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괴한 망상의 둥지 - 여왕 (2)

NEOKIDS 작성일 09.06.14 09: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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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서울, 같은 산중턱, 이제는 빈민가가 되어버린.

 

“부숴버려!”

“안 돼, 이놈들아!”

 

악다구니와 실랑이가 벌어졌다. 해가 벌건 낮의 일이었다. 세간들이 전부 끌려나와 바닥에 패대기 쳐졌고, 유리창과 벽은 해머로 박살이 나고 있었다. 그 모습을 할머니 한 분이 넋이 나간 듯 보고 있었다. 할머니의 입에 매달린 담배는 재만 길게 남기고 타들어갔지만 그 재를 떨 생각을 하지 못했다. 며느리는 피둥피둥 살만 찌운 용역들의 팔뚝 사이에서 실신했고, 몸뚱어리는 세간들과 마찬가지로 패대기쳐지다시피 한 쪽 구석으로 치워졌다.

 

무력시위가 어느 정도 끝나고 포크레인이 등장하는 한 쪽에서 이 집의 가장이 나타났다. 한쪽 손에는 신너가 가득 든 통을 들고 있었다.

 

그에겐 아이가 셋이 있었고, 모두 학교에 가 있는 시간이었다. 그 아이들의 얼굴이 아른거렸지만, 그것이 그의 분노와 증오를 억누를 수는 없었다. 그 집이 어떤 집인데. 자신이 처음으로 샀던 집이고 어머니를 모셔왔으며 가족들을 13년간 지켜왔던 집이 아니던가. 재개발구역이라는 딱지만 붙이고 보상도 제대로 쳐주지 않으면서 이것들은 사람을 바퀴벌레 목숨보다도 더 우습게 여겼다. 사람을 바퀴벌레로 봤다면, 그 바퀴벌레가 어떤 무서운 짓을 하게 되는지 똑똑히 보여줄 참이었다.

 

남자는 자신의 머리 꼭대기부터 그 신너를 들이부었다. 빨간색 일회용 불티나 가스라이터의 부싯돌이 돌아감과 동시에 그는 불덩어리가 되었다. 그 불덩어리는 달려나가 용역 몇 놈들의 면상에 신너를 뿌려댔다. 불이 옮겨붙은 신너가 허공에 발사되는 화염방사기의 내용물처럼 날아가 그대로 불을 붙였다.

 

용역 몇 놈들이 얼굴을 붙잡고 데굴데굴 구르는 사이 용역들의 오열이 단번에 흩어졌다. 그 흩어진 틈으로 불덩어리가 달려가 이번에는 포크레인 기사를 붙잡고 끌어내리고 자신이 그 좌석에 앉았다. 기사의 엉덩이에 닦여 반들반들하던 좌석이 고약한 냄새를 내며 같이 타기 시작했다.

 

불덩어리의 힘은 마지막 분노 하나까지도 짜내려는 듯 했다. 고통이 엄청날 텐데도 남자의 손이 포크레인의 조종간 하나를 마구잡이로 움직였다. 포크레인 삽이 붕 하고 공기를 가르면서 용역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날아들었다. 머리가 깨지는 자, 갈비뼈가 으스러지는 자, 고깃덩이와 피가 온 사방에 튀었다.

 

핏방울이 남자의 어머니, 할머니의 얼굴에 떨어졌지만, 할머니는 아직도 넋이 나가 있었다.

담배의 재는 바람에 떨어진 지 오래였다.

 

치지이이익.

“아직도 북한의 군사적 위협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정권이 이미 중국 손에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중국의 의지라고 봐야 하며, 현재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도 중국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정부는........”

 

치지지지지익.

“자, 오늘은 참 상쾌한 바람의 5월이죠? 때로는 이런 좋은 날씨가 정말로 싫을 때가 있어요. 특히 우울한 일들이 생기는 날들이면 더 그렇죠. 그런 기분 날려버리시라고 노래 한 곡 띄워 드릴께요, 동방불패의 다 잘 될 거야........”

 

치지이이이이익.

“아니, 그게 뭐냐고. 아놔 이 사람 참 짜증나게. 왜 그렇게 하고 살아요. 그냥 무시하고 살면 될 거를 뭐하러 붙잡느냐고요 크크크크........”

 

치지이이이이이익.

“오늘 낮 2시경 **동 재개발 구역에서 퇴거를 집행하던 용역직원들이 다수 부상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직원들은 **동 741-16번지 퇴거를 집행하던 중 집주인 마흔 여섯 살 신모씨가 신너를 뿌리는 테러를 벌이며 직원들을 몰아내려다 벌어진 일로 경찰조사 결과 밝혀졌으며, 신모씨는 몸에 불이 옮겨 붙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동 도중 사망했습니다. 다음 소식입니다......”

걸쭉한 트로트가 흘러나오고, 주파수는 고정되었다.

 

채상준은 그 중에서도 라디오의 **동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들었다. 채상준이라는 이름은 그가 입은 군복에도 박혀 있었다. 오르막을 오르는 버스가 1차선짜리 좁은 길을 뒤뚱대며 달려나가자 상준은 잠깐 어지럼증을 느꼈다.

 

휙휙 지나가는 풍경들이 답답한 상준의 맘속을 달래주진 못했다. 그 버스는 **동을 경유해서 가고, 자신은 **동에 내릴 것이고, **동 741-10번지로 갈 거니까. 그게 자신의 집이니까. 그리고 16번지면 자신의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집이고, 더군다나 16번지면 신씨 아저씨네가 살던 집이고, 16번지네 그 딸 둘에 아들 하나까지 한꺼번에 떠오르는데 지금 뭐가 상준의 맘 속을 달래준단 말인가. 거기다 16번지가 그 꼴이 되었다면 그보다 좀 더 위쪽인 10번지 자신의 집도 그런 꼴이 닥쳐오는 것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어머니는 앓아누웠고, 집에는 중1짜리 여동생밖에 없으며, 지금 자신은 그나마 겨우 구한 일자리를 이놈의 기초군사훈련 6주짜리 갔다오는 것 때문에 그만 둬야 했고, 원래는 면제지만 시국이 시국인지라 어쩔 수 없이 군사훈련은 받아야 한다는 병무청의 사무적인 말투를 상준은 다시 떠올려봤다. 그리고 그 옆엔 당당히 면제사유서류를 제출하고 나가는, 말쑥하게 차려입은 한 놈이 자신을 힐끗 쳐다보고 있었다.

 

“이번 정류장은 **동 동사무소, **동 동사무소입니다. 다음 정류장은.....”

 

녹음된 목소리를 듣고 상준은 급히 일어났다. 버스는 상준이 내리자마자 매연을 뿜으며 달렸다. 머플러가 고장이 나버린 건지 소리도 요란했다. 상준은 잠시 멀어져가는 버스를 잠시 바라보다가 등을 돌렸다. 산동네의 살풍경함이 눈에 닥쳐 들어왔다.

 

상준이 10살 때 쯤인가. 그 때쯤엔 깨끗하고 사람들마다 정감이 넘쳐 인사를 하던 동네. 하지만 지금은 철거민들이 저항하는 탑을 중심으로 우중충하고 다 쓰러질 듯한 건물들 사이로, 마치 스폰지에 뚫린 큼직한 구멍들처럼 군데군데 철거해서 쓰레기만 쌓인 집터들이 있는 빈민촌이 되어버렸다. 많은 사람들은 애저녁에 떠나갔고, 남아있는 것은 이 도시가 토해놓은 토사물 같은 사람들뿐이었다. 아니면 상준처럼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이었거나.

 

상준은 이 동네를 떠나고 싶었다. 어머니와 동생을 생각하면 더욱 그랬다. 하지만 동생이 들어오고 2년 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자 그럴 수가 없었다. 그때도 지금도 앓아누운 어머니는 그 집을 떠나기 싫어했다.

 

지금이라도 늦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다. 거지같은 보상금이나마 받고, 이 동네 아니라도 어디든 살 수는 있을 거라고, 동생과 어머니 모시고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다짐했다. 그리고 오늘은 어떻게든 그렇게 만들 거다. 어머니를 설득해서.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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