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군…”
쥰은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그 앞에는 아까 멈춰 섰던 검은 망토의 사내가 멍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한 쪽 입으로는 침까지 흘리고 있었다.
딜런은 옆에 앉은채 발을 붕대로 감싸고 있었다.
“거참 사람 한 번 험하게 쓰는군. 꼭 나까지 나섰어야 했어?” 인상을 찌뿌리며 말했다.
“나 혼자 5명을 어떻게 상대하냐? 내가 그들을 도발하지 않았다면 놈들은 오히려 널 인질로 삼았을지도 몰라. 나의 전략이 너의 생명을 구한거다. 너의 칼솜씨가 아니라.”
쥰은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딜런을 내려다 보았다.
딜런은 발이 아파서인지, 아니면 쥰의 말이 기분 나빠서인지 한 층 더 인상을 썼다.
“쥰… 서둘러요. 곧 끝나요.”
디아나는 앞의 망토인과 똑같이 서서 움직이지 않은채 말했다.
둘 다 처음 전투가 벌어졌을 때 그 모습 그대로 였다.
“알았어.”
쥰은 대답하며 동시에 망토인의 뒷덜미를 가격했다.
그가 쓰러지자, 동시에 디아나도 휘청거렸다.
“휴…”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힌 디아나는 몹시 피곤한 듯 눈을 감고 자리에 앉았다.
“역시 당신의 능력도 대단해.”
쥰의 디아나를 바라보며 칭찬했다.
디아나는 쓴 웃음만 지을 뿐 대꾸하지는 않았다.
“이방인이 마을에 들릴 때마다 교주의 명령에 따라서 신도를 만들던지, 아니면 죽이던지 했다는건가…” 쥰은 기절시킨 망토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불쌍한 자들이군. 신의 뜻에 어긋나면 온 몸에서 벌래가 생겨 뚫고 나온다니… 그건 신앙이 아니라 저주가 아닌가…”
“그러나 그 검은 뱀 같은 것들은 뭐지? 그런걸 이용하는 주술이나 종교는 들어 본 적 없어.” 딜런은 피맺힌 자신의 발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글쎄… 궁금하긴 하지만 우리에게 그걸 알아낼만한 여유는 없지” 쥰은 쓰러진 자들의 소지품을 뒤적거리며 말했다.
“선발대는 끝난건가?”
“!”
어디선가 말소리가 들리자, 디아나는 튕기 듯 일어났다.
쥰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뒤돌아 보았다.
그곳에는 역시 망토를 입었지만 얼굴은 드러낸 사내가 서 있었다.
맨들맨들한 대머리에 안경을 쓴 사내는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달빛에 비친 안경이 빛나서인지 아니면 풍기는 기도가 그런건지 마치 날카로운 칼날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큰 키에 금색의 표시를 단 남자였다.
쥰은 말없이 자세를 고쳐 잡았다.
“설마 선발대가 몰살 당할 줄은 몰랐는걸. 가장 빠른자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일부나마 신의 은총을 받은 자들이거늘…”
죽은 이들이 안타까운 듯 주변을 둘러보며 사내는 말했다.
“역시 신을 품에 안은자에게는 통하지 않는건가?”
“…!!”
디아나와 딜런은 쥰을 바라 보았다.
담담한 표정의 쥰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이 동네에서는 개를 키우지 않아.”
사내는 슬며시 미소 지으며 말했다.
“어쩌다 길잃은 것들이 오지만 오래 못버티지, 난 그 지저분한 것들이 싫거든.”
“… 그런데 오늘따라 많이 모이더군…”
딜런과 디아나는 마을의 광경을 떠올렸다.
사내는 안경 속의 눈을 반짝이며 말을 이었다.
“네 발 달린 짐승의 왕… 펜리르… 오래 기다렸다.”
사내는 두 팔을 서서히 펼쳤다가 가슴에 모으며 말했다.
“그리고 오늘 밤 그 기다림은 끝난다.”
“헛소리!!”
쥰은 빠른 속도로 남자를 향해 돌진해 갔다.
슉! 슉!
바람을 가르는 쥰의 주먹은 놀라울 정도로 빨랐다. 하지만 그 주먹을 쳐내며 방어하는 남자의 손 역시 빨랐다.
한 차례의 격전이 끝난후 쥰은 거리를 두고 물러났다.
“이 먼 타국땅에서 체술을 익힌 사람을 만날줄이야” 쥰은 다소 놀라운 듯 말했다.
“훗. 어깨 넘어로 배운건데 괜찮은걸. 하지막 실전경험이 없으니 역시 약하군.”
오른쪽 뺨에 한 방 맞은 듯 얼굴을 어루만지며 남자는 말했다.
“자아… 이제 장난은 그만하고 어서 보여주시지, 신의 힘이란 것을.”
“그런 것 없어.”
짤막하게 쥰은 말을 잘랐다.
씰룩… 대머리의 남자의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래?” “그럼 끌어내어 주마, 그 더러운 짐승의 힘을!”
“..쥬…쥰!!”
디아나의 외침이 쥰을 뒤돌아 보게했다.
불룩불룩
기절시켰던 망토인의 몸이 끓어오르는 것 처럼 요동치더니 퍽! 하는 소리를 내며 터져버렸다.
“으아악!”
시체 속에서 나온 촉수들은 피할 틈도 없이 딜런과 디아나의 몸에 비오듯 우수수 떨어졌다.
그 모습을 보며 남자는 안경을 고쳐쓰며 비열한 웃음을 지었다.
“아직은 괜찮아. 그러나 시원찮게 나온다면 곧 몸을 뜯어먹게 만들겠다.”
쥰은 딜런과 디아나를 바라본 후 앞의 남자를 응시했다.
무척이나 차갑고도 가라앉은 눈빛이었다.
그의 주변으로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이름은?”
“라이무네”
이름을 밝힌 망토인의 등 뒤로 무수한 촉수가 뻗어나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