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괴한 망상의 둥지 0014-다리 (1)

NEOKIDS 작성일 07.06.21 05:4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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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확 뜯어내고 새 걸 달 수만 있으면 좋겠는데.....”

 

오늘은 지나갈 수 있을 줄 알았던 내 기대는 세영이의 한 마디로 바로 무너졌다. 나는 주스 잔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제발 좀 그런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니?”

 

“미안, 미안!”

 

그녀는 쾌활하게 대답했지만 그건 언제나 그 때뿐이라는 것을 안다. 정말 이런 점만 없다면 그녀는 최고의 상대이다. 무엇 하

 

나 부족한 것이 있는가. 직장에서는 능력을 인정받아서 급여가 썩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돈은 많이 벌고 있고, 또 적절

 

한 허영심과 애교. 그보다도 그 몸매란. 내가 만날 수 있는 여자 중에서도 최상급의 여자. 하지만 그녀에게도 단 한 가지 그녀

 

가 절실히 원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각선미였다.

 

“왜, 또 이번에도 케어가 실패한 거야?”

 

“하란대로 다 했는데도 안 되는 걸. 처음부터 된다고 검사까지 다 하고 들어간 건데, 안되는 걸 어떻게 해. 나보고 다시 돈 주

 

더니 죄송하대.”

 

수십 번의 집중케어가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는 그녀의 다리는 그렇게 심하게 두꺼운 편은 아니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말이

 

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하는 위로의 말 따위를 들으며 만족할만한 그녀는 아니었다. 그녀가 다른 사람에게서 인정받기

 

를 원하는 욕망, 그만큼이나 그녀는 늘 다리에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다. 거리를 걷는 수많은 다른 여자들의 미니스커트 밑

 

쪽 고른 다리를 한 번이라도 스쳐지나갈 때쯤이면 세영이의 입에서는 푸념이 30분 정도는 끊이지 않았다. 처음 만날 때만이라

 

도 그런 그녀의 콤플렉스를 알았다면, 이렇게까지 관계를 깊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제 와서 그런 생각을 해봐도 부질은

 

없지만.

 

 

“이제 그만 하는 게 어때? 그냥 만들어진 대로 살면 안 되는 거야?”

 

“자기는 내 기분 정말 몰라.”

 

“아니, 나도 그런 적은 있었어. 내 지금의 이 몸이 그 증거야. 난 그렇게 대단한 체질이 아니었기 때문에 운동으로 커버를 했

 

지. 그래도 자기가 하는 것만큼 그렇게 콤플렉스를 가지지는 않았어.”

 

“콤플렉스? 내가?”

 

아차 싶었다. 이 단어는 그녀 앞에서는 절대 말해서는 아니 되는 금기의 단어였다. 내 심정은 점점 될 대로 되라는 식이 되었

 

다. 어차피 틀어진 거, 내친 김에 더 나가보자고.

 

“그래. 콤플렉스. 내가 보기엔 자기는 그거야. 자기 다리는 보기 나쁘지 않다고 내가 몇 번을 이야기해? 미니스커트를 입어도

 

된다고, 아니, 제발 입어달라고 내가 빌기까지 해도 자긴 입어주지 않잖아. 다리가 밉다고. 그런데 자기보다 더 심한 사람도

 

미니스커트를 당당하게 입고 다닌다고.”

 

“그건 꼴불견이라 부르는 거지. 절대 내가 할 행동이 아냐. 자긴 참 좋겠다. 그런 콤플렉스 덩어리랑 사귀고 있으니까.”

 

“그런 뜻이 아니잖아. 그냥 마음을 편하게 가지라는 거야. 옆에서 보는 나까지 불편하게 만들고 있잖아.”

 

“불편하게 했다면 미안하네. 하지만 다리가 자꾸 신경 쓰이는 걸 나보고 어쩌라고? 신경 쓰이는 걸 안 쓰인다고 숨기다간 난

 

정말 미쳐버리고 말거야. 그리고 난 자기가 날 이해해 줄 수 있을 줄 알았어. 그런데 이제 보니 아닌 거 같네. 난 갈께.”

 

 

내가 붙잡는데도 세영이는 찬바람을 일으키며 까페를 떠나버렸다.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아 담배를 피워 물었다. 그 놈의 다리

 

모양새 때문에 이렇게까지 싸워야 하나. 2년을 사귀었는데. 미간이 찌푸려졌다. 당최가, 이런 상황 따위를 이해할 수가 없었

 

다. 그게 내 잘못 때문인가 고민했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수십 번을 생각해봐도 이건 내 잘못은 아니었다.

 

 

게다가 이런 것으로 우리의 관계를 망가뜨리는 건 더더욱 싫었다. 충분히 헤쳐 나갈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즈

 

음의 결과는 이런 식이었다. 내 마음도, 우리의 관계도, 좋지 않게만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담배를 한 대 더 꺼내

 

물었다.

 

 

그랬기 때문일까. 처음에, 그 광고지를 처음 봤을 때는 그것에 점점 빠져드는 자신을 믿을 수가 없었다. 다리를 말 그대로 갈

 

아 끼울 수 있다고 말하는 그 광고지를 접한 건 내가 살고 있는 오피스텔로 배달되는 신문 사이에서였다. 구독하는 신문 사이

 

에 광고지가 끼어들어 오는 건 한 두 번이 아니었고, 그런 종이뭉치들이 신문을 펼쳐들 때 후두둑 떨어져 내리는 건 내 비위

 

를 이만저만 건드리는 게 아니었지만, 내게 그렇게 큰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기에 그냥 넘기고 있었다.

 

 

마치, 펼치면 절대로 그렇게 되어버리도록 잘 끼워진 것 같은 그 광고지가 신문을 펼쳐들었을 때 내 발 앞으로 떨어진 건, 그

 

래서 그 광고지의 전면에 큰 글씨체로 인쇄된 다리라는 글자를 보게 된 건, 우연치고는 너무 얄궂었다. 그 얄궂음을 비웃어주

 

듯, 나는 그 광고지를 처음엔 무시했다. 하지만 신문을 다 읽고, 스케쥴 맞춰 일을 하고 인터넷을 하면서 부엌과 거실의 작업

 

실을 왔다갔다하고 있는 동안에도, 거실 바닥에 떨어진 그 광고지의 다리라는 글자는 그녀를 떠오르게 하면서 자꾸 내 신경

 

을 긁어댔다. 뭔가에 떠밀리듯이 나는 그 광고지를 집어 들었다.

 

 

다리! 예쁜 다리를 원하는 당신에게 드리는 희소식!

 

다리를 정말 예쁘게 만들어드릴 수 있습니다.

 

최신생체공학과 수술 이후의 집중적인 케어로

 

모델 못지않게 변하는 당신의 다리!

 

당신이 원하는 다리로 갈아 끼울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연락주세요!

 

 

요란한 색상과 촌스럽기까지 한데 과장까지 덧붙여져 얕은 감정을 자극하는 그 광고지를 보면서 나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

 

녀라면, 정말 진지하게 생각하겠구만 그래. 귀가 아주 솔깃해질 거야. 하지만 그녀의 다리는 그래도 요지부동일거다. 최신생

 

체공학 뿐만 아니라 슈퍼모델이 찾아와서 호소를 해도 그녀의 다리가 이 회사에서 말하는 케어를 받아줄 확률 따위는 계산해

 

보나마나인 것이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그 건강하고 통통한 모양새를 유지하기 위해 그녀의 머릿속 번뇌와는 상관없이 계

 

속 영양분을 공급받고 근육을 유지하겠지.

 

 

이런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한편으로는 우리가 그 다리 때문에 너무 많이 싸우고 좋지 않은 헤어짐을 가졌다

 

는 사실을 상기하고 있었다. 그 문구들은 내 귀까지 솔깃하게 만들었다. 광고지를 구기려다 만 것도 그 때문이었다.

 

 

잠깐의 고민 후에, 나는 그녀에게 전화를 하기 위해 핸드폰을 들었다. 이런 싸구려 광고지의 내용 따위에 그녀가 솔깃할 리는

 

없을 거라고 믿었다. 내가 자기를 위해 이런 싸구려 광고지라도 붙잡고 있다는 그런 마음을 전달하는 것, 그거면 충분하겠지

 

싶었다.

 

 

“전화해볼래.”

 

혹시나 했지만 역시, 마음의 전달만으로는 역시 충분하지 않았다. 세영이는 나보고 그 광고지를 가져오라고 해서 만난 자리에

 

서 그 광고지를 몇 번 훑어보더니 나온 말이었다.

 

“뭐?”

 

“전화할 거라고.”

 

주섬주섬 핸드폰을 꺼내는 그녀에게 나는 말했다.

 

“잠깐만. 정말 이런 내용을 믿는다는 거야? 다리를 갈아 끼울 수 있다는 문구를 믿냐고?”

 

“뭐, 과장된 거라고 해도, 무슨 내용인지 확인해 볼 수 있는 시간도 있잖아. 확인해보고, 만약 다른 케어랑 똑같은 거라면 그

 

냥 안하면 되지.”

 

나름대로는 합리적이겠지만, 그 속에서 읽혀지는 그녀의 생각이 그 정도인가 싶어 나는 어이가 없었다. 이런 싸구려 문구에

 

넘어가 전화를 걸어 확인해 볼 정도면, 이건 정말 심해도 심한 것 아닐까.

 

그러나 그건 뒤집어보면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절박한 정도가 더 심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든 부정

 

적인 감정들을 접고서 자세를 고쳐 잡았다. 그래, 좋은 남자가 된다는 게 뭔가. 그녀가 절박하다면, 이해를 해줘야지. 내 생각

 

과는 맞지 않아도 말이다.

 

 

거기까지만 했어야 했다. 괜히 이번엔 비용도 같이 부담해주겠다는 그런 쓸데없는 말까지는 하지 말았어야 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광고지에서 풍겼던 싸구려 이미지와는 달리 제법 분위기가 괜찮았다. 하얀 색과 목조무늬의 분위기가 꽤

 

나 깔끔한 로비에 들어서서 잠시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안내데스크의 아가씨가 일어나 우리에게 다가왔다.

 

“예약하신 분이시죠? 강세영씨.”

 

“네. 맞아요.”

 

그녀가 아가씨에게 대답을 하자 그 아가씨는 VIP룸 같은 곳으로 안내를 하더니 마실 것을 내왔다.

 

“잠시 기다리시면 원장님께서 오실 겁니다. 그럼, 편히 계세요.”

 

친절하고 싹싹해 보이는 그녀가 그렇게 안내를 해주니 그렇게 먼 길을 온 게 나쁘지만은 않았다. 그 시술소라는 곳은 교외라

 

고는 해도 꽤나 산 속으로 들어와 있는 형국이었다. 근처의 잘 정돈된 숲과 나무들이 하얀 건물과 어우러진 모습을 봤을 때,

 

나는 무슨 정신병원 같다는 썰렁한 농담을 던졌다가 그녀에게서 싸늘한 침묵을 대답으로 받아야 했다. 더운 날씨에 거기까지

 

온다는 것도 아마 그녀에게는 힘들었으리라.

 

“봤어?”

 

그녀가 내게 말했다. “응? 뭘?”

 

“그 여자 다리. 정말 이쁘지 않아? 여기서 수술 받은 걸까?”

 

여기까지 온 마당에도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고 있다니. 나는 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 여자 다리 보지도 않았어. 그리고 자기도 곧 그렇게 될 거야. 걱정하지마.”

 

나는 그 옆에 놓여있는 책자를 집어 들면서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책은 그 곳을 찾는 내 여자친구 같은 사람들을 위해 마련해

 

놓은 미용관련 잡지였다. 손톱은 이렇게, 머리카락은 이렇게 관리하고, 피부 맛사지도 신경써서 해야 하고, 뭘 바르는 게 좋

 

다. 채소를 으깨서 바르던가, 이렇게 해보세요, 저렇게 해보세요.

 

여자란 꽤나 피곤한 동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내용들을 몇 장 넘기고 있으려니까 그 원장이라는 사람이 나타났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옷이고 넥타이고 신발이고 간에 온통 하얀 색인.

 

“죄송합니다. 많이 기다리셨죠? 방금 수술을 하나 끝내고 오는 중이어서요.”

 

그의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이 우리의 시야에 쏟아졌다.

 

“먼저 여자 분께서는 이번 수술에 확실한 동의를 해주셔야 하기 때문에 인터뷰 룸에서 면접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인터뷰가

 

끝나면 바로 수술에 들어갑니다. 전체적인 과정은 오래 걸리지 않고 세 시간 정도 걸릴 겁니다. 남자 분은 기다리기 지루하시

 

면 vip룸에 가셔서 대기하시면 됩니다. 아, 그리고 절대 주의하실 한 가지, 이런 시술은 꽤나 복잡하고 부작용이 있을 상황을

 

고려하기 때문에 환자분들을 아무나 받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비밀유지가 필수적이죠. 함께 오신 남자분도 이 점을 확실히 하

 

셔야 합니다. 어차피 계약서에도 나와있지만 말이죠. 이 경우 연대책임은 여자친구분이 지게 되어 있으니까 그 부분도 동의해

 

주셔야 합니다.”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했고 내 지장을 비밀유지 계약서의 한 칸에 찍어주었다. 그 절차가 끝나자 원장과 그녀는 함께 원장의

 

사무실 옆에 따로 마련된 인터뷰 룸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전화를 하면서 그 확신에 찬 어조로 해보겠다는 말을 하는 걸 옆에

 

서 들었을 때는 인터뷰 과정은 무의미했다. 또 해봤자, 세 시간이다. 열 몇 번의 케어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되지 않은 다리가

 

과연 세 시간 안에 해결날 수 있을까. 게다가 이번엔 내 돈이 나간다. 그것이 쓸데없는 돈낭비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니 뭔가

 

끓어오르는 걸 참느라 힘이 들었다.

 

 

열이 잔뜩 받아 머리가 조여지듯 하는 느낌을 피하고 싶어서 그 원장의 사무실이라는 공간을 두리번거렸다. 각종임상시험의

 

결과와 알 수 없는 영어원서들이 즐비한 책장으로 가서 몇 권을 뒤적이다가 뭔가 알 수 없는 책에 손길이 닿았다. 그 책은 유

 

독 겉표지가 많이 해어져 있었고 손때도 적잖이 묻어있었다. 그 많은 책들 중에 오로지 그것만. 겉표지에는 영어로 단 몇 개

 

의 약자만 써져 있었다.

 

 

D.C.R.P

 

 

 

그 약자에 대한 어떤 설명도 없어서 나는 책을 펼쳐보았다. 원래는 그 약자가 어떤 단어들로 이루어진 건지 알아보려고 했던

 

것이지만 날 반긴 것은 목차도 없이 수많은 전문용어들로 이루어진 영문이 깨알같이 적혀 있는 페이지들이었다. 그리고 그 인

 

쇄의 질이나 제본 등의 면에서 볼 때 이 책은 정식으로 발간된 것이 아닌 복사본이었다. 몇 장을 넘기다가 나는 몇 개의 그림

 

들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거기에는 몇 개의 인체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인체들은 하나같이 사람의 어딘가를 절단해서 떼어내고 대신 무언가

 

를 이식하는 그림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그림들의 위 말미에 짧은 영문이 써져 있었다. 그것은 나도 알아볼 수 있

 

는 것이었다.

 

 

-인간의 각 부분 중에서 다리가 99.6%의 수준으로 가장 확실하고 부작용 없이 이식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잠깐. 정말 다리를 떼어내고 새 다리를 갖다 붙인단 말인가? 아무런 부작용도 없이 99.6%의 수준으로? 그런 말을 믿으라고?

 

의학에 무지한 나도 혈액형이 다른 사람에게 혈액을 투여하면 서로가 맞지 않는 성분에 대한 공격을 시작해서 혈액이 엉켜 사

 

람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것까지는 알고 있다. 그런데 이건 혈액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다리다. 다 믿어준다고 하고 살점들

 

이 제대로 붙어준다고 한들, 그 재활치료는 또 어떤가. 그건 세 시간이 아니라 여러 달을 꾸준히 해도 될 지 안 될지 모를 일

 

이 아닌가. 신경의 뉴런들이 붙어주고 제대로 신호를 받아야만 다리가 작동을 할 터인데, 이식수술만으로 과연 그렇게 될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이 사람은 천재적인 명의가 분명하다. 잘은 몰라도 수십만 가지나 될법한 근육의 심줄과 신경들을 전부 연결할 수

 

있다면, 이 사람은 엄청난 사람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의료비용은 그에 비해 터무니없이 싸다. 아니, 그렇게 싼 건 아니지

 

만, 적어도 몇십 억은 받을 수 있는 시술내용을 겨우 인터뷰 룸에서의 본인 동의만으로 겨우 천만원 남짓에 해줄 수 있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수술하다가 잘못될 수도 있다는 내용은 보호자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것 아닌가?

 

 

수많은 의혹들이 아까 전의 분노들을 누르는 가운데 나는 정보를 더 얻기 위해서 책들을 뒤적였다. 하지만 내가 알아볼 수 있

 

었던 문장은 그것 하나 뿐이었다. 나머지는 그 수많은 문장들이, 평문 하나 없이 전부 전문용어를 모르면 해석이 불가능한 지

 

경의 문장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 영문을 쓴 사람은 글을 쓰는데 재주가 없었던 사람임에 분명했다. 중의적인 반복과 반복

 

인 것 같으면서도 아닌, 그래서 알아보기 힘든 문장들이 즐비했던 것이다.

 

 

이건 영문학을 십 년 공부했다고 해도 절대 해독하기 힘든 문장이었다.

 

 

나는 책을 덮으면서 동시에 의혹들도 접었다.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생각한 것이, 일단 세 시간이라면 이런 수술은 할 수 없

 

고, 또 그 이전에 보호자까지 포함한 아무런 동의도 얻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건 그냥 대강 사기 치는 케

 

어 정도에 불과할 것이고, 효과가 없으면 소비자 보호원 같은 곳에 고발을 해버리든가 하는 방식으로 돈을 다시 받아와도 될

 

것이다. 뭐, 물론 천만원의 지출 정도야 내 재산에 큰 타격을 입히는 정도는 아니지만, 이런 의혹들이 끓어오른다고 해서 내

 

가 뭘 제대로 알고 지적을 하는 것도 아니고. 어쨌든 지금은 믿고 맡겨야 할 전문가 아니겠는가.

 

 

아직까지는 그렇게 신경쓸만한 징후가 없었기에 나는 다시 심드렁해지는 시선을 돌려서 다른 책들을 바라보았다. 다행히도

 

이 원장은 영어로 된 문학작품들도 읽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한 권 집어 들어 편한 의자에 앉아 펼쳐보기 시작했다.

 

 

잠결이었는지 모르겠다. 꿈을 꾼 것 같기도 하다. 뭔가 비명소리 같은 것이 들린 것 같았는데 그게 확실한 건지도 느낌이 없

 

다. 하여간 그렇게 졸고 있던 나를 깨운 건 원장이었다.

 

 

“일어나세요.”

 

 

어느새 그 원장의 웃음 가득한 얼굴이 내 어깨에 손을 올린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직도 잠기운이 가시지 않아 눈두덩

 

을 문지르고 있는 나에게 원장은 말했다.

 

 

“자, 여자친구 분의 변신을 한 번 제대로 봐주셔야죠!”

 

 

그리고는 원장이 한 쪽으로 비켜서자 그 뒤에 있던 세영이가 날 바라보면서 한 바퀴 돌기 시작했다. 아직도 꿈만 같았다. 언제

 

나 기억이 나던, 적당히 작은 어깨와 거기서 내려오는 원피스의 가슴, 허리의 맵시, 그리고 그 밑의.......

 

 

나는 다시 한 번 눈두덩을 문질렀다. 눈에 끼어있는 불순물을 지우고 좀 더 자세히 그녀의 다리를 보기 위해서였다. 내 입이

 

저절로 벌어지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그녀의 다리는 완전히 전과 달라져 있었다. 키도 좀 더 커진 듯 보였고, 무엇보다 근

 

육이 살짝 뭉쳐있던 부분은 아예 사라져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허벅지에서부터 내려오는 라인이 더할 나위 없이 황홀했다.

 

이게 세 시간 전 귀엽고 통통하기만 했던 그녀의 다리란 말인가? 단지 세 시간 만에 이게 정말로 가능했던 일이란 말인가?

 

 

“놀라우시죠? 언제나 저희는 놀라움만 드린답니다.”

 

 

원장이 자부심에 찬 얼굴로 대답했다. 내 표정을 본 그녀는 자신의 다리가 어떻냐고 되묻지도 않았다. 이미 내 표정 자체가 그

 

녀가 원하던 대답을 실컷 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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