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전기로 부대원들의 동태를 살피다가, 꽤 많은 수가 나가 있게 되었을 때 론울프는 연구소의 안으로 잠입할 수 있었
다. 미리 받은 위성 정보에 따라, CCTV등의 보안 장치들은 모두 피한 뒤였다. 군인들이라고는 연구소 순찰을 위해
남겨진 몇십 명이 고작인 듯 했다. 자신이 분대 하나를 전멸시켜버린 탓에, 일이 쉬워지고 있는 것이다. 다음 차례는
슬슬 그 안의 보안장치와 시설물들만 파괴하면 될 일이었다.
벌써 한 놈을 죽여서 군복은 그럴싸하게 입고 있는 상태. 하지만 무슨 일이 벌어질 지 몰라서 장비를 착용한 위에다
가 옷을 입고 있었다. 이런 상태는 눈에 띄기에 쉬울 것이지만, 순찰하는 인원들만 있는 상태에서는 잘 숨기만 하면
큰 문제는 없었다.
다만, 아까부터 뭔가 연구원들이 이상한 동태를 띄고 있었다. 자꾸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급하게 돌아다니는 통에 자
꾸 목표한 시설들까지 접근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격벽이 나타날 때는 자신이 죽인 놈의 ID카드가 도움이 되
어주었지만, 나중에는 그 등급으로도 통과할 수 없는 곳들이 나와서 연구원들이 지나갈 때까지 경비를 서는 척 하고
는 연구원들을 기절 시키는 방법으로, 그럭저럭 건물의 공조실 비스무리한 곳까지 접근에 성공할 수 있었다.
샘텍스를 가지고 온 것의 반만큼 공조실 여기저기에 설치하고 나오면서, 다른 곳에서 폭약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하
고 그는 이 곳 저 곳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방이 그 방 같아 보이는 이런 연구소에서 돌아다닐 곳은 마땅
치 않았다. 자신이라면 어디다 폭약이나 무기류를 저장해 둘까 곰곰이 생각하면서 론울프는 발길을 옮겼다.
폭약을 설치한 공조실로부터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자, 론울프는 기폭장치에 전류가 흐르게 하는 원격장치의 버튼
을 눌렀다.
론울프의 등 뒤 저편에서 연쇄적인 폭발이 일어나면서 소방시스템을 비롯해서 모든 것이 동시에 작동하기 시작했
다. 만약 메인 기기가 있는 통제실이 있다면, 그 곳은 지금 대혼란에 휩싸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 연구소 내 경비를 도
는 놈들의 행동들도.
“경비대장! 늘 훈련하던 대로 실험체 1번의 확보를 최우선으로 하라고 지시해! 그 곳에는 나도 가겠다. 이미 외부인
이 침입한 이상 이 연구소는 버린다고 전해라. 곧 자폭시스템이 발동할 테니까!”
피어스 박사가 급하게 경비대장에게 연결된 회선을 통해 말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방구석에 있는 기기로 가서 거기
에 플라스틱 커버로 씌워진 버튼을 찾았다. 그리고는 그것을 깨부시듯이 눌렀다. 당장 그의 사무실부터가 사이렌과
안내방송의 어수선함으로 가득 찼다.
그는 옷을 챙겨 입으면서 평소에 이런 일이 벌어질 때 대비해서 챙겨두었던 몇 가지 핵심적인 자료들이 든 가방을 우
악스럽게 나꿔채고는 방을 뛰쳐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그 방은 폭발하면서 그 안에 있던 모든 것을 전부 불태웠다. 공조시스템과 소방시스템이 엉망이 되
어 물과 연기가 뒤섞인 복도에서 콜록거리면서, 피어스 박사는 실험체 1번이 있는 어딘가로 향해 계속 뛰어가고 있었
다.
“놈이 온다!”
다수의 경비원들이 사격을 시작했다. 탄을 막아낼 수 있게 특별히 고안된 방패로 진을 짠 경비원들은 엄중한 보안장
치가 된 문 앞을 배수진처럼 해서 고작 론울프 한 사람의 공격을 막아내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연기로 보이지 않는
그 속에서 아까전 설핏 지나갔던 그 그림자가, 공포에 질려 엉망으로 사격을 해대는 경비원들의 총알을 맞아줄 리는
만무했다. 그리고 바닥으로 뭔가 다섯 개 정도의 물건들이 경쾌한 금속음을 내면서 굴러왔다.
순식간에 진은 깨지고 아수라장이 되었다. 수류탄이 굴러오는 걸 보고도 태연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수
류탄의 폭발은 십여 명 남짓한 그들에게 세 가지의 결과를 강요했다. 하나는 파편에 맞아 즉사하던가, 방패 뒤로 숨었
다가 반탄에 밀려 쓰러지면서 헬멧 등에 의해 목이 꺾이든가, 그것도 아니면 그런 동료들을 엄폐물 삼아 쓰러진 채로
살아남든가. 마지막이 좀 더 숨이 붙어있는 행운을 누렸지만, 그것도 딱히 말하자면 행운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곧이
어 달려오던 론울프의 소총 난사를 온몸으로 고스란히 받아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 문 앞의 남은 경비병력들
은 처절하게 찢겨졌다.
피내음과, 뭔가가 타오르는 냄새, 그리고 물내음이 한 데 뒤섞여 비린내를 만들어내는 그 가운데를 론울프는 천천히
걸어갔다. 그리고는 그들이 목숨을 걸고 지키려 한 방문 앞에 서서 그 문을 한 번 쓱 훑어보았다. 그 문 너머에 무엇
이 있길래 다른 곳을 경비하던 인원들까지 합세해서 이 방 앞에 진을 치고 있었을까. 그 답은 방 안에 있을 것이었지
만, 도합 10개의 보안장치와 강해보이는 문의 잠금쇠들은 그렇게 쉽게 안을 보여줄 것 같지 않았다.
론울프는 주의 깊게 문 구석구석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주의한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가지고 있던 것을 다 쓰는 것이
지만, 적어도 조금씩의 샘텍스만 있으면, 문의 잠금쇠와 이음쇠를 통째로 뒤흔들어 강한 합금의 문짝을 그 자체로 쓰
러지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실행에 옮긴 결과는 예상과 한 치도 어긋남이 없었고, 론울프는 또다시 안으로 사격
자세를 유지한 채 들어갔다. 그 너머에 살균실이나 문이 또 하나 있었지만, 이 정도는 손으로도 열 수 있을 만한 정도
였다. 시스템의 붕괴는 다른 시스템의 붕괴를 불러와, 이제는 격벽시스템 자체마저도 무용지물로 만들어놓고 있던
덕분이었다.
그 안의 공간은 바깥의 눈부실 정도로 공들여놓은 조명들과는 달리 어두컴컴했다. 이 방은 조명시스템까지 영향을
받았는가 잠시 생각했지만, 그럴 리는 없었다.
게다가 론울프가 이 방 앞에 설 때부터 느낀 것이지만, 뭔가 거대한 압박감과 함께 알 수 없는 따뜻함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압박감과 따뜻함이 공존할 수 있는 것인가의 문제는 론울프에겐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그것이 론
울프 자신의 생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것이었다.
살기라면 살기, 아니면 뭔가 다른 긴장된 느낌들에 익숙했던 론울프였지만, 총을 겨누고 안으로 들어가는 지금은 전
과 달리 몸 안에서 흥분 상태의 심장이 요동치는 듯한 감정과 신경의 작용들이 론울프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
마 지나지 않아 론울프의 눈에 광활한 공간 한가운데가 들어왔다. 유독 그곳만 밝게 빛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도대체 저건 뭐지?’
론울프의 시야에 들어오고 있는 것은 론울프가 발을 들여놓자 마자 그 공간의 한 가운데서 빛나기 시작한 광체였다.
밝게 빛나는 광체의 주변을 작달막한 작은 빛의 덩어리들이 흐르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것은 론울프의 기억에서 무
언가를 끄집어냈다. 어릴 적 고향에서 본, 반딧불이라는 벌레의 광채였다. 하지만 이런 곳에 반딧불이 존재할리는 없
다. 기묘한 공간의 느낌을 헤치고 나아가면서도, 론울프는 사격자세를 풀지 않고 그 광체 쪽으로 계속 총구를 겨누며
나아갔다.
론울프가 한발자욱씩 나아감에 따라 그 광체도 점점 빛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그렇게 주변을 잘 파악할 수 있게 되었
을 때는 그 빛의 중심을 압박하려는 듯 수많은 파이프들과 전선들이 그 광체를 향해 꾸역꾸역 몰려있는 모습의 구조
물들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작은 언덕처럼 되어 있었지만, 광체 덕에 그 곳을 올라가는데는 어렵지 않은 시야를 확
보할 수 있었다.
이윽고, 론울프의 발걸음이 그 앞에서 멈춰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