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임이 닿는 곳

kanghiro 작성일 11.03.16 23: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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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잠을 깨고, 지친 겨울과 마주한다.

가로등 하나를 사이에 두고,

새벽을 등진 봄은 환히 웃고 있지만, 아직은 어둡다.

밤을 등진 겨울의 모습은 초췌하고 입술은 파랗지만,

알 수 없는 미소 하나를 입가에 뭍히고 있다.

 

겨울이 하얗게 일어난 손등을 매만지다가 주머니에 넣는다.

뒤적거리다 꺼낸 쪽지 하나를 조용히 봄에게 건낸다.

 

봄은 피식 웃곤 쪽지를 받아 주머니에 넣는다.

 

" 이제 어디로 갈 생각이야? "

 

겨울은 대답하지 않고 점점 밀려오는 밤이 힘겨운 듯, 뒤뚱하며 주저앉는다.

 

" 정해진 곳은 있는거야? "

 

다시 묻지만 대답은 없다.

 

" 이제 우리가 만나는 것도 한참 후일테니..... 술잔이나 기울이세. "

 

봄은 다가가 겨울의 시린 어깨를 잡아 올려 부축한다.

 

조금 걸어 모퉁이에 달빛이 가득한 술집 하나가 서있다.

 

이곳이 좋겠어, 겨울은 흔들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둘은 문을 열고 들어가 앉는다.

 

원목으로 잘 짜여진 테이블이 일곱개, 같은 재질의 의자도 가득하다.

손님은 마주한 구석에 한 명이 전부이다.

 

어디 앉을까 고민하다. 추위에 떠는 겨울을 생각해 중앙 난로 가까이에 앉기로 한다.

 

" 이 곳에 앉게. 오랜 기간 떨었을테니..... "

겨울은 잠자코 이끌리는 자리에 앉는다.

 

" 너무 추운 나날이었어. 내가 겨울이라는 이유로 난 너무 가혹한 시간들만 주어진듯해..... "

 

봄은 사려깊은 표정으로 몰래, 겨울을 훑어내린다.

 

" 이제 조금만 더 버텨주면 돼. 네가 가는 길은 따스하게 해줄테니, 걱정은 말아. "

 

둘은 말이 없다. 겨울이 지친 표정으로 메뉴를 뒤적거리다, 조개탕과 소주 한 병을 주인에게 부탁한다.

 

" 혹시 이분 아프신거 아닌가요? 안색이 좋지 않아보이는데요..... "

 

봄은 괜찮다고 손을 흔들어 보이곤, 싱긋 웃어 주인장의 걱정을 누구러뜨린다.

 

" 이봐, 힘좀 내라구, 아무렴 보는 사람마다에게 걱정만 시킬텐가? "

 

겨울은 난로만 주시한 채로, 아직도 가늘게 떨고 있다.

 

이윽고, 맑게 흔들리는 탕과, 소주 한 병이 앞에 놓이고, 둘은 말없이 첫 잔을 꿀꺽 마신다.

 

달빛이 성실하게 떨어져 내리는 시간, 겨울과 봄, 그리고 구석의 조용한 사람은 말이 없다.

겨울은 난로에 추위를 조금 녹여, 아까보다 조금은 여유있는 표정으로 술잔을 기울이고,

봄은 그런 겨울을 따스하게 바라본다.

 

" 나에겐 마지막 겨울이 될 듯해...... "

겨울은 봄에게 말한다.

 

" 그것도 좋은 일이지. 그 동안 네가 수고한건 모두가 다 잘 알고 있으니말야.

 하지만, 네가 떠난다면 모두가 서운해 할 거야. "

 

밤들이 살며시 가게 옆을 지나간다. 곁 눈으로 겨울을 확인했지만, 모른척, 조용히 달빛을 따라 걸어간다.

둘은 계속해서 술잔을 나눈다. 한 병, 또 한 병, 술병은 가득히 쌓여가고,

손을 잡고 지나가던 밤의 무리들도 이제 끝이 보인다.

미명이 그 마지막의 등을 밀고 있다.

 

날이 밝아 온다. 잠시 잠에 들었던 봄은, 잠에서 깨, 천천히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간다.

구석 자리에 앉았던 객도 일어나 계산을 하고 봄을 따라 천천히 밖으로 향한다.

 

겨울은 꺼져가는 난로 앞에 앉아 마지막 술잔에 술을 채운다.

또르륵, 차갑던 잔도 따스하게 녹아버리고, 그 안에 담긴 겨울의 마지막 술은 따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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