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가디언 - 5화 잠시, 생각 좀 하고 (2)

NEOKIDS 작성일 10.06.27 14:5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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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이 부모님은 충격을 받은 듯한 눈치였어. 뭐 그렇다고 항의를 한다거나 달리 말을 더 꺼낼 처지도 못 된다는 거, 스스로가 더 잘 아니 속만 타는 듯한 눈치였고.

 

나도 미안했어. 하지만 미안한 문제랑 목숨이 걸린 문제랑은 다르잖아. 상황이 거지같으면 도망치는 게 먼저 아니야? 넌 오밤중에 인적 드문 곳에서 총알밥이 되고 싶겠어? 적어도 그 땐 그 생각이 옳다고 여겼고, 그래서 그렇게 말한 것 뿐이고.

 

그 때 어머님도 말씀을 꺼내시더라.

 

“그래요......지후씨 마음 다 이해해요......하지만 지금 당장은 위험이 너무 커요. 그러니, 최소한 여기 머무르면서 우리가 지후 씨를 보호할 수 있게 허락해줘요. 그동안 드라켄 야거랑은 우리 힘으로 해결하고, 다른 주변 사람들은 우리 인맥을 통해서라도 어떻게든 수를 낼 테니까요.”

 

대통령을 본 걸 떠올리면서, 이 사람들이라면 할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중요한 문제는 다른데 있었어.

 

“그래, 수영이 엄마 말대로 하도록 하게. 그게 자넬 위해서도 나을거야.”

 

“이길 수 있습니까?”

 

나는 그 중요한 문제, 핵심을 찔러봤어.

 

“그게, 갑자기 무슨 말인가?”

“드라켄 야거를 이길 수 있겠느냐고 물어본 겁니다.”

“그건......”

 

아버님은 바로 대답하시지 못하고 말끝을 흐렸어.

 

“지금까지 그 놈들 이야기 해주신 걸 들으면, 서쪽 용무리를 절멸시켜서 아버님이 피신해 와야 했을 정도로 드라켄 야거가 집요하고 강하다는 이야기인데, 여기라고 안전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보호해주신다고 해도 안전할 수 있겠느냐는 겁니다.”

 

모두들 다시 침묵. 난 이렇게 말하면서 수영씨를 잠깐 봤어. 계속 등을 돌려버린 채로 그녀는 잠자코 있었어. 그녀 성질 같았으면 내 멱살은 한 번 뽑혔다 꽂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자네 말도 맞긴 하지만, 만약 전투가 벌어지는 상황이라면 우린.....”

“본인들도 확실하게 하지 못하는 상황을 제가 어떻게 믿고 따라갑니까?”

“지켜줄 수 있어.”

 

연화 이모님이 미닫이문을 열면서 들어왔어. 싸늘한 눈초리지만 감정이라고는 일말도 들어있지 않은 듯한 말투로 말하면서.

 

“정욱이 실력 봤잖아. 그 정도면 자네 하나 건사하는 것쯤은 일도 아니고. 어제도 긴급히 대통령님 만나서 이야기 한게 다 자네를 지키려고 국정원의 협력을 얻기 위해서였어.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린 용이라고. 자네 하나 지켜주지 못할 거 같은가?”

 

나는 딱히 대답할 말을 찾을 수가 없었어.

 

“제부도 참, 중요한 대목에서 자신감이 없어지면 어떻게 해요?”

 

이모님의 말에 수영 아버님도 머릴 긁었어.

 

“면목 없습니다.”

 

이어 수영 어머님의 간곡한 부탁.

 

“그래요. 우리말대로 해줘요. 그럼 일단은 지후씨도 다른 사람들도 모두 안전할 거예요.”

 

수영씨만 빼고 다들 그러는 통에, 난 못 이기고 그만 내 뜻을 접었어. 사실 안전성으로만 따지면 혼자 있는 것보다는 여기가 더 낫다는 생각도 설핏 들었고. 다만 한 가지는 약속받았지. 어차피 회사를 못 다니게 된다면, 마무리라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그들은 그것을 수긍하면서 그 과정도 국정원에서 도와줄 수 있도록 한다고 약속했어.


다들 방을 나가는데, 수영씨만 꼼짝 않고 있는 거야. 아버님이 그런 수영씨를 보고 데리고 나가려 했지. 

 

“수영아, 지후군 편히 쉬게 나가자.”

“여기 잠깐 있을래요.”

 

수영씨의 말에 아버님이 잠깐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보더니 그렇게 하라고 하고, 방에는 둘만 남았어.

 

왜 남겠다고 했을까. 의식을 안 하려고 하는데, 그게 잘 되지 않았어. 어젯밤 본 그 미칠 듯이 껴안아주고 싶은 용. 내 예상이 맞다면, 그건 수영씨의 본모습이었을 거야. 하지만 그건 괴물이었거든. 아무리 내가 선택받은 존재라고 해도 난 인간이라고. 어떻게 내가 괴물과 함께 살아갈 수 있겠어. 뭐 그런저런 상념들을 떠올리고 있는데.....

 

“날 괴물이라고 생각하지?”

 

수영씨가 내뱉은 말에 난 한순간 움찔했어. 혹시 용의 능력 중에 생각을 읽는 능력도 있나 싶어서. 돌아봤지만 여전히 그녀는 등을 돌린 채로 바깥 풍경을 구경하고 있었어. 꽃나무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마당의 풍경을. 그런 풍경에 취한 듯 수영씨는 느릿하게 말했어.

 

“괴물 맞잖아. 평범한 인간이라면 그런 모습이 아닐 테니까.”

“그럼, 그게 진짜 수영씨 모습.....”

 

이라고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방안에 빛나는 입자들의 오오라가 가득 차고 그녀의 안광이 변했어. 그녀의 눈동자가 쓰러진 날 밤에 봤던 그 모습 그대로 변했어. 피부가 드러난 곳들이 하얀 비늘로 반짝거리기 시작하고.

난 그 기운과 모습들에 완전히 긴장타고 질식해서 죽을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일순간 그런 현상들이 언제 있었냐는 듯 다 사라져 버렸어. 남은 건 여전히 인간 모양을 한 채로 날 바라보는 수영씨였지.

 

“완전히 변신하진 않았어. 집을 부수고 싶진 않으니까.”

 

그러면서 다시 화단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수영씨의 모습에 난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렸어.

얼마나 침묵이 흘렀을까.

 

“우리 아빠가, 아까 전에 왜 자신 없이 그랬는지 알아?”

 

나는 어쩔 줄 모르고 그냥 입을 다문 채로 어정쩡하게 서있었어.

 

 “우리 아빠 가족은 드라켄 야거들에게 전부 죽임을 당했거든. 그것도 아빠 눈앞에서.”

 

수영씨가 몸을 일으켜 세웠어. 등은 여전히 돌린 채로.

 

“요 근래에야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지. 그런 자신의 과거를 자신의 등에 업혀서 울고 있는 아이에게 해주는 심정은 어떤 것일까. 그러니 울지 말라고 하면서, 울어서 약해지면 안 된다고 하면서 등을 빌려주고 있는 부모의 심정은 어떤 것일까.”

 

머리를 망치로 계속 두들겨 맞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어. 뒷사정이란 거 내가 알 필요도 없고 새길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는 게 편하다는 거 알지만, 그래도 듣게 되는 건 어쩔 수가 없었지. 그리고 여러 가지 감정이 드는 것도.

 

“넌 이런 거 생각이나 해본 적 없지?”

 

수영씨가 나를 향해서 돌아섰는데, 나는 더욱 할 말이 없어졌어. 눈물이 펑펑 흘러서 이미 줄기를 이뤘더라고.

 

“넌 너만 일상이 망가진 것 같지? 나도 대학교 이제 막 입학했고, 친구들도 사귀고 있었어. 같은 과 잘생긴 선배 보면서 두근거리기도 했고. 비록 사귈 수 없다는 거 알면서도, 아무것도 인간들과 뭘 할 수 없다는 거 알면서도, 그래도 그런 일상들이 소중했던 느낌, 너도 잘 알잖아? 그런데 이거 알아? 부서진 건 너뿐만이 아냐! 여기 모두가 지금 그렇다고! 너만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고개를 숙인 채로, 어떤 말도 꺼낼 수가 없었어. 또 다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어.

 

그녀는 눈두덩을 씩씩하게 부벼 눈물을 닦고는 방 밖으로 나갔어. 주변머리 없는 내 태도는 또다시 그녀를 따라가거나 위로해 줄 엄두조차 내지 못했지. 그제야 조금 들어온 생각에, 난 그녀를 위로해주려고 방을 나섰어.

 

하지만 끝내 그녀를 위로해주지 못했어.

 

그녀는 마당의 나무 아래서도 계속 울고 있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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