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사람이 사랑하는 법..[15]

그어떤날 작성일 07.01.22 14: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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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부탁은 하는게 아니에요.>



무슨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어쩐지 이상한 일에 휘말리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잠깐만요, 저는 별로 관계가 없는 사람인 것 같은데요."


"그럴까요? 일단 앉으세요. 이러고 있으니 제가 좀 민망하네요."


난 의아해 하면서도 어영부영 자리에 앉았다.

분명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현준오빠 이야기를 할게 뻔했다.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 조금은 긴장도 됐다.

5분정도가 지났는데 적절한 시작 단어를 못찾고 있는지 이 여자분은 말이 없었다.

난 좀 답답한 느낌이 들어 말을 꺼냈다.


"할 얘기란게.."


"아 네.."


"없으시면 전 이제 일할 시간이 되서 그만.."


"아니요. 할게요."


눈빛이 진지했다. 뭔가를 결심한 듯 한 눈이라고 해야하나...


"저..현준오빠랑 사랑하던 사람이에요."


"네, 알고 있어요."


"난 오빠를 돌려받고 싶어요."


"뭔가 오해하신 모양인데, 전 오빠랑 별로 그런 사이가 아니에요."


진전이 있길 바라는건 내 바램이었지만,

일단은 우리가 특별한 사이다라고 말할 자격이 내겐 없었기 때문에

내 앞에 있는 여자가 오빠와 다시 잘된다고 해도 난 막을 수가 없었다.

적어도 이 여자가 나보다 오빠를 더 잘알고 있을테니까..


"수영씨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던 그건 내 관심밖이에요.

문제는 오빠의 관심을 수영씨한테서 나한테 돌리고 싶다는 거죠."


"그건 오빠의 마음이죠. 누가 사람의 마음을 그렇게 움직일 수 있겠어요."


"수영씨가 말해줘요. 오빠한테 나한테 다시 돌아오라고요."



왠지 이런 순간을 어디선가 본듯 하다. 그래,틀림없이 드라마나 영화에서다.

나한테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니 진짜 웃긴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가 이런 장면이 나오면 여자 주인공들은 고민에 빠진다.

그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 내가 빠져줘야겠다는 생각이려나..

이런 요청을 해온다면 알았다고 대답하고

남자주인공에게 맘에도 없는 말을 해선 뒤돌아서 눈물을 흘린다.

그런 장면들을 볼땐 맘이 아프고 눈물이 흐르지만,

막상 현실이 되니 난 너무 이기적이라 그런가 그렇게는 안되더라..



"제가 왜 그래야 되요?"


"네?"


"저, 그리고 그쪽..아니 저보다 나이가 많아보이시니까 언니라고 할게요.

저랑 언니 둘다 오빠와 지금 특별한 사이라 말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저도 현준오빠 좋아해요. 그럼 우리 이런 부탁같은 건 하지말아요.

서로 노력해서 사랑을 잡을 수 있게해야지 잘 모르는 사람들끼리 양보는

무슨 양보에요. 만약에 제가 포기해서 언니가 현준오빠를 돌려받으면,

그걸로 끝은 아닐꺼에요. 언니는 제가 분명 맘에 걸릴꺼에요."


"나이도 어린게 당돌하네."


"이제까지 당돌하지 못해서 사랑을 지키지 못했어요. 양보하고 물러난다고

다 사랑을 잡을 수 있는건 아니란걸 배웠거든요."




우리의 얘기는 거기서 끝이었다.

그 언니는 나한테 시간 뺏어서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선 돌아갔다.

난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한참을 앉아 있었다. 솔직히 자신은 없었다.

현준오빠가 날 어떻게 생각하는 지도 모르고, 어제 그 어색한 키스로 인해서

전화한번이 오지 않는 것도 내가 그 언니에게 더 자신있게 말할 수 없던 이유였다.

사랑을 하다 헤어졌다는 간단한 명제가 붙는 언니에게는 내가 생각하는 단순한

사랑의 개념이 아닌, 5년이라는 긴 시간에 오빠와 같이 나눈 나날들로 뭉쳐진

강력한 자신감 같은 게 보였다. 어제 그렇게 내 이름을 물으며 뚫어질 듯 쏘아보던

사람이 오늘은 진지한 얼굴로 나에게 포기를 해달라고 말하고 있었다.

자존심도 내던진 사랑이다.

이럴 때, 오빠의 힘이 필요하다.

적어도 오빠가 전화만 해준다면 난 조금이라도 기운을 낼 수 있을텐데...

기운없이 앉아있을 때가 아니다. 일을 해야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홀로 나가니 사장님과 언니가 눈도 깜빡하지 않고

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왜그래요? 무슨일 있어요?"


물어봐도 대답하지 않길래 나도 고개를 돌려 밖을 보니 아까 현준오빠가 있었다.

아까 그 언니와 가게 앞에서 마주쳐 말다툼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순간 직감으로 난리가 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점점 문쪽으로 걸어가서 뭘 하는 거냐고 물어보려는데 오빠가 안쪽에서 걸어나오는

날 발견하고는 언니 팔을 잡고 다른 곳으로 갔다.

문을 열고는 재빠르게 오빠!, 하고 소리쳤지만 들리지 않는건지 일부러

들리지 않는 척 하는 건지 그대로 갈길을 가는 오빠를 보니 이제 더이상은

못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는 그 언니가 짝사랑이었고 5년동안 깊이깊이 사랑했었다고 했다.

아무래도 나보다는 언니 쪽이 마음이 쓰일 것이다.

오빠를 포기해야만 될 것 같았다. 전화따위도 기다리지 말자고 생각했다.



홀로 돌아오니 사장님이 내가 좋아하는 운남 홍차를 끓여주시면서 말씀하셨다.


"근데 이상하지 않아?"


나 대신에 같이 일하는 언니가 대답을 했다.


"뭐가요?"


"저 여자야 그렇다 쳐도 현준씨는 지금 시간이 수영씨가 일하는 시간이

아니라는거 알고 있는데 왜 그 앞에 있었던 걸까?"


그러고보니 정말 그랬다. 내가 일하는 시간이 아닌데 왜 오빠는 그 자리에

있어서 언니와 마주쳤던걸까?


"어쨌든 수영씨 덕분에 조용한 우리가게가 조금은 활기가 있어보이네."


단순한 농담이 아닌걸 알기 때문에 머쓱해서 뭐라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물어보고 싶은 말들이 더 많아졌다.

저녁때까지 기다리다 전화가 오지 않으면 그땐 내 쪽에서 전화를 해봐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휴대폰은 주머니에서 아예꺼내지도 않았다.

물론 일이야 열심히 하고 있었지만 맘을 다해 서비스하고 있었던 건 아니다.

걱정이 된다거나 그런게 아니라 나중에 전화를 할때 말이 꼬이지 않도록

머릿속으로 하나하나 정리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갈 시간이 다 되가는데도 주머니 속에서 진동은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가게 뒷정리까지 마치고 앞치마를 벗고 집에 갈 준비를 했다.


"그만 가볼게요."


"잘가고 다음주에 봐요~"



인사를 하고 가게를 나왔다. 바로 핸드폰을 들어 현준오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오빠, 나 수영이야."


"응, 안그래도 지금 전화하려고 했는데."


이상하다. 오빠 목소리가 예전과 다르지 않았다.


"전화 기다렸는데 안하길래 내가 먼저 했지~"


"그랬구나, 지금 끝났어? 좀 기다릴래? 지금 너 데리러 가는 중이거든?"


"오긴 뭘 와. 버스타고 갈게."


"아냐 거의 다 왔어 조금만 기다려."



이상해도 너무 이상할 만큼 평소와 다르지 않은 오빠의 목소리에 뭔가

이제까지 혼자서 뻘짓한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낮에 그 언니를 만난것도 어제 밤부터 그렇게 오빠한테 무슨말을 해야할지

고민했던 시간들도 전부 꿈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 차라리 꿈이였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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