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껍절한 사랑이야기-
프롤로그
그녀는 내 앞에서 울고 있었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하면서 물었다.
“왜....울어요?”
그녀는 내게 대답했다.
“내일이 내 생일인데.....아무도 내 생일을 챙겨주지 않아요.”
황당했다. 누가 저녁시간에 짜장면을 먹으면서 그런 말을 하고는 눈물을 흘릴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더 물어보지는 않았다. 그 아이의 입에서 그렇게 눈물이 흐르는 이유가 술술 나왔으므로. 그리고 그것이, 그 아이와 나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이야기의 시작이었다.
1장
월요일. 저녁 7시.
하루 일을 끝내고 찬바람도 피할 겸 배도 채울 겸 가끔씩 찾아갔던 짜장면 집이, 맛있다고 소문이 났는지 방송을 한 번 탔던 것인지 그날따라 유독 손님이 많았다. 심지어는 술을 먹는 손님까지 있을 정도였으니까. 초저녁 때부터 술을 빼갈로 시작을 하는 용감한 정신머리는 어디서 나오는 건지 궁금해 하면서도, 나는 비어있는 자리라고는 그것 하나밖에 남지 않은 4인용 테이블에 앉아 주문을 하고 내 짜장면을 기다렸다.
잠깐 그러고 있자니 문이 딸랑거리고 또 누군가 손님이 들어오는 기척이 났다. 그리고 내 테이블로 주인이 오더니 쭈볏거리며 말했다.
“동석을 좀 부탁해도 될까요?”
나야 짜장면만 나오고, 그걸 먹을 수 있는 과정에서 문제가 없다면 그런 것쯤 문제는 되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과의 동석으로 오는 잠깐의 불편함 정도는 이 나이가 되면 우스운 노릇이다. 나는 그래도 된다고 하고는 계속 높이 달린 텔레비전을 보다가 동석을 하겠다고 내 앞에 털썩 앉은 조그만 아이 하나를 힐끗 보았다.
중학생 쯤 되어 뵈는데, 뭐 그런대로 수수하긴 했다. 작달막한 키에 얼굴도 그런대로 젖살이 덜 빠졌으면서도 동그랗고 하얀 것이 괜찮아 보였다. 그 괴상망측한 옷차림만 아니라면. 자기 나름대로야 멋지고 개성있게 보인다고 입는 거겠지만, 어울리지도 않는 커달막한 군복잠바 같은 거나 그 안에 입은 물빠진 빨간 티 같은 건 정말이지. 그 나이 때의 아이들은 하나같이 똑같다. 유행을 따르던가, 남들이 보기엔 영 아니다 싶지만 용감하게 지가 입고 싶은 대로 입던가.
짜장면은 나왔고, 그 아이의 것도 함께 나왔다. 제법 김이 오르는 짜장면을 비벼서, 막 한 입을 넣고 단무지를 집으려는 찰나.
그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짜장면을 입에 물고.
이제는 모르는 사람과의 대면으로 인한 불편함 정도가 아닌, 아주 심한 불편함이 내 감정을 뒤덮었다. 나는 단무지와 함께 베어 문 짜장면을 씹어넘기고 난 다음 물었다. 물론 당황하지 않은 것처럼, 최선을 다해서.
“왜.....울어요?”
그 다음의 대답은 물론 처음에 말했던 것과 같다.
“내일이 내 생일인데.....아무도 내 생일을 챙겨주지 않아요.”
뭐라고 말하려다가 나는 그것이 아무런 해결책도 되어줄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는 냉정하게 다시 짜장면을 한 젓가락 들어 물었다. 갑자기 면발이 제멋대로 돌아다니는 게 식감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 아이는 아직도 울고 있었다.
그런데 더 극악스러운 건, 울면서 먹고 있었다. 꾸역꾸역, 맛있게. 면발을 한 번 자르지도 않고.
두 번째 단무지와 함께 목구멍으로 면발을 넘기고 나서, 나는 말했다.
“그런 것 때문에 울지 말아요. 나도 별로 그런 거 챙겨주는 사람 없으니까. 그래도 다 살더라고요.”
“그예도 마도 앙되여.....”
제발, 면발이랑 짜장을 한 가득 물고 말하진 말아달라고 목구멍까지 말이 치밀어 올랐지만, 그 아이의 말은 끝나지 않은 듯 했다. 콧물과 침이 뒤섞여서 흐르는 꼴을 수습시키기 위해 서둘러 두루마리 휴지를 마구 돌려서 뜯어 건넸다. 그 때의 심정은, 아마도 자포자기였을 것이다. 그 애가 튀기는 침이나 짜장 건덕지에 대한.....하여간 그 아이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뭐 내 생일 같은 건 챙겨주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어요. 어차피 나는 쓸모없는 아이니까. 아무도 내 말 같은 건 들어주지 않으니까. 난 그런 아이에요. 그래서 그냥 이렇게 살기로, 이렇게 있기로 결심했는데, 왜 이렇게 오늘은 그렇게 결심한 게 힘들게 느껴지는 거에요? 아저씨는 어른이니까 잘 알겠죠?”
한바탕 울고 난 뒤에 입가의 짜장도 덜 닦은 채 그 아이는 내게 말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요? 자신이 쓸모없다고.”
“왜냐면, 사실이 그러니까요.”
이젠 순환논리의 오류냐. 이야기하면 끝이 없겠다고 생각했다. 서둘러 또 한 젓가락을 떴다. 불어터지는 것도 걱정되었거니와, 이렇게 희한한 말문이 터지는 걸 보면 이거, 이성을 잃었다는 이야기밖에는 안 되는 것이므로 이런 행동을 보임으로서 일종의 완곡한 거절법을 쓰는 것도 좋을 듯 했다. 그러나 그건 나의 오산이었다. 그 아이는 집요했다.
“왜 이렇게 아픈 거에요, 아저씨? 대답 좀 해봐요.”
슬슬 다른 테이블 손님들의 시선이 점점 이 쪽으로 꽂혀 오는 것이 느껴진다. 이러다간 정말 무슨 오해를 사도 단단히 사겠다 싶어 나는 채 씹지도 않은 면발을 넘겼다. 목구멍에 넘어가는 느낌이 더럽다.
“저기요, 일단 다 먹고 나서 이야기 합시다. 나도 배고픈 인간일 뿐이니까. 그 쪽도....”
“다솜이요. 윤다솜.”
“그러니까, 다솜씨도 다 먹고 나서 이야기를 합시다. 이제 그만 울고. 알았죠?”
자고로 아이들은 어르든가 혼내든가 둘 중 하나가 상책이다. 개인적으로는 알고 있어도 이런 기술들을 쓴다는 게 맘에 들진 않았지만, 어떻게든 이 기술들을 쓸 수밖에 없는 때가 오기도 하는 것이다. 뒤통수가 따끔거려 온다. 빼갈 테이블 쪽이 특히 더. 그 놈들은 이제 지들끼리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필시 그 내용 중엔 별 더러운 추측들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한층 더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짜장면을 입으로 부어넣다 시피 하고서 나는 자리를 일어나려 했다. 그렇게, 상황이 내 뜻대로 종료가 되었다면 좋았겠지만 아까 전부터 말했듯, 그 아이는 집요했다.
“어디 가요, 아저씨!”
‘신이시여. 제가 신을 부를만한 주제도 아니 되는 일을 업으로 삼고 다닌다지만 이런 형벌은 가혹하십니다.’이런 류의 생각을 하면서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 아이가 지금은 또 웃고 있었다. 자기가 말하는 대로 해주니까 이게 아주 머리 꼭대기까지 기어오르려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치밀어 오르는 부아를 참을 수밖에 없었다. 이 이상 다른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다가는 내 일에까지 영향이 올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가만히 그 아이가 짜장면을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식사가 모두 끝났을 즈음, 그 아이의 짜장면까지 계산하고, 가게 앞으로 같이 나왔다. 빼갈들은 여전히 쑥덕거리고 있다. 제기랄.
“집이 어디에요.”
“여기, 언덕 올라가면 첫 번째 집이요.”
그 아이의 대답에 나는 언덕 위를 보았다. 내가 사는 언덕 쪽과는 직각으로 다른 방향의 언덕 위에, 크지도 작지도 않은 그저 어디에나 있을 평범한 단독주택. 그리고 겉의 칠은 하얀색이었다.
“일단 거기까지 가서 이야기합시다.”
나는 말없이 걸었다. 속셈은 먼저 집에 데려다놓고 도망치겠다는 계산이었다. 제발 이번만은 들키지 않고 뜻대로 되길 빌었다.
“아저씨, 이거 어른들이 데이트라 부르는 그런 거에요?”
그 아이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자꾸 뒤통수를 맞는 느낌이었다. 황당하다는 느낌을 전하기 위해 실소를 터뜨리면서 나는 말했다.
“허. 그런 거 아니에요. 그냥 오기나 해요.”
나는 천천히 언덕을 올랐다. 언덕은 경사가 좀 있어서 숨이 차올랐다. 그 아이도 숨이 차오르는 지 별 말이 없었다. 그 아이의 집 앞에 도착했을 때 숨을 몰아쉬면서 그 애가 말했다.
“이제......헉헉.......말해 주실 거죠? 왜 이렇게.....힘든지.....”
“일단 숨 좀 쉬어 봐요.”
내 말에 따라 그 애는 심호흡을 했다. 어느 정도 호흡이 가라앉아서 말을 할 정도가 되었을 때 나는 말했다.
“이제 힘들지 않죠?”
“네.”
“어른이든 아니든, 그저 지쳐서 필요로 만나고 생활을 위해 사는 건 싫다고들 하죠. 하지만 그게 인생의 한 발자국인 걸 어쩝니까. 그냥 사는 수밖에요. 왜 힘드냐고 했죠? 나도 몰라요. 어쩌면 다솜씨 주위 때문일 수도 있고, 다솜씨 자신의 문제일 수도 있죠. 난 거기에 뭐가 이렇다고 대답을 할 수는 없지만, 결국 이렇게 힘들다 보면 심호흡을 하면서 편해질 때도 있다는 이야기밖엔 해줄 수 없어요.”
자주 듣던 노래가사까지 응용해가면서 나는 자신이 생각해봐도 겉치레뿐이라는 느낌의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뱉어놓고 나니까 또 이야기가 되는 것 같았다. 이런 거짓의 느낌이 싫었지만, 그 아이도 꽤 눈을 빛내고 있는 것 같은 게 내 우쭐함을 부추기는 것 같았다. 나를 당황케 한 작은 해프닝, 이제 민망한 상황은 끝낼 때가 되었다.
“그럼 난 갈게요.”
몸을 돌리려는 순간, 그 애가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손을 한 번 쳐다보다가 손을 잡고 악수를 했다.
“불편하게 해드려서 죄송해요.”
이제야 이성이 돌아온 건가. 나는 웃음을 짓고는 몸을 돌려서 가려고 했다. 그런데 그 아이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울렸다.
“아저씨 이름이 뭐에요?”
내 이름...이름이라... 가르쳐 줄 수는 없다. 편한 상황도 아니지만, 편한 상황이 되었다 하더라도 내 이름을 말할 수는 없다. 내 이성은 그렇게 말했지만, 이젠 그 아이의 이성을 잃는 바이러스가 내게도 감염된 모양이었다.
“이한솔. 이한솔이라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