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운의 창광검이 어지럽게 움직였다. 왼손에 쥐어진 베레타도 급격하게 움직였다. 바로 가슴께에 탄환을 쏴박고는 다음 놈의 팔을 떨구어 냈다. 하지만 놈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악귀. 바로 그 자체였다.
부상을 입고 피를 흘리면 흘릴수록 이놈들의 정신은 두려움보다는 자신을 오히려 위험하게 내던지는 형태로 변했다. 두 놈의 눈빛이 점차로 회색으로 물들어가고 입가에 미소를 띄우는 걸 보면서 시운은 하나의 단어를 떠올렸다.
“각충마공!”
시운은 지금 막 떠오른 가능성에 몸을 떨었다. 이런 사술이 있다는 이야기는 예전에 소림에서 잠깐 수행했을 때 중추각에서 봤지만, 실제로 각충마공을 행하는 자들이 있을 줄은 몰랐다. 이것은 사람을 조종하는 수법 중에도 아주 독랄한 수법이었다.
각충. 뇌의 정신상태는 몇십 가지 신호들로 구성되고 이는 특이한 화학적 물질들을 매개체로 한다. 이 특이한 화학적 물질들을 교란시키는 물질을 내보내는 아주 작은 곤충이 바로 각충인데, 이 각충은 예전엔 정신병이 있는 사람의 치료에 쓰이기도 했었지만 사술자들에 의해 각종 세뇌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마공의 도구로 전락했다.
속세에는 정식으로 발견되지 않아서 학명조차도 없는 벌레였다. 그도 그럴 것이 환경에 아주 민감해서 중국의 공해가 심화되자 멸종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은 구파일방에게서도 잊혀져 가고 있던 벌레였다. 그 각충마공의 증상이 지금 시운의 앞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었다.
시운은 다급하게 주위의 싸울아비들에게 소리쳤다.
“놈들의 머리를 노려라! 수족만으로는 꺾이지 않는다! 반드시 머리를 노려 일격에 참살하라!”
시운의 눈이 푸르게 빛나면서 팔에 힘이 들어갔다. 빠른 보법이 놈들의 주위를 돌면서 창광검이 방금 두 놈의 머리를 가볍게 허공으로 띄워 보내 버렸다.
“보자보자 하니까 싸가지가 너무 없군 그래!”
창해의 장이 어느새 적환의 앞에 섰던 반유의 싸대기를 날리고 있었다. 이번엔 적환 때와는 달리 손속에 정을 두지 않았다.
느닷없이 측면으로 나타나, 검이나 권총으로 막을 새도 없이 싸대기를 풀스윙으로 날려대는 데는 재간이 없었다. 반유는 적환의 앞에서 멀찌감치 굴러갔고, 무리 중 몇이 황급히 쫒아가 그런 반유를 부축했다.
“이런 녀석에겐 예의를 지키고 싶지도 않구만. 예라이 이놈아. 그래서 너를 거둬준 사람들에게 해코지를 했단 말이냐? 너에게 힘을 주지 못했다고?”
창해가 왼발을 구르며 바닥에 진동을 일으켰다. 구파일방에서 흔히 말하는 천근보의 모양새였지만, 그것과는 박력 자체가 달랐다. 그 반동에 떠오른 몇 개의 돌멩이. 거기에 탄지의 공력이 실려 맹렬하게 날아갔다. 돌덩이들은 반유의 주위에 있는 놈들을 모두 종잇장처럼 휘날려 버렸다.
‘단지, 탄지만으로 내 검을 막았던 건가? 기를 싣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암한절명쾌검의 발검을?’
반유는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놈아. 그런 걸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고 하는 거다. 왜 그렇게 되는 건지 아니? 안 맞고 커서 그런 거다 이놈아!”
다시 반유 앞으로 돌진해온 창해의 풀스윙 장법이 반유의 멀쩡한 나머지 싸대기에 작렬했다.
각충마공에 의해 제정신이 아닌 놈들이 늘어가고 있었지만, 싸울아비들은 그런 사실을 모른 채 맞서고 있었다. 시운이 급하게 외치기는 했지만 경황 중에서 그 소리를 제대로 귀담아 듣지 못했던 싸울아비들도 있었다. 무엇보다 각충마공의 진짜 정체를 아는 싸울아비들이 없다는 데서도 문제였다. 점점 목숨을 잃어가는 싸울아비들이 늘어만 갔다.
진수가 호각을 불어 다시 진형을 바꾸었다. 이번에는 더욱 철저하게 방어를 하는 진이었다. 목숨이 붙어있는 싸울아비들은 다시 모여 진을 형성했다. 반유의 싸대기를 날려 저만치 굴러가게 해놓고 다시 가려던 순간, 창해는 진수의 호각소리에 다시 전황을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수족이 날아간 고통조차 느끼지 못하고 맹렬하게 싸우려고 다가서는 흑의단들의 모습도 보았다.
“이놈들, 끝까지 인간이길 포기한 놈들이구먼......”
창해는 다시 보법을 디뎌 공중을 박차고 날아오르다시피 했다. 흑의단 두 놈이 뒤에서 덮쳐 오는 창해의 손속을 알아채고 그에 대응했지만 소용없었다. 창해의 두 손이 일격에 두 놈의 목과 신경을 절단내 버렸다. 질풍과도 같은 빠르기의 권술에 목뼈가 다 튀어나가 피를 뿜어대는 두 놈이 힘없이 쓰러졌다.
“목숨만은 빼앗지 않으려 했거늘........”
그러면서 창해는 다시 반유가 굴러간 쪽을 돌아보았다. 반유는 그제사 몸을 추스르고 있었다.
“한 가지만 묻자. 너희들이 몸속에 받은 각충마공은 너희들의 의지로 받은 것이냐, 너희도 몰랐던 것이냐?”
반유가 주저앉은 채 입속에 고인 피를 퉤 소리를 내 뱉으며 대답했다.
“알아서 뭐하시게, 노인장?”
“만약 너희들이 그 더러운 마공을 자진해 받았다면 너희들의 목숨은 버러지나 다를 바 없음을 스스로 인정한 것. 고로 내가 그 불쌍한 생들을 손수 마감해주려 한다!”
“웃기는 소리!”
호기 좋게 소리를 한 번 질러보긴 했지만 반유 역시 이런 전황은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각충마공은 한 번 발동이 걸리기 시작하면 통제가 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좀비나 다를 바 없는 상태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대강 상황은 총원 스무 명에 죽은 자가 넷, 부상을 입고 각충마공의 노예가 된 녀석이 여섯. 대충 계산해봐도 아직 싸울아비 쪽은 적환과 푸른 빛이 도는 소년, 그리고 아미파의 생존자를 합쳐 스무 명 남짓의 전력을 보전하고 있었다.
그래도 나름 조직의 체계 안에서 뛰어난 자들만을 골라 만든 일검대. 그 중 정예 스무 명으로도 이들을 어쩌지 못한 것이었다. 다른 파들을 칠 때처럼 만반의 준비를 했어야 하거늘, 작은 방파의 무공이라 생각하고 업수이 여겼던 적의 전력에 전부 밀려버린 것은 두령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은 반유 자신의 책임이 컸다.
반유는 이를 악물었다. 이제는 상황 자체가 기울어져 있었고, 이 상황에서 결국 선택해야 할 것은 후퇴인 건 자명했다. 그 후퇴할 기회를 어떻게 만드는가. 거기까지 계산이 끝나자, 반유의 입에서 웃음이 비어져 나왔다.
“흐흐흐흐흐흐흐~”
“웃어?”
창해가 완전히 몸을 돌려 대적의 상태를 갖추자 반유가 말했다.
“그럼, 웃어야지. 각충마공은 전부 우리가 원해서 받은 거니까. 뿐만 아니라 공항의 소동도 일부러 일으킨거다. 사실 그것쯤이야 쉽게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아무래도 그렇게 하는 편이 훨씬 너희들을 화나게 하기에는 적절할 테니까.”
“!”
반유의 말을 듣고 창해의 얼굴색이 확 달라졌다. 공항이야기까지 듣자 너무나 강한 분노로 인해 푸른 빛깔까지 서서히 감돌고 있었다. 그것은 시운과도 마찬가지였지만, 시운이 눈에서만 푸른빛이 돌고 있다면 창해의 빛은 온 몸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형태였다.
“뭐가 어쩌고 어째.....”
“죽일 수 있다면 죽여보라고. 늙은이!”
그 때 하늘에서 떨어져 내려오는 강한 기운이 반유를 향해 짓쳐갔다. 시운이었다. 시운 역시 그 말을 듣고 극도의 분노를 못 이긴 채 신형을 띄운 것이었다. 시운의 눈이 이제는 흰자까지 푸른 광채를 띄고 있었다.
“멸!”
창광검의 푸른 기운과 눈의 광채가 마치 광선처럼 반유에게로 쏟아져 내려감과 동시에 반유의 암한절명쾌검이 방어를 위해 들려졌다. 강한 기운이 맞부딪히면서 주위에 충격파가 일었다. 그것은 싸울아비와 흑의단들이 맞서고 있는 자리에서 전부 물러나게 할만큼 강하고 깊었다. 암한절명쾌검과 창광검이 서로의 검신을 비벼대며 귀청을 찢는 소리와 함께 공기의 온도마저 상승시키고 있었다. 그런 변화무쌍의 한가운데에서 시운과 반유는 서로 노려보며 극기를 끌어올리고 있었다.
문득 반유가 비웃는 표정으로 말을 던졌다.
“혹시 그게 너희 가문의 그 검인가? 태주도인가 뭔가 하는!”
“네 놈이 태주도를 어떻게 알고 있지?”
시운은 순간 흠칫했지만 기를 흩뜨리지는 않았다.
“우린 그 검을 추적하러 여기 온 거다. 정확히 말하자면 네놈들 가문의 비록을 가지러 온 거지.”
“그렇게 되지 못해서 안타깝군 그래! 이건 태주도도 아니거든!”
“그래, 태주도가 이렇게 약해서야 말이 안 되지. 암한절명쾌검 정도로 막힐 수 있는 검이라면 말이야!”
암한절명쾌검. 귀에 그 소리가 들리는 순간 시운의 기가 더 팽창했다. 암한절명쾌검이라면 시운이 소림의 기록으로 읽은 바로는 창광검으로 충분히 해볼 수 있는 상대였다. 거기다 창광검은 시운의 기를 받으면 받을수록 다시 상환하는 힘도 아주 커지게 되어 있는 검이었다. 시운의 광채가 점점 번지면서 몸에 퍼지기 시작했다.
반유는 이런 현상에 내심 놀랬지만, 반유보다 더 놀란 건 창해였다.
‘저 바보 녀석!’
광채가 몸으로 번진다는 것은 푸름 가문 특유의 성정이긴 하나, 문제는 그것이 어느 정도 내력이 받쳐줘야 한다는데 있었다. 어릴 적부터 죽음을 넘나드는 수련으로 이미 구파일방에서 기준으로 삼는 갑자로 따지면 6갑자 이상의 내공을 가지고 있는 시운이었지만 아직 그 푸름 가문의 성정을 다스리기에는 나이도, 운공의 경험과 내력도, 모든 것이 모자랐다. 창광검도 처음부터 운공의 형태에 익숙해지라고 준 것이지, 벌써부터 창광검과 운공을 주고 받으라고 준 것은 아니었다. 그런 가운데서 무리하게 운공을 취하여 광채가 끝내 온몸으로 번진다면, 심하게는 온 몸의 기혈이 뒤틀리고 혈목이 바뀌어 버려 그 자리에서 온 몸의 혈도마다 피를 쏟아내며 죽을 수도 있는 큰 문제였다.
창해가 더 두고 볼 수 없어 신형을 날리려는 찰나. 반유의 미소 지은 입에서 뭔가가 반짝이는 것이 창해의 눈에 보임과 적환이 신형을 창해보다 더 일찍 날린 것은 거의 동시였다.
반유가 길다랗고 반짝이는 것을 입에서 강한 힘으로 뱉어냈다. 시운은 순간 당황했다. 흥분을 너무 해서 달려들어 그냥 돌진한 채로 정지된 보법이었고, 이미 푸름 가문의 운공을 회전시킨 상태에서 급하게 피하기도 어려운 시점. 거기다 이런 식으로 암기를 받아본 경험도 일천했기에 당황함은 더욱 일파만파가 되었다.
시운은 다급하게 보법을 후진하면서 고개를 젖혀 피하려 했지만 독침은 기공탄법으로 쏘아진 것인지 훨씬 빠른 속도로 시운의 미간을 향해 날아왔다.
시운은 운공을 미간 쪽으로 모으려고 급히 혈행을 돌렸다. 완전히 그 시간차를 운에 맡긴 채.
시운의 보법과 맞대응하던 기가 흐트러진 반향으로 잠시 짙은 먼지가 일었다. 맞서던 사람들은 강렬한 싸움의 결과를 보고자 잠시 신형을 멈추고 있었다. 먼지가 걷혀지고 나서 제일 먼저 사람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시운 앞으로 나서서 시운의 미간 앞으로 뻗은 적환의 검과 팔이었다. 반유는 적환을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정말 볼썽사납군. 저도 약한 주제에 누굴 보호씩이나 하려 들다니.”
시운은 적환의 팔을 보았다. 적환의 팔에서 한 줄기 가는 핏방울이 흘러나와 옷을 적시고 있었다. 그 핏방울 줄기의 끝을 찾던 시운의 눈에 독침이 들어왔다.
검으로 막으려 했지만 제대로 퉁겨내지 못해 적환의 팔이 독침을 막은 형국.
“반유야.......너는........끝내........”
적환은 그 독침을 다른 손으로 빼내고는 잠시 비틀거렸다. 얼굴이 순식간에 검푸른 색으로 변하는 것이 생각보다 맹독인 듯 했다. 시운은 적환의 몸을 부축하고서는 급히 구허혈을 비롯해 혈도 몇 개를 짚었다. 적환의 몸이 일순 마비되고 가사상태처럼 변해 심장으로 피가 많이 흐르지 않도록 조절해주었지만, 독이 얼마나 빨리 퍼질지는 알 수 없었다. 이미 시운의 눈과 몸에서는 광채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진수! 빨리 우리 의창(醫倉)의 해독초를!”
시운의 말에 진수를 비롯한 한 두 명의 싸울아비가 급히 해독초를 가지러 자리를 뜨는 사이, 반유는 자신들의 수하를 다시 정비해 퇴각로를 찾아두고 있었다. 여기까지가 계산대로였고, 더이상은 모든게 불리했다. 지금 시운을 쳤다가는 되려 저 늙은이와 아직 힘이 남아있을 듯한 아미파의 제자까지 가세하여 이쪽이 불리해질 상황은 이미 읽어놓았다.
반유는 찰나의 어수선한 상황을 돌아보다가, 수신호를 올렸다. 그 수신호의 의미를 알아들은 흑의단들은 일제히 등을 돌려 퇴각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마치 불이 난 숲 속을 미-친 듯이 도망가는 산짐승과도 같았다.
싸울아비 역시 그들의 퇴각로와 모든 빈구석을 막으려 애썼으나, 죽고 다친 자들이 많아 진형이 효과적으로 완성되지 못하고 있었다. 창해와 사미까지 가세해서 어떻게든 퇴로를 차단하려 했지만 그들이 신형을 날린 시점에서는 늦어도 너무 늦어있었다. 창해가 옆사람이 들릴 지경으로 이를 북북 갈았다.
“다음에는 꼭 그 수급, 접수하도록 하지. 늙은이!”
반유는 외마디를 남기고는 급히 퇴각했다. 공력을 끌어올려 경공을 펼치면서 점점 뒤에 남겨진 적들의 모습이 작아지고 있었다. 적들이 점점 보이지 않는 만큼 마음 한구석의 걱정도 더해갔다. 두령은 반드시 이번 실패에 대해서 책임을 물을 것이고, 그 책임이 어디까지 갈지는 몰랐다. 두령이 일검대를 전부 소집하라고 한 말조차 듣지 않았으니, 문책의 내용은 필시 죽음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암한절명쾌검이 적의 손에 넘어가지 않았고, 두령이 자신을 생각하는 정도를 되새기면 다음 기회는 충분히 있을 것 같았다.
‘카메라에 모습까지 남겨 도발을 획책했음에도 이길 수가 없었다......그냥 작은 문파 정도가 아니었어.......하지만 우리도 많이 피해를 입혔다......다음 기회를.....다음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반유는 복잡해지는 머리를 끌어안고 자신의 수하 흑의단들과 함께 초상비의 경공으로 나뭇가지들을 밟으며 질주했다. 하지만 반유는 그런 복잡한 머리로 인해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적환을 끌어안은 시운의 분노에 찬 고성이 그의 등 뒤를 때리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분노는 반유가 다음에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벅차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