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준은 아영이가 숙제를 하다가 잠이 든 걸 확인한 후 집을 나섰다. 시계는 8시 20분 전이었다. 이번엔 장난이 아닐 것 같아서 준비도 했다. 그래봐야 압박붕대와 일회용 라이터, 전에 얻었던 나이프 정도였다. 압박붕대를 손에 묶으면서 거기에 라이터를 같이 동여매고 주먹을 쥐면 보통 주먹보다는 훨씬 파괴력이 높아진다는 것쯤은 싸움 좀 해봤다면 기본 상식이었다.
나가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가지 않는다고 아, 그러세요, 하고 단념할 떡환이가 아니란 것도 잘 알았다. 그렇게까지 경고했는데도 다시 덤비는 꼬라지를 보면 알 수 있었다. 이런 놈은 한 번 지옥까지 가야 정신을 차리지. 상준은 이를 꽉 악물고 이번에는 정말 봐주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압박 붕대가 촘촘히 묶여졌을 때쯤 상준은 놀이터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 곳엔 단 한 명이 있었다. 정규. 떡환이 패거리들의 낌새는 주변의 그 어디에도 없었다. 이상했다. 적어도 두 세 명 정도는 보여야 되는데.
“떡환이 어딨냐?”
“그게......나도 나중에 나오라고 해서 뭐가 뭔지.......”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몰라서 잠깐 기다려볼까 하고 놀이터의 벤치에 앉는 순간, 상준은 갑자기 뒤통수를 얻어맞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불길한 예감.
지금 집엔 동생이랑 어머니 밖에.......
“야.......젠장........이 새끼 설마 이거.......”
정규도 뒤늦게 알아챈 모양이었다. 정규는 오토바이의 시동키를 돌렸다.
“야, 빨리 타라!”
떡환이네 패거리는 벌써 상준이네 집에 들어와 있었다. 현관문의 유리는 깨지고 잠금쇠는 돌아가 현관문은 활짝 열려있었다. 그놈들이 목적으로 하는 사람은 단 하나 뿐이었다. 아영이. 하지만 그놈들은 처음에 안방문을 잘못 열었다.
“누구세요?”
병의 고통스러움에 깨어있던 어머니의 입을 두어 놈들이 거칠게 막았다. 그 어머니의 손발이 힘없이 설레발이를 쳤다. 놈들이라면 충분히 막을 수 있을 정도로. 하지만 시끄러운 소리들까지 다 막을 수는 없었다.
“야이 씨-발 좀 조용히 시켜!”
떡환이 나직하게 주의를 주는 그 때,
아영이의 방문이 열렸다.
“오빠, 오빠야?”
눈을 비비며 나오던 아영이는 떡환이네 패거리가 마루를 점령하고 있는 모습을 보는 순간 멈칫했다. 욕정에 물들어 혼탁한 눈동자들이 아영이의 반바지 차림의 몸을 훑어보았다. 아영이는 다시 들어가 문을 잠그려 했지만 이미 굳어버린 몸이 단번에 반응을 해주지 않았다. 떡환이의 손이, 다른 여러 사람들의 손이, 아영이의 몸을 붙잡고, 입을 막았다.
속옷이 벗겨지고, 징그러운 혀들이 날름거렸다. 두려움과 혐오와 착란의 감정들이 아영이의 머릿속을 휘저어놓았다. 오빠를 부르기 위해 소릴 질렀다. 혀는 제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소리 또한 입 안에서, 머릿속에서 맴돌 뿐이었다. 아영의 두 눈으로 떡환의 두 다리 사이에 달린 거무튀튀한 것이 들어왔다. 그것은 이미 부풀대로 부풀어 있었다.
아영이는 울면서 오빠를 불렀다. 눈 가장자리가 찢어져라 눈을 부릅떴다. 그 눈에서는 눈물이 계속 흘러나왔다.
몸 안에 뜨거운 것이 흘러들어오던 마지막 순간까지.
“이거........뭐야........”
“이 개-새끼들이!”
독수리 1호와 2호는 헤드셋을 팽개치고 뛰어나갔다. 양아치 새끼들을 골로 보내려던 무기들의 준비를 끝마치고 잠시 헤드셋으로 생쥐들의 동태를 파악하던 참이었다. 갑자기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나고, 비명소리와, 그 비명소리를 억지로 틀어막는 듯한 소리, 거친 숨소리들이 헤드셋을 울렸다.
독수리 1호와 2호는 처음에 무슨 상황이 발생한 것인지 깨닫지 못하다가, 순간적으로 사태를 파악했다. 그들은 준비해뒀던 테이저건과 삼단봉, 나이프들을 챙겨 밴 밖으로 뛰쳐나와 **동 10번지를 향해 달렸다. 그들의 달리기 속도로 빠르게 가면 10여분 안에 갈 거리였다.
그들에겐 상황이 정말 거지같았다. 생쥐들이 위험한 것이다. 정기 보고 시간이 돌아오기 전에 해결하지 않으면 장밋빛 미래는 영원히 안녕이 될 지경이었다.
떡환은 아영이의 몸 위에 축 늘어졌다. 그 꼴을 본 다른 놈들이 숨을 헐떡이며 재촉했다.
“새꺄, 빨리 좀 나와봐. 나도 좀 하자.”
떡환은 씩 웃으면서 일어나서 아랫도리를 추슬렀다. 아영은 이미 실신이라도 했는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눈은 부릅뜬 채였다.
“너 이 새끼 이거 완전 토끼아냐?”
떡환이 너무 빨리 일을 끝내는 모습을 보고 기다리던 한 놈이 우스개소리를 던졌다. 떡환은 그 놈을 보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야야. 이게 프로라는 거야. 응? 흥분한 상태에서 후딱 해치우고 가야지 오래 있다가 짭새한테 걸리는 꼬라지 되게?”
“그래도 좀 즐기는 맛이 있어야지. 이건 뭐~”
“시끄럽고, 빨리들 끝내.”
그 때 상준어머니의 방 쪽에 있던 두 명이 아영의 방 안으로 들어왔다. 얼굴이 완전히 사색이 되어 있었다.
“야, 뭐야? 왜 그래?”
떡환이 묻자 두 명이 눈을 멍하게 뜬 채 피 묻은 손을 떨면서 말했다.
“우리, 사람 죽였나봐........아주머니가.........피를 토하는데.......계속 우리가 입을 틀어 막았거든.......”
떡환은 불쾌감을 떨치려는 듯 짐짓 쾌활하게 말했다.
“야야, 괜찮아. 저러다 또 일어나겠지.”
그 불쾌감을 애써 지우면서, 다른놈들이 아영이를 겁탈하는 꼴을 보려고 떡환이 고개를 돌렸을 때였다.
떡환은 자신의 발로 뭔가가 뚫고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아프지가 않았다.
희한한 느낌에 떡환은 자신의 발을 내려다보았다.
신발을 신고 있는데도 그런 것은 이미 녹아서 뚫어져 있었고, 하얀 색의 가느다란 나무줄기 같은 것이 지렁이가 움직이는 것처럼 자신의 신발 안으로 계속 스르륵거리며 들어오고 있었다.
떡환은 다시 한 번 그 광경을 멍하니 보다가 나무줄기로 시선을 따라가 보았다. 나무줄기는 방바닥에 이미 다 퍼져 있었다. 자신과 함께 왔던 패거리들 모두도 몸이 전부 냉동실 안에 오래 방치된 고기덩이들처럼 굳어진 채였다. 나무줄기는 그 패거리들의 발을 통해서, 다리의 혈관들을 울룩불룩하게 만들면서 계속 몸 속을 헤집으면서 올라가는 것처럼 보였다.
떡환의 상황이라고 다를 건 없었다. 떡환의 심장이 미쳐버린 듯이 널을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떡환의 시선은 마침내 그 나무줄기들의 진원지에 멈추었다.
벌거벗겨진 아영이의 등 쪽이었다.
그럼 아영이의 위로 엎드린 놈은?
그놈은 허공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얼굴은 근육들이 다 틀어져 괴상한 모양이 된 채로. 떠오르는 놈의 배와 온 몸에 그 나무줄기가 연결되어 있었다.
떡환은 소리를 지르면서 나가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입을 벌린 순간 그 나무줄기들이 마치 그 때를 노렸다는 듯이 식도와 기관지 안으로 순식간에 쳐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나무줄기 몇 가닥들이 허우적대는 떡환의 눈앞에서 보라는 듯이 방문을 닫았다.
아주 천천히.
그리고 그와 같은 속도로, 모든 나무줄기들이 붉게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혈관에서 피를 뽑는 비닐관처럼.
독수리 1호와 2호는 숨을 몰아쉬며 10번지에 도착했다. 돌입하기 전에 잠깐 숨을 고르고, 1호는 테이저건과 가스총을 양손에 거머쥐었고, 2호는 삼단봉을 양손에 들었다. 1호가 먼저 사격하면 2호가 마무리를 짓는 것. 그것이 그들이 훈련한 방식이었다.
그들은 벌써 이 집의 대문 잠금쇠가 고장나 있다는 것쯤은 알았다. 빠른 속도로 돌입한 그들은 이 집에서 유일하게 잠글 수 있는 현관문까지 열려있는 것을 보았다. 둘은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사태가 심각해진 거다. 이 양아치 새끼들, 오늘이 바로 니들 제삿날이다. 부글거리는 속을 애써 가라앉히면서 둘은 집으로 들어갔다.
안방으로 먼저 갔을 때는 입에 피를 머금고 사망한 늙은 여인을 보았다. 아마도 각혈을 하다가 기도가 막힌 듯 했다. 여기는 아니라고 판단한 1호와 2호는 아영의 방으로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방문을 걷어차고 두 사람은 진입했다. 훈련받은 대로, 날쌔게.
그리고 1호와 2호는 그 모든 광경을 보았다.
온 몸이 위험신호를 알렸고, 그래서 몸이 알리는 대로 뒤로 돌았다.
하지만 또 다시 방문은 닫히고 있었다. 나무줄기는 그들을 놓치지 않았다. 몇 년간 받았던 수많은 훈련과 무술과 살인기술들은 단 몇 초만에 무용지물이 되었다. 단 한 발짝만 뻗었다면 나갈 수 있는 방. 그렇게 크지도 않은 방에서 그들은 끝내 나가지 못했다.
그들은 순식간에 거미줄에 걸린 날파리꼴이 되어 버둥거리고 있었다.
바닥으로, 그들의 품에서 떨어진 테이저건과 삼단봉, 나이프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다음 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