하게 탄 냄새가 피어올랐다. 전신의 살은 거의 다 벗겨져서 핏덩이와 함께 타버린 것 같이 새까맣게 되었고. 내장기관 곳곳이 총알에 관통당해 피를 끊임없이 내뿜고 있었다. 거의 폭격이라 싶을 정도의 공격에 몸이 터져나가지 않은 것이 그녀의 괴물 같은 능력을 증명해줄 뿐. 이미 산사람 몸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리는 움직였다. 너덜너덜한. 당장 부스러질 것 같은 다리로. 하얀 뼈가 드러나 보이는 다리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의 다리에 다시 총알들이 먼 거리에서 날아와 관통했다. 맨 처음 그녀를 공격하던 저격수들의 은제탄환 이었다.

“.....싫어.....”

멍한 눈으로 예리는 다시 한발자국을 더 걸어 나갔다.
예리는 하다못해 선욱이 보고 싶었다.
그의 웃는 모습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날아다녔다.
왜 죽음에 앞서 그가 생각 나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냥.
보고싶었다.

걷고 또 걷던 그녀의 몸을 총알들이 계속 관통했다. 예리는 드디어 쓰러져 버렸다.
하지만 쓰러졌어도 그녀의 눈은 여전히 빨갛게 갈라져 있었다.
아니 전보다 더욱 갈라진 것 같았다.
예리는 다시 일어났다. 다리와 몸이 부들부들 떨리면서도 가까스로 다시 일어선다.

그녀를 일어서게 만드는건.
이미 “Z”에 대한 분노 따위가 아니었다.

그저 알 수 없는 감정의 끈이 그녀를 일으키고 있다.

그런 예리의 앞에 몇 명의 여성들이 나타났다.
모두 똑같은 정장을 입은 그녀들은 예리를 향해 손을 치켜 올렸다.
그 뒤로는 다시 수많은 군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정장A는 예리의 비참한 모습을 쳐다보곤 즐거운 표정으로 지껄이기 시작했다.

“역시 이번 작전에 자원하기를 잘했다니까”

“00367? 들리려나? 벌써 죽은 거야? 조금 더 힘내라구”

정장A는 비참한 예리의 모습이 그렇게도 즐거운지 미친 듯이 웃더니 뒤에 있는 군인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쏴!!”

다시 수많은 총알들이 예리의 몸을 향해 날아갔다.
.
.
.
.
.
.

선욱은 너무나 초조했다.
그녀의 소식을 알 수 없는 답답함.
이미 목적을 달성했다는 듯.
더 이상의 구타는 없었지만.
여자와 군인들은 밖에는 일체 드나들지 않고 밀실에만 죽치고 있었다.
결국 참다못한 선욱은 여자에게 입을 열었다.

“이거 봐?...예리는 어떻게 된거야”

“아마 지금쯤이면 죽어가고 있겠지..
죽지는 못하고, 죽어가고....
가희가 관련되어 있으니 아마 쉽게 죽이지는 않을 테니까“

“가희라니?”

“당신도 알 텐데??”

“??”

선욱이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여자는 의자를 끌고 선욱의 바로 앞으로 다가왔다.
가뜩이나 밀실 안에 가만히 있는 것도 무척이나 심심했기 때문에 선욱을 조금 가지고 놀려는 생각이었다. 다른 군인들이라고는 말 한마디 없이 기계처럼 명령만을 들을 뿐이었으므로 그녀에게 선욱은 시간을 때울 수 있는 유일한 장난감이었다.

“가희 몰라요? 또 맞고 싶어요?”

“가희는 그러니까. 저번 09872의 사건 때의 총 책임자..”

선욱은 09872라는 번호를 잊을 수가 없다. 그건 분명히 지나를 부르는 번호였다.
그렇다면 가희라는 건....정장A였다.
그렇다.
지나를 가장 처참한 방법으로 죽여 놓곤.
너무 아름답다고 지껄이던.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여자다.

“그 표정을 보니 누군지 알았나보죠? 굳어진 표정 좀 봐 후후후”

여자는 선욱의 표정에서 괴롭히는 즐거움을 찾았는지 한바탕 웃기 시작했다.

“그럼 예리는...”

“실컷 괴롭힘을 당하다 죽겠지요...”

“...........”

선욱은 고개를 떨궈버렸다.
하필 그 지독한 년이라니....

아니다.!!
아니야.....

선욱은 고개를 가로질렀다.
예리가 함정에 걸려들어 죽어가고 있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무사히 도망쳤을 수도 있는 거다.
선욱은 애써 불안한 생각을 감추었다.
그러나 불길한 생각은.
안하고 싶다고 안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웃기지마!!!”

“후훗. 그렇게 발악하지 마세요. 00367이 뭐가 그리 좋다고”

“시끄러....그녀는...”

"왜요? 그녀라고 섹스라도 하던 게 생각나나요?“

“....................”

“왜 말이 없지요?”

“나는 그녀와 한적 없어”

“하하하하하”

“당신 정말 웃기네??”

선욱은 여자의 말을 아예 무시해 버렸다.
더 이상 상대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냥 무시하는 편이 맘 편하다.
그런 이유로 선욱은 눈을 질끈 감았다.

예리야....
무사 한 거지....

“무시 하지마!!”

“........”

여자는 연달아 선욱이 무시하는 모습에 조금 화가 낫는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버렸다.
그러다가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지 표정을 바꾸며 말했다.

“애들아 나가있어”

“예??”

“나가 있으라니까!!”

방안에 우두커니 서있던 4명의 군인들에게 나가라고 손짓을 했다.
군인들은 처음에는 조금 당황하다가 결국에는 밀실 문을 열고는 나가버렸다.

“당신 거짓말 그만 하는 게 어때? ”

“뭐??”

선욱은 여자는 예외의 행동에 눈을 뜨고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여자는 갑자기 매달려 있는 선욱의 남성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자...잠깐 뭐하는 거야....하지..마!!”

“이렇게 금방 커지면서. 아무 짓도 안했다는 거?”

“그...그건 하곤 다...다르잖아”

“그럼 이건 어때? 거짓말 그만치고. 심심해 죽겠는데. 나를 안아봐. 그럼 연구소 가서도 편하게 지내게 해 줄 테니까”

여자는 선욱의 앞에서 상의를 벗더니 블라우스마저 풀어 해치기 시작했다.

“자...잠깐...;;”

“왜 그러시나요? 후훗”

“내려줘. 내려줘야 안아주지. 어차피 밖에는 네가 부르면 달려 들어오는 부하들이 있으니까 풀어줘도 상관없잖아”

“거봐 역시 참지 못하겠나보지? 얼굴도 괜찮게 생겼으니까 뭐 좋겠지 후후”

여자는 품안에서 나이프를 꺼내더니 선욱을 묶고 있던 줄을 향해 던졌다.
그러자 밧줄이 끊어지면서 선욱은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하지만 곧 일어날 수 있었다.
몸 곳곳이 아파왔지만.
실험을 위해서인지.
뼈가 부서지지 않게 골고루 구타를 당했기 때문에 충분히 걸을 수 있었다.

선욱은 그대로 여자에게 다가가 그녀를 살포시 안았다.

“정말 편하게 지내게 해주는 거지?”

“날 만족 시켜주면. 편하고 말구. 그 00367도 무너뜨린걸 보면. 테크닉이 꽤 좋은가 봐요?”

“훗...”

선욱은 살짝 실소를 흘렸다.
당연한 거지만 이 여자를 안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단지 의외의 기회를 잘 이용해서 어떻게든 밖에 나갈 수만 있다면.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을 뿐이었다.
선욱과 여자의 입이 마주쳤고. 곧 뜨거운 혀가 선욱의 입안으로 들어왔다.
선욱도 그녀의 입안으로 혀를 넣어 한참을 서로 탐닉 했으면 좋았겠지만.
바보같이도 키스는 처음이었다. 어설프게 여자의 입안으로 혀를 집어넣기는 하였지만 이빨이 자꾸 혀에 닿아서 불편했다. 여자에게 무경험이라는 것이 들킬 것은 시간문제였다.
다른 방법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여자의 어깨를 잡고 갑작스럽게 혀를 때어내서 침이 흘러내리는 입을 손으로 막아버렸다. 그리고는 무릎으로 여자의 배를 가격했다.

“퍼어억”

온힘을 다한 일격에 여자는 배를 움켜쥐며 쓰러져 버렸다. 젖 먹던 힘까지 쓴 덕분에-게다가 상대가 초능력을 쓴다는 것을 빼면 보통의 여자였으므로 어렵지 않게 정신을 잃게 할 수 있었다.

선욱은 잠시 자유를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문밖에는 무장한 군인들이 있다.
혼자 그들을 상대하기란 불가능 하였다.
군인을 상대로 일대일 싸움을 하기도 벅찰 텐데. 4:1이라니...

선욱은 급하게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여자가 앉아있던 의자. 각목. 선욱을 묶고 있던 밧줄.
밧줄을 끊어버리고 구석으로 내동댕이쳐져 있는 나이프,
그리고 양동이가 밀실 안에 있는 전부였다.

아무리 봐도 써먹을 대가 없어 보이는 물건들이었다. 하지만 하는데 까지는 해봐야 했다. 이대로 있는 것 보다 났다고 생각하며 밧줄을 손에 들었다. 밧줄을 벽과 벽 사이에 묵었다. 문이 구석에 있었기 때문에 잘만하면 훌륭한 함정이 될 수 있었다. 거기다 벽에는 지하실 답게 수많은 파이프 관들이 둘러쌓아져 있었기 때문에 밧줄을 함정으로 설치하는 건 간단했다. 한명쯤은 문을 열고 들어오다가 걸려 넘어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밧줄을 꽉꽉 묶은 다음에 선욱은 문밖을 향해 크게 소리 질렀다.

“아아아아아앜!!”

그러자 바로 문이 열리더니 4명의 군인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
다행히도 제일먼저 들어온 군인이 밧줄에 걸려 넘어져 버렸고.
문 바로 앞에 서있던 선욱은 두 번째로 들어온 무방비 상태의 군인을 각목으로 내리찍었다.
정통으로 목 부위를 가격당한 군인은 신음소리를 내며 주저앉았으나...그게 다였다.
단련된 군인이라. 각목한방으로는 끄덕도 하지 않았다.

밧줄에 걸려 넘어진 바보 같은 군인을 제외하고는 모두 선욱을 노려보았다.
뒤이어 들어오던 군인들이 쓰러져 있는 여자에게로 달려갔고 각목을 맞은 군인은 실실 웃으면서 선욱에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왔다.
위험했다.
험악한 인상과 튀어나온 근육을 보며 선욱은 뒷걸음질 쳤다.
이걸로 끝인 건가.

선욱은 포기하는 심정으로 바닥을 내려 보다가 밧줄에 걸려 넘어진 군인이 바닥에 떨어뜨린 총을 발견했다.
총은 다행히도 점점 다가오고 있는 군인보다는 선욱에게 더 가까운 거리에 놓여 있었다.
선욱은 몸을 굴려 재빨리 총을 집어어서 군인에게 겨냥했다.

“움직이지마!!”

여자를 깨우고 있던 나머지 군인들이 놀라서 황급히 선욱에게 총을 겨냥했다.

“너야말로 그냥 내려놓는 편이 좋아”

“웃기지마!”

선욱은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겨냥한 군인을 향해 방아쇠를 당겨버렸다. 곧 총알 한발이 발사되더니 벽으로 날라 가서는 박혀버렸다.

“놀랐네. 총도 못 쏘는 놈이 어디서”

총에 겨냥 당했던 군인이 그렇게 말하더니 곧바로 선욱에게로 달려들었다.
선욱은 당황해서 총을 다시 쏠 겨를도 없이 군인의 아래에 깔려버렸다.
선욱을 올라탄 군인은 그의 목을 움켜잡으며 씨익 웃었다.

“어디서 잔재주를 부려. 그렇게 맞고도 정신을 못차렸네”

그때였다.

“푸쉬이....”

마치 공에서 바람이 빠지는 것 같은 소리가 나더니 왠 가스가 밀실 안을 가득 매우기 시작했다.

“뭐...뭐야??”

군인들은 놀라서 두리번거렸다.
선욱이 잘못 발사한 총알이 밀실을 둘러싸고 있던 파이프 관을 뚫어 버린 것이었다.
거기가 마침 파이프가 가스관이었는지 유독한 냄새를 풍기는 가스가 곧 군인들의 콧속으로 들어갔다. 아래에 깔려있던 선욱은 아직 가스를 맡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숨겨두었던 나이프를 꺼내들어 다짜고짜 올라타 있는 군인의 배를 찔러버렸다. 그리고는 힘이 빠진 군인을 옆으로 치우고는 재빠르게 밀실 안에서 나와 버렸다. 밀실밖에는 조그마한 공간이 있었고 바로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였다. 문득 폭탄과 무기들이 놓여있는 것을 보고는 대충 가벼운 것들을 옷 속에 쑤셔 넣고는 계단위로 올라가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캄캄한 곳에 있다가 갑자기 빛을 받으면 눈이 보이지 않게 되는 경우가 있지만. 다행히도 한낮임에도 불구하고 날씨는 무척이나 흐렸기 때문에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선욱은 거칠게 숨을 들이 쉬었다.
가스를 들이 마시고 죄다 쓰러져버린 것인지 그들은 쫒아오지 못했다.

하늘의 도움?
아무튼 선욱은 그 자신이 의도한 생각과는 전혀다른 이유로
그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잔뜩 긴장한 탓에 엄청나게 흐르던 땀이 바깥의 찬바람에 식으면서
선욱의 몸이 으스스하게 떨려왔다.

“콰아아앙”

그때 조금 멀리 떨어진 거리에서 엄청난 광음과 자욱한 연기가 피어나오는 것이 보였다.
선욱은 직감적으로 그곳이 예리가 있다고 예상했다.
각목이 낸 상처 때문에 몸 전체가 저려왔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온힘을 다해 뛰어갔다.
예리가 있을 그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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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감하시구요
전편에 비판도 적어주신분들 감사합니다.
조금씩 고쳐 나가 보겠습니다.
그러나 제 글솜씨에는 한계가 있어서^__^::
그저 스토리라도 재밌게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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