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도 오늘 중으로 급하게 해야 하는 업무들은 없었지만, 진행해야 할 일들을 손에 붙잡고도 나는 멍하니 김양석군의 질문을 되새기고 있었다.
객관적으로 따져보면 나는 외로운 인간이기는 하다. 하지만 김양석 군의 질문을 듣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마흔이 넘어갔고, 홀아비 행색에, 누가 봐도 명백히 외로운 자이다. 그런데 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김양석 군의 질문은 다시 그 때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아내가 아들을 데리고 이혼서류를 챙기면서 나갔을 때, 나는 그 불가해함에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행동을 취했는지 되새겨보았다. 지금도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 상황 다음에 내가 한 일은 우습게도 일거리와 관련된 서류를 읽으면서 클래식 음악을 틀었던 것뿐이다. 응당 내가 부조리라 생각하는 그런 상황에서, 터져 나와야 할 분노라는 감정조차 남아있지 않은 듯 했다. 그러나 그 때는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하지 않고 있다.
세상살이에 유난히 지쳐있던 것도 아니었고, 뭐가 하나 발목을 붙잡는 일도 없었다. 그럼에도 아내와 아들은 내 곁을 떠났다. 이것만큼이나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하지만 지금에서야 깨달을 수 있는 건, 그 때의 내 행동들 역시도 불가해함 속에서 고정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왜, 나는 이때까지 외롭지 않다고 느꼈던 걸까. 사실은 누가 봐도 외로운 것인데.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마음은 마치 충격을 받은 유리처럼 금이 가려고 했다. 나는 애써 그 충격의 두려움을 달랬다. 나잇살이란 이런 때에 상당히 유용해서, 쉽게 감정을 추스를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퇴근 시간이 되어버렸다. 나는 그 때서야, 내가 점심도 거른 채 생각에 몰두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외로운 사람이네."
아껴둔 고백이라도 건네는 사람처럼 나는 나직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이 잠시 퇴근하려고 몸을 일으키는 김양석 군을 붙잡았다. 하지만 그것은 오래 가지 못했다.
"선배, 분명히 말씀드렸었습니다."
김양석 군은 돌아서서 표정없이 말했다.
"대답이 늦으면 한 사람이 죽는다고."
어설프게 말려볼 새도 없이 김양석 군은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청소를 해놓은 집은 차가운 공기가 가득했다. 인기척이 없으니 당연했다. 나는 아내가 나간 후 들었던 클래식을 다시 틀었다. 모차르트의 레퀴엠이었다.
김양석 군은 아마도, 정말로 오늘밤 누군가를 죽일 것이다. 나는 그를 뒤따라갔어야 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상념의 뻘에 발이 잠겨 버린 내가 그를 미행해 그의 범죄를 말릴 수 있는 어떠한 일이라도 할 수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어쩌면, 만족할만한 대답을 들었으니 김양석 군도 오늘밤의 살인은 접어줄 지도 몰랐다. 어차피 둘 중 하나 아닌가. 살인하는가, 하지 않는가. 어찌 되든 상관없다고까지 생각하면서, 나는 그냥 잠을 자기로 마음먹었다. 아마도, 내일이면 뭔가 달라지겠거니 생각했다. 김양석 군도 독한 농담으로 목석 같은 나를 놀렸다는 현실로 바뀌어 있을 지도 몰랐다. 아마도, 아마도, 아마도.
나 자신이, 어딘가에 몸을 기대고 피흘리는 초라한 짐승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것도, 내가 두려워하던 불가해함이란 것에 기대어 있는 것 같은.
그럼 이 마음에 생긴 타박상은 어떠한 표정을 하고 있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