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정하기 - 구조물 짜기

NEOKIDS 작성일 11.02.25 03:5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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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에, 기승전결을 먼저 생각해보고 글을 쓴다는 사람을 만나 술잔을 기울이면서

그런 과정은 필요없다고 주장하고 생각했다.

 

얼마나 아둔했던가.

 

그건 건축물로 치자면 도면을 먼저 만드는 일과도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쓰고 싶다는 맘이 앞서 먼저 쓰다 보면 스토리는 산으로 간다.

산으로 가는데도 노를 계속 젓는다. 이건 어떻게든 풀릴거야, 하는 막연함을 가지고.  

그러면 필시 둘 중 하나의 종착역이 기다릴 것이다. 

풀리지 않아 때려치우든가, 쓰긴 다 썼는데 눈뜨고도 못봐줄 최악의 졸작이든가.

 

아, 하지만 졸작은 한 번 써볼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하지 말아야지 하는 심적 도움이 되니까.

그래도 쓸 땐 꽤 재미있다.

 

먼저 기승전결을 잡아보자.

일단 각 단락에서 중요하게 벌어져야 하는 사건들을 정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이 이어질 때 어떠한 이유로 그렇게 되어야 하는지를 생각하라.

기에서 승으로 갈 땐 그 연결들이 자연스러워야 한다.

인물이 기에서 화가 날만한 일을 겪었는데도 승에서 유순하게 있다면 안되는 거다.

한 번 참았는데 업그레이드 된 상황, 이런게 따라오고,

전에서 억눌려진 그걸 터뜨려야 한다.

결에서는 터뜨리고 난 후의 마무리가 어떻게 되는가도 생각한다.

 

대체로 기승전결의 4단계로 나눴지만 시나리오 작법서들에서는 3단 구조를 논하기도 한다.

상관없다. 일단 중요한 것은 구조물을 만드는 거다.

 

일단 구조물을 만들어 본 후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나면 이 구조물의 약점들이 한 눈에 보일 것이다.

빈약한 플롯,

모자라는 사건들과 원인,

설정을 위해 찾아야 할 자료들,

써먹으려고 했는데 미처 배치하지 못한 아이디어.

 

그러나 이것들이 전부 튀어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것들은 구조물을 세우고 보강한 후

실제로 글을 쓰는 과정에서도 생각지도 못한 것들이 계속 튀어나올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사전준비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글을 쓰다가 흐지부지되는 경우는 사전에 차단할 동력을 마련할 수 있다.

특히 장편을 쓰려는 경우에 이것은 상당히 유효하다.

 

먼저 약한 부분들을 생각하고 준비하는 것 이외에도 이런 방식의 장점은

작품을 쓸 때 끈기와 호흡을 준다는 데 있다.

이 작품의 결말을 보겠다는 끈기, 사건을 배치하고 흐름을 연결하면서 자연스러움을 생각하는 호흡.

이것들은 상당히 중요하다.

 

지금 하고 있는 작업으로 예를 들겠다. 

본인이 애니메이션의 감각으로 소설을 쓰는 것을 행하고 있다고 한 점을 유의하자.

 

일본 애니메이션의 각 화는 대체로 그 화 안에서 뭔가 하나가 끝나야 한다.

그리고 마무리에 다음 화로 이어질 브릿지 격의 단초들이 던져진다.

이런 식의 것들은 괜찮다.

다만 다음 화로 이어질 브릿지는 아예 생각도 하지 말자.

처음엔 이런 것을 생각하지 않고 각 화 안에서 끝낸다고 개념을 잡으면 기분도 편하다.

 

그렇게, 각 화 안에서 기승전결이 끝나야 한다. 중요한 사건 하나를 중심으로.

 

이런 식으로 진행하고 있는데, 지금 딱 발목이 잡혀있다.

주인공이 이제 움직일 결심을 해야 하는 대목에서.

자꾸 무의식이 태클을 걸어온다. 그 앤 그거 안해도 되잖아. 보통 사람 같으면 안하지 않아?

나는 대답한다. 얘는 보통 사람이 아니잖아.

그럼 무의식은 대답한다. 그럼 지금까지 얘가 비범하다는 걸 제대로 보여준 적이 있어?

아니, 보여줄 타이밍도 없었지.

그럼 말이 안되잖아. 얘가 움직이려고 추진력을 가지는 진짜 근원적인 이유가 뭔데?

갑자기 주변 사람이 죽었다고 그냥 움직여? 그럼 이전엔 왜 안움직였는데?

등등등등등. 태클은 꼬리를 문다.

 

이미 결말까지 다 생각해놓은 작품에서 이것 하나가 해결이 안되면,

이후의 일들도 해결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럼 또 쓰다가 때려치우는 거지.

내가 생각하고 있는 이 작품의 구조물은 지금 이 부분 하나만이 해결된다면,

나머지는 만사형통으로 달려갈 것이다.

 

이런 식의 생각을 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작법서들은 입닥치고 일단 쓸 것부터 권장하기도 한다. 나도 그렇게 안해본 바가 아니다.

결과적으로, 그 얘기는 옳지 않다. 이야기를 진행할 동력은 순식간에 소진된다. 

항상 그 소진을 염두에 두고 진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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