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장
그로부터 며칠 후.
나는 최대한 몸을 긴장에서 풀려고 노력하고 있다. 손에는 소음기가 달린 베레타가 들려있고, 탄창에는 9mm탄이 모두 13발이 들어있다. 오늘은 이것을 쓰게 될 것이다.
의뢰인이 자신이 있는 곳에서 죽여 달라는 의뢰여서 오늘은 한층 더 신경을 써야만 했다. 저 앞쪽의 건물 입구에서 그가 나서고 있다. 사전조사대로다. 그나마 오늘 야근을 한다는 정보를 얻었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매일 칼퇴근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나오는 시간에는 작업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아마도 다른 여자를 만나러 나서고 있는 게 분명해보였다. 아니라면 저렇게 공들여 멋을 부리진 않겠지.
메일 상으로 접한 그의 이력으로는 그는 때려죽여도 시원찮을 놈이다. 수많은 여자들을 울리고 그들을 일자리에서 내쫓아버린 개 같은 성희롱 상사의 전형이다. 그런데 신기한 건 왜 그동안의 여자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까.
그것도 또 뒷사정이 있다. 몇 번 구설수에 오른 적은 있었지만, 그에게는 또 사장의 조카라는 화려한 뒷줄이 있었다. 거기다가 그런 구설수에 오르게 한 상대는 거의 집안파탄이 날 정도로 못살게 굴어댔다고도 한다. 심지어는 사람을 시켜 폭력행위를 동반하는 일까지. 내가 해야 할 일은 다 해놓았다. 그 모든 것이 사실인지 확인하고 아울러 모든 밑준비와 사전점검을 해놓는 일이었다. 되도록 주위의 이목을 끌지 않을 만큼, 매일 다른 차림새와 간단한 변장으로.
이런 식으로 우리는, 법이 해결해 줄 수 없는 놈들에 대한 처리를 해주고 그 댓가를 받는 것이다.
나는 코트 주머니 속의 베레타를 손가락으로 더듬어 안전장치를 풀었다. 그리고 목표에게로 걸어갔다. 의뢰인의 말에 따르면 의뢰인은 그가 나오던 건물에서 그가 죽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전했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그 회사의 건물 창문에 짧은 머리의 한 여자가 보인다. 자세히 보진 않았지만 난 그녀가 누군지 알고 있다. 우리의 작업 중에는, 절대로 신고를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의뢰인의 신분까지 본인이 제시하게 하고 그 신분을 철저히 조사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으니까.
그가 외부 주차장에 서 있는 외제차의 문에 열쇠를 꽂는 순간이 기회였다. 먼저 다가가면서 나는 CCTV의 카메라에 한 발을 쏘았다. 바람이 새는 듯한 낮은 소리와 카메라의 유리가 퍼석 하면서 깨지는 소리를 듣고 돌아본 그가 외쳤다.
“당신, 뭐야?”
뭐긴 뭐야. 저승사자지. 그렇게 말하는 놈의 미간에 그 다음의 총알을 박아 넣었다. 피가 튀지 않을 만큼 떨어진 거리에서 정확하게. 다음 몸을 뒤집어 심장 근처에 세 발을 더 쏴 박았다. 그 놈이 입은 두툼한 코트 덕에 피는 많이 튀지 않았다.
그는 몇 번 움찔대면서 바로 생을 마감했다. 일이 끝난 후 나는 창문 쪽을 올려다보았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는 그녀가 인사하듯 고개를 숙이는 게 보였다. 아마 울고 있었나 보다.
나는 잠시 손을 흔들어보였다. 그리고는 빠른 동작으로 나머지 CCTV들의 사각 쪽으로 사라져갔다.
내일쯤이면 그녀가 마련한 돈이 가짜 진단서와 함께 돈으로 교환될 예정이다. 최근 비만치료를 비롯한 정밀종합검진을 받았다는 식의 가짜진단서는 그녀의 계좌에서 우리에게 줄 돈 300만원이 빠져나간 사실을 경찰들에게 쉽게 믿게 해줄 것이다. 확실한 보증이 서 있는 의사의 진단서니까. 그녀는 그래도 싸게 해 준 셈이다. 보통은 건당 1000정도 받으니까.
버스 정류장에서 나는 핸드폰을 보았다. 문자가 한 두 개도 아니고 수십 개가 와있었다. 심드렁해진 나는 문자를 하나하나 보았다.
-아저씨 기다리고 있음 7시까지 오셈. 15:59
-아저씨 어디삼 빨리오셈 16:24
-우씨 좀 빨리오삼 16:42
계속 같은 내용의 반복이 19:40분까지 이어져 있었다. 핸드폰 화면을 보면서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통화버튼을 눌렀다. 잠깐의 컬러링. 그리고 다솜이의 목소리.
-아저씨! 늦었잖아!
갑작스럽게, 다솜이는 내게 아주 편한 말투를 쓰기 시작했다. 애초에 제대로 하지 못한 내 잘못도 있겠지만, 점점 다루기 난감한 상황이 되고 있었다.
“아저씨 늦는다고 했잖아. 일 때문에. 지금 끝났으니까 갈게.”
-지금 시간이면 거기 문 닫는단 말야. 우씨.
“아.....”
시계를 보니 9시. 사는 동네까지 아무리 빠르게 가도 한 시간. 약속을 맞추기는 애저녁에 글러있었다.
“그러니까, 아저씨가 말할 땐 좀 듣지. 왜 고생을 하고 그래.”
-몰라몰라! 아저씨가 책임져! 나 오늘 닭 먹고 싶었단 말야!
왜 이렇게 제멋대로일까. 머리가 지끈거려 왔다.
“내일은 꼭 사줄게. 알았지? 그러니까 오늘은 집에 들어가.”
-싫어. 아저씨 얼굴 보고 들어갈 거니까 빨리와.
내 얼굴은 왜 이렇게도 본다고 난리일까. 알았다고 대강 넘어간 뒤 핸드폰을 끊고는 차가워진 베레타를 남들 눈에 안 띄게 가방에 집어넣으면서, 내가 왜 다솜이에게 전화를 걸었을까를 곰곰이 생각했다.
이런 일을 해서? 처음 이 일을 시작한 때를 제외하고 내가 일에서 스트레스를 받거나 해본 적은 없다. 아니면 정말 좋아하기 시작해서? 이런 징징대는 어린애를 내가 뭘 보고 좋아할 턱이 있나. 결국 결론은 한 가지였다.
‘외로웠구나.’
그 징징대는 소리라도 듣고 싶을 만큼, 나는 혼자인 생활을 너무 오래 해왔다. 친구도 없었고 특별히 연락해서 만나는 사람도 없었다. 혼자서 글도 쓰고 생계를 위해 이런 일도 하면서 외롭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이 다솜이를 만나고 나서부터는, 내가 얼마나 외로운 존재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거기까지 생각을 하고나서,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것은 좋지 않은 징조일 수도 있었다. 내 일을 위해서든 다솜이를 위해서든. 무엇보다도, 다시는 사랑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던 나를 위해서든.
그래서, 다솜이에게 문자를 날렸다. 이제는 처음에 먹었던 마음, 선물만 주고 만다는 결심을 실행하기 위해서였다.
-미안, 아저씨 더 늦게 끝날지도 모르겠다. 제발 먼저 들어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