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껍절한 사랑이야기-1장 (2)

NEOKIDS 작성일 07.01.03 00: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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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오전 11시.
동대문으로 향하는 4호선 지하철에서, 나는 곰곰이 내가 그 아이에게 한 말들을 떠올려보다가 얼굴이 뻘개지는 것을 느꼈다. 무슨 말을 했든 간에 그 말들은 어쩌면 옳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주제넘게 내가 그런 것을 가르쳐줄 입장이나 되나. 하여간 되지도 않는 착각을 해버렸다는 그 느낌이 자꾸 낯을 간지럽게 만들었다.
지하철이 동대문운동장역의 플랫폼에 도착했고, 평화시장 쪽의 어딘가로 나는 계속 발걸음을 옮기면서 오늘 챙겨야 할 물건들에 대해 생각했다.

내 발걸음은 동대문 시장 건물의 뒤편을 돌고 돌아 누구도 눈 여겨 보지 않을만한 골목 안, 허름한 가게 하나에 발걸음을 멈췄다. 아크릴판이 깨진 간판에는 ‘평화상점’이라고 쓰여 있었다. 평화라니. 언제나 그 간판을 보면 쓴웃음이 나왔다. 누군가에겐 평화를 주긴 주는 곳이니, 그 말도 맞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니 마침 난로를 쬐고 있던 한 사람이 날 반겨준다. 내가 늘, 영감님이라 부르는 그 사람이.

“온다고 그런 게 좀 늦었네. 쫒아오는 놈 없었고?”
“주의하면서 다섯 바퀴 돌았어요. 늦은 건 돈 좀 뽑아 오느라고요. 의뢰인의 입금이 좀 늦었네요.”
“일단 총알이랑 기름은 준비는 해놨는디, 칼이 괜찮아서 그것도 샀네. 볼텨?”
“네.”
영감은 따로 안쪽의 골방으로 들어갔다. 미싱이나 희한한 기계도구들 사이의 어딘가를 만지작거리자 그 쪽 벽이 통째로 열리면서 무기들이 나왔다.

“이건 워뗘? 쓸 만하다고 생각 안 혀?”
“그러네요.”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택티컬 나이프를 영감이 내게 건네줬다.
“이거, 손잡이를 수제로 만들어서 아주 다듬이 방망이같이 손에 싹 들어오는 겨. 쇠도 뭐시긴가 써서 아주 좋은 거고. 벨 때 감촉도 그만인데다 간격도 좋고. 아마도 전에 내가 줬던 거랑 비교하면 훨씬 나을 걸.”
“그러네요.”
“언제나 고맙구먼. 그려, 이번 일은 워땠어?”
“쉽진 않았어요.”
“항상 허는 말이지만 서두, 조심혀. 이 바닥에서는 조심에 또 조심만이 살 길이니께.”
“그러믄요. 여기, 영감님 몫이요.”
나는 스포츠 가방 안에서 둘둘 묶은 쇼핑백을 꺼내고 거기서 돈을 꺼냈다. 꽤 두툼한 뭉치 여섯 개 중에 세 개를 꺼냈다.
“셈 안 해봐도 되쟈?”
“돈 다 맞아요. 거래 한두 번도 아닌데.”

원래는 원칙이 50대 50이니까 그렇게 알라던 걸 영감이 더 꼬리가 잡히고 위험한 일을 많이 하니까 도구 구하는 수고비로라도 더 가져가라고 했다. 영감에게 그 말을 했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떠오른다. 뭐 이런 놈이 다 있느냐는 그런 속내가 다 비쳐지는 눈빛.

“다른 주문은 없었어요? 요즘은 주문이 통 없네요.”
“아직은 없다. 있으면 연락해 줄께.”
“예. 그럼 안녕히 계세요.”
“수고혀.”

짧게 말하고는 돌아서는 영감의 조그만 등은 항상 쓸쓸함을 느끼게 했다. 이 바닥이란 그런 것이다. 얻지도 못하고 잃지도 못한 채, 그저 계속 살아가는. 잡히지만 않거나, 혹은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찾아오는 사람들만 없으면 그걸로도 감사하고 고마울 뿐인 삶.
그 모습은 앞으로 홀로 남아서 계속 이 일을 하게 될 나의 미래와도 같을 거라는 착잡함을 떨쳐내면서, 나는 캐쥬얼 가방을 둘러맸다.

내 핸드폰이 울려댄 것은 내가 지하철 개찰구를 막 통과했을 때였다. 수신번호를 보니 어머니였다.
“네.”
-이번 목요일날 아버지 생신이다. 오너라.
“알고 있어요.”
-일은 잘 되고 있고?
“네.”
-에휴....

저 너머로 들려오는 한숨소리. 그건 늘 나를 미치게 만든다. 내가 주지도 않은 걱정을 스스로 만들어 하시는 어머니의 그 한숨소리.

-아버지가 니 걱정이 대단하셔. 장가는 어떻게 하고, 또 집이라든가 그런 건 어떻게 하고....
“어차피 내 이름으로 집도 못사는 데 뭘. 그보다도 아버지 보증선 건 이제 더 연락 안와요?”
-가끔씩 우편물은 날아오는데, 이젠 더 뭐라고 안하는 것 같다. 너희 아버지도 참 태평한 인간이다. 빚 잔뜩 졌는데도....
“내 이름으로는요?”
-그것도 없어. 그 사람들 아예 포기했는가 보다. 차라리 그래줬음 다행이지 싶기도 하지만......그보다도, 일하는데 힘든 건 없냐?
“됐어요. 이번 수요일이죠? 갈게요. 끊어요.”

핸드폰을 탁 소리가 나게 닫았다. 어머니는 아직도 내가 프리랜서 일 같은 걸 해서 혼자 먹고 사는 줄 안다. 찾아오시겠다는 걸 오지 말라고 했다. 주소조차 가르쳐주지 않았다. 내 심정을 헤아렸는지 어머니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더 이상의 전화통화는, 하기 싫었다. 이야기를 계속 하다보면 또 짜증이 치밀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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