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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겋게 흐트러지는 오후의 햇살.
터질듯 노랗게 부풀어오른 노을을 마주하며
난 자전거로 작은 고개를 오른다.
훅훅 동그랗게 떠오르는 입김들이 지나가고
언덕배기 끄트머리 겨우 넘었을 때,
짙은 커피향이 내 입술에 닿았다.
발을 내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왼쪽, 나무로 된 커피집이 따스하게 앉아있다.
기우뚱 기우뚱 다가가
김 서린 창 안을 들여다보니,
쪽 지은 머리, 빨갛고 작은 입술이 보인다.
소리는 없지만 달그락 거리는 작은 그릇들
그것들이 귀를 간지럽히고
난 기억없는 기억을 떠올리며,
조용히 문을 열고 안으로 향한다.
주황이 가득한 공기, 맑고 따뜻하다.
커피향은 오선지를 지나는 높은 음자리처럼
안을 둥글게 감싸며 솟아 오른다.
달그락거리던 하얀손에 눈이 가 멈춘다.
구운 솜처럼 온화한 하얀 니트, 그리고 긴 목
쪽져 올린 머리는 자연스럽게 헝클어져있다.
선한 눈썹이 자꾸 마음에 와 닿는다.
" 안녕하세요. 오늘도 많이 춥네요. "
그녀는 이렇게 시작했다.
" 네. 오늘도 많이 춥네요. "
난 이렇게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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