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무창전 - 3.아미파의 마지막 제자 (2)

NEOKIDS 작성일 08.04.29 01:2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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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는 운동이나 권투 등으로 단련된 자의 주먹놀림이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시킨 무술 수련으로 지옥 문턱에 갔다 온 시운에게 그것은 마치 슬로우모션과도 같은 둔한 움직임일 뿐이었다. 그 양아치가 주먹을 뻗는 순간 주먹을 쥔 모양새까지 다 살펴본 후 시운은 내뱉듯 말했다.

“그래도 주제에 좀 배운 건 있군 그래. 몸무게도 실을 줄 알고.”

 시운이 주먹을 장으로 막아내자 양아치는 놀랐다. 하지만 그런 것도 잠시였다. 시운은 그 팔을 잡아 앞으로 구부리고 다른 한 손의 손가락으로 그 팔의 몇 군데에 지탄을 튕긴 후 어깨를 부딪혀 밀쳐냈다.

양아치는 소리지를 새도 없이 그 공격을 맞고 ‘퍽’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무시무시한 기세로 날아가더니 옆의 벽에 온몸을 부딪히고는 힘없이 쓰러졌다. 혀를 내물고 정신을 잃은 놈의 팔은 이미 중요한 근육이 다 끊어져 너덜너덜해진 채로 어깨에 겨우 달려있는 것뿐이었지만, 너무 상황이 급작스러워 날아가 박힌 놈의 팔이 그 지경이 된 걸 눈치 챈 사람은 양아치 중에는 아무도 없었다.

입에 거품까지 물고 뻗어버린 양아치를 보며 시운이 탐탁지 않은 듯이 말했다.

“제기랄......열 받게 하니까 너무 힘을 줬잖아....”

비로소 양아치들은 공포가 뒤섞인 표정으로 슬금슬금 도망가려고 하고 있었다. 그 때 한 녀석이 소릴 질렀다.

“야, * 저 새낀 혼자잖아! 그냥 다구리 까자!”

그 말에 양아치들은 조금 용기를 얻은 듯 두 놈이 주머니에서 나이프를 빼들더니 시운에게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소용없는 일. 두 놈 다 첫 번째로 당한 놈의 꼴을 따라가고 있었다.

몇 초나 되었을까 하는 시간에 시운의 근처에는 배를 움켜쥐고 엎어져 버린 한 놈과 벽에 부딪혀 이빨이 엉망이 되어버린 얼굴의 한 놈이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나머지 서너 명은 뭐가 뭔지 모를 그 광경을 보며 다시 공포에 질린 눈을 하고는 뒷걸음질을 쳤다. 그렇게 그 놈들이 막 뛰어가려는 순간 시운은 그들에게 버럭 소릴 질렀다.

“쓰레기 같은 놈들아! 니들 쓰레기는 가지고 꺼져!!”


조금의 공력을 실었는지라 뼈에까지 사무치게 울려오는 그 소리에 움찔하던 양아치들 중 몇 놈이 눈치를 보며 쓰러진 놈들을 부축하고는 도망가고 나서야 골목이 좀 잠잠해졌다.

그 동안에도 소녀는 아까부터 경계의 눈빛을 풀지 않은 채 계속 시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소녀에게 시운이 고개를 돌려 말을 걸었다.

“이제야 좀 이야기할 분위기가 되는군. 아미파 제1대 제자가 여긴 무슨 연유로 온거야?”

하지만 소녀는 봉을 앞으로 겨누며 여전히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었다.

“「전음」을 쓰실 줄 아는 대협은 누구신지?.....”

어느새 사미는 한국말을 쓰기 시작했다. 한국 사람이래도 믿을 만큼 꽤나 또렷하고 좋은 억양이었다.

“나야 나. 시운. 아미파에 어릴 때 1년 정도 놀러갔었잖아. 대련도 하고 같이 수련도 하고. 내 기억이 맞다면 이름이 사미지? 그 장살곤이 아니었다면 못 알아 볼 뻔 했네.”

사미는 여전히 경계를 풀지 않은 눈빛이었다. 시운은 그런 눈빛과 침묵에 뻘쭘해진 듯 말을 계속 붙였다.

“대체 그 행색으로 여기까진 어떻게 온 거야? 한국말은 또 언제 익혔고? 진짜 한국 사람이라고 해도 믿겠는걸?”

정말 사미는 말 그대로 둘이서 9살 적에 대련을 하던 그 때의 사미가 아니었다. 갓 열여덟을 넘어선 사미의 몸은 누더기처럼 먼지가 잔뜩 묻어 새까매진 장삼에 가려져 있다지만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는 전체적인 골격과 몸매, 총명하고도 아름다운 이목구비와 눈매를 숨길 수는 없을 정도의 절세미인이었다. 아미파의 1대 제자만 아니었다면 남자들 꽤나 홀리고 다녔을 만큼.

하지만 지금은 정말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얼굴은 지저분한데다 머리는 헝클어져 온갖 먼지와 비듬으로 굳어있고, 장삼은 어디서 무슨 풍랑을 겪었는지 구멍이 뚫리고 몇 군데는 칼집이 나 있었으며 이미 제 빛깔을 잃은 지 오래 되어 보였다. 이상하게 갈색으로 얼룩진 몇몇 부분들이 있었는데 그것은 피가 말라붙어 그렇게 된 것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찬찬히 살펴보던 시운은 걱정스러운 말투로 사미에게 말을 걸었다.

“그런 차림새로 뭘 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옷이나 먼저 좀 사서 입자. 그렇게 돌아다니면 아무래도 눈에 띄니까 말야.”

조용한 눈으로 시운을 돌아보던 사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시운?....대협이 진짜 시운대협이라 하더라도....”

“응?”

“저는 이제 아무도 믿을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미는 느닷없이 장살곤을 뻗어 시운을 공격했다.  횡방향으로 시운의 머리 쪽에 장살곤이 다가오는 순간 시운은 손을 들어 그것을 막았다. 그 맹공의 반향으로 몇십 가닥의 머리카락이 견디지 못하고 외풍에 쓸려나갈 정도였지만, 시운은 그것을 쉽사리 손가락 2개로 잡아냈다.

또한 그 찰나의 순간에, 이미 시운은 사미의 상태가 상당히 안 좋다는 것까지 간파하고 있었다. 사미의 온전한 내공이라면 자신은 이렇게 장살곤의 직접적인 공격을 ‘탄지’만으로 방어할 수는 없었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3장 이상은 족히 운신을 해 피했어야만 할 장살곤의 공격이 이렇게 허하다는 것이 뭔가 사미의 신체에 문제가 있음을 미루어 짐작하게 했다.

시운은 걱정스런 눈빛으로 사미를 바라보며 다시 말문을 열었다.

“여기서 싸우고 싶지도 않고, 지금 당장 너랑 대련하고 싶지도 않아. 응? 그러니까 이런 싸움은 하지 말자.”

“저는.....저는.....아무도 믿을 수....”

시운이 얼핏 장대를 잡은 손에서 경련과도 같은 뭔가를 느끼는 순간 사미의 눈이 커지면서 입에서 뜨거운 선지피가 왈칵 토해내어졌다. 피의 색깔과 양으로 보아 이것이 누구에게 격공장의 종류로 생각되는 공격을 받은 것임을, 그래서 장대를 잡고 초식을 펼치는 것 자체가 오히려 신기할 정도로 사미의 기맥과 체력은 모두 한계상황이라는 것을 시운은 그제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누더기 같은 삼장이 쏟아내는 피로 더욱 더러워져 버렸다.

시운은 달려들어 비틀거리는 사미의 어깨를 부축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걱정스런 눈빛으로 

“나는......지켜야 해.....아미파를......”

짜내듯이 짧은 외마디를 뱉은 채 사미의 몸이 시운 쪽으로 고꾸라졌다.


 가까스로 사미의 가녀린 허리를 받쳐들고 시운은 사미의 몸을 살펴보기 위해 삼장의 가슴께를 찢었다. 차가운 살결이 시운의 손에 느껴졌다. 심하게 때와 먼지를 탔지만 그래도 뽀얀 기운을 발하고 있는 살결의 자리에 장과 권과 봉 등의 무기로 당한 흔적들이 역력했다. 십 수여 군데의 상처 중에서도 기혈목에 몇 수를 당하고 급소자리 가까이에도 장파에 당한 것이 무엇보다 심각한 상태였다.

후계자로 지목되었을 정도로 높은 사미의 실력과 상처의 특징적인 모습들로 어림짐작해 보건대, 이건 한 두 사람의 고수와 싸우다가 이렇게 된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여덟 명에서 열 명 정도의 고수들이 분명했다.

시운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아미파라면 9파1방 가운데서도 아주 유서가 깊은 5대 문파 중 하나이고 은신처도 원래의 사천성에서 옮겨 내륙 깊은 곳에 그 문파의 본거지가 있다. 그 거대한 공산주의와 문화혁명 등의 파도에도 끈질기게 명맥을 이어온 9파 1방 중 하나가 아니던가. 그런 무예의 문파, 그 중에서도 내부의 내부에서 보호되고 있어야 할 수제자가 이런 식으로 한국에 왔다는 것 자체가 어찌 보면 기적이기도 하지만, 뭔가 더 큰 사단이 벌어졌던 듯 했다.

다행히도 그 고수들이 총기류나 도검류를 무기로 쓰지 않았던 게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시운은 응급처치 격으로 몇 개의 비공에 점혈을 했다.

그런 응급처치가 끝나고 난 후에야, 자신이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서라지만 자신의 나이 또래 여자아이의 가슴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얼굴을 붉혔다. 시운은 급히 자신의 교복 웃도리로 사미의 몸을 대충 가림을 하고는 어깨에 사미를 울러맸다.

“그런데....이대로 가면 사람들 주의를 끌게 되겠지....”

조금은 귀찮아진 듯한 표정을 지으며, 시운은 사미를 두 팔로 안고서 운신을 허공에 날렸다. 사미의 무게 또한 만만치 않을 터이나 공력을 끌어올린 시운에겐 한없이 가벼운 것이 깃털에 비할 바 아니었다. 건물 벽과 벽을 박차고 가면서 사람의 눈에 띄지 않도록 조심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지만, 그 수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시운은 이 건물에서 저 건물로 조심스레 운공을 취하면서 자신의 자취방 쪽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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