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가디언 5화 - 잠시, 생각 좀 하고 (1)

NEOKIDS 작성일 10.06.27 14:5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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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잠시, 생각 좀 하고




정신이 들기 시작했을 때, 나는 그 모든 것이 꿈처럼만 느껴졌어.

 

그래. 이 현실 세계에 무슨 용이야. 뭐가 총질이고 대통령이 또 뭐야. 혼자 먹고 사느라고 죽도록 힘 빼고 있는 내게 여자생각은 또 뭐야. 지금까지의 일은 하룻밤의 꿈. 뒤통수가 조금 얼얼하기는 하지만 뭐 꿈꾸기 전에 어디 부딪혔나 보다. 그나저나 이불이 부드러운 게 너무 기분 좋아. 자 빨리 출근해야지.

 

이런 생각에 젖어 뒹굴뒹굴 있다가 눈을 뜬 순간.

 

나는 화닥닥 일어나고 구석으로 도망치고 말았어.

 

방에 수영씨가 있는 거야. 누워있는 나와는 좀 더 거리를 둔 채, 벽에 등을 기대고 무릎을 껴안은 채로.

 

머리는 떠꺼머리가 되고 와이셔츠와 바지는 구겨져서 엉망진창이 된 채로 일어나서 놀라고 있는 날 수영씨는 찬찬히 바라보고 있었어. 경멸스럽다거나 하는 표정이 아니라, 딱히 생각을 읽을 수 없는 그런 표정이었어.

 

나는 초긴장상태로, 넌지시 물어봤어.

 

“여기가.......어디......”

“아직도 우리 이모 집이야. 보면 몰라?”

“아....이모님 집.....그럼 오늘은.....”

“이틀 동안 잠만 잘 자더라.”

 

꿈에서 아직도 안 깨어난 것인가. 볼따구니를 꼬집어보고는 좌절의 포즈를 지을까 생각중인데 그녀가 훌떡 일어났어.

 

“아빠엄마 불러올 테니까 정리 좀 해.”


수영이 부모님과 마주앉은 채로 한동안 침묵이 흘렀어. 아버님도 어머님도 나도 완전히 무거운 상태. 수영씨만 미닫이로 된 창호지 창가에 앉아서 밖을 바라보고 있었고.

 

“먼저, 식사라도 하고 좀 이야기를 나눠야 되지 않나요? 배고프지 않아요?”

“아.....괜찮습니다.”

 

역시 수영씨 어머님 답게 날 챙겨주시는 게 감사했지만, 이 모든 일의 진상을 좀 더 알아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밥이 넘어갈 것 같지 않았어. 그래서 거절한 용기를 낸 김에 좀 더 물어봤지.

 

“혹시, 제가 본 게 맞다면.....세 분이 다 용.....”

“맞네.”

 

아버님이 단호하게 말씀하시고는 한숨을 내쉰 후 말씀을 또 이으셨어.

 

“나는 서쪽 용무리 드래곤 브레쓰의 후계자, 카를란드라고 하네. 수영이 엄마는 동쪽 용무리의 청룡족. 소화(炤花)라고 하고.”

“아....네....”

 

또 다시 침묵의 시간. 진짜 용이었군. 어제 본 그 모습들이 정말 꿈이 아닌 거였어. 어둠속에서도 엄청나게 빛나던 그 안광들은 그래서였던 건가.

 

“일단, 정말 미안하게 됐어요. 괜히 우리 욕심 때문에 말려들게 만든 것 같아서......”

 

수영 어머님의 말씀에 아닙니다, 라고 예를 표하는 말조차도 꺼낼 수가 없어서 난 그저 묵묵하게 있었어.

 

“연화(戀花), 아니 수영이 이모님께 대강 얘긴 들었겠지만, 자넨 우리에겐 특별한 사람이었네. 그런데 갑자기 드라켄 야거 놈들 때문에 이렇게 민폐를 끼치게 되었네. 사죄하네.”

“아. 아닙니다.”

 

난 그렇게 말하면서도 어젯밤 그들의 모습을 떠올렸어. 흉측한 비늘, 박쥐같은 날개, 칼집이라도 낸 것처럼 위아래로 길쭉한 눈동자와 흉흉한 안광.

 

“그래서, 앞으로 자네의 신변을 이쪽에서 책임져줄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만약 자네가 싫다면 자네에게 폐가 가지 않는 선에서 해결해보도록 하겠네만....”

“신변...이라 하시면....”

“자넨 지금 드라켄 야거들에게 노출되어 있네. 이대로라면 아마도 놈들은 자네를 미끼삼거나 해서 우릴 불러내겠지. 그게 아니라도 우리가 자네와 연을 맺을 것을 우려해서 자넬 죽일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해본다면 자네 주변의 사람들도 위험할 수는 있네. 연화 처형에게 들으니, 일단 부모님은 안계시고 홀홀단신이라고?”

“예....”

“그럼 자네 회사사람들도 위험할 수가 있네. 아주 친한 회사동료나 뭐 그런 사람 없는가?”

 

난 순간 부장님을 떠올렸지만, 드라켄 야거인지 뭔지 하는 놈들이 그것까지는 알아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어. 게다가, 도대체 그 놈들이 왜 그렇게 노리고 있는지도 더더욱 의아해졌고.

 

“도대체 그 놈들의 정체는 뭡니까?”

아버님은 잠시 날 바라보더니 말씀해주셨어.


아버님의 말씀에 따르면, 드라켄 야거는 예전에 서쪽 용무리들과 사이가 안 좋았던 인간들의 일족부터 시작했다는군. 처음에는 북유럽 쪽 땅을 무대로 용족을 사냥하는데 열을 올렸고, 용족은 그 나름대로 보복했지만, 용족이 보복의 악순환 고리를 끊기 위해 양보를 하고 인간계와 섞이기로 다짐하면서 되도록 직접 싸우는 상황은 피해왔다는 거야. 하지만 용 사냥꾼들은 바뀌지 않고 계속 용 사냥을 해왔지.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발전되어도 그들의 용을 향한 증오심은 계속 이어져 왔어. 뿐만 아니라 그 증오는 용은 위험한 존재라는 공포와 연결되어 규모를 알 수 없는 비밀단체로까지 이어졌고.

 

그렇게 두 번의 세계대전을 거치고 지금까지 오는 동안, 용족들은 그 용 사냥꾼들에 의해 거의 몰살당하다시피 했고, 근래 들어서까지도 거의 서쪽 용무리의 씨를 말리다시피 했어. 수영 아버님은 동쪽 용무리들이 있는 곳으로 그들의 눈을 피해서 피신해왔고, 지금까지는 비밀이 잘 지켜져 왔다는 거야.


“그러나 이제 그들이 여기 나타났다는 건, 나나 소화, 수영이, 수영이 이모까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일세. 그런데 자네가 발견되었고, 우리가 자네에게 접근했다는 정보까지 그들에게 들어간 상황이면, 심각한 문제이지.”

“그럼......”

 

나는 나직이 말했어.

 

“여러분들만의 싸움에 제가 휘말린 꼴이 되는 건가요?”

 

말을 뱉어놓고 나도 움찔했지만, 사실은 사실이잖아. 그럼 나는 최대의 피해자가 되는 거고. 그런 생각에 슬슬 열이 받기 시작한 거야.

 

“그러니까, 저는 이 싸움과 무관한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여러분을 만나버린 것만으로 그 외국 사람들에게 총을 맞아도 할 말 없는 신세로 전락한 거네요?”

 

“그에 대해선 할 말은 없네만....”

“제 입장도 잘 이해해주시리라 믿고 말씀드립니다만, 그럼 전 여기 있고 싶지 않습니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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