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무창전 - 4. 푸름 가문 (6)

NEOKIDS 작성일 08.05.22 05: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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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운은 사미를 데리고 회의실로 향했다. 자신의 분노를 못 이겨 몸상태가 더 안 좋아지기라도 한다면 당장 방으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받아놓았음에도, 시운은 사미가 걱정되었다. 아직 사미의 목덜미께에 보이는 장의 자국이 옅게 푸른 기운으로 남아있는 것이 보이자 더욱 그랬다.

그나마 장살곤을 들고 있지 않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장살곤은 그 무게도 그렇지만 보통사람이 쉽사리 들고 있지 못하고 일정한 공력을 시전해서 들고 있어야 했다. 아니면 나름대로 체력을 단련한 자라 하더라도 반나절도 못가 지쳐 떨어지게 되어 있는 신물이었다. 그것은 나름대로 기맥과 내공을 운용하는 데 있어 평소에 훈련을 쌓을 수 있게끔 하는 것이기도 했다. 지금의 사미는 그 장살곤을 들고 있기에는 벅찬 상태였다.

 

시운의 머리는 그런 것들과 함께 다른 계산도 떠오르고 있었다. 놈들이 난동을 부렸다는 뉴스를 접한 것이 오늘 오후 늦게. 그리고 늦은 밤이 된 지금은 그들이 습격하려 한다면 얼마든지 습격할 수 있는 상태였다.

적환이 자신들의 본가 입구를 쉽게 찾아낸 이상, 놈들이 적환보다 훨씬 더 나은 경험과 무공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면 이런 환술 같은 진 따위는 얼마든지 파쇄될 수 있었다. 거기에 동작감지기까지 되어 있다고는 해도, 그들의 무공 수준으로 볼 때 그것이 울림과 동시에 본채에 대한 공격이 진행될 것이라고 판단하는 편이 훨씬 현실적이었다. 눈속임이 통하지 않는 상대, 지금으로선 그렇게 생각하고 대비하는 편이 훨씬 안전했다.

 

“사미, 정말 나와의 약속, 지켜야 해?”

“네. 알겠습니다. 대협.”

“그 대협 자는 좀 빼래도.....”

 

사미와 시운이 회의실의 문을 열자, 적환과 창해가 동시에 일어났다.

 

“오, 안 그래도 부르려 했었다. 대통령이 서버인가 뭔가에 놈들의 동영상을 넣어뒀다는 구나. 암호도 방금 전화가 와서 내가 적어놓았다. 얼른 보자꾸나.”

“네. 할아버지. 그런데.......”

 

그 때, 시운은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채고는 사미 쪽을 돌아보았다. 사미의 얼굴이 분기탱천한 표정으로 변해있었다. 사미는 운공을 급격하게 끌어올리고 있었고, 그 방의 나머지 세 사람은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원수!”

 

사미의 권과 장이 앞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것은 적환을 향해 매섭게 휘날렸다.

 

아미구음신공(峨嵋九陰神功). 음기의 음험하고 차가운 기운을 받아 권과 장에 실어 급한 초식에 따라 시전하는 기습법 중에서도 최고의 기습법. 보통의 남자가 맞는다면 순식간에 자신의 양기를 송두리째 뽑혀버리고 목숨을 잃게 된다는 그 무서운 무공이 적환을 향해 짓쳐 들어갔다. 적환 역시 검을 뽑아 대적의 태세를 취했다. 하지만 그가 든 검의 날은 구음신공의 기운을 겨우 막아내다 부서져 나갔다.

 

창해가 그 파편들을 내공을 이용한 손놀림으로 흩어내며 소리를 쳤다. 적환도, 시운도 모두 마찬가지로 파편들을 피했다. 사미는 적환이 서 있던 자리에서 다시 기운을 가다듬고 있었다. 바닥은 움푹 패였고, 근처의 책상 몇 개는 나뒹굴어 버렸다.

 

“이게 갑자기 무슨 짓이냐, 사미!”

“창해님......이 놈이.......이 놈이 바로 제 아미파 동료들을 죽인 그 놈입니다! 그리고 저를......저를!”


적환은 사미의 이야기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도륙이 난 아미파의 사천성 본채쪽으로 간 적은 있지만 이미 일은 다 끝나 있었고, 사미를 보지는 못했다. 그런데 사미는 자신을 보았다고 했다. 그것도 아미승들을 죽이는 자신을 보았다고 했다. 그것은 적환도 생각지 못했던 하나의 가능성이며, 또한 충격이었다.

 

“혹시.......저와 같은 모습을 보신 겁니까? 그 자리에서?”

“문답무용!”

 

다시 사미의 공력이 회전하며 적환을 향해 짓쳐나아갔다. 하지만 적환은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마치 다른 생각이라도 하는 듯한 눈빛으로. 그 앞을 막아선 것은 시운이었다.

 

“잠깐! 사미, 멈춰!”

 

구음신공의 틈새로 유유히 흐르듯 시운의 팔과 발이 흐르더니 사미의 관절과 몇 개의 초식 흐름을 파쇄했다. 시운 나름대로 힘을 조절하긴 했지만 엄청난 힘의 흐름을 파쇄하는 데는 그만큼의 반작용도 뒤따랐다. 시운과 사미의 신형이 순식간에 펑 하는 소리와 함께 각각 반대 방향으로 밀려나갔다.

 

“시운대협! 비키세요!”

 

사미가 밀려나서 다시 자세를 가다듬으며 외쳤다. 하지만 시운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잠깐만! 뭐가 뭔지는 알아야 할 것 아니야!”

“전 그 자의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자는 우리 아미파를 멸한 자들 중 하나에요. 그리고 저 역시 그 자에게 당했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요?”

“그렇다 해도 이렇게 단신으로 들어와선 아무것도 못해. 거기다가 우리 할아버지랑 단둘이 있는 시간이 있었어. 할아버지에게 해를 입히려면 벌써 입혔을 거라고. 그런데도 이 자는 그러지 않았어!”

“저 검은 속을 어떻게 알겠어요. 그 때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진형을 취하는 식으로 저희 스승님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아마 이번에도 그렇겠지요. 다른 사람들을 부를 거에요. 똑같은 일이 벌어지게 놔둘 순 없어요!”

 

그 때 시운의 등 뒤에서 멍하니 있던 적환의 입이 열렸다.

 

“반유.......살아있었구나!”

 

적환은 시운의 앞으로 나아가 급히 사미에게 말했다.

 

“아미승님. 정말 저와 똑같은 모습이었습니까? 이 머리의 모양새, 얼굴, 몸집까지?”

“우습군. 이젠 자신이 한 일까지 잡아떼겠다는 것이냐?”

“잡아떼는 게 아닙니다. 저와 쌍둥이 형제가 하나 있습니다. 저희 화산이 습격 받았을 때 죽었다고 알고 있었죠. 헌데 아미승님께서 보셨다면....제 쌍둥이 동생이 살아있다는 겁니다!”

“거짓말은 끝난건가?”

 

사미가 다시 공력을 끌어올리려 했다. 그 때 시운의 축지가 그 짧은 공간 안을 가로질렀다. 그리고는 사미의 몇 개의 기맥을 부드럽게 짚었다.

행동을 막거나 하는 점혈은 아니었고, 단지 사미가 끌어올리는 공력의 기맥만을 흐트려놓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시전했다면 당한 사람은 주화입마에 들어 피를 토해냈겠지만, 사미에게는 그저 힘이 빠지는 정도의 효과만 나타날 정도의 기술이었다.

힘이 사라진 사미가 다시 피를 토했다. 분노 때문에 무리하게 기맥을 운용한 결과였다. 그런 사미가 쓰러지며 쏟는 피와 가녀린 몸을 시운은 앞에서 다 받아냈다. 겨우 숨만을 내쉬며 원망스런 눈으로 시운을 바라보는 사미. 시운은 사미를 품에 안고서 말했다.

 

“미안......미안해. 이 이상은 너에게 위험해.”

 

시운은 잠시 안타까운 표정으로 사미를 바라보다가 적환 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적환, 그대의 말은 진짜인 겁니까?”

“사실입니다.”

 

시운은 적환의 동공을 뚫어지게 보았다. 아무리 호흡법을 익혀 거짓말을 능수능란하게 한다 할지라도 그 거짓말하는 본인조차 제어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눈이었다. 시운은 거짓말을 할 때 일어나는 미세한 눈의 떨림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적환의 눈은 일말의 흔들림도 없었다.

 

“좋습니다. 믿겠습니다.”

 

말을 하면서 시운은 사미를 안은 채로 등 뒤에 잠시 한 손을 갖다대었다. 몸에 해가 가지 않도록 기맥에 기를 흘려넣어 주는 동작이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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