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가디언 - 4화 꿈꾸는 중일거야 (2)

NEOKIDS 작성일 10.06.24 22: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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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은 자그마한데 안채로 들어가니 꽤나 방이 많은 구조였어. 그 중에서 이모님이 있을만한 곳과 가까운 곳의 방 하나로 안내를 받았어. 방은 꽤나 안락해 보였어. 하지만 내 맘속은 그렇지 못했지. 대통령까지 실물을 본 상황에서 도대체 이 집구석의 정체는 뭘까 하는 생각들 때문에 혼란스럽고 두려울 뿐이었어.

 

“그럼, 잠깐 쉬시소.”

 

가방을 끌어안은 채로 고개를 끄덕이자 반정욱이 나갔고, 그제서야 다리에서 맥이 풀리면서 총격전 등등이 한꺼번에 머리 속으로 쳐들어오더라.

영화였다면 아마 스릴 백배였겠지만, 실제로 당하면 정말 무서운 일들이야. 총알 스쳐지나가는 소리가 그렇게 무서운 건줄은 꿈에도 몰랐지. 군대 가서 총 쏴봤어도 그건 아주 색다른 경험이고.

 

흐트러진 넥타이를 아예 풀러 제끼고 단추를 끌러놓으면서 난 숨을 몰아쉬었어. 답답한 목이 시원해지니까 조금 기분이 낫더라. 앞으로 내 운명은 어떻게 되는 건지를 생각하고 보니 한숨밖에 안 나왔어. 그럴 때 담배를 피울 줄 안다면 차라리 나으련만 싶었지.

 

휴식은 길지 않았어. 한 30분 정도 지났을까. 반정욱이 다시 찾아왔어.

 

“좀 쉬셨능교.”

“아, 네.”

 

사실 이런저런 생각에 안락해 보이는 방에서 한 순간도 맘을 놓지 못했지만, 그냥 얼레벌레 대답했어.

 

“마님께서 찾으십니더. 같이 가입시더.”


방 풍경도 완전히 드라마에 나오는 조선시대 양반집 같은 분위기. 촛불이 켜져 있고 보료 위에서 이모님은 거의 눕다시피 앉아있었어. 장죽담뱃대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는 여전했고.

내가 들어오자 이모님은 재를 한 번 재떨이에 떨고는 담뱃대를 물면서 날 지긋이 바라봤어.

 

거 참. 일렁거리는 촛불의 불빛 가운데 수영씨 어머님 닮은 사람이 그런 포즈로 누워서 날 바라보고 있으니까 왠지 기분이 묘했지만, 그런 표시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꿇어앉아서 차려 자세를 유지했지.

 

“편히 앉아.”

“네.....”

 

눈치를 보면서 엉거주춤 가부좌를 하자, 이모님도 몸을 일으켰어. 한복이 조금 벗겨져서 하얀 어깨가 눈부시게 드러났지만 이모님은 신경도 쓰지 않으셨지. 오히려 전에 봤던 수영씨의 안광과 비슷한 안광이 촛불을 받아 빛났어.

 

“수영이네한테서 대강 얘기는 들었다. 수영이를 쫒아갔었다지?”

“네....”

“그게 우리에게 무슨 의미인지는 들었고?”

“네? 그런 건 전혀 모르겠습니다만.....”

“음, 아직 얘길 안했나 보군. 그건 됐고. 그럼 수영이한테서 맡은 냄새가 진짜로 애기 젖비린내 같은 냄새였나?”

 

워매. 이 사람들은 왜 내 코가 맡은 그 냄새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걸까.

 

“네에.....그렇습니다.....”

 

이모님은 대답하는 나를 찬찬히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말을 이었어.

 

“사내자식인데 숫기가 없구먼. 몸도 비리비리하고.”

 

사실 키만 한 180 가까이 되었지 근육이니 몸짱이니 이런 거랑은 담쌓고 살긴 했지만 아직 똥배 나오게 할 정도로 막 살지 않았습니다, 라고 말하고 싶은 걸 꾹 참았다.

그 뒤로도 이런저런 것들을 물어봤어. 이미 두 분 다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라든가, 내가 살아온 대략의 인생, 생년월일, 뭐 그런 것들. 그런 것들을 물어보면서 다른 한 손으론 미리 준비해놓은 붓펜과 종이로 무슨 숫자나 한자를 연신 써대셨어. 그리고는 곧이어 크게 관심은 없다는 듯 말하셨지.

 

“그래, 수영이는 자네한테 어떻게 하든가?”

 

난 잠시 머뭇거렸어.

 

“다,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편한 대로.”

 

아침에 람보르기니를 얻어탄 때부터 회사 안에서의 이야기까지 숨도 안쉬고 읊어대자 이모님은 배를 잡고 굴렀어.

 

“깔깔깔깔깔~~~~~!!!!!!!!”

 

진짜 재밌어서 웃으시는 것 같아서 나도 그만 입꼬리가 살짝 올라갈 뻔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왠지 책잡힐 것 같아서 신경써서 단속 또 단속.

 

“아하하, 아유, 수영이 고 년, 어쩜 그리 성격은 어릴 때 나랑 쏙 빼닮았는지. 날이 선 게 아주 제법이야 제법. 암, 그래야지.”

 

눈가에 눈물까지 맺히면서 웃던 이모님은 웃음을 그치고 미소만 띄운 채로 말했어.

 

“그래, 궁금한 것이 많겠지만, 천천히 말해봐. 대답해 줄테니.”

 

노아가 방주를 제대로 만들어야 할 정도의 질문대홍수가 머릿속에서 범람했지만, 그 혼란스런 와중에서도 딱 먼저 걸리는 것부터 물어봤어.

 

“그, 정욱씨랑 싸운 외국인들은 대체 누굽니까?”

“아, 그놈들. 우리 목숨을 노리는 놈들이지.”

“네에?”

 

이모님은 뭔가 구구절절이 이야기하려고 포즈를 한 번 취하시다가 귀찮다는 듯 고개를 저으면서 짧게만 이야기하시더라고.

 

“뭐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수영이네한테서 듣게 되겠지만, 일단은 우리를 죽이러 온 사람들이야. 우리를 사냥하는게 그 놈들의 천직이지. 일명 드라켄 야거라고 해. 그들이 어떻게 우릴 찾아냈는지는 좀 더 조사해봐야 할 일이고.”

 

“그럼, 도대체 제가 수영씨에게서 냄새를 맡은 게 뭐가 어쨌길래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건가요?”

“바로 그 점이야. 내가 얘기해주고 싶은 것이.”

 

이모님의 안광이 번뜩였어. 그 때 이모님이 말씀해 주신 걸 그대로 옮기면 이랬어.

 

---자넨 타고났어. 우리와 인간들은 예전부터 상존했지만 서로의 피가 맞지 않았어. 항상 우리와 생물학적으로 교접하려 하거나 우리의 피를 이용하려 하던 인간들은 전부 극심한 고통으로 죽었으니까. 하지만 우리와 피가 맞는 사람이 2천 년에 한 번 꼴로 나오게 되어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 그 사람과 연줄을 맺으면 우린 다시 종족을 이을 수 있었지. 그렇게 적어도 세계대전이 터지기 전까지는 우린 종족을 번성시킬 수 있었어.

지금은, 60억 인구 중의 단 한 명이란 말이야. 세상도 그만큼 복잡해졌고. 아까 같은 놈들은 우릴 거의 다 사냥하다 시피해서 남은 게 수영이네랑 나밖에 없었고. 이젠 정말 포기해야 되나 싶었는데 찾았단 말이지. 우리의 냄새를 본능적으로 알아채고 매료되는 인간. 그게 자네야.---

 

잠깐 데이터 정리 작업에 들어갔어. 미간을 찌푸리고 골똘히 생각해봐도 결론은 이게 무슨 이야긴 전혀 모르겠다는 거야. 겨우 알아들을 만한 게 있다면, 내가 수영씨의 젖비린내를 맡았다는 것 자체로 내가 2천 년에 한 번 꼴로 나오는 인간으로 인증ㄱㄱ씽 했다는 건데.

 

난 그냥 변태도 아니고 슈퍼울트라초특급 변태였다는 건가? 다른 사람들은 맡지 못하는, 특정한 여자의 냄새를 맡고 반응했다는 게? 아니, 그럼 돌연변이라고 해야 하나. 하여간 내 존재가 내 자신에게도 납득이 안되는 상황이 생길 줄은 몰랐네.

 

“저......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아아, 이런.”

 

이모님은 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말했어.

 

“중요한 걸 빼먹고 이야기를 하려니 말이 꼬이는 군 그래. 그건 적어도 수영이네가 자네에게 설명하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때 이모님이 고개를 허공 쪽으로 돌렸어. 일렁이는 촛불이 잠시 이모님의 얼굴에 그늘을 만들었지. 이모님은 다시 고개를 돌리고는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어.

 

“다들 양반들이 못되시는군. 수영이네가 왔으니 자네도 같이 나가지.”


난 이모님과 함께 툇마루로 나섰어. 반정욱은 벌써 예복을 갖추고 공손하게 자세를 잡고 있었고. 그런데 어딜 봐서도 도대체 누가 오는 기척이 없는 거야. 여기까지면 꽤 길이 있기 때문에 자동차가 온다든가 하면 알아차릴 수 있는데.

그러고 보니 반정욱이 알려준 것도 아닌데 어떻게 수영이네가 온다는 건 알았을까. 또한 뭔가 중요한 것을 들어야 한다는 사실과 이런저런 궁금증이 무슨 주파수 증폭하듯 속에서 커져서 나도 직접 인사를 드리고 이야길 들어야 되겠다 싶어서 두리번 거리고 있는데,


아까 전에 달빛이 굉장히 어슴푸레 하다고 했지. 그건 구름이 달빛을 흐릿한 정도로 가려놓았기 때문이었어. 그런데 갑자기 그 구름이 뻥 뚫린 것처럼 달이 확 드러났어. 마치 누가 구름을 풀어 헤치기라도 하거나, 구름 사이로 총알 같은 것이 휙 지나가서 뻥 뚫린 그런 모습처럼.

그리고 그 달의 모습 속에서 점 세 개가 보이기 시작했어. 난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고 도대체 그게 뭔지 자세히 보려고 했어. 하지만 곧 그렇게 눈을 뜨고 있지 않아도 되었어.

 

그 점 세 개는 빠른 속도로 커져서 그 형체가 이모님 집의 앞마당으로 내려왔으니까.


난 순간 이 현실 자체를 부정하고 싶다는 생각과, 이런저런 감정과 이성이 완벽하게 뒤죽박죽 쓰나미가 된 시공간 속에서 눈앞의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어.

 

내 앞에 착지한 것은 용 세 마리였거든.


한 마리는 완전히 서양 용의 모습. 날개와 삐죽삐죽 공격적으로 솟아나온 목덜미의 뼈 같은 것들. 그리고 짧은 금발로 뒤덮인 갈기. 한 마리는 동양 용의 모습. 진짜 전통화에서나 보던 형식의, 뱀같이 긴 몸체이지만 푸르스름 한게 눈이 부실 정도로 비늘이 매끈하고 날렵하면서 발이 짧은 형태.

그리고 나머지 한 마리는 그 두 마리보다 체구는 작지만 새하얗고 유선형으로 생겨서 뭔가 미칠듯이 쓰다듬어 주고 싶을 정도로 귀여운 용이었어.


아하하....용....드래곤......용이구나.....용용 죽겠네........

 

안그래도 잠도 못자 밥도 제대로 못먹어, 생명의 위협까지 받아, 극도로 피곤해 죽겠던 상태인데 눈 앞에서 환타지가 실제로 벌어지고 나니, 극도로 긴장줄을 얼쑤절쑤 타던 내 신체기능은 드디어 막장을 찍고 말았어.

 

한옥과 용의 풍경과 어두움과 그 모든 것이 회오리 모양으로 뒤섞이기 시작하면서, 내 머리가 땅바닥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다는 것만 느낀 채.

 

나는 완전히 정신을 잃은거야.

 

 

 

 

(다음 회에 계속)

 

 

요건 수영 캐릭터 구상중인 러프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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