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무창전 - 1. 얽힘의 시작 (3)

NEOKIDS 작성일 08.04.24 01: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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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의 한 부족. 단군 이래로 단군의 검이자 수호자 역할을 자처해왔던 푸름과 바름 두 가문의 노부들은 초조하게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 두 가문의 명성은 이미 고조선을 넘어 저 중원까지 널리 알려져 있었건만, 그 두 가문의 수장이라는 이들의 지금 모습은 그저 홍의와 청의의 매무새조차 정리 못한 채 초조함에 가득한 노인들일 뿐이었다. 강대하고 급박한 검의 기운을 느끼고 자던 차림새임에도 급히 자신들의 사당으로 달려온 것이다.

중원의 인간들이 도움을 요청해왔을 때, 어느 정도는 이런 급박한 상황도 예상하고 있었지만, 정말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검의 기운에는 당연히 같이 섞여오는 자신의 제자들의 기운이, 이번엔 전혀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어찌하여 이런 변괴가....”

“신탁은 그들에게 제대로 된 미래를 보여주지 않으셨던가?”

두 노부는 미간 사이의 주름을 펼 생각을 하지 않고 안절부절 제자리걸음만 옮기고 있었다.

두 노부는 알 턱이 없었다. 마루와 아라의 신탁을 함께 보았으되, 한울님이 두 노부에게는 보여주지 않은 마루와 아라의 최후의 모습을. 한울님의 처사는 나름의 뜻이 있었을 것이겠지만, 그 나름의 뜻을 전달받지 못한 두 노부의 마음은 점점 검은 어둠에 휩싸이고 있었다.

 

이윽고 두 개의 검이 자신들의 머리 위 창공에 가까이 온 것을 느끼고 두 노부는 즉시 사당 안의 검신대로 향했다. 원래 두 검이 놓여져 보호받고 있던 곳, 언제든 두 검이 다시 돌아와야 할 곳. 그 곳의 하늘은 건물의 구조 따위로 가려져 있지 않고 뚫려 있었으며, 그 바닥은 형형색색으로 만들어진 고인돌들의 둥그런 무리로 둘러싸여 있는 곳이었다. 그 고인돌은 영험한 위인들의 무덤이자 안식처였다.

두 개의 검은 검신대 중앙에 있는 바위의 조그만 구멍에 정확히 딱 끼워지듯 꽂혔다. 검신대의 중앙으로 서둘러 온 두 노부는 급히 서로의 관리 하에 있는 검으로 각기 손을 뻗어 눈을 감고는 검의 기억을 전달받고자 하였다. 그리고 촌각의 시간이 지난 후. 두 노부는 절망의 신음소리를 내며 주저앉아야만 했다. 자신들이 제일 아끼던 제자 두 사람이 중원의 인간들에 의해 도륙이 나는 장면을 자신이 느끼듯이 체험했던 것이다.


“내가.....내가 이것들을!!!”

홍의를 입은 바름의 노부가 분노로 눈에 핏대를 세우며 주저앉았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하지만 다음에 나직이 울리는, 청의를 입은 푸름노부의 말은 바름노부의 분노를 더욱 거세게 만들었다. 

“하는 수 없소....”

“뭐가 하는 수 없단 말이오?”

“이것은 나라간의 문제로 비화될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 두 제자가 큰일을 하였다는 것만으로 만족하십시다.”

“만족? 우리가 아끼던 제자였소. 우리의 후계자였고. 푸름노부, 당신이 보내자고 해서 했던 것이고, 신탁까지 받았었소. 그런데 이게 뭡니까?”

“누구든 해야만 할 일이었소.”

“대체 어째서! 우리가 중원에 그렇게 복배하던 민족이었소? 그렇지 않소이다! 그 흑검 자체도 우리가 만든 것이었소? 그들의 미몽과 절망과 암흑이 그것을 만들어낸 것이외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들의 정의를 도와주었건만, 이런 식으로 우리에게 은혜갚음을 하였소. 이것을 참으라고?”

“우리는 한줌밖에 아니 되고, 그들의 수는 온 땅을 뒤덮을 정도요! 80여년 전의 연나라 장졸들 때와는 틀립니다. 우리가 한울타리 안에 있다 하나 아직 부족의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라가 중앙의 정비를 일으킨 나라와 맞붙어서 이길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들에게는 더욱 우수한 쇠붙이를 만드는 재주가 있고, 우리는 이 검들을 이제 다룰 수가 없어요! 우리의 술수가 하늘을 날고 긴다고 해도, 다수의 군사들 앞에서는 무리일 것이외다!”

“시끄럽소! 이런 사태가 생긴 것도 모두 푸름노부, 당신 때문이오!”

“진정하시오, 바름노부! 이런다고 우리의 상황이 더 나아지는 건 아니오!몸가짐과 바른 기운을 흩트리지는 마시오!”

“어쩌고 어째!”

바름노부는 스스로도 제어할 수 없는 강렬한 분노에 몸에 기를 모았다. 붉은 기운이 도포자락을 타고 흐르면서 혹자가 보았다면 도포가 마치 피를 뿜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의 강기를 흘려보냈다. 하지만 푸름노부 역시 만만치 않았다. 곧 푸름노부는 푸른 색의 기운을 양손에 모아, 한 손엔 방패를, 한 손엔 창 모양을 만들어 붉은 색의 촉수들에 대적하였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신의 모습을 보시오! 바름노부의 기운은 어두운 자리에 들었소이다!”

“다 필요 없소! 나는 반드시 이놈들을 쳐 죽여 그들의 내장과 간을 산채로 씹어 먹고 말거요! 그러나 그 전에 푸름노부, 당신부터 거치적거린다면....”

바름노부와 푸름노부의 강기들이 강하게 맞부딪혔다. 공기의 흐름이 역류하고 고인돌들이 들썩대고 검신대의 검들이 그 기운에 맞춰 웅웅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검들은 노부들의 싸움에 반응하여 제멋대로 자신들의 검신대 자리를 빠져나오지는 않았다. 두 검은 자신들이 선택했던 사람이 아니면 움직이려 들지 않는다. 그리고 그 두 검은 노부들을 선택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검신대로 몰려들었을 때, 두 노부는 거의 실신의 지경이었다. 그 날 동이 틀 무렵부터 그들이 있던 도시는 지반이 흔들리고 땅이 약해져 무너지는 바람에 사람들의 피해가 속출했다.

단군의 이름을 물려받은 부족장은 그 모습과 사유를 모두 전해 들었다. 그리고 처벌과 조율의 의미로써, 두 가문을 찢어놓아서 푸름가문은 남쪽의 반도 동쪽 산줄기 끝자락에, 바름가문은 땅의 기맥이 시작되려는 북쪽의 화산 언저리에 살라고 명령하였다. 이것은 불같음과 물같음으로 대비되는 두 가문의 성정을 고려해 결정된 일이었다. 물론 부족장이라고 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대로는 두 가문의 싸움으로 부족 전체가 공멸할 수도 있었다. 게다가 진나라의 상황 또한 신경쓰이는 이 때에 두 가문의 문제를 붙잡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 시점에서 진시황이 죽었다고 공표된 이상, 민심수습을 위한 전쟁이나 수많은 나쁜 가능성들을 염두에 둬야 했기 때문이다.

 

두 가문이 떠나는 날, 검신대는 아무도 모르게 사당에서 고인돌들과 함께 통째로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그 두 가문의 존재와 그 모든 것이, 긴 시간과 함께 모든 사람들에게서 잊혀져 갔다.

잊혀지고도, 아주 기나긴 세월이 흐르고 또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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