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다음날.
결행을 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놈을 기다리고 있다. 이 곳은 놈이 자주 들르는 강남의 한 업소 지하주차장.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 봐도, 이 곳 밖에는 할 만한 곳이 없었다. 1차 원칙인 사람이 없고 조용한 곳이라는 곳도 충족하고 있고, CCTV는 그냥 보기에도 신형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그 말은 해상도가 개판이라는 것이고, 스키마스크와 고글까지 쓴 내가 제대로 찍힐 리는 만무하다는 것. 칼을 사용하려고 해도 나보다 더 건장한 사람들이 지키고 있는 상황에서는 어쩔 수가 없다. 그래도 만반의 준비를 위해서, 택티컬 베스트에 칼까지 챙겨 장비했다. 아무래도, 9mm 자체로는 아주 약한 놈이 아니면 한 방에 제압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놈이 서너 명과 함께 걸어 나오고 있다. 베스트 주머니에 넣어둔 5개의 여분 탄창을 손으로 두드려 본 후, 나는 소음기를 베레타에 결합시키면서 숨어있던 곳에서 놈들 쪽으로 걸어갔다. 적당한 거리에서, 겨누고, 쏜다. 다행히 놈들은 지들끼리의 농담을 하느라 주변에 주의를 두지 못하고 있다. 자, 이제 조금만 더 가서.....
갑자기 멜로디가 주차장을 울렸다.
‘all your need is love~ all your need is love~ love~ love is all you need~'
그것은 내 바지 주머니 속에서 울려오는 핸드폰 벨소리였다. 당황한 나머지 잠시 주춤하면서 아래로 고개를 돌리는 실수를 해버렸다. 그리고 그 다음, 그 벨소리 때문에 놈들의 주의가 한꺼번에 내 쪽으로 쏠렸다. 스키마스크, 고글, 검은 색의 택티컬 베스트. 손에는 소음기가 달린 베레타. 당연히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저 새끼 뭐야!”
다시 조준, 세 방이 맨 앞에 가로막은 녀석의 가슴으로 적중했지만, 상황은 이미 늦어 있었다. 타겟은 잽싸게 어딘가로 숨고 있고, 나머지 놈들은 양복의 품 안에서 뭔가를 꺼낸다. 뜻밖의 상황에 나의 동요는 더욱 커졌다. 놈들도 권총을 가지고 있었다. 얼핏 보기엔 러시아제 토카레프 같았다. 다시 두 번 째 놈에게 세 방을 먹여주면서 나는 기둥 뒤로 숨었다.
놈들이 권총으로 응사를 해왔다. 탄창에 남은 것은 7발. 썩 좋지 않다. 일단은 탄창 하나를 꺼내어 다른 한 손에 들고는 바로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놈들이 빗맞춘 탄환들이 차 유리창들을 깨면서 그 차들이 시끄러운 경고음을 울려대고 있었다. 머리 위로는 깨진 차창의 조각들이 쏟아져 왔다.
이럴 때는 정확히 상황을 파악하는 쪽이 이기는 것인데, 상대가 그것에 능숙하지 못하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놈들의 좌측면으로 돌아간 나는 남은 7발을 모두 한 놈을 향해 쏟아 부었다. 7발의 총탄은 놈의 머리부터 시작해서 온몸에 정확히 맞췄다. 몸을 엎드리면서 다시 숨을 골랐다. 마지막 한 발을 쏘고 잽싸게 기둥뒤로 주저앉으면서 빈 탄창을 빼고 다음 탄창을 끼웠다. 이제까지 세 놈....그런데 나오고 있던 것은 다섯명.....타겟은 저기 있고.....나머지 한 놈은?
“죽어 이 새끼야!!”
미친 듯이 내 옆에서 달려오면서 남은 한 놈이 내 어깨를 발로 차버렸다. 심장이 미친 듯이 펌프질을 하고 머리는 위험신호를 보내온다. 차뒤로 피해서 구르면서 나는 전에 노인에게서 받았던 칼을 뽑았다. 자신의 탄을 다 쏴버렸던 건지 탄창을 찾아 주머니를 더듬대는 경호원 놈과 베레타를 번갈아 보았다. 베레타는 저만치 굴러 가있다.
그 때 놈이 탄창을 다 끼우고는 내 쪽으로 토카레프를 난사했다. 토카레프의 총탄 하나가 왼팔을 스쳐지나가면서 강한 통증이 몰려왔다.
죽기 아니면 살기. 모든 것이 느릿하게 보인다. 살 수 있는 ‘길’이 보이기 시작한다.
잠시 후, 내 손에 쥔 칼에는 놈의 피가 묻어있다. 놈의 사격을 피해서 탄을 다 쓰도록 유도한 후, 측면으로 돌아가 나는 정확히 그 놈의 손목을 그었고, 놈이 고통에 당황하고 있는 틈을 타서 뒷목에 칼을 깊게 찔러 넣었다. 그 다음은 심장.
왼팔의 통증이 더 심해지고 있다. 이 이상 더 끌면 안 된다. 벌써 CCTV를 보고 경찰에 연락이 갔을지도 모른다. 고개를 돌려 타겟을 바라보려 하던 그 때, 타겟은 이미 자동차 운전석에서 시동을 걸고 있었다. 내 베레타가 굴러간 쪽으로 나는 죽어라 뛰었다. 다행히 그 놈은 내 쪽으로 운전을 해오고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먼저 베레타를 주워서 다시 조준. 앞유리, 옆유리, 뒷유리. 있는 대로 탄창 안의 모든 탄을 쏟아 부었다. 차가 비틀거리기 시작하더니 주차장 출구 쪽의 벽에 부딪히면서 멈춰섰다.
다시 새 탄창을 하나 빼서 갈면서 차 쪽으로 걸어갔다. 통증을 참기 위해 이를 악물어야 했다. 운전석의 놈은 적어도 세 발 이상은 맞은 것 같았다. 신음하며 쓰러져 있는 타겟의 관자놀이에 한 방. 차 앞으로 올라가서 내려다보면서 놈의 심장에 한 방. 막혀 있던 것 같은 숨이 한꺼번에 몰아쉬어졌다.
버스정류장에서 경찰차들이 급히 달려가는 것을 바라보며 버스를 타고 나서야 잊었던 핸드폰 생각이 났다. 요행으로 핸드폰의 액정은 깨지지 않았다. 부재중 수신번호에 다솜이의 핸드폰 번호가 찍혀 있었다. 설정된 멜로디를 확인해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 그 벨소리가 저장되어 있다. 아마도 다솜이가 나랑 뭘 먹을 때 화장실 간 사이 바꿔치기 했든가 그랬을 것이다.
팔의 통증은 아까 전 옷을 갈아입을 때 대충 응급처치를 했기 때문에 조금 전보다는 덜했으나 쑤시듯 아픈 것만은 여전했다. 그 곳만이 아니라 몸에 온통 통증 투성이였다. 구르고 맞기까지 했으니 안 아프면 오히려 이상하다.
통증을 느끼며, 나는 처음으로, 다솜이와 함께 있고 싶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만나서는 안 된다는 마음 한 구석의 생각 또한 여전했다. 내 입으로 나한테 기대라고 주제넘게 떠들었음에도, 나는 그 애가 기댈만한 사람은 아니다. 먼 훗날에, 더 좋은 사람이 나타날 것이고, 나는 잊혀질 것이다.
다솜이에게서 잊혀진다는 생각은 통증, 그리고 창밖의 풍경들과 함께 어우러져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