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껍절한 사랑이야기 3장(1)

NEOKIDS 작성일 07.01.19 03: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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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일을 끝낸 지 3일 후. 핸드폰에 도착한 문자는 평화상점이 당분간 문을 닫는다는 말을 전하고 있었다. 이유야 당연히 내가 저지른 짓이 너무 화려해서 그런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문구는 조금 마음에 걸렸다.

-새와 개가 동시에 추적중.

새는 짭새, 즉 경찰을 이르는 말이고 개는 우리끼리 만든 암호로 복수자를 뜻하는 말이다. 그 조직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는 사실은 뻔했다. 그 한 놈 때문에 어쩌면 충분히 일궈놨던 마약판매 루트를 죄다 망가뜨렸을지도 모르니. 노트북으로 입금확인을 해본 결과는 만족이었다. 십시일반이라고는 하지만, 그녀들은 꽤나 많은 돈을 주었다. 당분간은 가만히 잠적하고 있어도 살만한 정도였다. 적금통장에 정기적으로 돈을 넣는다든가 하는 것이 조금 힘들긴 하겠지만.

하지만 지금 내 머릿속을 흔드는 것은 다솜이가 한 말이었다. 다솜이의 아버님이 경찰이라는. 내가 누운 침대 옆에 앉아 책장에 정리된 만화책을 읽으면서 노래를 흥얼거리는 다솜이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그 혼란스러움을 정리할 수가 없었다. 다솜이에게는 내가 잘못해서 다친 거니까 아버님께는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해놓았다. 애가 아직 어려서 상처가 어떻게 생긴 건지 잘 볼 줄 모르는 것도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다솜이는 그런 내 마음도 모르고 매일같이 찾아왔다. 아직 열쇠는 주지 않아서 내가 문을 열어주어야만 들어올 수 있었고, 다솜이가 아침 일찍 찾아올 때마다 나는 통증과 고민으로 들지 못하다가 겨우 든 잠을 깨어야만 했다. 하지만 내가 고민이 있다는 것을 숨기는 시간도 그렇게 오래가지 않았다. 다솜이가 눈치를 챈 것처럼 말을 했기 때문이다.

“아저씨, 무슨 고민 있어?”
“고민은 무슨.”
“요즘 아저씨 통 말이 없어.”
“팔이 아파서 별로 말하고 싶지 않아.”
썩 믿어주지는 못하겠다는 다솜이의 표정. 이런 식으로 얼버무리고 나서도 고민은 계속되었다. 내 맘 속에 다솜이가 있다고 느끼는 순간, 다솜이는 또 멀리 도망가 버렸다. 그 전엔 내가 도망가고 있었는데. 어쩌면, 또 사랑을 시작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착각이라면 빨리 지워야 하건만, 그러기엔 내가 넘어야 할 산들은 너무 높은 것 같았다. 일단, 매일 눈앞에 이렇게 있으니까. 그것도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아저씨, 오늘은 뭐해줄까? 찌개? 아니면 고기반찬? 나 공부 많이 해왔단 말야.”
무심코, 가만히 있어 주는 게 도움이 되겠다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 했다.
“아무거나 해줘.”
“쳇. 시시해.”

다솜이는 부엌으로 갔고, 나는 다시 침대에 누웠다. 팔의 상처는 많이 아물었다. 그나마 다솜이가 밥을 해준다고 난동 비스무리한 것을 부리고 있었기에 챙겨 먹을 수 있었던 덕이다. 그게 살려고 먹은 건지 죽으려고 먹은 것인지는 분간은 잘 가지 않지만, 그래도 조금씩은 다솜이의 실력도 나아지고 있었다.

다솜이가 부엌에서 음식을 준비하고 있는 뒷모습이 다시 내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고백해버릴까. 내 정체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 일을 그만두고 다솜이에게 떳떳한 일을 할까. 하지만 저 중학생 아이가 적어도 결혼을 할 수 있을 때까지 크려면....잠깐....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나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내 마음이 가는대로 한 번, 해보기로 했다. 이대로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 것보다는 그나마 이런 짓이라도 해보는 게 차라리 정리가 되고 도움이 될 것 같아서였다. 서재의 책상에는 여분의 집 열쇠가 있었다. 그것을 꺼내들고, 나는 다솜이에게 다가갔다.

“다솜아.”
“응?”
손가락을 입에 물면서 다솜이가 돌아본다.
“이거. 많이 추우니까 나가게 되면 알아서 들어와. 어디 다른데 늦더라도 우리 집에서 자고. 집에까지 왔다갔다 하기도 힘들 것 같으니까.”
“응?”
다솜이가 나와 받아든 열쇠를 번갈아 보더니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어째, 반응이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라도 한참 다르다. 뭔가, 감동을 받거나 이럴 줄 알았는데, 아주 엄청난 흑심이 뒤에 숨겨져 있을 것만 같은 저 웃음은?

“아저씨. 아저씨.”
“응?”
드디어 그 흑막이 슬슬 기어나오기 시작했다.
“아저씨, 아저씨 상처도 거진 나았고 하니까, 우리 파티하자.”
“응? 무슨 파티?”
“아저씨가 내 남자친구가 된 걸 축하하는 파티. 나, 아저씨가 내 남자친구라고 애들한테 말해버렸는데...”
현기증이 일어 눈 사이의 콧등을 손으로 잡아야만 했다. 누구를 위한, 누구에 대한, 누구의?
“그랬더니 애들이 파티해 준대.”
“누가 네 남자친구인데.”
싸늘해진 내 목소리에 이놈이 애교를 떤다.
“아잉, 그러지 말구 그냥 그런 척 해주랑~ 안그래도 애들한테 거짓말한 것처럼 찍혀있는데. 나 거짓말쟁이로 만들 셈이양?”

외면하려고 해도 배겨낼 수가 없다. 오만가지 꼬리를 다 흔들면서 해주랑~ 이러는 데는 장사가 없다. 솔직히, 그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싶었다. 어차피, 언젠가는 ‘일’은 정리했어야 했으니까. 하지만 여전히 굳은 얼굴로, 네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최소한만 해준다는 것처럼 짐짓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어디서 하는데.”
“여기.”
“뭐?”
“여기라고.”
다시 한 번 콧등을 손으로.....
“왜 여기야! 안돼! 허락할 수 없어!”
“어우~그러지 말고~”
“네가 콧소리 내봤자지. 안 되는 건 안 돼!”
다솜이가 하나도 아니고 몇배로 늘어난다니. 거기다가 어린애들이라 물건을 어떻게 뒤질지도 모르는데. 그럼 총도 나오고 칼도 나오고...이번은 절대로 안된다. 그렇게 결심을 굳혔다.
“아저씨~”
“안 돼! 안된다면 안 돼! 안되는 거야! 절대 안 돼!”

“안녕하세요, 아저씨!”
그 때 보았던 대여섯명의 여학생들이 다솜이와 함께 현관으로 들어오면서 내게 활기차게 인사한다. 내 이마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혀있다. 청소도 다 해놨고, 상도 다 차려놨고. 비좁진 않겠지만 그런대로 공간도 신경 써서 배치해 놨고.....이게 아니잖아! 대체 어째서! 이렇게 되어버린 건가! 나는 다른 아이들한테는 웃는 표정을 짓다가 맨 나중에 들어오는 다솜이의 팔을 붙잡으면서 눈을 치켜떴다.
“너.....나중에 좀 보자.”
“에헤~ 아저씨 미안~”

붕대를 풀고 나자마자 울린 핸드폰. 외출했던 다솜이가 건 것이었다. 내용인즉슨, 지금 애들을 데리고 쳐들어 올테니 맘대로 하라는 것이었다. 잠시 좌절했다. 그렇게 안 된다고 했는데도. 열쇠도 있겠다, 바로 끌고 들어오면 방법이 없다. 그렇다고 문전에서 가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걸 노리고 야비하게 다솜이는 아이들을 동원한 것이다.

잠시 좌절포즈를 짓다가, 문득 주위를 둘러보았다. 널부러진 빨랫감, 먼지앉은 가구들, 다솜이가 보다가 내팽개친 만화책들. 피묻은 붕대. 이 거지같은 꼴을 그대로 보여주겠기에, 부랴부랴 청소도 하고 있는 걸로나마 간단한 간식거리도 만들어놓고 법석을 떤 다음 아이들을 맞은 것이다.

“야야야~시끄럽고~먹어!”
“깔깔깔깔~”
“이 가스나는 꼭 이런다 안 카나.”

왁자한 시장 꼴이 되어버렸다. 방은 청소하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 있었다. 서재는 아예 잠가버려서 차라리 다행이지만, 침실을 비롯해서 공간이 좀 있는 곳은 거의 널부러진 과자봉지나 뭐 그런 것들로 들어차 있다. 이 아이들은.....왜 하나같이 다솜이와 똑같은 건가......아, 그러니까 다솜이의 친구겠지.

“여기서 정말 아저씨랑 같이 있는 거야?”
안경을 쓰고 갈래머리를 묶은 아이가 묻자, 다솜이가 호기있게 대답한다.
“응! 뭐 말하자면 신혼살림? 그런 거라고 할 수 있지!”
기고만장. 지금의 다솜이를 설명하는 적절한 사자성어. 부글부글 끓는 내 속은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 듯한 저 태도.
“그래도~뭐 야한 짓은 하지 않아~나이가 아직 있잖니~”
“야야~그른기 없으믄 무신 재미고?”
“그렇지? 역시 그런거지? 깔깔깔~”
사투리 소녀와 다솜이의 말. 이마에 핏대가 서는 것 같다.

“아저씨. 저희 때문에 힘드실 텐데 좀 와서 같이 드세요.”
그 중에 머릿결도 차분하고 좀 어른스러워 보이는 애가 빈 접시를 갖다주면서 내게 말을 건다.
“아니요, 즐겁게들 노세요. 아저씨가 끼면 재미나 있겠어요.”
“아니에요. 그래도 집주인이고 다솜이 남자친구인데....”
오오 제발. 그 말은 하지 말아주세요 - 이런 말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간신히 삼켰다. 차라리 저 머릿결 좋은 애가 내 애인이었다면 이런 고생은 하지 않았어도 될 것인데. 가만. 중학교 2학년생들이잖아! 내가 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저 가스나 또 꼬리친다. 다솜아~ 느그 애인 잘 간수하그라~”
“야~강은혜 너~”
다솜이가 달려와 은혜라 불린 애의 어깨를 덥석 잡아 챈다.
“아직도 그 버릇 못 버렸구나! 이리와!”
“기집애~ 이거 좀 놓고 이야기해~”
“어디서 내숭이얏! 자, 빨리 와. 우리 게임하자!”

제법 귀가 따가워지고 있는 장면을 잠시 피하고 끓고 있는 속을 달래기도 할 겸, 담배를 가지고 잠시 베란다 쪽으로 나갔다. 더 열이 받는 건, 담배도 한 개피 밖에 남아있지 않다는 거다. 불을 붙이고 잠시 창밖의 꽉 들어차 있는 집들을 바라보았다. 답답하기는 매한가지였다.

문득, 뒤통수가 따가워지기 시작했다. 뒤를 돌아보니 애들이 전부 날 바라보고 있는데, 눈치가 이상했다. 그 달뜬 시선들에 아랑곳없이 내가 시선을 주자 잠시 바라보던 애들은 갑자기 자기들끼리 쑥덕대기 시작했다. 뭔가, 분위기가 이상해져서 베란다 문을 열고 들어왔더니 애들이 나를 바라보면서 한결같이 떠들기 시작했다.
“아저씨, 이제부터 아저씨는 우리 모임의 마스코트에요!”
“축하합니데이~”
“뭐....라구요?”
“마스코트요. 마스코트~”
담배. 담배가 필요해. 마스코트. 그것의 의미를 알고는 있는 건지. 아니, 그것보다 그런 게 되어도 전혀 기쁘지 않은 상황이다. 완전히 자기들 멋대로 잖은가.
“저, 사양하면 안 될까요?”
“안돼. 내가 큰맘 먹고 허락한 거야. 피할 수 없어....으흐흐흐.....”

다솜이의 나름대로 음흉한 표정이 아주 압권이다. 신이시여. 팔에 총맞은 것만으로는 모자라셨던 게지요. 이제는 점점 시련을 확대해나가시는 군요. 좋습니다. 해보자구요. 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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