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껍절한 사랑이야기 2장(7)

NEOKIDS 작성일 07.01.15 01:3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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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 왔다가셨어.”
“머아오?”
죽은 좀 넘기고 나서 말을 걸걸 그랬나. 입에 들어있던 걸쭉한 게 막 튄다. 하긴, 뭐 한두번이어야 말이지.
"아버님, 일주일 정도 못 들어오시니까 여기 있으래.”
“쳇, 자기가 뭔데 여기 있으라 마라야.”

입안에 있는 걸 넘긴 다음 다솜이 답지 않게 거친 말투. 나는 적잖이 놀라버렸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는 거야. 그래도 네 아버지야.”
“웃기지 말라고 해. 그 인간은 나랑 아무것도 아냐.”
이상하게 과민반응인 것이, 어쩌면 아버님이 만든 그런 환경 때문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잠자코 있었다. 내 잠자코 있는 모습이 이상했던지 다솜이는 내게 물었다.
“그 사람이 아저씨한테 무슨 말 또 한 거 없었어?”
“무슨 말?”
“어떤 말이든.”
“어디 보자, 우리 다솜이는 이쁘고 착한 애라고 말씀하셨지.”
“장난 칠 기분 아니야.”
“나도 마찬가지야. 네가 이러는 거, 좀 불편하다.”

되려 받아치는 내 싸늘한 말투에 다솜이가 좀 겁먹은 눈치가 보였다.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말해주었다.

“아버님이 네 옛날이야기 해주셨어. 어머님이랑 할머니 이야기도.”
“......”
죽을 먹던 숟가락을 내려놓은 채. 죽은 반이나 남았다. 다솜이는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을 뿐 굳은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보다못한 내가 다가서서 마주앉았다.

“어서 죽 마저 먹어. 오늘은 아저씨 일 안 나가니까 어디 놀러가자.”
“아저씨, 내가 불쌍해보이지?”
“뭐?”
“내가 그런 애라서 불쌍해 보이지? 엄마랑 할머니랑 다 죽은 거, 이 두 눈으로 보고 엉망이 된 것 같은 애라서 불쌍해 보여?”
“무슨 소리야.”
“웃기지 마!”

나름대로 안간힘이겠지만, 다솜이는 비틀대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죽그릇이 엎어졌다.

“이게 뭐하는 거야! 엎질렀잖아.”
“다 필요 없어. 아저씨도, 그 인간도. 모두 다!”

한참 누워있다 죽도 다 못 먹은 상태에서 그렇게 갑자기 일어나니 현기증이 도지는 건 당연지사. 호기를 부리며 일어났건만 다리에 힘이 풀리는 다솜이의 등쪽으로 잽싸게 다가가서 나는 어깨를 감싸 안았다.

“이거 놔! 이젠 아저씨 싫어. 아저씨도 나 싫댔지? 그러니까 내가 나가 줄게. 아, 코트는 놔두고 가면 되겠네. 잘 먹고 잘 살아!”
“시끄러, 꼬맹이.”
아까보다 더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화가 났다.
“같이 싸우자고 큰소리치던 건 누구였지? 네가 남들이 모르는 고통을 어떻게 당했고 어떻게 힘들었는지 내가 다 알 수는 없어. 동정해 줄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 하지만 사람은 누구든 어딘가에 기대게 되어 있어. 나라는 사람은 최소한 널 사랑해주지는 못해도, 네가 기댈 수 있을 만한 사람은 된다고 봐. 그러니까 기댈 수 있을 때 기대어 있으라고. 쪼그만 게 벌써부터 자존심 세울 궁리나 하지 말고.”

완력만으로는 벗어날 수 없는 내 품 속에서 다솜이는 숨결을 거칠게 뱉으면서 가만히 내가 하는 말들을 듣고 있었다. 이미 힘도 주고 있지 않았다. 손에 힘을 주었다. 나는 그 작고 힘없는 어깨를 껴안아주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내 문제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나는 5년 전의 그녀가 기대고 싶을 때 기댈 수 있는 인간이 아니었다. 게다가 내 아버지와의 갈등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거기에 사람을 죽여 돈을 버는 사람이다.

이런 나라도, 이런 멍청하고 엉망진창인 나라도, 네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이 시시껍절한 나라는 인간이라도. 다솜이의 어깨를 뒤로 감싸 안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택시에서 내려서 타겟이 자주 가는 곳 중 하나인 곳을 수첩에 적고 있었다. 놈이 차를 타고 이곳저곳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쫒아 다니는 교통비 자체도 만만찮지만, 이제 이런 짓도 오늘로 마지막이다. 놈의 행동반경을 쫒은 지 3일째, 이제 엔간한 몇몇 곳은 꼭 들른다는 것도 알아냈고, 그 놈이 사는 곳까지 알아냈다.
하지만 그 곳은 포기해야만 했다. 사설경비시스템까지 설치한 집이기 때문에 쉽지가 않은 곳이었다. 경호는 늘 3명, 많을 때는 4명 정도가 따라다닌다. 아마도 그가 마약루트를 관리해주는 조직에서 붙여준 인원일 것이다.

집에 돌아오니 텅 빈 공간들이 그날따라 썰렁함을 느끼게 했다. 메모도, 연락도 없이, 그 날 다시 내준 죽을 다 먹고, 좀 더 쉬어 몸이 회복된 후 다솜이는 내 집을 나갔다. 그 대화 이후 나갈 때까지 나와는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뒤로 연락도 없다. 다솜이네 집을 알고는 있지만 찾아가지 않았고, 그 집에 불이 켜져 있는 것도 보았지만, 나는 별다른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3일이 지난 것이다.

아주 가끔은, 다솜이가 해준 그 3층밥이 그리워지기도 했지만, 고개를 흔들었다. 이걸로 다 끝난 걸지도 모른다고. 내 주제에 누가 기댈만한 어깨를 내어줄 수 있겠는가. 추하다. 못난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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