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그리나 - 십자가 (5)

NEOKIDS 작성일 09.04.24 15:5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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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급 비상체제입니다. 예, 빨리 서둘러 주셔야 합니다. 어떤 일이 터지게 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만약 제가 예상하는 바가 맞다면, 그 곳이 저승과 이승의 엄청난 구멍이 될 듯 싶습니다. 예, 한시바삐.”

 

건석이 급히 핸드폰을 닫았다. 건석 역시 차를 몰고 그 산장으로 향하고 있는 중이었다.

가슴 속에 꿈틀대는 불안감.

그것이 현실로 이루어질 것 같은 마음이 엑셀레이터에 더 힘을 주어 밟게 했다.

 

건석이 조사한 건 그 목사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었다.

그러자 어느 정도의 연결고리들이 나왔고, 그 커넥션의 대다수가 기독교인이라는 허울을 쓰고 있었다.

문제는 그들이 항상 기도를 올리는 곳이 교회만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들이 섬기고 그들의 소원을 기도하던 존재. 그것이 그 장소에 있다면 더 큰 일이 벌어질 수 있었다.

 

건석은 옆 좌석에 팽개쳐둔 서류를 힐끗 보았다. 그들의 비밀 장소에서 찾아낸 서류. 그것은 이 산장의 내용과 함께, 누군가 거대한 존재가 그 산장을 통해 강림하리라는 내용이었다.

 

“제발 무리한 짓은 하지 마라, 초영.........”

 

건석은 그 팽개쳐둔 서류 위의 구겨진 종이 한 장도 다시 보았다. 그 종이에는 약도와 함께 글이 남겨져 있었다.

 

‘네가 늦어질 것 같아서 먼저 간다. 네가 올 때쯤엔 일은 모두 끝나있겠지만. 너와의 약속, 오늘만큼은 지키지는 못할 것 같다. 초영.’

 

 

 

 

 

그 압도적인 존재의 목소리가 다시 한 번 초영을 향해 나직이 울렸다.

 

“그래봤자, 이미 아무것도 소용없다.”

 

초영이 의아해하는 순간, 등 뒤 쪽으로 충격과 고통이 동시에 왔다. 비틀거리면서 초영은 뒤를 돌아보았다.

아이가 손에 피를 잔뜩 머금은 채 웃고 있었다. 그 아이의 눈은 붉고 강렬한 광채를 한가득 담고 있었다.

아이는 손에 묻은 피를 혀로 날름 핥았다.

 

“그 아이는 인간들이 내게 바치기 위해 만들어낸 육신. 곧 내가 강림하여 인간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것을 주고 내가 원하는 것을 받아낼 그릇. 이미 모든 의식은 끝난 상태였다. 그저 데려와주기만 하면 되었을 뿐.”

 

초영은 다시 자세를 가다듬었다. 예그리나도 그런 초영의 뒤를 걱정스런 눈으로 지키고 있었다.

 

“어째서 인간 정도가 인간의 영까지 부릴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진 모르겠지만, 어차피 이 땅의 신앙에서 유래된 힘이겠지. 우리의 힘은 이 땅의 신앙보다 더욱 강하다. 내가 이 아이에게 들어가는 동안 방해하지 못하도록 이렇게 도와주는 인간들도 있지 않느냐.”

 

사람들의 그림자가 산장 안의 곳곳에서 나타났다. 검은 두건을 쓴 자들은 전부 거꾸로 된 십자가 모양의 칼을 들고 있었고, 모두 귀기에 물든 상태였다. 그 면면 중에는 간혹 케이블TV에서 설교를 늘어놓던 목사, 신도가 수만 명이나 되는 큰 교회 목사 등등 유명한 사람들의 얼굴도 꽤 보였다.

 

초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러니까, 인간의 어두움이렸다.........”

 

초영은 상처에서 팔을 떼고는 편안한 자세로 바꾸었다.

인간들이 잠시 그런 초영의 매무새에 멈칫했지만 이내 달빛에 반짝이는 섬뜩한 칼날을 겨누었다.

 

“그럼 나도 한 가지만 묻지.”

“뭔가?”

“왜 잡귀님같은 자들은 이 땅에 현현하려 하는거지? 그 의지의 정체는 뭔가? 정말 기독교에서 말하는 그런 것인가? 신에게 대항하고 이 이승 세계를 자신들의 것으로 하려는?”

“하하하하핫!”

 

목소리가 갑자기 웃어댔다.

초영의 의아함은 아랑곳없이 계속 웃어대던 목소리가 잠잠해지고 대답이 들려왔다.

 

“성경을 너무 읽었던 건가. 우린 그저 빛이 있기에 존재하는 어두움. 빛을 가려 어두움을 만들어낸 것도 너희들이고 그 어두움에 의미를 부여하고 힘을 준 것도 너희 인간들이다.”

“그렇다면.....”

“그래. 우린 아무런 의지도 없이 그저 존재하던 자들이지. 이런 말은 해줄 수 있겠군. 우린 지금, 이 ‘의지’란 것을 가진다는 게 조금 설레이고 있다. 영겁의 세월을 거치면서 우린 많은 것을 잊고 있었던 상태였지. 그걸 너희 인간들이 깨닫게 해주는 것 뿐이다. 이 정도면 대답이 되었나?”

 

대답을 들은 초영의 고개가 끄덕여지더니 입술이 달싹거렸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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