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지역 어느 도시. 도시라고는 해도 누구에게도 의심받지 않을만한 작은 도심지 안의 허름한 한 건물 안, 작은 방.
로렌초는 커피를 자신의 잔에 따르고 있었다. 김이 모락모락 일어나는 커피가 담긴 잔을 들고서 자신의 책상으로 가
서 앉았다.
방은 좁다란 한 칸, 그리고 가구라고 해봤자 서류서랍장과 책상이 다이고, 책상 위에는 빨간색의 전화와 다른 검은 색
의 전화가 하나. 벽에는 덕지덕지 때가 묻은 지도 같은 것과 서류들이 즐비하게 붙어있는 살풍경한 사무실의 공간.
그 곳에서 로렌초는 커피를 마시면서 지도에서 지금 론울프가 있을만한 곳을 눈으로 쫒았다. 로렌초의 일은 론울프
한 마리 한 마리를 키우고 작전지시를 내리는 일이었다.
커피를 홀짝이며, 그는 이번 작전에 참여하고 있는 론울프의 파일을 들춰보았다. 그리고는 잠시 커피 머그잔을 내려
놓았다. 새삼스럽게 봐도 놀랄만한 그 아이의 이력, 그리고 자신과의 만남을 다시 상기해보기 위해서였다.
로렌초가 동양 어딘가에 있을 무렵이었다. 주둔해있는 미군과 관련된 일로 잠시 방문했던, 한국이라는 나라였다. 그
런 곳의 어디에나 있을 법한 뒷골목의 추레한 삶들 속에서, 잠시 거닐면서 어디 쓸 만한 꺼리가 없을까 기웃거리던 로
렌초의 눈에, 그 소년이 띄었다.
그 소년의 눈은 얻어터져서 멍이 들어 있는 상태였지만, 로렌초 자체도 섬뜩해할 정도로 악다구니가 들어차 있었다.
로렌초는 그런 눈을 보면서 휘파람을 불었지만 대단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런 눈을 많이 봐오기도 했거니와, 그래
봤자 배가 고픈 늑대의 눈에 지나지 않았다. 늑대가 배가 고파봤자, 흉포해지기는 할망정 주위상황을 판단하지는 못
하고, 그런 늑대는 다른 무리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마련이다. 그런 다른 무리가 그 소년의 눈을 그렇게 만들었을 것
이고. 그럼에도 로렌초는 이 소년이 아까웠다. 그나마 이런 아이를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라는 생각이 더 크게 뇌리
를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로렌초는 즉석에서 소년에게 한 가지 시험을 냈다. 먹을 것을 줄 테니 가서 사람의 머리를 하나 잘라오라는.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아이에게 시늉과 그림을 그려가며 웃는 얼굴로 설명을 하자, 그 아이는 처음에 질겁을 하는 빛
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지 않아서, 곧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다. 그리고는 골목 안으로 사라진 지 30여분 만
에, 그 아이는 반흥분상태로 비닐봉지에 뭔가를 하나 담아왔다.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은 그 소년의 동갑쯤 되어 보이
는, 어떤 어린아이의 머리였다. 과도 정도 되어 보이는 칼이 소년의 손을 타고 흐른 피를 머금으며 한 방울씩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로렌초는 한국의 경찰이 오기 전에 바로 그 비닐봉지와 함께 소년을 미 군부대 안으로 데려갔다. 마침 그 날 있었던
특별후송의 기체 운행편을 통해 하와이, 그리고 거기서 아무도 모르는 어떤 섬으로까지 소년과 동행했다. 소년은 그
섬에 이동하는 그 때까지 뭔가를 실컷 먹을 수 있었다. 로렌초는 시험에 통과한 약속은 지켰던 것이다.
그 섬은 말 그대로 지옥이었다. 그 지옥에서 살아나올 수 있는 확률이란 걸 퍼센테이지로 따지자면, 한없이 0에 가까
웠고, 그보다 더 높아지진 않았다. 하지만 그런 지옥을 향해 가는 내내, 아이는 웃고 있었다. 그 곳을 벗어날 수 있다
면 어떻게든 좋았다는 식으로. 로렌초는 그런 아이의 해맑은 웃음을 보면서, 자신의 가슴 한 켠에서 일어나는 측은한
감정이 커지고 있는 것을 느꼈다.
어쩌면, 자신이 하는 짓은 해서는 안 될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 때 처음 들었다. 수많은 사선과 어두운 뒷골
목, 음모와 배신들을 넘나들었지만, 그 아이의 웃음을 보는 순간, 이건 아무래도 아니다 싶었다. 하지만 모든 것은 돌
이킬 수 없게 되어가고 있었다.
그 아이가 론울프를 키우는 훈련시설에 들어가서 무슨 지옥을 보고 나왔는지는 로렌초도 잘 모르고 있었다. 다만 얼
핏 접한 훈련 스케쥴 같은 문서를 통해 그 아이가 겪은 지옥이 어떤 것인지 상상만 할 뿐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 상상
조차도 모자라는 지도 몰랐지만. 어찌 되었건 예상대로 그 아이의 얼굴에서 그 해맑은 웃음 따위는 애저녁에 사라져
있었고, 소년은 청년이 되어서 론울프 부대 소속이 되었다.
그리고 그가 침투한 임무는 다른 론울프들의 성적에 비해 월등함을 자랑했다. 그 흔한 부상 한 번 당하지 않고 그 론
울프는 침투한 곳에 인간이라는 종족은 모조리 청소해 버렸던 것이다. 그 때문에 항상 어려운 임무에 투입되고는 했
지만 언제나 보란듯이 살아돌아왔었다.
하지만 굳어버린 돌조각처럼 변한 그 청년이 짓던 소년때의
맑은 웃음을 생각할 때마다, 다른 론울프들에 비해 그 론
울프는 왠지 정이 갔다. 무슨 일이 벌어지든, 보호해주고 싶다는. 물론, 그건 언제든 명령을 따라야 하는 관리자의 입
장으로서는 위험한 발상이었다.
로렌초의 회상이 거기까지 결론을 내리고 있는데 빨간 색의 전화가 울려왔다. 이런 전화는 비상시국에나 울리는 것
이었다. 로렌초는 파일을 덮고 전화를 받았다.
“로렌초입니다.”
-지금 진행하고 있는 작전 A213을 중단시키게.
“네?”
-작전 A213을 중단하라고.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짜증을 냈다. 로렌초는 수화기를 든 손을 바꾸었다. 처음 듣는 목소리인데다, 잘 알고 있을만
한 사람이 그런 말을 하니, 로렌초도 그가 잊고 있을 법한 부분을 상기시켜주는 것이 필요했다.
“하지만 잘 아시지 않습니까. 론울프의 작전은 한 번 발동되면....”
-그런 건 알고 있다. 그러니까 무슨 수를 써서든 작전을 저지하라는 거다. 필요하다면, 현재 작전을 수행하는 대원을
제거해도 좋다.
“그 말씀은....”
-알아서 해주길 바라네.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무례함을 남기고 끊겼다. 게다가 평소 연락을 해오던 브랜튼 소령도 아니었다. 의아함에 사
로잡혀 로렌초는 조용히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작전 A213은 바로 그 동양인 론울프가 진행하고 있는 작전이었다. 시
계를 보니 이미 작전개시시간으로부터 하루하고도 반나절이 지나있었다. 그렇다면 벌써 적진에 들어가 휘젓고 있을
터. 달리 어떻게 할 방도가 없었다.
론울프의 작전 특징은 한 번 시작되면 연락할 만한 전자기기를 전혀 갖추지 않고 들어가기 때문에 둘 중의 하나의 결
과를 보고 올 때까지는 끝나지 않는 일이었다. 그 곳을 전멸시키든가, 아니면 자신이 죽든가. 그렇기 때문에 저지르
기 전에 확실한 정보와 결심이 아니면 발동하지 않는 것이 론울프의 작전이었고, 이렇게 갑작스럽게 작전중지를 통
보하는 일 따위는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다. 게다가 작전수행원을 제거하라니. 그 정도로 멍청한 생각으로 작전을
발동시킨 자식이 어디의 누구인지는 몰라도, 하여간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그 쪽에서 충분히 생각하지 못한 빈틈은 있었다. 알아서 하라고 명령했으니까, 이쪽도 그만큼의 융통성을
발휘할 수는 있을 것이다. 작전은 한창 진행 중이고, 지금 다른 론울프를 투입하더라도 늦은 시간. 저쪽도 알고 있으
니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로렌초는 마시던 커피를 마저 마셨다. 변명거리는 얼마든지 있는데다가, 지금의 대원을 제거
하라는 말 따윈 개나 줘버리라는 심정을 삭히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