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뚱한 생각 2]

NEOKIDS 작성일 09.06.12 05: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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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 엉뚱한 생각이라는 제목을 달았으면 해봐야지.

 

나는 가끔 버스를 타면 그런 상상을 한다. 서울에 미사일이 날아온다. 63빌딩이 대박으로 무너지고 사람들은 어디서? 단순히 북한일까? 아니, 정체불명의 미사일이라 해보자. 북한은 아니라고 즉각 발표하지만 한미연합군은 이것을 빌미로 즉각 북한을 친다. 어라? 이거 괜찮네? 소설에 써먹어야 겠다 크헬헬헬.

그런데 여기까지 생각을 해놓고, 실제로 글을 쓰면 너무나 빈약하게 되어버린다. 그것이 지금 현재의 문제인데, 이 부분은 솔직히 끈기밖에 답이 없다.

왜냐, 스토리를 진행하면서 묘사를 하든 대화를 하든 늘 기본적인 태도는 자신이 영화를 보고 있고 그 영화의 장면들을 옮기고 있다고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묘사를 할 때는 역시 오감을 자극하는게 좋다. 그런데 글로? 이미 영화나 동영상이라는 매체가 그걸 다 해주고 있는데? 글은 그래서 불리하다. 하지만 글이 읽는 사람의 자극점을 파고들어 마침내 두뇌 속의 상상이라는 영역을 자극할 때 글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극치감을 준다. 때로는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걸 영화화 했으면 좋겠다는 열망도 가지게 만든다.

 

영화라는 매체는 확실히 현대에 있어 다른 매체들이 따라올 수 없는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그 근간은 역시 글이다. 그렇게 따지면 만화라는 매체도 마찬가지고, 애니메이션이라는 매체도 마찬가지다. 왜냐, 그것들을 만드는 데 있어 가장 기초적인 부분들이 글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글에서 죽으면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장면이 안나오면 그 영화는 망한 영화다. 때로는 글이 살아도 장면이 살지 않는다. 그건 옮기는 과정에서의 문제이지 글의 문제는 아니다. 즉, 영화가 죽건 살건 글은 살아있어야 한다는 게 초거대명제인 것이다.

 

2.

 

자,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했던 좋은 생각들은 아직 자기 혼자 좋은 것이다. 그렇다고 자괴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뭐든지 글은 일단 내가 좋으니까 쓰는 것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태도는 곤란하다. 예를 들어 한국 판타지 소설 중에 욕먹는 것들을 살펴보자. 혹은 무협지라도 좋다. 왜 재미가 없고 욕을 먹을까? 설정이라는 것을 여과없이 받아들여 그 설정이 모든게 되어버리는 상황이다.

 

파이브스타스토리라는 만화를 살펴보자. 만약 그게 아마테라스라는 신격화된 인물의 행위에만 촛점이 맞춰져 있고 모터헤드나 세계관 같은 부분만 신나게 늘어놓은 작품이라는 생각을 해보자. 그거 읽고 우와~~~ 이런 맘이 들겠나? 역사설정표를 아무리 갖다 댄들, 모터헤드의 이레이져 엔진이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고 어떤 원리로 움직인다고 한들 그런 건 하나도 재미가 없다.

 

파이브스타스토리의 진짜 재밌는 점은, 이런 것들이 인간의 욕망이나 대의명분에 의한 갈등에 의해서 진행된다는 점이다. 아마테라스가 아무리 신격화되어 있어도 그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불안감을 끊임없이 드러낸다. 그건 레디오스 소프라는 다른 인물로 여행을 다니거나, 자신의 출생에 대해서 괴로워 하는 장면들을 보면 안다. 거기에 파티마 라키시스의 불안한 설정이 더 얽히면서 불완전한 존재들이 서로를 보완하는 상이 신화적 요소들을 덧씌워 그려진다. 다른 인물들의 갈등은? 기사, 모터헤드, 수많은 설정들에게서 파생되는 점들이 녹록지않게 녹아있기에 명작이란 말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것들의 디테일함은 소설가가 본대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것이다.

 

이걸 한국 욕먹는 판타지에 대입하면 답은 금방 나온다. 갈등은 적과 나 이딴 식의 이원 구조로 단순한데 마나니 뭐니 자기들만 아는 이야기만 잔뜩 늘어놓고는 재미를 느끼라고 하는거다. 거기다 관념은 상명하복식의 밋밋한 구조다. 끽해야 배신이다. 나쁜 놈들이 하는 이야기나 행동은 항상 봐왔던 식이고 좋은 놈들이 하는 짓들도 항상 봐왔던 식이다. 항상 봐왔던 걸 뭐하러 읽지? 한국 판타지의 공장형이 욕을 먹는 이유는 이런 식이다. 그럼 고민좀 해야 하는데 또 색다른 설정에만 집착하는 거다.

 

본인도 판타지같은 소설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 요즘 나오는, 로봇과 판타지가 결합된 식의 것이다. 당연히 세계관이 있어야지. 하지만 기존의 판타지 같은 세계관은 쓰고 싶지 않았다. 기왕 해보려면 현실이 녹아 들어간 판타지가 있어야지. 그래서 국가설정도가 남북한과 같은 관계에서 시작되고 있다. 하지만 그것도 그냥 그대로 옮기지 않고 비틀어서 생각해보려 노력했다. 쓰는 기술 같은 설정도 그렇다. 마나니 뭐니 기원도 모를 단어들이 무분별하게 쓰이는 현실이 싫어서 기원부터 만들어보려 생각했다. 

 

이런식으로 생각하다 보니 처음엔 남자가 위험에 빠진 여자를 구한다는 단순한 구조에서 엄청나게 방대한 구조가 되어버렸다. 그게 나쁜건가? 아니! 그건 작가의 의무다. 끊임없이 생각해야 하는게. 작품 하나 못낸 나조차도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는데, 작가라는 직함을 가진 자들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지 않으면 그건 직무유기다. 그런데 한국 판타지의 쓰레기라 불리는 것들이 이런 직무유기를 했거든. 그러니 욕먹는 거지.

 

 

3.

 

독자들이 진짜 재미를 느끼게 만든다는 건 힘들다. 어떤 자는 빵을 좋아하고 어떤 자는 떡을 좋아하고 어떤 자는 채식을 좋아하는데 거기에 다 맞출 순 없는 거다. 그러나 중점은 그거다. 빵을 좋아하든 떡을 좋아하든 채식을 좋아하든 본질은 한 가지다. 먹을 거. 인간이란 동물만큼 먹을 것에 정성을 들이는 종족도 없을 거다. 먹을 것이 미학적으로 승화되기도 하는 세상이다. 글을 쓴다는 사실도 그런 거다. 그렇다면 먹을 것이라는 본질을 바라봐야 한다.

 

그렇지 않은 결과물은  그건 집에서 간단하게 밥과 김만으로 만든 김밥보다도 못한 먹거리가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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