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무창전 - 4. 푸름 가문 (5)

NEOKIDS 작성일 08.05.22 04:4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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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보냈다는 영상은 업로드에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확인하기 전에, 시운은 사미의 방에 들렀다. 시운이 문을 열고 들어서자 사미는 포권과 함께 공손하게 머릴 숙였다.

 

“어, 그럴 것까진 없잖아. 괜찮다구.”

낯간지러워 하는 시운에게 사미는 말했다.

“대협께 은혜를 입었습니다. 어찌 이 은혜를 갚을지.....”

“얼른 몸이 낫는 게 은혜를 갚는 거야.”

사미와 시운은 마주하고 탁자에 앉았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우리 9살 때 기억나? 그 땐 이렇게 대협이니 뭐니 부르지 않아도 되었는데. 그냥 난 그 때처럼 지냈으면 좋겠어. 그러니까 시운이라고 그냥 불러도 돼.”

“어찌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안됩니다.”

“후.....이것 참. 그나저나 한국어도 참 잘하네.”

“텔레비젼 드라마나 인터넷 등을 통해서 익혔습니다만, 역시 아직은 좀 어렵습니다. 이를테면 ㅅㅂ라마나 병진, 또 우왕ㅋ굳ㅋ 같은 것은 아직......”

“음........그건 몰라도 되는 말들이야......그냥 속어랄까.”

“속어는 또 뭔가요?”

“음.........그건.........”

 

시운은 중국어로 몇 마디를 했고, 그 뜻을 알아들은 사미가 얼굴이 벌개져 버렸다. 도로 어색한 분위기가 되자, 시운이 멋쩍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이다가 말했다.

 

“아.....장살곤은 잠시 우리가 보관하고 있어. 몸이 나으면 줄게. 아무래도 그게 낫겠지?”

“큰 불편은 없습니다. 다만 아미파를 다시 세워야 할 때 써야 할 기보라서.....부탁드리겠습니다.”

“그.....한국엔 어떻게 온 거야? 오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시운은 말을 꺼내놓고도 아차 싶었다. 사미가 한국으로 오기 위해서 아미파의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려야 했을 것이고, 그건 어쩌면 사미에게 상처로 남아있을 지도 몰랐다. 하지만 사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비상시 탈출할 수 있는 통로가 있었습니다. 탈출하기까지는 저희 아미승들께서 막아주셨죠. 많은 분들이 저를 위해 죽었습니다.”

“그랬군. 미안, 대답하기 힘들었을텐데 물어봐서......”

“저는 그들의 원수를 갚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맘을 굳게 먹기로 했답니다.”

사미의 표정에 분노가 가득 차 있다는 걸 깨달은 시운이 잠시 말머리를 돌릴까 하는 사이, 사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저의 스승님이 돌아가시는 것까지 이 눈으로 모두 담았습니다. 아미파의 가르침에 복수는 들어있지 않습니다만, 이제 저의 생에는 그 복수 밖에는 의미가 남아있지 않습니다. 대협. 간청합니다.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을 겁니다. 그러니 부디 앞으로의 싸움에 저를.....”

“그만해.”

시운이 사미의 말을 가로막았다.

“사미는 아직 몸도 낫지 않았어. 거기다가 앞으로의 싸움이 어떻게 될 지 아무도 몰라. 지금 공항에서 난동을 피우며 입국한 놈들이 있어. 영상을 봐야 알겠지만, 필시 그 놈들은 우리 가문을 노리고 들어온 걸 거야. 그 놈들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데도 거리낌 없이 행동할 만큼 위험한 놈들이라고. 그런 놈들이 지금 들이닥치기라도 한다면 사미의 몸상태로는 힘들어. 그러니까 빨리.......”

“영상.......이라고 하셨나요? 동영상 같은?”

“그래.”

“그럼 저도 그 영상을 보겠습니다. 아미파를 습격한 놈들이 그 중 있을 지도 모르니까요. 그것만 확인해 드리겠습니다.”

“안 돼. 그랬다가 몸 상태라도 악화된다면.....”

“그 정도는 괜찮습니다. 보게 해 주십시오.”

시운은 이제 더 이상 사미를 말릴 수가 없었다. 사미의 눈이 벌써 굳건하게 시운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놈들의 중추는 저희 화산파 사람들로 생각됩니다.”

적환은 그 단 한 대의 컴퓨터와 전화가 있는 회의실 같은 방에서 창해에게 말했다.

“제 스승님인 장문인 밑에 매화검수의 명성을 얻은 자가 있었습니다. 다음 장문인이 될 자로 성명은 장규라고 하지요. 그런데 어느 날 자기 맘과 맞는 몇 명을 끌고 나간 후, 세상을 공부하고 오겠노라며 화산을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그가 내려가고 한 달 후, 그가 데려간 화산의 제자들이 저희를 치는데 앞장섰죠. 그 와중에서 큰 피해를 입고 스승님과 저는 비밀 동굴로 피신했습니다.”

“화산도......당했단 말인가?”

“저희 역시 사정이 아미파와 다르지 않은 상태입니다. 남은 제자라고는 장문인의 바로 직계 제자인 저, 적환 뿐입니다.”

“이런.....벌써 구파일방의 큰 기둥이 둘씩이나......그럼 다른 파들은?”

“제가 조사해 본 바로는 나머지 정파들에는 전부 소식이 전해져서 경계태세에 있는 것으로 압니다만......가장 취약한 부분이라면 역시 소림입니다. 소림은 근세 이후 지상과 지하의 둘로 나뉘어져 있으나, 세월의 풍파를 지나오는 동안 꽤나 그 제자들의 실력이 쇠잔해져 있는 상태입니다. 만약 제가 상대이고 정보가 충분하다면, 소림을 먼저 치겠습니다.”

창해가 혀를 차며 말했다.

“쯔쯔쯔........이런......7년 전의 소림은 그러하지 않았는데......북한의 핵문제다 뭐다 그런 국내 문제 때문에 소원한 사이 그러한 상황이......”

“거기에 또 이상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적환은 잠시 물을 한 잔 마신 후 말했다.

 

“이상하게도 각 문파들의 제 2선급 실력자들이 전부 행방불명이거나 죽은 것으로 처리되어 있습니다. 각 문파에 연유를 물어보고 싶었으나, 그들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음인지 깊게 알아보기는 어려웠습니다. 개방의 경우는 워낙에 흩어져 있고 조직상황이 비밀에 붙여져 있는지라 알아본다는 것조차도 힘들었습니다. 다만 이리저리 알아보다가 개방의 말단을 통해서 전달받은 것은 개방도 현재 그 흑의단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중에 있다는 사실 뿐이었습니다.”

“흑의단?”

“정체를 알 수 없어 일단 붙인 이름입니다. 놈들은 검은 옷만을 입고 다니죠. 보통 속가에서 구할 수 있는 전투복과 총기류들입니다.”

“그렇다면 놈들은.......”

“화산파의 매화검수가 속세로 내려간 시기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고 보면 맞습니다. 그놈들이 흑검에 대한 뭔가를 알아낸 것이 틀림없습니다. 구파일방 중 흑검의 소재와 연루된 문파는 화산, 소림, 아미, 개방까지입니다. 그 중 두 문파가 먼저 무너졌고, 매화검수는 돌아오지도 않았을 뿐더러, 속세로 내려갔던 사람들이 그렇게 화산에 대한 습격을, 그것도 굉장히 빠른 시일 안에 했다는 것은 두 가지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준비했다는 사실과 함께, 그 준비를 도와준 배후의 인물이 있었을 것이다 이건가. 속세로 내려가서 고작 한 달 만에 그만큼의 인원과 준비를 도모할 수는 없으니까.”

“맞습니다.”

창해의 추측에 적환이 답했다.

“그렇다면 지금 상황은 생각보다 더 심각하단 이야기로군. 우리도 급히 준비를 해야 겠다. 일단은 바름가문도 만나봐야겠어.”

“바름가문을.....말입니까? 제가 알기로는 그 쪽과의 관계가 매우 안 좋다 들었습니다만.....”

적환의 말에 창해의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어떻게든 설득해봐야 할 상황이 아니겠는가. 그 흑검이 다시 깨어나면 아무리 이 세상이 발전했다 하더라도 결국은 암흑으로 돌아가게 되고 말 것이네. 암흑 정도가 아니라, 이 별이 송두리째 없어질지도 모를 일. 바름 가문이라면 이런 상황을 이해해 주겠지.”

창해는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때에 그 신물이라도 있었다면.......”


“혹시, 그 신물이란 것의 소재가 이 돌들과 관련이 있지는 않을는지......”

 

적환은 품에서 스승이 준 돌 두 개를 꺼냈다. 겉보기에는 그냥 보통 돌과 다른 것 같지는 않았지만, 일단 매끈한 다듬새와 그 안에 새겨진 희미하게 보이는 문양이 특이했다. 창해는 적환이 건네준 돌을 잠시 들여다보다가 적환에게 다급하게 물었다.

 

“이 돌들! 어디서 났는가?”

“저희 스승님이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돌들에 대해서는 별다른 설명이 없이 그냥 드리라고만 하셨습니다. 드리면 저희 구파일방이 도움을 청하고 있다는 정도로만 알게 될 거라고......”

“내가 살아서 이 돌들을 보게 될 줄이야.......참으로 너의 스승님은 뉘우치고 계셨던 게로구나!”

적환이 어리둥절하여 물었다.

“그 돌들이 무엇인데 그렇게까지 말씀을 해주십니까?”

창해가 돌들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이 돌들은 푸름과 가문이 각각 나눠 가지고 있었던 사성수의 표식 중 그 두 가지일세. 주작과 청룡의. 나머지 현무와 백호의 표식은 비록에는 다른 가문들이 보호하고 있었다고 하네. 하지만 그 가문들은 현재 소재조차 파악되고 있지 않지. 이 사성수의 표식이 모이고, 사성수가 현신해서 그들이 인정한 사람만이 흑검을 봉인했던 그 신물, 한울검을 다룰 수 있지!”

창해는 감격에 젖어 다시금 돌들을 쓰다듬었다.

“비록에는 대륙의 침략자들이 온 뒤 이 돌들이 사라졌다고 쓰여 있다네. 그리고 그것을 필시 구파일방의 누군가가 가져갔을 것이라고 하고 있어. 화산이 가지고 있는 줄은 몰랐지만, 정말 뉘우치지 않았다면 이 표식을 우리에게 주지 않았겠지. 자네의 스승을 잠시나마 욕되게 했던 내가 다 부끄러우이. 고맙네! 정말 고마워!”

 

그 때 그 방에 있던 전화벨소리가 시끄럽게 울렸다. 대통령이 벌써 그 영상을 파일로 만들어 보낸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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