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괴한 망상의 둥지 0014-다리 (2)

NEOKIDS 작성일 07.06.21 05:5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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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놀라움과 의혹은 그 다음부터 시작되는 꿈같은 나날 속에서 잠시 묻혀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자부심을 완전히 되찾았

 

다. 어디를 나가든 걸어도 뛰어도 지치지 않는 그녀의 예쁜 다리와 함께, 어깨를 쭉 펴고 걸을 수 있게 된 것이다.그런 그녀를

 

보는 나도 좋았고, 우리의 관계도 원만해졌다. 가끔씩 다리를 가지고 그랬던 일들을 농담처럼 이야기할 수도 있을 정도로. 그

 

리고 다른 남자들이 나와 그녀가 걸어가고 있을 때 돌아보기라도 하면 그 짜릿함과 우월감이란.

 

 

하지만 그것도 잠시만의 즐거움이자, 허영이었을 뿐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3주를 넘기지 못했다.

 

 

일단 변한 점 첫째. 그녀는 점차적으로 대식가가 되었다. 그것도 그렇게 많이 먹지 않던 고기를 많이 먹기 시작했다. 그럼에

 

도 살은 찌지 않았고, 좋아하던 해산물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리고 뭔가를 먹고 있지 않을 때는 시간에 맞춰 약을 먹었다. 여느 알약보다 통통하고 하얀 색을 띤 그 알약을 거의 한주먹씩

 

이나 삼키는 걸 우연히 본 뒤로는 그저 다리 때문에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려 했지만, 점차로 이건 정도가 심해졌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이제 그녀는 내 앞에서 그렇게 약을 먹는 것을 숨기려 하지도 않았다.

 

 

또 한 가지 특이하게 변한 점은, 그녀는 점점 나보다도 자신의 다리에 더 신경을 쓴다는 것이었다.

 

“어유~우리 아기 밥줄 시간이구나~”

 

자신의 다리에 대고 이런 말을 하는 건 다반사요, 언제나 다리를 털어주고 늘 다리에 신경을 쓰는 듯한 그 몸놀림들. 우리의

 

대화는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아무리 말을 해봐야 다리에 신경을 쓰느라고 듣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내가

 

말문을 닫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녀는 또다시 이야기나 하자고 나를 닦달하지만, 다시 이야기를 시작해 봐도 그건 허무

 

한 반복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그녀가 미묘하게 변해가는 걸 느낀 시점에서야, 나는 다시 처음에 품었던 의혹감이 다시 고개를 드는 것을 막

 

을 수 없었다. 도대체 그놈의 다리를 어떻게 갈아 끼울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약을 먹어준다고 해도 물리치료 없이 그렇게

 

되는 것이 가능한가. 게다가 그 수많은 신경들은 어떻게 세 시간 만에 접합이 가능했을까. 그녀는 왜 그렇게 변했을까. 마치

 

다리가 애인처럼 되어가는 상황이란.

 

 

혼자 오피스텔에서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나는 내가 그 다리를 질투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는 나도 모르게 손으로 입을 가렸

 

다. 어이가 없는 생각이긴 했지만, 딱히 부정할 수도 없었다. 그 놈의 다리가 차라리 없었던 때가 훨씬 나았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으니.

 

 

“사랑 고민이냐?”

 

 

외과 의사인 친구가 그렇게 말했을 때 나는 정신이 퍼뜩 들었다. 비웠던 술잔은 어느 사이에 친구가 채워놓았다. 나는 다시 술

 

잔을 들어 입 속에 털어 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염장질도 아니고 뭐하잔 거냐?”

 

친구의 잔이 비어있는 것도 모른 채 있다가 친구가 자작을 하려는 걸 병을 뺏어서 따라주었다.

 

“어이가 없어서 그런다.”

 

“뭐가?”

 

“넌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어떤 부분을 사랑하기 시작할 때 그 부분과 싸울 수 있겠냐?”

 

친구는 어리둥절한 듯 물었다.

 

“왜, 유학이라도 간대? 도전심 같은 거? 그런 여자라면 좋지 뭐. 자기가 자기 개발해서 맞벌이해주겠다는데. 나처럼 맨날 피보

 

고 하는 것보다야 낫겠지.”

 

“차라리 그런 거면 낫겠다. 문제는 그게, 말 그대로 ‘부분’이라는 거지. 그것도 자기 다리.”

 

술에 사래가 들린 친구가 기침을 해댔다. 한 30여 초를 쿨럭거리던 녀석이 겨우 숨을 고르고 나서는 크게 웃어댔다.

 

“푸하하하하핫! 미치겠다, 정말이냐?”

 

나는 자초지종을 이야기해주었다. 그녀가 수술을 받기 이전, 그리고 광고지의 내용, 세 시간만의 수술. 듣는 친구의 얼굴에서

 

점점 웃음이 사라져갔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신도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었다.

 

 

 

“그건 의학적으로 불가능해.”

 

친구는 단언했다.

 

“지금까지 어떤 봉합수술도 그런 식으로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없고, 학계에 보고된 설조차도 없어. 한마디로 그건,

 

악질적으로 생각하면 환각작용 같은 걸로 속아 넘어간 것일 수도 있어.”

 

나는 친구에게 그녀와 내가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두 장이었다. 수술 이전과 수술 이후. 물론 이것이 그 원장과 한 계

 

약위반이라는 건 안다. 하지만 뭐 별 걱정될 이유도 없잖은가. 어차피 원장이 계속 감시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친구는 믿을

 

수가 없다는 식으로 두 사진을 번갈아 보았다.

 

 

“정말 이상한데 그래.”

 

친구의 반응을 보고 나는 친구조차도 이런 상황을 명쾌하게 설명해 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그 원장의 사무실에

 

서 본 것이 언뜻 떠올랐다.

 

“혹시, D.C.R.P라고 아냐?”

 

“D.C.R.P? 흠......”

 

친구가 사진을 보면서 고민을 하다가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 단어를 생각하다가 뭔가 떠올린 걸 눈치 채고서 나는 캐묻기 시

 

작했다.

 

“그게 뭔데. 응? 그게 뭐야?”

 

“좀 황당한 이야기야.”

 

친구는 술을 한 잔 마신 후 그 약자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미국에 있는 친구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나도 확실히 그 내용을 제대로 접해보진 못해서 그 땐 무슨 말도 안 되는 이야

 

기냐고 말했었어. 그런데 만약 네 여자친구가 이 시술을 받은 거라면....위험해. 위험할 거야.”

 

“대체 그게 뭐냐니까?”

 

“D.C.R.P는 약자야. Dead Sell Resurection Project. 말 그대로 죽은 세포를 활성화시키는 연구야. 이미 죽어버린 세포핵에

 

서 몇 가지 변이를 거친 세포를 삽입해서  다시 세포핵이 활동하도록 하는 거지. 이미 파괴가 이루어진 세포들을 움직이게 만

 

드는 거야. 거기엔 몇 가지 방법론들이 있다고 했어. 내가 기억하는 게 맞다면 전기충격부터 시작해서 이질적인 내용으로 이

 

루어진 효소의 주입 등등등, 하지만 이런 방법들은 별 효용을 보지 못했다고 하고, 그 친구의 말들이 너무 황당한 부분이 또

 

있어. 이건 정말 믿어야 될 지 말아야 될 지.....”

 

“무슨 일이 있었는데?”

 

“그 연구진은 프로젝트를 성사시키기 위해서 나중에는 주술까지 썼다고 하는 대목이었어. 어이가 없지. 소위 과학자들이란 인

 

간이 무슨 주술이냐고. 그 프로젝트를 연구하던 학자는 그 자체로 학계에서 매장당하고 그 D.C.R.P 라는 것들의 내용

 

도 묻혀 졌다고 했어. 이유는 간단했어. 이 프로젝트의 내용상 그들은 시체를 이용해야 했거든. 그리고 아마도 불법적으로 시

 

체들을 이용했던 것 같아. 이게 무슨 전설 같은 이야기냐며 귀담아듣지는 않았는데, 이게 사실이라면.....그런데 넌 그걸 어디

 

서 알게 된 거야?”

 

 

그제서야 의문이 풀렸다. 풀린 의문은 내 두려움을 자극했다. 그는 시체의 다리를 써서 그 다리를 그 책대로 되살린 후 그녀

 

의 다리를 자르고 이식했던 것이다. 만일 내가 생각한 그대로라면, 그건 좋지 않은 일이었다.

 

 

“그것보다도, 그 죽은 시체가 다시 살아나면, 다른 사람에게 신체이식이 가능하대?”

 

“그 친구도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고 했어. 하지만 그 뒤로 더 이야기를 들을 수는 없었지.”

 

“어째서?”

 

“그 미국 친구는 죽었거든. 교통사고로.”

 

 

자기도 다음에 한 번 함께 가보자고 약속하던 친구는 사뭇 흥미로움이 가득한 눈빛을 띄었다. 그런 친구와 소주를 몇 잔 더하

 

고 헤어졌다. 대리운전을 시켜 차를 가지고 오피스텔로 돌아온 나는 그 의미들을 다시 곱씹어보기 시작했다.

 

 

그녀가 한주먹씩 먹는 약과 단백질로만 이루어진 식사는 분명 그 다리에 영양분을 공급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어쩌면 그 잘

 

린 다리는 정신까지 그녀를 지배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나는 잘 느끼지 못하지만, 그녀의 머릿속에서 그녀와 교감을 나누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게다가 그 영양분과 약을 공급하지 않으면 그 다리가 점차로 그녀의 온 몸을 잠식하게 될수도 있을 것

 

이다. 그녀는 평생을 그 다리의 노예로 살아야 한다.

 

 

그건 아무래도 좋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 다음은? 뭘 어떻게 해야 하나?

 

 

제일 좋은 건 그녀를 설득해서 다리를 잘라낸 후 이 불법적이고 인정받지 않은 시술을 시행한 원장을 고발하는 일이다. 그 때

 

가서 비밀유지 계약을 들먹여도 애초부터 불법적인 일에 그런 계약서를 들먹여봤자 법적으로는 무효라는 판결을 이끌어내는

 

건 식은 죽 먹기일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그 다리를 잘라내려 할까. 어쩌면 벌써 마약처럼 중독되어 있을 지도 모르는 그녀의 다리를 잘라내면 어떤 부

 

작용이 생기는 건 아닐까. 또 남은 일생을 인공다리를 끼고 살면서 장애인이 되어야 하는 그녀의 입장은?

 

수많은 질문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내가 취해야 할 행동의 길을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

 

 

나는 텔레비전 리모콘을 집어 들고 전원 버튼을 눌렀다. 일단은 내용을 알아놓은 이상, 당장 급할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

 

고 그녀를 설득하는데 시간은 걸리더라도, 내가 그녀를 사랑하고 나머지 일생을 그녀와 함께 할 것을 말할 수 있는 시간도 충

 

분하다.

 

무엇보다도, 나 역시 그녀의 다리를 망쳐놓은 원인을 제공한 자라는 사실이 있으니까. 아마도 서로가 괴로울 수 있을 테지만,

 

사랑하면 된다. 그리고 지금이라면, 충분히 그렇게 할 자신이 있다. 하지만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들으며 나는 그

 

모든 것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나도 모르게 손에 들고 있던 리모콘을 떨어뜨릴 정도로.

 

 

“오늘 밤 9시 40분 경 승용차가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강 속으로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이 사고로 승용차에 타고 있

 

던 신태형씨가 사망했고, 운전을 하던 대리운전업자 강모씨는 중태입니다. 경찰의 조사에 따르면 맞은 편에서 음주운전을 하

 

던 차량을 피하려고 핸들을 꺾었고, 강 속으로 떨어진 상황에서 만취상태였던 신태형씨는 미쳐 빠져나오지 못한 것으로 보입

 

니다.”

 

 

내 친구였다. 그것도 술을 먹고 바로 헤어진 직후였다. 리모콘을 떨어뜨린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 친구의 말이 빠르게 머리

 

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 미국 친구는 죽었거든. 교통사고로.’

 

 

우리는 감시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D.C.R.P를 세상에 알리지 않으려는 원장의 수족들에 의해.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

 

다. 그런 생각까지 들자, 나는 지금 있는 이곳도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여기까지 감시를 당하고 있다면?

 

 

그런 생각은 곧 내 기분을 더럽게 만들었고, 나는 옷가지를 챙겨서 바로 내 집을 빠져나왔다.

 

 

내 차도 위험할 수 있었다. 그 수술시간동안이라면 내 차에 무슨 짓을 해놓았어도 충분히 해 놓을 수 있었다. 일단 자주 가는

 

차량 정비소로 향했다. 그 곳이 24시간 서비스를 하고 있다는 게 다행이었다.

 

친절해 보이는 직원에게 다짜고짜 돈은 얼마가 들든 상관이 없고, 지금 급하니까 이 차량에서 순정부품이 아닌 이상해 보이

 

는 부품을 찾아낼 수 있겠냐고 물었다. 내 겁에 질린 표정을 연신 쳐다보면서도, 내가 단골이니까 그 직원은 그렇게 해주마고

 

했다.

 

 

그 일을 시작한 지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무슨 작은 전자기기 같은 것을 찾았다. 하나의 단서는 찾아낸 것이다. 하지만 그

 

걸 들고 바로 알 만한 사람을 붙잡고 묻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그것 하나 이외에는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아서 일단 차는

 

안전했다. 하지만 다른 모든 것은 안전하지 않다. 그것만은 확실했다. 나는 감시받고 있었다.

 

 

그 사실만 해도 화가 나는데 거기에 친구의 마지막 얼굴이 떠올랐다.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된 채로, 차를 한강 옆 공원도로

 

변에 세운 채, 나는 거기서 아침을 맞았다.

 

 

해가 중천에 가까울 즈음 해서 나는 용산으로 차를 몰았다. 그런 비슷한 것들이 보이는 매장을 찾아 한 직원을 붙잡고 물은 결

 

과는 예상했던 대로였다. 그것은 꽤나 비싼 위성추적 위치발신기였다. 뭔가 해볼만하다고 생각한 나는 차를 수술을 한 그 장

 

소로 몰았다. 아직 기억에 남아있는 그 장소로 가면서 나는 아침에 했던 생각을 계속 다지고 있었다. 이대로 그녀를 설득한다

 

는 건 실패할 확률이 높다. 차라리 내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원장과 확실하게 말을 해야 했다. 더 이상 계약을 지킬 생각도 없고, 그 다리를 다시 떼어내겠다는 말을

 

해야 한다. 잘 될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이 기기는 그들 밖에는 살 수 없다. 여차하면 이 기계의 출처를 캐내서 당신들임을

 

꼭 밝히겠다는 협박까지도 해야 한다. 물론 그들도 내 목숨에 대한 협박을 해올 것이다. 아마 내 친구를 죽인 것처럼 나도 죽

 

일 것이라고 말할 지도 모른다. 그런 협박 따위에는 굴복할 수 없다. 미안하지만, 지금은 손에 들어온 확실한 증거가 더 필요

 

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물론 세영이도 구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 건물의 앞에 차를 세우고는 로비를 지나 여직원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다짜고짜 원장실로 쳐들어갔다. 원장실의 물건들은

 

상자와 비닐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아무래도 이사를 가려는 모양이었다. 그럼 그렇겠지. 사람을 죽여 놓고 태연하게 있는

 

게 더 희한한 모양새겠지.

 

 

문이 열리고 예의 그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이 인터뷰실에서부터 나타났다.

 

“어이구, 이런 정신없는 상황에 오시다니, 어쩐 일이십니까?”

 

“어디 황급히 도망이라도 가시나 보죠?”

 

“도망이라뇨. 강남 쪽으로 이전을 할 계획이어서 지금 분주한 겁니다. 그것보다도, 찾아오신 용건은?”

 

그 사람 좋은 웃음기가 싹 걷히고 뭔가 오만한 분위기가 그의 얼굴에 들어차기 시작했다. 본색을 숨길 필요가 없어졌다는 거

 

였다.

 

“사람을 감시하고 죽이고, 그리고서는 강남으로 돈 벌러 가신다, 그거 좋군요. 다 좋은데, 우리 세영이 다리는 이제 원상태로

 

해주시죠.”

 

“흠, 아직 약에 대한 지급계획이 남아있는데요. 그리고 그 약이 여자친구 분에게 어떤 것인지도 대강 이해하고 계시지 않습니

 

까? 여자친구분은 이제 그 약이 없으면 안 될 텐데요.”

 

호주머니에서 꺼낸 발신기를 손에 올려놓고 나는 그의 앞에 그것을 들이밀었다.

 

“이게 뭔지 모르신다고 하진 않으시겠죠.”

 

“모르겠습니다만.”

 

“그렇게 나오실 줄 알았습니다. 이거 꽤 고가라더군요. 이런 물건을 사는 사람들은 많지 않죠. 추적해보려면 얼마든지 추적해

 

볼 수도 있구요. 이제 그만 털어놓으시죠. 이런 불법적인 시술을 해놓고 제 돈 뺏어가는 것까지는 덜 억울한데, 감시당하고 언

 

제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 속에서 살기는 싫군요. 비밀엄수란 계약이 이런 따위였다면, 애초부터 법적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

 

는 상황이란 거, 이미 잘 알고 계시잖습니까? 강남으로 이사 가신다고? 내가 당신 정체 다 까발려 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원장은 내가 줄줄이 늘어놓는 말들을 무표정하게 듣고 있다가 짧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주변을 한 번 돌아보더니 말했

 

다.

 

“알겠습니다. 좀 더 긴 얘기는 인터뷰 실에서 하시죠. 여기는 밖에서 들릴 수도 있으니까.”

 

 

반쯤은 이긴 셈이나 다름없는 의기양양한 느낌과 함께 나는 인터뷰실로 들어섰다. 이제 남은 건 내 돈의 회수와 함께 그녀에

 

게 수술을 해주겠다는 확답을 듣고 그 대신 당신의 일들은 밖으로 까발리지 않는 대신 내 친구를 죽인 놈에게는 꼭 댓가를 치

 

르게 하고 싶다는 흥정의 내용만 남았다는 계산을 하면서 나는 인터뷰실 의자에 앉았다.

 

 

그 때 인터뷰실의 문이 잠기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한 쪽 벽면이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뒤편에 설치된 유리

 

창 너머로 수술실의 광경이 떠올랐다. 수술실은 여느 병원의 그것들과 같은 풍경이었다. 단 하나, 그 뒤편으로 수많은 사람의

 

팔다리들이 천장에 마치 도살장의 고기들처럼 매달려있는 풍경을 빼고는.

 

 

-수술실의 풍경은 맘에 드십니까.

 

 

미친듯이 나는 필사적으로 문고리에 매달렸다. 저 수술실을 보여준 의미가 무엇인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모든

 

것은 늦어있었다. 통풍구로부터는 가스의 연기가 퍼져오고 있었고, 문은 어떻게 해도 부서지지 않았다. 의자를 들어 유리창

 

을 깨보려 하기도 했지만 그것도 소용없었다. 이런 상황이 생길 줄 알고 아예 유리창까지 절대 깨지지 않는 제품으로 한 듯 했

 

다. 도리어 의자가 부서져 나뒹굴었고, 가스는 점점 내 폐 속에서 흡수되면서 의식을 앗아가고 있었다. 몽롱해지는 저 너머로

 

원장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자, 이제 천천히 마음을 놓으세요. 당신도 다른 사람들처럼 이런 부품이 되는 영광을 누릴 테니까.

 

 

 

 

 

 

 

 

“뭐, 남자친구 분은 이렇게 되었습니다. 애석하게도.”

 

“그렇군요. 어쩔 수 없죠. 비밀을 지키지 않은 건 그 사람 잘못이니까. 그것보다도, 제 다리는 계속 유지 가능한 거죠?”

 

“네. 그 약을 꾸준히 먹어주기만 하면 됩니다. 안 그러면 다리의 세포가 온 몸을 잠식해서 죽게 될 수도 있다는 건 늘 명심하시

 

구요.”

 

“알겠습니다. 그럼 계속 수고해주세요. 아, 강남으로 이사 가신다구요.”

 

“네. 아무래도 이런 외딴 곳에서 있다가는 이런 좋은 시술법이 의심을 사게 되는 게 분명할 테니까요. 그래서 아예 도심지 한

 

가운데서 해보면 어떨까 싶기도 해서요.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는 예상을 하긴 했지만, 이렇게 되어버릴 줄은 저도 몰랐군요.

 

어쨌건, 이렇게 될 일까지 동의를 하셨으니까 저희도 그만한 조처를 해드린 겁니다.”

 

 

“알고 있지만, 기분은 좋지 않네요.”

 

“어쩔 수 없죠. 대신 좋은 남자를 사귀세요. 지금이라면 아마도 전 남자친구 분보다 더 좋은 남자를 만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래야겠죠. 그럼 전 갈께요.”

 

“예, 조심해서 가세요.”

 

원장과 그녀의 대화가 내 귀에 들려왔지만 나는 의식을 잃은 척 하고 있었다. 처음에 의식이 어느 정도 돌아온 상태에서 그녀

 

가 원장을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나는 세영이가 나를 도와줄 거라고 확신했다. 내 여자친구가 날 도와서 이 의사

 

를 궁지에 몰아붙이리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건 나만의 생각일 뿐이었다.

 

 

그녀조차 이런 상황이 올 것을 알고 있었고, 날 도와주지 않으려 했다. 나는 눈을 뜨고 소리를 내어 살려달라고 하려고 했다.

 

제발 당신이 사랑하던 나를 살려달라고 하려 했다.

 

 

하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숨을 들이쉬어야 목소리가 나는데 숨을 들이쉬는 느낌조차 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내 목

 

은 성대부터 이미 썰려 있었고 달싹거리는 건 입술과 눈꺼풀뿐이며, 내 머리는 누군가의 손에 의해 비닐봉투의 안쪽 같은 어

 

딘가로 들어가고 있었다. 아마도 그 친절한 여직원일 것이다, 곧 내 시야는 그 검은 비닐봉투의 질감으로 가득 메워졌다. 그

 

비닐봉투는 심하게 흔들리더니, 곧 자유낙하를 시작했다.

 

 

다시 한 번 단말마의 비명을 채 지르지도 못하는 입술은 뜨겁게 타오르는 불꽃의 한 가운데에서 빠르게 타들어갔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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