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신이 모이옵고 삼신님이 강림할제
바람불어 흉액없고 뜨거움에 불붙을제
작은소리 모두어서 그저그저 비나이니
갑자기 읊고 있는 초영의 ‘타령’.
떠나지 못하고 남아있는 망자들을 위한 굿을 올릴 때 쓰는, 너무나 위험했기에 지금은 일반적으로 구전되지 않는 초영의 타령. 그것을 시작으로 굿이 전개됨과 동시에 아까보다 훨씬 더 강한 기운이 퍼졌다.
그것이 칼을 든 자들에게 강한 위험을 느끼게 했는지도 모른다.
본능적으로 뭔가를 느낀 그들은 한꺼번에 초영의 몸통을 겨누고 칼을 들이대며 돌진했다.
갈라진 목소리들의 고함 역시 점차로 다가왔다.
칼날이 초영의 몸으로 그 끝을 들이밀려는 찰나.
비나이니 비나이니 삼신님께 비나이니
염라대왕 옳은손에 거두옵고 담으리니
타령조가 중간에 이르기도 전에 빛의 파동이 갑자기 치솟았다. 그 빛의 파동은 예그리나에게로 모여들어 가는 듯 하다가 더 큰 파동으로 변하면서 예그리나의 내부에서 힘의 오오라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예그리나의 고개가 젖혀지고 눈의 빛이 강한 조명기기처럼 빛나면서 빛의 오오라는 점점 끓어오르듯 일렁였고, 예그리나를 중심으로 빛의 파동이 삽시간에 산장 내부를 휘저으면서 거대한 소용돌이를 만들기 시작했다.
소용돌이는 안의 집기들과 공기까지 압력을 받아 찌그러지고 왜곡되게 만들 정도였다.
칼을 들고 공격하려던 자들의 발걸음은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굳어있었다.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이미 시간은 멈춘 것이었다.
목소리의 존재는 놀라움으로 외쳤다.
“이것은........이 힘은!”
그 빛의 소용돌이에 순식간에 칼날을 겨눈 사람들의 몸이 휘말려들었다. 빛의 입자들은 공격하려던 사람들의 몸으로 파고들어 그들이 점유하고 있는 모든 시간과 공간을 공격했다. 세포들은 점점 퇴화되고 늙어갔고 피는 원래 있던 곳에서 뿜어져 나와 적혈구들이 모두 찌그러져 들어갔으며 장기들은 순식간에 썩어 들어갔다.
건석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그 산장의 위로 터널처럼 공간의 이지러짐이 치솟고 있었다.
건석은 자신이 우려하던 것이 현실로 나타났음을 깨달았다. 이미 자신의 신을 부르기에도 늦은 시간이었다.
그 터널을 통해 수많은 다른 존재들의 귀기가 모여드는 것이 건석의 눈에 보였다.
“제기랄.......초영!”
“믿을 수 없군.......”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존재의 목소리가 울렸다. 이미 아이의 몸 안으로 들어간 상태였음에도, 더 이상 이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는 상황임에도 그 목소리는 두려움을 머금고 있었다.
“어째서, 어째서 인간이.........”
초영이 천천히 다가가고 있었다. 예그리나의 영체는 이미 엄청나게 커져서 초영의 전신을 감싸고 있었다.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 그리고 길게 늘어진 머리카락의 형상. 그것들은 자애롭고 따스한 느낌의 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아이에게 다가오고 있는 초영의 발 밑으론 두건을 쓴 인간들이 이미 쓰러진 채였다. 그들의 혼백을 붙잡고 있던 귀기 뿐 아니라 붙잡힌 혼백까지도 이미 모두 파괴된 상태. 거기에 몸의 세포까지 완전히 뭉개져 말 그대로 짓이겨진 진흙이나 다름없는 것만 남은 몸뚱이들이었다.
“인간이......‘하데스’의 힘을 쓴단 말인가!!!!!!!”
“잡귀님. 아까 전에도 말했지만 말이지......”
초영의 입이 귀신이 한다고 해도 더 무섭지는 못할 정도로 찢어지기 시작했다.
“잡귀님의 힘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리고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더 좋다지 않았는가?”
땅이 뒤집히고 흔들렸다. 어느 정도의 높이가 있는 산인데도 불구하고.
나무는 그 뿌리를 드러냈고 잎사귀들은 진동에 모두 가지에서 떨어져 흩날렸다.
그런 자잘한 부속들이 전부 영기의 바람에 휩쓸려 고주파의 파동을 맞은 것처럼 미친 듯이 진동하고 있었다.
건석이 있는 곳이라고 무사할 리가 없었다. 그리고 산장도. 건석은 엎드리듯 해서 자세를 유지하면서 계속 산장을 바라보았다.
산장의 천정이 폭발하듯이 부서져 위로 휩쓸렸다. 그것들은 떨어져 내리지 않고 영계의 터널로 곧장 소용돌이치며 올라갔다. 모여들던 자잘무리한 귀기들도 전부 그 어둠의 터널이 일으키는 흡인력에 빨려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터널의 밑둥으로 따스한 느낌의 빛이 비치는 것도.
건석은 신음했다.
“크윽.............빌어먹을 자식! 무리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
이윽고 진동이 가라앉고, 휘날리던 모든 것들이 중력을 무시한 채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겨우 근력이 붙어 움직일 정도가 되자 건석은 허겁지겁 산장의 현관쪽으로 뛰어갔다. 천정만 뻥 뚫린 채 산장은 아직 그 모습대로 서 있었다.
건석이 외벽만 남은 산장의 문을 열고 본 광경은 완벽한 폐허였다. 거기에 곤죽이 된 시체들까지 더해져 있었다.
건석의 시선이 급히 초영을 찾았다. 마침 예그리나부터 보였다. 예그리나가 초영의 곁에서 초영을 걱정스런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건석이 다가가보니 초영은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어차피 건석이 예상한 대로 그 타령을 시전했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등 쪽에 나있는 커다란 상처로도 몸상태가 좋지 않은 상태였다. 건석은 핸드폰의 단축키를 눌렀다.
“건석입니다. 다행히 상황은 끝났지만 초영이 많이 다쳤습니다. 의료지원이 시급히 필요합니다.”
핸드폰을 닫고 건석은 초영을 일으켜 뺨을 두들겼다.
“초영! 초영!”
몇 번을 두들겼을까. 초영이 태연스레 말했다.
“아프니까 그만해.”
“이런........미친 놈의 새끼.........네 힘을 함부로 쓰면 안된다며! 왜 네 생명력을 까먹어가면서 이 지랄을 하는거야!”
“예그리나는?”
“옆에 있다, 이 팔불출 같은 놈아. 예그리나도 뭐라고 좀 해봐.”
“초영........”
예그리나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부르자 초영이 슬며시 웃었다. 그러다가 다시 굳어진 얼굴로 초영이 건석에게 물었다.
“아이는?”
“모르겠다. 잠깐만.”
건석은 아이의 모습을 찾아서 몸을 돌렸다.
아이는 한구석에 쳐박혀 있었다. 몸은 이미 푸석한 미이라 꼴이 되어 있었지만 표정만은 또래아이들의 느낌처럼 평온했다.
“역시......구할 수......없었군........너무 지독하게 붙잡고 있었어.......”
“그랬겠지. 네가 상대한 게 어떤 놈인지나 알아?”
“난 서양잡귀 지식은 약하잖아.”
“미친놈. 맘몬을 박수무당이 상대해서 보내버린 건 너밖에 없을 거다.”
“아, 그 놈 알아......가장 약한 놈이잖아.”
“벨제붑의 가호를 받는 놈이 약한 놈이냐?”
“뭐 어쨌든........좀 쉬어야 겠어.”
초영이 예그리나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눈에 담고서는 잠시 눈을 감았다.
헬리콥터 로터의 진동음과 서치라이트가 주변을 어지럽히는 것이 초영의 몸으로 느껴졌지만, 초영은 눈을 뜨고 싶지 않았다. 그 놈과 나눈 대화, 그 놈이 말한 것. 결국 모든 것은 인간.
그 말이 초영의 눈꺼풀에 무거움을 더해주었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