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무창전 - 2. 그리고, 지금 (1)

NEOKIDS 작성일 08.04.27 00:5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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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리고, 지금.


2007년 현재, 대한민국 군사분계선 부근. 새벽 1시 즈음.

GOP 대한민국측 경계부대 소속 김이훈 상병과 신재환 이병은 보초를 서고 있었다. 다른 곳은 대낮같이 탐조등을 켜주지만 공교롭게도 그들이 서는 곳에는 아직 전기공사가 완료되지 않아서 눈앞에는 어두운 암흑만이 가득했다. 이유가 요근래 비가 오면서 일어난 산사태 때문이라고도 했다, 어쨌든, 상황이 그래서 잘 안 쓰던 야간 적외선 투시경까지 챙겨가지고 온 상태였다.

달빛에만 어슴푸레 윤곽이 드러나는 눈앞의 풍경은 뭔가를 지키려 보초를 서는 이들에게 되려 두려움을 느끼게 했다. 그 암흑에서 적들이 올라와 자신들을 해하려 한다는 두려움.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그런 위험을 느끼는 시간 뒤에는 아무런 일도 없어 심드렁해지기까지 하는 해이함이 찾아오게 마련이었다. 게다가 그 초소 앞 500m 전역은 대인지뢰들을 촘촘히 깔아놓은 상태여서 한결 걱정도 덜어지는 곳이었다. 그 해이함을 잊기 위해서 눈은 계속 앞을 보면서 김상병은 신이병에게 말을 걸았다.

“얌마.”

“이병 신재환!”

“초소에서는 목소리 죽이라고 했지 새끼야. 들어온 지 며칠 됐어?”

“10일 되어갑니다.”

“캬. 이제 10일? 껄껄껄. 난 내일 모레 병장 다는데. 갑갑해서 어떻게 군생활 한다냐.”

“열심히 하겠습니다.”

“열심히 하지 말고 요령껏 하는 거야. 알았어? 괜히 열심히 하려다간 더 힘들어지니까.”

“이병 신재환.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찰나 갑자기 앞에서 섬광이 번쩍이는 것들이 보였다.

“저....저거 뭐냐?”

“호....혹시.....”

“보고할 준비해! 어떻게 하는 건지는 배웠지? 빨리!”

적이 나타났다는 생각에 김 상병은 신 이병의 머리를 눌러 호 안으로 몸을 낮추게 하고 자신은 가지고 온 야간투시경을 눈에 갖다 댔다. 초소의 수화기가 중대본부와 연결되면서 신 이병은 김 상병이 말하려는 것을 전달하기 위해서 김 상병에게만 집중했다. 그런데 그 김 상병이 이상했다. 갑자기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입만 헤 벌린 채 뜻도 모를 말만을 지껄였다.

“도대체.....저게 뭐야? 뭐야. 사람이 저런다고?”


두 개의 신형이, 긴 수풀지대 위를 날아다니다시피 움직이면서 뭔가가 강하게 부딪히고, 심지어는 총을 쏘고 있는 것 같은 섬광들까지 일으켰다. 계속해서 짧은 손속의 섞음과 낮은 발소리가 지뢰지대 위에서 이어졌다. 짧은 머리와 170센티미터 정도 되어 보이는 키, 300발 정도가 발사되면 기능을 상실하는 특수 소음기가 장착된 베레타 권총을 든 채로, 등에는 희미하게 칼의 손잡이가 빛나고 있는 모습.

소년의 눈빛은 다급해보였고, 마치 무언가에 쫒기는 듯 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도 고요한 눈빛으로 소년은 둔덕 위로 올라가 숨을 죽였다. 그 소년을 쫒아오던 작은 발소리가 근처에서 사라졌다. 소년은 상대가 아래에 있음을 느꼈다. 놈은 서두르지 않고 있었다.

소년은 증폭되는 살기를 느끼면서 천천히 어둠의 한 점을 집중해 권총을 겨누고는 방아쇠를 당겼다. 소음기가 퓩하고 바람이 빠지는 아주 작은 소리를 내면서 탄환을 몇 개 날려 보낸 후 소숫점 이하의 시간에, 소년은 잽싸게 그 자리를 이탈해 신형을 다른 자리로 옮겨갔다. 소년이 있던 자리에 바로 화답하듯 총알이 날아와 바닥을 튕겼다. 애써 잡은 좋은 기회 따위는 날아가 버린 셈이다. 어차피 맞아 주리라는 기대 따위도 없었겠지만.

다시 다음 자리에서 소년은 상대의 기를 감지하려 애를 썼다. 그러나 상대 역시 살기를 그렇게 쉽게 드러내는 놈이 아니었다. 소년은 그 상대가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다만 불필요한 말을 해서 위치가 드러나는 걸 꺼리고 있었다. 하지만 말을 걸어 욕지거리를 내뱉고 싶은 마음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그런 마음을 추스르는 순간, 소년의 목으로 빠르게 칼날의 싸늘함이 다가왔다. 보통사람 같았으면 단숨에 목이 날아갔을 상황이지만  소년은 미리 읽었다는 듯 되려 여유 있는 몸동작으로 그것을 막았다. 챙 하고 작은 불꽃이 두 칼날 사이에 일었다.

공중에서 일합을 나누고 착지하는 순간 소년은 발밑에 모든 공력을 집중시켰다. 지뢰의 기폭스위치 위를 발걸음이 잽싸게 훑고 지나갔지만, 밟으면 터져야 할 M16 공중도약 대인지뢰, 기폭스위치의 뾰족한 세 개의 다리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을 밟고 공중으로 튀어 오르는 소년의 가슴 속은 불안감으로 널을 뛰고 있었다. 지금은 이렇게 공력을 쓰고 있지만, 곧 자신이 상대하는 놈과 함께 초소 앞으로 뛰어들게 되면 기총소사가 시작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떤 사태가 생기게 될 지는 자신도 자신할 수 없었다.

그런 불안을 지속시킬 사이도 없이 상대의 흉수가 연이어 자신을 노려왔다. 그 흉수의 상대가 나직하게 말을 꺼냈다.

“이제 그만 포기하는 게 어떻갔네? 여기쯤이면 대인지뢰도 많은데 말이야. 공력을 그렇게 지속시켜서는 돌아가지도 못하겠구마니.”

북한의 사투리. 차갑고 냉랭한 기운이 서린 목소리가 소년에게 울려왔다. 한껏 힘을 주긴 했지만 그래도 10대의 앳된 기운이 담긴 목소리였다. 그것을 막아내면서 소년은 미소를 지은 채 대꾸했다.

“역시 우리 같은 사람들에겐 어둠은 소용이 없어, 그렇지? 영.”

“기래. 기러티.”

보통사람이 본다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움직임으로 둘은 신형을 빠른 보법으로 움직여가며 검을 섞었다. 칼날이 맞부딪혀 실낱같은 울음소리를 내고 있는 가운데, 소년은 계속 말을 이었다.

“도대체 언제까지 내 앞을 가로막을거냐!”

“네놈이 북조선에 들어오지 않는 날까지 아니갔어?”

“나도 하기 싫어도 이런저런 사정이 있다고. 그렇다고 북쪽 사람들 죽이러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뭐 그건 이쪽도 마찬가디 아니가서. 서로 이익 따라 놀아날 뿐이고.”

“그러니까 이런 쓸데없는 싸움은 그만 두고....”

‘영’이라 불려진 북쪽 사투리의 소년이 갑자기 격분했다.

“내레 지금 그 종이쪼가리에 목숨 거는 줄 알간? 쓸데없는 싸움? 내 생각은 기러티 않은데. 이건 누가 우위에 서느냐 하는 생존이고 명예란 말이디.”

“두 가문이 원수지간으로 지내왔다고 우리까지 그래야 할 필요는 없잖아!”

“그건 네 생각일 뿐이고, 나는 나대로의 생각이 있디. 우리 두 가문은 끊임없이 누가 위인지를 결정해야 할 따름이고, 적어도 난 우리 가문이 위에 있기를 바라는 거이야.”

“여전히 쓸데없는 생각뿐이군. 왜 우리가 그런 우위를 정하는 데에 정신이 팔려야 하냐고!”

말을 끝내며 소년은 검을 앞으로 쭉 내질렀다. 그러나 검 끝에 있어야 할 상대의 신형은 이미 몇 족장을 뒤로하여 벗어난 뒤였다. 순간 초소에서 발사된 총의 탄환들이 둘이 있는 곳으로 사정없이 쏟아져 들어왔다. 김 상병과 신 이병이 보고를 끝내지도 못하고 서둘러 사격을 시작한 탓이다. 둘은 몸을 날려 그 장소로부터 더 멀리 떨어졌다.

탄환이 땅의 흙을 뒤집고 총소리와 부산스러움이 느껴지는 가운데 영이라 불린 한 사람은 그 소년에게 소리를 질렀다.

“오늘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라우! 어쨌든 또 만날 때는 내가 이기고 말가서!”

“좋을대로!”

소년 역시 소리를 질렀다. 이제 영의 기운은 사라진 듯 했다. 그것보다도 이제는 군인들의 기총소사를 피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소년은 잠시 심호흡을 한 후 모든 힘을 끌어 모아 신형의 움직임을 전개시켰다. 기총소사는 자신의 잔상만을 따라 이동하며 탄을 흩뿌릴 뿐이었고, 그런 식으로 빠른 발걸음이 어느 순간 순식간에 흙먼지를 피우며 도약하더니 소년의 신형이 군사분계선에 설치된 철책과 철조망 위를 날았다. 한창 사격중인 초소의 뒤쪽으로 소년의 발이 아주 살며시 착지한 후였지만, 아직도 초소의 두 병사는 그것을 모르고 계속 사격을 하고 있었다. 

소년은 짧은 한숨과 함께 손을 뻗어 그들의 혈 몇 개를 짚었다. 총을 쏘던 사람들의 몸이 푹 수그려지면서 그제서야 총소리가 멈췄다. 하지만 그 총소리로 인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올 것이고, 그럼 더 귀찮은 일이 벌어질 것이었다. 소년은 바로 그 곳에서 신형을 날려 사라졌다.


새벽 5시 30분, 청와대의 대통령 집무실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대통령은 아예 의자에서 일어나서 무료함을 달래려고 서류를 들고 초조한 걸음걸이로 움직이며 읽고 있었다.

그 때 창문 쪽에서 바람이 일어나는 걸 느끼고 그는 서류에서 눈을 뗐다. 검을 등에 진 소년, 좀 전에 군사분계선에서 싸움을 하고 있었던 그 소년이었다. 대통령이 활짝 웃는 얼굴로 그를 맞았다.

“고생하셨습니다. 역시 시간을 잘 지켜주시는 군요.”

“별 말씀을. 부탁하신 정보는 여기 가져왔습니다.”

소년은 허리춤에 있는 파우치에서 PDA를 꺼냈다. 그리고는 그 속에 내장되어 있던 칩을 빼서 건네주었다. 대통령은 그것을 받아서 미리 켜두었던 노트북에 삽입했다. 몇 가지 문서를 찍어놓은 사진들과 지도 등등의 정보들이 대통령의 눈에 들어왔다. 모두 이번 6자 회담과 관련된 북한정부의 내부문서였다. 핵에 관련된 내용도.

“회담은 연기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요근래 김정일 측도 뭔가 낌새가 이상했던 것을 눈치 챘던 것 같습니다. 자객을 미리 대기를 시켜놓고 있었더군요. 빼오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회담일자는 촉박하니까 이 서류 내에서 변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겠죠. 어쨌건 이번 북한의 정보로 인해서 우리도 나름대로의 대응전략을 짤 수 있을 겁니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괜찮으시면 차라도 한 잔.....”

“아닙니다. 체력을 아끼느라 속보로 이동을 했는데도 조금 피곤하네요. 게다가 저희 문중의 찻잎이 훨씬 향이 좋답니다. 언제 한 번 시간 나면 대접해드리도록 하죠. 등교 시간에 늦겠습니다. 그럼 이만.”

“배웅을 못해드려 섭섭하군요.”

“비밀은 좋은 것이죠.”

소년은 뭔가 떠올랐다는 듯이 돌렸던 시선을 대통령에게 다시 향했다.

“아, 그리고 제가 넘어올 때 잠을 재워둔 초소 병사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선처해주시기 바랍니다.”

소년은 창문 쪽으로 가서는 창틀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소년의 그림자가 떠오르는 해를 등지고 멀어져 가는 것을 대통령은 창가에서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경호원들은 이미 소년이 잠이 오는 혈을 짚었기 때문에 바닥에 쓰러지듯 잠들어 있었다.

“몇 번을 봐도 놀랍단 말이지.....허허. 그나저나 경호실이 또 한바탕 시끄럽겠군.....이걸 어쩐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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