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석이 초영의 지하 당실을 방문한 시각은 해가 많이 기울고 있는 오후 4시 30분 쯤이었다.
사실, 건석에겐 초영의 일처리 시간은 그것도 많이 기다려준 것이었다.
건석이 부적투성이의 살풍경한 계단을 다시 내려와 문앞에 섰을 때, 그 문에는 프린터로 약도를 인쇄한 종이 하나가 붙어있었다. 그리고 그 그림 밑에는 약간의 글도 써져 있었다.
건석이 의아한 표정으로 그 종이를 떼내어 읽어보았다. 그리고는 얼굴이 이내 흙빛이 되어 종이를 구겨쥐었다.
“이 멍청한 자식이 끝내!”
프라이드가 덜덜 소리를 내면서 산중턱을 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불쾌한 느낌도 초영의 긴장감을 없애지는 못했다.
“곧 있으면 그 장소야.”
“응.”
초영의 말에 예그리나는 대답했다. 차 뒷좌석에는 아이가 여전히 잠을 자고 있었고, 예그리나는 초영의 옆좌석에 자리잡고 있었다. 초영의 옷차림은 전의 그 목사를 잡을 때 같은 양복차림이 아니었다. 제대로 된 무당복을 갖추고 있었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보는 색동저고리 같은 무당복은 아니었고, 한복의 복식이었지만 날렵한 선이 살도록 특별히 제작된 도포같은 것이었다. 그 도포의 안에는 초영이 챙겨온 수많은 물품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치성수, 부적, 그 외 신령력이 깃든 많은 물품들.
초영의 어깨가 긴장한 듯 딱딱하게 움직이면서 핸들을 돌리고 있었다.
어두움은 산에서는 훨씬 빨리 찾아왔고, 이미 시간은 늦어 달이 하늘에 높게 걸려 있었다.
헤드라이트를 밝게 빛내는 프라이드는 이윽고 산장 앞의 주차공간에 멈추어 섰다.
산장은 통나무로 지어졌고 오랫동안 관리가 허술했던지 외벽이 이끼로 가득 뒤덮여 있었다.
초영은 담배를 한 대 물어 불을 붙이고는 산장의 외벽으로 다가갔다. 그 이끼들이 벌써 시꺼멓게 썩어 죽어있는 것을 헤드라이트의 불빛에 의존해 눈여겨보던 초영의 등 뒤로 누군가 초영을 불렀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산장지기처럼 보이는 사람이었다.
“별 말씀을.”
“아이는 데려오셨나요?”
“네. 뒷좌석에.”
“협회 분들은 안에 계십니다. 저희가 사람을 불러서 직접 데려갈까요?”
“아니요. 제가 하지요.”
썩은 이끼에 비벼지는 담배의 불똥. 초영은 뒷좌석 도어를 열고 아이를 양팔로 든 후 성큼성큼 앞서나갔다. 그 뒤를 그 산장지기가 뒤따라갔다. 산장의 문이 열리고, 초영은 한 번 심호흡을 한 후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외벽도 엉망이었지만 안은 더욱 엉망이었다. 사람이 근래에 한 번도 쓰지 않아 자욱하게 먼지가 앉은 가구들이 초영을 반겼다. 말이 가구이지 가구 같지도 않았다. 그냥 얼기설기 통나무를 대강 잘라 만들어놓은 것 같은 탁자와 세간이 전부.
“잠시 기다리시죠. 곧 나오실 겁니다.”
“흠.......곧 나오신다구요?”
초영이 아이를 그 탁자에 내려놓고는 갑자기 손을 뻗어 산장지기의 목을 거칠게 움켜잡았다.
“이.......이게 무슨?”
“잡귀님아. 술수는 그만하시고 대장잡귀님이나 나오시라고 하시게. 썩은 시체 가지고 장난질 하지 마시고.”
초영의 손아귀엔 이미 산장지기의 몸 안에 들어가 있던 영체가 잡혀 있었고. 산장지기의 몸에는 이미 초영의 날랜 손놀림이 쓴 치성수와 부적들이 들러붙어 있었다.
산장지기의 몸에서 빠른 속도로 역겨운 냄새가 풍겨 나오면서 거무튀튀하게 변한 살덩이들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이미 죽어있던 산장지기의 신체세포는 썩어 문드러진 지 오래였던 것이다.
초영의 손아귀에 잡힌 영체가 웃음인지 울음인지 모를 소리를 내면서 말했다.
“흐끼에케켁케겍......재주 하난 정말 좋구나......그래봤자......네 놈에게 길은 없다. 네 놈이 여기 들어온 이상은 이미 죽어나갈 시체나 다름없을 뿐!”
“말이 많으시군.”
전의 목사처럼 영체를 소멸시키자, 예의 괴상한 비명소리가 산장 안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잠시 후.
“역시 듣던 대로군. 인간 치고는 놀라운 솜씨야.”
영체를 소멸하고 아이를 다시 품 안에 안았을 때, 쩌렁쩌렁 울리는 듯한 목소리가 공간을 가득 메웠다.
거대한 존재. 산장 정도가 아니라 그 일대를 흔드는 존재의 강림.
그러나 그 외에도 다가오는 몇 개 자잘한 영들의 존재. 그들이 인간임을 초영은 어렴풋이 알아차렸다.
초영의 입으로 비웃음 같은 소리가 비어져 나왔다.
“푸훗.”
“흠?”
그 목소리가 잠시 움찔했다가 다시 울렸다.
“비웃는 것인가? 인간 따위가 나를?”
되려 차분하게 울려퍼지는 목소리에 초영이 답했다.
“잡귀님이 쓰시는 꾀 치고는 너무 얕아서 내 잠시 웃었으니 심려치 마시게. 어차피 인간의 꾀라도 빌린 것이겠지.”
초영은 아이를 곱게 문 쪽에 내려두었다. 아이는 이렇게 경황이 없는 와중에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른 채 그냥 잠들어 있었다.
“어째서 잡귀님이 협회와 건석의 목소리를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잡귀님이 모르시는 게 너무 많이 있다네.”
“모른다?”
“그래.”
초영은 핸드폰을 꺼내서 보여주었다.
“첫째, 협회는 내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네. 무교의 사람들에게 내 존재란 암부의 살인자 정도에 지나지 않지. 그런 협회가 내게 이런 심부름을 일일이 시킬 리가 없다네. 둘째, 잡귀님은 시간상으로 내가 어떻게 출발하든 해시(21:00-23:00)에서 축시(01:00-03:00) 사이에 도착할 수밖에 없는 장소로 날 부르셨네. 이 시간은 어둠을 틈타 귀기가 강해지는 시간, 보통의 협회사람들이라면 피하는 시간이기도 하지. 아, 물론 굿을 할 때는 보통 여러 인간들의 힘이 뭉치기 때문에 사정이 다르지만.”
“재미있군. 이 땅에서는 그런 식의 힘이 있단 말인가......그런데.......”
목소리가 의아함을 숨기지 못하고 물었다.
“왜 넌 여기가 함정이란 것을 알면서도 온 것인가?”
“그게 바로 셋째 이유라네, 잡귀님.”
초영의 손에서 희미한 빛이 일었다.
“난 해시건 축시건 상관없다네. 내 힘을 발휘하는데 있어서는. 그러니까 잡귀님의 힘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리고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더 좋다네. 이런 어린아이의 육신까지 이용해서 일을 벌이는 잡귀님이라면.......”
그 희미한 빛이 어느새 전신을 감싸듯 흐르고 있었다. 아지랑이 같기도 하고 살아있는 생명체 같기도 한 그 빛이 이윽고 강하게 타오르는 불꽃의 모양으로 변했다.
“그 잡스런 꿍꿍이 따윈 전부 뿌리 뽑아야만 할테니까.”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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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의 말.
1. 실제로 무당은 이런 식의 '전투'를 하진 않습니다. 그들이 하는 일은 굿을 통해서 화합을 다지는 일이거나 개인적인 일에 관련된 원령 등을 달래는 일, 혹은 신에 대한 제사 등등을 합니다.
그러나 이 스토리 상에서는 '협회'란 것이 존재하고, 그 '협회'에서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무속적 상황들을 해결한다는 설정을 잡았습니다.
2. 무교의 바탕개념은 원한을 풀고 화합하며 서로 상생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주인공과 '협회'가 하는 일과는 배치되며, 그 중에서도 주인공은 조금 이단적인 존재이지만 무교에서 용인하고 있는 존재로서 기능합니다. 그런데서 생기는 갈등들도 표현해보고 싶었습니다.
3. 누구나 무당이 모시는 개인적인 신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대체로 모시는 신이나 그런 면에서는 공통점들을 많이 보입니다. 여기 나오는 무당들의 경우는 재미를 위해서 조금 다르게 설정해보았습니다.
그 신은 페이트 스테이나이트의 개념처럼 파트너로서 기능합니다. 일반인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무당들끼리는 눈에 보이기도 하지요.
주인공은 특이하게 다른 사람들이 신으로 모실만한 존재들과는 달리 인간의 영, 즉 과거에 죽은 자신의 애인을 신이며 영적 파트너로 모시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기에는 상당히 엄청난 영력 등등이 필요하다는 설정도 당근 있죠. -_-;;; 무엇보다 인간이 죽으면 그 영혼이 저승으로 가야 한다는 순리를 어기고 있는 상황이니만치 그런 힘의 설정은 당연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