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괴한 망상의 둥지 - 여왕 (3)

NEOKIDS 작성일 09.06.15 22:4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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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준이 언덕길을 터벅터벅 걷고 있을 때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낡은 시티100 오토바이가 급하게 다가오더니 그걸 몰던 노란머리 애가 어깨를 툭 쳤다. 정규였다.

 

“*놈, 갔다 왔냐? 훗.”

“그래, *야. 갔다 왔다.”

“군복 좋은데? 푸하핫!”

“좋기는 개뿔. 너도 멀지 않았어 새끼야.”

 

상준은 어깨동무를 하려는 정규의 손을 뿌리치면서 웃으면서 말했다. 정규가 상준의 군모를 빼앗아 자기가 써보면서 경례를 올려붙이는 통에 상준은 피식하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어머님은?”

“늘 그러시지 뭐.”

“그렇구나.”

“넌 뭐하고 먹고 사냐?”

“나? 뭐 그냥 백수지. 좆같은 세상인데 일 해봤자 뭐하냐. 여기저기 다니면서 빌어나 먹는 거지. 뭐 정 돈 없으면 노가다도 뛰고 그러고 있다.”

“* 새끼. 그게 자랑이냐?”

 

그렇게 말하면서도 상준은 그럴 수밖에 없는 정규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정규가 당한 꼴이라고 상준도 안 당해 본건 아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상준은 근처 공고에 들어갔고, 거기서 정규도 만났다. 그리고 둘은 얼마 지나지 않아 엇비슷한 이유로 그것도 그만 두었다. 돈 때문이었다.

 

돈 버는 일이라면 뭐든지 했다. 그래봤자 주유소, 신문팔이, 패스트푸드점 같은 곳의 일들이었다. 그러나 뭐든 하나 나아지는 것은 없었다. 상준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그런 곳들은 어떻게든 상준을 물먹였다. 가게가 망해 없어지거나, 돈을 제대로 주지 않거나. 동네에서 담배 한 대 나누면서 이야기를 할 때, 정규가 당한 일도 엇비슷했다. 이 동네에서 자라오다 보면, 너나 할 것 없이 엇비슷한게 많아지기 마련이었다.

 

“3개월 전인가? 오토바이 배달 뛰었는데, 동네가 이 꼴이 되고 나서 사람도 차별하는 거 같더라. 월급도 제때 안주고. 성질나서 배달하려던 음식 나랑 애들이랑 다 먹고 이 오토바이까지 쎄볐지 뭐. 짭새가 며칠 뒤지길래 조용히 죽어지냈다. 그 짱께 사장새끼 우리집에 와서 한바탕 지랄쳤대드라. 지랄쳐봤자 거지똥구녁에 걸린 콩나물 같은 집구석에 나올게 있나.”

“그래서 요즘 안보였구나.”

“그래도 니 소식은 듣고 다녔어 임마. 니 동생도 은근 이쁘게 컸든데? 중학교 들어갔지? 아마.”

“이 새끼, 또 내 동생 달라니 매형이니 지껄이지 마라.”

“근데 *, 몇 번 보긴 했는데, 너랑 존나게 닮아가더라. 이상하지 않냐? 걔 니가 니네집 대문에서 주웠대며. 생판 남인데.”

“좀 깝싸대지 말라고 했지. *놈아. 말했잖아. 그래도 동생이라고.”

 

상준이 장난처럼 말했지만 정규는 그 말을 진지하게 들었다. 누구라도 진지하게 들을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그런 말 입에 담았다가 신나게 주먹다짐을 해보고 난 후라면.

 

“알았어. 스탑. 아, 나도 군대 안가면 얼마나 좋을까.”

 

이 말을 뱉고 정규는 미안한 듯 잠시 상준의 눈치를 보다가, 나직이 말했다.

 

“아, 까먹을 뻔 했다. 떡환이 새끼 조심해라.”

“떡환이 그 새끼는 왜?”

 

그 떡환이라는 이름을 듣자 상준의 입맛이 써졌다. 애초에 그녀석이랑은 사이도 좋지 않을뿐더러, 그 떡환이라는 별명이 붙은 과정부터가 맘에 안드는 자식이었다. 원래 이름은 김덕환인데, 여자를 *해 봤다고 지 입으로 떠벌리고 다녀서 붙은 별명이었다.

 

“나 요즘 걔랑 어울려 다니는데, 걔네 집 철거당했었거든. 안 그래도 조또 무식한 새끼가 용역 한 놈 패고 딸려들어갔다 나오드니 애새끼가 독이 올랐어. 요즘 좆 꼴리는 대로 들이받고 다녀. 그런데 그걸 누가 말리냐. 이 동네가 경찰이 오냐. 불러도 안 오는 동넨데. 나도 눈치 봐서 좀 떨어져 지낼라고. 하여간 마주치지 않게 조심해라. 평소에 너랑 별로 사이 안 좋았잖아.”

“알았다. 똥은 피하고 다녀야지.”

“그래, 조심하고 새끼야.”

 

지독하게 덜덜대는 소리가 나는 오토바이가 골목길을 울리면서 재빠르게 사라지고 나서야 상준은 다시 가던 길을 재촉했다. 떡환이 이야기가 묘하게 머릿속에 남았지만 상준은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봐야 떡환이 새끼였다. 동생을 놀려대다가 자신한테 죽도록 얻어터졌던 * 같은 자식.

 

상준이 녹슬은 대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마당에 있던 동생 아영이와 눈이 마주쳤다. 겁을 잔뜩 먹었던 눈이 이번엔 반가움의 빛으로 바뀌었다. 머리를 제법 길러 묶고 다리도 훤칠해 진 게 중학교 1학년생이라고 해도 이젠 숙녀 티가 났다.

 

확실히 그렇게 못 먹고 자란 가운데서도 아영의 발육은 남다른 데가 있었다. 하지만 상준의 눈에는 그저 10살 때 대문 앞에 버려져 있던 아기의 모습마냥, 그냥 꼬맹이일 뿐이었다. 아영과 상준은 잠시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런 서먹함을 먼저 깬 건 상준이였다.

 

“학교 갈 시간 아니냐? 집에 왜 있어.”

“그냥 쉬기로 했어.”

“뭐?”

“엄마 상태도 안 좋고, 오빠도 오고, 그래서 집에 있는 게 낫겠다 싶었어.”

“웃기지 마. 공부나 열심히 할 것이지 무슨 걱정을 너까지 해? 됐어. 다음부터는 학교 빠지지 마.”

 

상준은 무뚝뚝하게 쏘아붙이고는 현관으로 들어가려 했다. 하지만 현관으로 채 들어가진 못했다. 아영이가 등 뒤에서 갑자기 세게 껴안은 탓이었다.

 

“오빠 없는 동안......얼마나 무서웠는지 알아? 엄마도 누워있고, 신씨 아저씨는 그렇게 끔찍하게 죽어서 동네도 우울하고. 갑자기 용역들이라도 쳐들어오면 나 혼자 어떻게 해? 그리고 그 땐 집에 엄마 혼자 있을 텐데, 누가 보살펴 줘?”

“...............”

 

상준은 돌아서서 이번에는 자신이 아영이를 안아주었다.

 

“오빠가 생각이 짧았다. 미안.”

 

아영은 말없이 흐느꼈다. 상준이는 그런 아영이의 등을 두드리면서 달래주었다.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상준은 팔을 풀었다.

 

“안 그래도, 오늘 어머니랑 그 얘기 할 거야. 얼마 안 되는 그 보상금이라도 받고, 이 마을 나가자. 나가서 뭐 어디든 살 길이 있겠지.”

 

이 마을을 나간다는 이야기에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던 아영이의 얼굴이 확 펴졌다. 하지만 다시 이내 어두워졌다. 그건 아영이의 친구들과 모든 것들을 뒤로 한다는 이야기라는 걸 상준이 모르진 않았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지금 살아남는 게 더 중요했다. 살아남으면, 다시 친구도 생기고 모든 것이 거짓말처럼 원래대로 돌아올 것이다. 특히 아영이의 나이대는 더 그렇지 않은가. 애들은 애들일 뿐.

 

“어떻게든, 해보자. 알았지?”

 

상준은 군복 소매로 아영이의 눈물을 닦아주고는 머리를 거칠게 한 번 쓰다듬었다. 그리고는 현관문을 열었다. 어머니의 밭은 기침소리가 들려왔다. 그 기침소리의 거친 감이 기초군사훈련을 다녀오기 전보다 훨씬 심해져 있었다. 상준은 잠시 미간을 찌푸리다가 군화를 벗기 시작했다.

 

“어머니, 이젠 나가셔야 해요.”

“못나간다.”

“이렇게 계실 순 없어요. 소식 못 들으셨어요? 벌써 저 밑의 16번지까지 끝났어요. 이번 주에서 다음 주 정도면 여기도 헐린다구요.”

“헐 테면 헐어보라고 해라. 여기가 어떤 집인 줄 알고! 네 아버지가 피땀 흘려 벌어서 산 집이야! 우린 이 집에서 10년 가까이 살았어! 네 아버지 가시고 우리가 어떻게 이 집을 지켜왔는데. 못나간다. 못나가!”

“어머니! 지금이 몇 년도인지 아세요? 2023년이에요. 무슨 조선시대 같은 이야기를 하세요! 우린 이 집 때문에 전부 죽게 생겼다구요. 제발 그러지 마시고 나가서 살아요. 네?”

“잘난 느그들이나 나가서 살......”

 

상준의 어머니는 더 말을 하지 못하고 기침으로 끝을 맺었다. 그리고 그 기침에는 피가 섞여 나왔다. 상준 어머니의 병은 폐결핵이 가져오는 합병증이었다. 그것도 상준 아버지가 죽고 나서 자식들을 위해 한창 일할 때 얻은 것이었다. 폐결핵 따위로 죽는 사람이 2012년에 있을까 싶었지만 예외는 있었다. 먹는 게 시원찮은 사람, 약을 못 구하는 사람,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느라 병원도 못가는 사람. 약값은 * 듯이 뛰었고, 의료보험은 재원상의 문제를 들어 이미 일반 약품들에 대한 지원을 포기했다고, 이것은 * 짓이라고, 상준은 지나다니며 얼핏 들었다.

 

‘개뿔, 알게 뭐야!’

 

이 소리도, 저 소리도, 다 듣기 싫었다. 상준과 동생과 어머니에게 남은 것은 발버둥을 쳐도 살아남을지 어떨지 모를 막막한 시간들이었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아직까지 정신을 못 차리고 계신다. 아니, 어쩌면 병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 싶었다. 그래, 병 때문일 거야. 상준은 그렇게 믿고 자리를 일어났다.

 

“어머니, 어머니가 어떻게 하시든, 우린 이사 갈 거예요. 어머니도 함께요.”

 

상준은 방을 박차고 나갔다. 그런 상준의 등 뒤를 아영이가 걱정스런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독수리둥지. 독수리둥지. 여기는 독수리 1호. 생쥐들이 둥지를 옮긴다. 16번지 사고 이후 결심한 모양이다.”

“여기는 독수리둥지, 10분 후 다시 연결하겠다.”

 

그리고 정확히 10분 후.

 

“여기는 독수리둥지, 독수리둥지 쪽에서 생쥐들의 안전을 보장할 것이다. 독수리 1호 역시 생쥐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라. 명령 다시 반복. 독수리 1호는 생쥐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다.”

 

무전기에서 명령을 받은 독수리 1호의 두 남자가 무전기를 껐다. 그리고는 밴의 안쪽에 만든 좁다란 간이 시트로 한 사람이 몸을 뉘였다. 그리고 한 사람은 벗어두었던 헤드셋을 다시 썼다.

 

헤드셋의 선 끝에는 온갖 도청에 필요한 수신장치들과 전파를 수신하기 위한 보조장비들의 불빛이 빛나고 있었고, 거기에 연결된 전기선들이 얽혀져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지만 남자들은 청소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아니, 거의 그럴 틈이 없었다. 하루 종일 생쥐들의 상태를 파악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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