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무창전 - 3. 아미파의 마지막 제자

NEOKIDS 작성일 08.04.29 01: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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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아미파의 마지막 제자


마지막 수업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벨소리가 숭실고등학교 안을 가득 메웠다. 학교가 파하기를 기다린 수많은 학생들이 나름대로 책가방을 호들갑스럽게 떠들며 챙기고 있는 2학년 6반의 교실 문이 열리고 담임선생이 들어오자 애들은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하지만 나름대로는 생일을 맞은 친구녀석의 파티, 그리고 여자친구나, 남자친구 등등의 다른 생각들로 들떠있었다. 게다가, 오늘은 토요일 아닌가.

그리고, 그 속엔 돗수 없는 안경을 끼고 그다지 기운이 없는 듯한 표정을 한 류시운도 있었다. 기운이 없을 만도 했다. 공력을 아끼느라 그 새벽에 그 먼 거리를 걸은 후 청와대를 거치고 왔는데, 잠도 한 숨 못자고는 바로 등교해서 토요일의 마지막 시간까지 어떻게든 버텼으니까.

“수업이 일찍 끝났다고 해서 밖에서 사고는 치지 말고, 되도록 모자란 공부는 해오도록. 그리고 다음 주 월요일까지 과제물 풀어오는 것 잊지 말고.”

정말 맥 빠지는 이야기를 선생은 아주 좋은 타이밍에 하고 있다고 시운은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다음주 월요일까지 풀어 와야 할 숙제 외에도 이런 저런 제출해야 할 것들이 산더미 같았기 때문이다. 다 필요 없고 그저 한숨자고 싶을 뿐이었다.

그냥 할아버지가 있는 향가 내에서 검술 연습이나 하면서 살아도 되었을 것을, 왜 굳이 할아버지는 향가에서 멀리 떨어진 서울이라는 이런 속세의, 그것도 생활에서 써먹지도 못할 지식들을 배우라는지 골치가 아파올 뿐이었다. 안 그래도 어제저녁 일로 아직도 졸려죽겠는데. 어찌되었건, 시운에게도 일단은 즐거운 토요일을 만끽하고픈 생각이 더 간절했다. 까짓 숙제 같은 건 어떻게든 되리라 생각하며.

그러고 있을 때 지훈이가 부르는 소리가 얼핏 들렸다.

“야, 류시운!”

시운은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조회가 끝나고 질세라 뛰어나오는 아이들 사이를 지훈이가 따라오고 있었다.

“야 임마. 부르는데 무시하냐?”

“아.......그냥 좀 딴 생각 중이었어......”

“뭐야 임마, 오늘은 나랑 같이 용산 가기로 해놓고. 혹시 먼저 튈려고 그런건 아니겠지?”

“아...뭐 일부러 그런 건.....”

“얼른 와 임마. 나는 아직도 가슴이 다 설렌다. 내가 이 날을 위해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잖아?”

“그 전동건이란게 그렇게도 좋냐......”

“닥쳐라~ 어찌 병사의 끓는 피를 묘지에만 묻어두리. 거기에 내가 사려는 그 m4카빈 특제품은 예약하지 않으면 못사는 신제품이라고! 덕분에 이젠 지긋지긋하던 아르바이트랑도 이별이다!”

지훈이 녀석은 발걸음도 가벼운 듯 들떠서 달려가기 시작했지만, 시운의 머릿속은 심드렁해지기 시작했다. 장난감은 아무리 잘 만들어봤자 장난감일뿐이고, 시운 자신은 그 실총들을 전부 가지고 있으며, 그것들을 조립과 청소부터 시작해서 전부 사용할 줄 알았다. 진짜를 가지고 있는데 그런 것들을 봐야 흥이 날 리 없었다. 거기다 시운이 가지고 있는 것들은 진짜로 사람을 죽이는 것들이었다.

전에도 지훈을 따라갔다가 끌려다녀 이것저것 구경만 하다 온 반나절을 생각하면 아직도 진절머리가 나는데, 이제 또 그 공포의 쇼핑에 따라가게 되었으니 말이다.


큰 길가에는 많은 사람들이 각자 전자제품이나 필요한 물건이 담긴 박스들을 들고 토요일 용산 거리를 바삐 오가고 있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지훈이의 손에는 방금 산, 각종 스코프 옵션 장착이 가능한 몇십만원짜리 마루이제 m4 카빈 박스가 종이 가방에 담겨 있었다. 하지만 시운의 얼굴은 녀석의 뒤를 따르느라 지친 표정이었다. 어릴 적부터 온갖 지옥을 경험한 시운이었지만 이건 나름대로 색다른 고문이었다.

절대, 다시는 이 녀석이 쇼핑할 땐 따라가지 않겠어....그렇게 생각하면서 시운은 약간 따끔거리는 눈을 비볐다.


그렇게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으로 향하고 있을 때, 문득 시운의 눈길이 좁은 골목길 안쪽으로 머물렀다. 누더기를 걸친 지저분한 거지 소녀를 대 여섯 명의 남자들이 둘러싸고 있었는데 분위기가 영 심상치 않았다.

그 누더기를 걸친 소녀를 얼핏 본 순간 시운은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어찌 보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상황이긴 했지만, 그 소녀를 본 순간 뭔가 낮선 사람 같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확인해 봐야 겠다는 생각에 시운은 지훈이에게 말을 꺼냈다.

“지훈아. 갑자기 약속이 생각났어. 너 먼저 집으로 가라.”

지훈을 보내기 위해서 되도록 눈치 채지 못하게끔 적당하게 시운은 둘러댔다.

“응? 무슨 약속? 신기하네. 니가 약속도 다 있냐?”

“응....할아버지 오신다고 그랬거든. 고속버스 터미널 가봐야 되니까 너 먼저 가라.”

“그래라. 그럼 나 먼저....어랏! 버스 온다! 그럼 간다!”

다행히도 때맞춰 옆에서 버스가 지나가고 있었고, 지훈은 그걸 잡아타기 위해 시운을 대충 보면서 달려가 버렸다. 시운은 웃으며 손을 흔들다가 돌아서서는 표정을 싹 굳히며 그 골목으로 향했다.


“헤헤, 이런 *년이 아직도 길거리에 나다니고 있었나?”

“히히히. 오빠들이 기분 좋은 거 해 줄께.”

이런 식의 대화가 들리는 걸로 봐서 그 소녀는 양아치처럼 보이는 몇 명의 사내들에게 곧 희롱 당할 모양새였다. 하지만 시운은 양아치들의 바램처럼 일이 돌아가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 소녀의 눈동자에선 이미 사람 여럿을 죽인 듯한 살기가 어려 있는 그 눈빛과 분위기, 그리고 약간의 비릿한 피냄새까지 풍겨왔기 때문이다.

이대로 두면 저 양아치들이 다 시체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까지 미치자 시운은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저 소녀를 다른 사람들 눈에는 안 띄게 해야 할 것 같았고, 그러자면 적절히 중재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시운은 잠시 상황을 지켜보느라 멈췄던 발걸음을 뗐다. 

“물러나 주시오.”

소녀는 녀석들의 지저분한 농지꺼리에 조용히, 그러나 음산한 살기를 띄고 대꾸하며 등에 동여매고 있던 긴 장대를 천천히 꺼내기 시작했다. 그 장대처럼 생긴 긴 무기를 보는 순간 시운은 그제서야 그 소녀를 어디서 보았는지 기억해냈다.

시운의 기억이 맞다면, 소녀가 든 저 무기는 아미파의 기보 중 하나인 장살곤이고 소녀는 장살곤의 계승자인 아미파 253대 후계자, ‘사미’였다. 순간 시운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왜? 어째서 장살곤과 사미가 여기에?

“오빠들이 기분 좋게 해준다니까?”

“이건 또 뭐야. 이런 거 저리 치우고 그냥 오빠들이랑 놀지, 응? 어설프게 작대기 쓰다가 다치면 오빠들도 책임 못 져.”

시운은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고는 양아치들이 저들끼리 신나서 떠들고 있는 한가운데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를 구해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양아치들의 목숨을 구해주기 위해서.


자연스레 양아치들의 시선이 시운으로 쏠렸다. 양아치들은 난데없이 그 소란의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오는 시운을 보자 어이가 없다는 듯 굳어버렸다. 양아치 중 한 놈의 눈동자가 살기등등해지면서 시운을 노려보았다.

“넌 뭐야 이 씹새야!”

“지금 그만 두는 게 좋을걸. 도리어 목숨 건진 줄 알라고. 저 애는 당신들이 감당해 낼만한 낭자가 아니야.”

소녀는 앞으로 다가온 시운을 보고도 표정에 변함이 없었다. 어쨌든 죽일 자세가 자연스럽게 되어있는 눈치였다. 시운이 대강 ‘차력시범’이나 약간 보여주고 빨리 저 애를 데리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동안에 노려보던 놈이 이죽거리듯 맞받아쳤다.

“뭐? 낭자? 야이 존만아. 사극 찍냐? 푸낄낄낄~”

양아치의 이죽거림이야 평소에 늘 당해보던 것이었지만, 안 그래도 학교생활을 하면서 신분과 자신의 힘을 숨기느라 받았던 스트레스에 북한에 다녀오면서 생긴 피곤함까지 겹쳐 신경이 날카로와진 걸 양아치들이 알 리가 없었다.

양미간을 한껏 일그러뜨린 시운은 가만히 묵직한 한 마디를 뱉었다.

“죽기 전에 꺼져라.”

“호오, 요즘 고삐리들은 참 귀엽게 지랄해주시네?”

 시운의 말을 받던 놈이 앞으로 손마디에서 우두둑 소리를 내면서 나섰다. 순간 시운은 나직이 뭔가를 웅얼거렸다. 양아치들에게는 들리지 않는 것이었지만 그 웅얼거림이 소녀에겐 정확하게 들렸다. 소녀는 순간 움찔하며 눈에는 더욱 더 경계의 빛을 띄었다.

“함 죽어봐라 이 *꺄.”

거친 말이 끝남과 동시에 온몸을 던진 양아치의 거친 훅이 날아왔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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