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스티븐 킹은 달리 명사가 된 것이 아니다. 그는 압도적인 묘사의 물량으로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리듬을 살려야 하는 부분에서도 신나게 묘사의 길을 달려간다. 적어도 최근에 본 '스탠드'는 그랬다. 그런데 그 묘사가 너무 생생해서 재밌는 경우가 있다.
반면 이영도의 경우는 글솜씨가 매끄럽다. 스토리도 묵중하게 흘러간다. 하지만 이건 아니지 싶다. 이건 한 번 읽고 휙 던져버릴 수가 없다. 단어의 조합들은 기기묘묘하게 매력을 뿜어내고 워 대단하군 해서 흡인력이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영도 식은 상당히 부담스럽다. 뭔가 꾸며낸 느낌이 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막연한 느낌. 누군 이렇고 누군 저렇다는 느낌 자체만으로 작품을 예단하기는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심리학적인 면에서의 첫인상을 뭐든지간에 갖게 마련이다. 작품도 마찬가지다. 읽는 첫장부터 끌어들이지 못하면 대중소설은 실패다. 하지만 그 부분은 독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2. 첫인상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옷과 외모의 권위로 인한 첫인상은 7초 안에 형성된 이후 40시간을 거쳐 수정된다. 그 수정하는 부분은 자신이 하기 나름이다. 현실상에서만 그런가 싶은데 그건 소설에서도 적용된다. 만약 첫 부분이 강렬했는데 점점 갈수록 그 첫부분의 강렬함을 살리지 못한다면 이미 죽어버린 작품이다. 작가에게 아무래도 가장 치욕적인 건 끝까지 책을 읽지 않고 던져버리는 상황이 발생할 때일 것이다.
글을 쓰는 사람들 누구에게나 이러한 고통이 있다. 글을 쓰는 도중에 자신의 글을 엉망진창이라고 예단해버리는 것이다. 중요한 건 뭐든 끝까지 써보는 거라는 거, 누가 모르나. 하지만 그건 쉽지 않은 일이다.
가장 좋은 것은 단편을 써보는 것일게다. 그렇다. 확실히 그건 효과가 있다. 처음엔 줄 간격을 왕창 넣은 A4용지 2장짜리 소설이라도 좋다. 처음이 있고, 그 처음이 결과까지 달려간다면 성공한 거다. 그럼 그 때부터 욕심이 난다. 묘사, 좀더 간결하게, 이건 이런게 더 논리에 맞지 않는가, 이런 저런 것들을 더 생각할 수 있을 때, 이제 겨우 글을 자신있게 쓸 수 있는 출발점에 서는 것이다.
이런 부분에서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작가 박민규는 특이한 형태이기도 하다. 그는 아예 처음부터 장편을 썼고 그걸로 상을 받았다. 그게 재능 탓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글쓰기의 재능은 막말로 기타 치는 재주만큼이나 따라가기 쉽다.
3. 글은 누구나 쓸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자신이 그렇게 쓸 욕심이 없거나, 그렇게 쓰지 못한다고 먼저 생각하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언제나 글을 잘 쓰는 사람들 뒤에는 훌륭한 마누라가 있었다. 박민규도 회사를 바로 그만두고 글쓰기에만 골몰하는 남편을 바라봐주는 아내가 있었고, 스티븐 킹도 자신의 초고를 마누라한테 먼저 읽게 한 후 반응을 체크해서 버릴 건 버리고 남길 건 남겼다. 심지어는 폴 바호벤 같은 경우까지도 보면, 로보캅의 초안을 뭐 이따위 거지같은 하면서 폴이 내팽개친 걸 마누라가 잘 읽어보라고, 나름 재밌다고 다시 주워줘서 엇 이것은? 하면서 도전하게 만든 거다. 그러고 보니 스티븐 킹도 캐리의 초안을 쓰레기통에 버렸던 걸 마누라가 주워줘서 그걸로 대박이 난 거였지.
작가들이여. 마누라를 숭배할 지어다! 그들은 명작의 구원자들이니라.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