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껍절한 사랑이야기 3장(2)

NEOKIDS 작성일 07.01.21 03:3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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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별수 없이 그런다고 하고 먹을 것 좀 더 사오겠다고 하면서 밖을 나섰다. 갑자기, 내가 다솜이에게 열쇠를 준 것이 정말 잘한 일인가 하는 후회가 들었다. 저렇게 맨날 친구들을 데려오기라도 한다면 내 조용한 생활은 앞으로 끝장난 것이나 다름없다. 그것보다도, 서재를 매일 잠가두고 저 애들과 부대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더 끔찍해졌다.

담배와 음료수, 그리고 어차피 저녁때까지 있을 것 같아서 대강 부대찌개 정도는 끓일 찬거리까지 사가지고 언덕을 올라가려 할 찰나였다.
앞에서 사방을 두리번거리면서 서있는 가죽잠바 차림과 짧은 머리의 남자. 뭔가 수상했다.

품이 불룩한 것으로 봐서 분명히 그가 가지고 있는 건 총기류가 아니면 도검. 그가 나를 보지 못한다고 생각이 들 때 나는 조용히 다솜이네 집으로 가는 골목으로 빠졌다. 가지고 나온 건 아무것도 없었고, 손이 시려울까봐 끼고 나온 장갑과 담배를 피울 작은 라이터 하나만 있을 뿐이었다. 일단은, 이것으로도 제압은 할 수 있지만, 문제는 그 뒤의 상황이다. 나를 노리고 온 건지, 아니면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다른 용무인지.

하지만 그런 혼란은 곧 풀렸다. 잠시 골목 밖으로 고개를 살짝 내밀어 동태를 확인했을 때, 애초에 그 놈이 그 쪽으로 향하는 날 봤던 것인지 급한 걸음으로 내가 있는 골목 쪽에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이번에도 눈은 마주치지 않았다. 저쪽은 내가 기다리고 있다는 걸 모른다. 주변은 아직 사람이 없다. 기회다.

장갑을 낀 손에 라이터를 꼭 쥐고는 장거리를 옆에 내려놓고는 잠시 몸을 웅크렸다. 발소리를 잘 듣고 있다가 때맞춰 몸을 용수철 튕기듯 위로 솟구치면서 주먹을 날렸다. 주먹이 제대로 꽂혔다. 놈은 불식간에 턱을 얻어맞고 쓰러졌다. 그래도 제법 낙법 같은 걸 배웠는지 바로 뒤로 쓰러지지는 않았지만, 소용은 없었다. 내가 바로 위로 올라가서 발길질과 주먹질을 한 번 더했으니까.

오로지 담벼락만 있는 조그만 골목길에 그 녀석을 끌어다놓고 품을 뒤졌다. 역시, 토카레프. 벌써 여기까지. 하지만 어떻게 알고 이곳을 정확히 찾아온 것일까. 그건 놈이 깨어나면 물어봐야 할 일이었고, 일단 주머니 속의 무기가 될 만한 것들이나 그런 것들을 철저히 검사했다. 핸드폰은 부숴버리고, 대강 검사를 하다가 발목에 뭔가 느낌이 왔다. 주제에 발목에는 단검까지 차고 있었다.

급한 대로 비닐봉지를 뒤집어써서 얼굴을 가리고 놈이 아무 짓도 할 수 없도록 주저앉은 놈의 오른쪽 벽에 붙어 앉은 뒤 놈의 뺨을 쳐댔다. 가벼운 뇌진탕 정도였을까. 놈은 신음을 내며 깨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놈의 목에 단검을 들이댔다.
“서툰 짓은 하지 마.”
짐짓 목소리를 깔아서 변형시키면서 경고를 했다. 놈은 뒤통수를 만지려다 단검의 섬뜩한 차가움에 곧 몸을 경직시켰다.
“어떻게 알아낸 거지?”
내가 묻자 그 놈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시치미를 뗄 건가?”
칼을 좀 더 깊이 들이대자 피가 한 방울 흐른다. 그 뜨뜻미지근함을 느꼈는지 놈은 혼비백산을 했다.
“아....아, 알았어. 다 말할께!”
“그래야지.”
“짭새네 집은 그냥 형님이 정보를 준 거야. 그걸 어떻게 알아냈는지 까지는 몰라. 그리고 그 집에 딸이 있다길래, 오늘은 그냥 재미좀 보려고 한거야.”
“뭐?”
“여기 살고 있는 형사부장을 죽이러 왔다고! 씨발. 집만 확인하러 온 거였는데....”
“다시 천천히 말해봐. 형사부장이 뭐가 어째?”
“뭐? 그러고 보니 넌 대체 누구야?”
“시끄럽네?”

안면에 훅으로 한 방을 날렸다. 칼은 왼손으로 쥐고 있었고 오른 손으로 날렸기 때문에 그 놈은 주먹을 맞은 충격과 동시에 뒤통수가 벽에 부딪히는 충격을 고스란히 받았다. 코가 제대로 나갔는지 코피가 쏟아진다.
“아악! 아아욱! 말할께! 말한다고!”
“형사부장이 뭐가 어째?”
“우리 조직 형님이 요즘 그 놈 때문에 골치가 아파져서 죽이라고 한 거야. 여기 근처에 형사부장이 살고 있어.”
“토카레프, 너희 조직에서는 많이 쓰냐?”
주머니에서 토카레프까지 꺼내 보여주자 아예 모든 걸 포기한 눈빛으로 그 놈은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 파 이름은?”
“청송파.”
청송파..... 처음부터 건드려도 단단히 잘못 건드렸군....
“그래, 네가 노린다는 형사부장 이름이 뭐냐.”
“윤철호.”
“집은 어딘데?”
“아까 전, 그 언덕 위다...”

윤철호. 윤철호. 그게 다솜이네 아버님 성함이군. 이 정도면 됐다. 일단은 겁을 주는 게 필요했다. 쓸데없는 말이었지만 놈들을 혼란시키는 방법으로는 꽤 좋을 것 같아서, 나는 말을 꺼냈다.
“너네 조직에서 요즘 사람이 하나 죽었지? 마약이랑 여자 다루는 놈.”
“뭐? 네가 그걸 어떻게....”
“내가 죽였거든.”
“그럼 너는!”
“그래. 그러니까, 너는 가서 니 형님한테 보고나 해라. 그 새끼 멱줄 제대로 간수하고 싶다면, 이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말라고. 그리고 아까 전에 뭐라 그랬지?”
“뭐.....뭘?”
“형사부장네 딸이랑 재미 좀 보시겠다고.”
“그....그게 뭘.....”

입을 막으면서 들고 있던 단검을 그대로 양 허벅지에 각각 한 번씩 쑤셔박았다. 화가 치밀어오르긴 했지만, 앞뒤 상황도 파악하지 못할 만큼 흥분하지는 않았다. 골목에 놈의 비명이 메아리쳤다. 이제 사람들이든 누구든 이 꼴을 볼 것이고. 빨리 빠져나가야 한다.
“재미는 내가 다 보여줬으니 됐지. 이젠 내가 말한대로 전달을 해줘야 겠어.”

다시 집에 들어오니 애들이 이번엔 카드로 도둑잡기 놀이를 하고 있느라 여념이 없다. 그 틈을 타서 서재로 몰래 들어간 나는 피가 묻은 외투를 조심스럽게 숨겼다. 나중까지 다솜이에게 숨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러고 나와 보니, 아이들이 나를 쳐다본다.
“아저씨, 언제 왔어? 아저씨도 할래?”
“아니, 나는 됐어. 편하게 놀아.”
같이 놀자는 다솜이의 말을 그렇게 거절하고 잠시 문지방에 기대서서 다솜이를 바라보았다. 다솜이의 아버지가 암살의 노림을 받고 있다. 만약 이제 다솜이의 아버지까지 죽으면, 다솜이는 천애고아가 된다. 거기다, 어머니와 할머니에 이어 다시 또 아버지의 죽음까지 겪는다면. 정신이 완전히 무너질 지도 모르고 어떤 힘든 일을 겪게 될지 모른다. 그 고통은 그 애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곰곰이, 나는 탄환이 얼마나 남았는지 계산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탄환박스를 체크해봐야 되겠지만 만약 모자란다면 더 받아와야 하고, 이번엔 서브머신건까지 준비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감에게 이야기를 하면, 힘들긴 하더라도 구해 줄 것이다. 영감이 아는 독자적인 루트로.

물론,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인줄은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알고 있다. 상대는 총까지 구비하고 있는 조직. 하지만 이대로라면 분명 다솜이가 힘들게 될 거라는 건 뻔한 사실. 그렇게 되기 전에 먼저 일을 해결해야 한다.
그리고 어차피, 내가 이 동네에 있다는 사실도 알려진 이상, 일을 서둘러야 한다. 조용히 서재로 나와서, 핸드폰으로 평화상점의 번호를 눌렀다. 자동응답기가 받을 것이지만, 영감은 분명 확인해줄 것이다. 물론 다른 사람이 모르게, 우리끼리의 암호를 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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