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껍절한 사랑이야기 3장(5)

NEOKIDS 작성일 07.01.26 03: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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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시장 같은 데나 있을 법한 조그만 국밥집. 경찰서 근처의 그 가게로 들어가서 국밥을 두 그릇 시키고 소주 한 병을 사이에 놓은 채 아버님과 나는 잠시 어색한 침묵을 나누고 있었다. 그러다 아버님이 먼저 말을 열었다.
“그래, 날 보자고 한 이유는 뭔가.”
잠시 상에 차려진 깍두기들을 바라보다가, 나는 소주를 한 잔 따라드리고 내 잔에 내가 부으려 했다. 아버님은 그 병을 뺏어서 내 잔에 따라주셨다. 그것을 한 번에 들이키고, 말을 했다.

“아버님. 아버님이 위험합니다.”
“뭐?”
“청송파라고 아시죠.”
“자네가 그걸 어떻게.....”
“그 전에 말씀드릴게 있습니다. 저는 청부살인업자입니다.”

다시 침묵이 흐른다. 국밥의 냄새가 코를 찌른다.

“자네, 지금 뭐라고......”
“여러 군데에서 살인을 저질렀지요. 대체로 총을 많이 썼습니다만, 독이나 칼도 사용했습니다.”
“......”
아버님의 매서운 눈이 나를 바라본다. 각오한 일이다.
“청송파가 아버님을 노리고 있습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아버님의 집 앞에서 권총을 가지고 대기하고 있더군요. 제가 발견하고 먼저 처리했습니다만, 이대로 둔다면 또 다른 놈들이 올 겁니다.”
“믿을 수가 없군 그래.....”

나는 내가 했던 몇 가지의 일들을 있는 그대로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품안에 차고 있는 소음기가 장착된 베레타와 9mm탄, 칼, 너클 등등의 장비들을 다른 사람들 모르게 보여주었다. 그 효과는 즉각 나타났다.
“그럼, 그 사건이.....청송파 마약업자인 김칠용이 그 사건도.....”
“예.”
“그럼, 왜 나에게 니가 그런 말을 하지?”
말이 ‘자네’에서 ‘너’로 바뀌었다.
“아버님을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게 되면, 다솜이가 힘들어집니다.”
“딸아이 때문이라고?”
“사실은, 그렇습니다.”

아버님은 소주잔을 들이켰다. 눈매가 분노로 일그러진 채.
“자네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나? 내게 이야기하는 의미가 뭔지도 알고 있고? 난 자네를 잡아넣어야 할 처지에 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각오는 할 만큼 했습니다. 제게 지금 수갑을 채우셔도 할 말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신다면 다솜이도 위험해질 겁니다.”
“내 딸을 가지고 협박하는 건가?”
“협박이 아니라, 제가 처리했던 청송파 놈이 제게 불었던 겁니다. 다솜이를 강간하려고 낮에 왔다더군요.”

아버님이 고개를 숙인 채로 거친 숨을 내쉰다. 지금의 아버님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아버님은 고개를 들고 물었다.

“지.....지금 다솜이는 어디 있어?”
“일단은 저희 부모님 집으로 피신시켰습니다. 제 집도 거의 반은 노출된 상태이기 때문에 위험해질 가능성이 있어서요.”
“지금, 내 눈 앞에서 꺼져. 멀리 어디로든 도망쳐 버리라고. 내 딸아이에게 다시는 오지 마. 내 딸아이를 그만큼 보살펴 줬으니 나도 지금 이 순간만은 봐주지. 하지만 그 다음에 널 찾게 된다면, 그 땐 반드시 잡아서 쳐 넣을거야.”
“지금 가지도 않을 거고, 도망치지도, 숨지도 않을 겁니다.”
“뭐?”

당장 소주병이라도 들고 내리칠 기세의 등등함. 하지만 모든 것을 각오한 내게 이미 다른 길은 없다. 고로 두려울 것도 없다. 나는 고개를 들고 똑바로 말했다.

“오늘 밤은 이대로 아버님이 서에 들어가시는 길까지 같이 가겠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준비가 되는대로 청송파를 칠겁니다. 도움이 되는 정보가 있다면 주십시오. 이대로 아버님이나 다솜이를 보호하기엔 한계가 있습니다. 보호하기 힘들다면 이쪽에서 먼저 기습을 해야 합니다.”
입이 벌어진 채로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는 아버님의 눈빛을 고스란히 받아넘기면서, 나는 미동도 하지 않고 눈매를 굳혔다. 내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왜 그런 일을 하려는 거지?”
그 대답은 국밥이 나오면서 끊겼다. 국밥의 김이 모락모락 오르고 있었다.
“이런 말은 지금 상황에서는 우습지만......”

나는 소주를 다시 한 잔 부어 들이켰다.

“저는 따님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다시 보지 못하게 되더라도, 이 일은 해결을 해야만 하는 겁니다.”

국밥을 다 먹고 나와서 나와 아버님은 어색한 거리를 두고 걸었다. 아버님과 모든 이야기는 다 되었다. 내가 청송파를 칠 때쯤엔 아버님께 연락을 할 것이다.
내가 한창 청송파와 판을 벌리고 있을 때쯤 아버님께 신고를 하는 것처럼 전화를 한다. 아버님은 스와트를 이끌고 현장을 급습, 불법총기를 소지한 놈들과 그 일당을 처리한다. 그 속에서 나는 재량껏 탈출한다. 탈출할 수 없어 잡혀버려도 그건 어쩔 수 없다. 그리고.....다솜이는 어쨌든, 두 번 다시 만나지는 못한다는 것까지. 그건 가슴이 아팠지만, 이렇게 될 것도 각오의 연장선상에 있는 일이었다.

가로등 하나밖에 켜져 있지 않은 어둑한 골목. 아버님은 아까부터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다. 나는 외투 주머니에서 손거울을 꺼내어 얼굴을 보는 척 하면서 뒤를 살펴보았다. 저 쪽에 차에 탄 채 우리 쪽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 둘. 앞을 바라보니 저만치서 우리 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놈들 둘.
“자네도 알았나?”
“네, 지금.”
“미친 새끼들....대한민국 경찰을 뭘로 보고.....”
다시 호칭이‘자네’로 바뀌었다. 앞의 놈들 걸음이 점점 빨리 다가온다. 이번엔 칼을 쓰려는 듯 하다. 품속에 손을 넣고 쥐고 있는 폼새는 총이 아니라 뭔가 긴 것이었다. 사시미 정도나 될까.

놈들이 꽤 가까이 다가왔다. 잽싸게 외투 안쪽 주머니로 손을 집어넣었다. 뒤의 차가 시동을 걸고 급출발을 하는 소리가 들린다. 내 손에 쥐어진 베레타가 왼쪽 놈을 정확히 겨냥했다. 차는 급발진의 파열음을 내며 다가오고 있고, 다솜이 아버님도 품속에서 권총을 꺼내어 공중을 향해 세 발을 쐈다. 요즘 위험한 수사 때문에 항상 권총을 상비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래봤자 357구경이라서, 거의 딱총수준에 가깝지만.
내 베레타에서 바람이 급하게 빠지는 소리가 나면서 앞에 있던 놈의 가슴에 탄이 적중했다. 한 놈은 당황해서 어떻게든 우리에게 공격을 하려 뛰어오고 있다. 뒤의 차도 급하게 달려오고 있다. 차로 들이받으려 할 것이다. 한쪽 무릎을 꿇은 자세로 쏜 아버님의 357구경이 앞에 달려오던 놈을 끝냈고, 나는 바로 총구를 뒤로 돌려 운전석을 정조준한 후 세 발을 먹였다. 맞았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어쨌든 핸들을 돌리게 하는 효과로는 충분했던 듯하다. 놈의 차는 길가의 주차된 차를 들이받았다. 주차된 차에 설치된 도난방지 알람소리가 일대를 시끄럽게 울리고 있다. 곧 사람들이 달려올 것이다.

“자넨 빨리 가게.”
“네?”
“여기는 내가 처리할 테니까 얼른 가라고. 내가 우리 서의 사람들을 부를 테니까.”
아마도, 대강 정당방위로 둘러 붙일 것이다. 시체를 부검하기 전까지는 9mm탄과 357구경의 차이를 잘 모를 것이라는 건 뻔한 사실이니까. 총상을 많이 봐온 사람들이 아니라면 잘 알 수 없다는 것도 아버님의 둘러붙임에 도움을 줄 것이다.
“그럼, 먼저 가겠습니다. 나중에 연락 드리죠.”
“잠깐만.”
“네?”
“.......죽지 말게.”

아버님의 말씀에 나는 미소를 지었다.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그 골목에서 사람들이 나올 것 같지 않은 방향으로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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