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괴한 망상의 둥지 - 그녀의 행복

NEOKIDS 작성일 11.03.23 22:3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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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는 괜찮았는데 그냥 쓰고 있으려니 화끈하게 망친 단편임 낄낄낄

 

 

그녀는 한구석에 웅크려 있다. 나는 심드렁하게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텔레비전 속의 인간들은 뭐가 그렇게도 재미있는지 웃고 있다. 웃고 있는 그들에게 동조할 수 없어 그냥 멍하니 바라보는 나를 그녀는 노려본다.


아주 평범한 남녀의 일상이라는 가정 하에서라면. 이런 심드렁한 상황을 바꿔보려고 나는 그녀에게 먹을 것을 내어주거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보거나 웃고 싶지 않은 이야기에도 웃어 댔을 것이다. 어쨌거나 여긴 내 집이고, 그녀는 손님이니까.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녀는 손님이길 거부했다. 내가 혼자 살고 있는 이 집, 20년을 훌쩍 넘겨 군데군데 금이 가고 퀴퀴한 냄새가 진동하는 낡은 연립주택처럼, 그녀는 6개월여를 나와 함께 했다. 그리고 지금처럼, 언제나 한구석에 웅크려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나는 손을 뻗어 만져보려 하지 않는다. 그녀도 마찬가지다. 미묘한 적개심과 어찌할 수 없음에 대한 체념만이 가득한 이 공간에서 그녀와 나는 텔레비전을 보고, 이렇게 일상을 보낸다.


다만 특이한 것이 있다면,

그녀가 귀신이라는 것 뿐. 


그녀를 내 집에서 본 것은 입속에 먼지 맛이 가득 담긴 채로 바깥에서 돌아온 그저 그런 하루 중의 하루였을 것이다. 기억조차 가물거리는 그 때에, 그녀는 신발을 벗고 들어오는 나를 현관에서 노려보고 있었다. 보통사람이라면, 미쳐버리거나, 기절하거나, 소리를 질러댔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저, 그녀를 통과해 마루로 갔을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보통사람이 아니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부엌으로 되어있는 비좁고 짧은 복도를 지나면 바로 안방 겸 거실이 있는, 그런 10평 남짓짜리 공간. 그게 나의 집이었다.


세간 살이라고는 바닥에 거적데기 마냥 깔린 넓직한 쿠션과 작은 방에 있는 침대쿠션 하나, 그리고 봉으로 세워둔 옷걸이가 전부인 그런 추레한 공간에 있는 그녀의 존재는 꽤나 독보적인 것이긴 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나름 공포영화처럼 보이기도 하겠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공포영화나 호러, 슬래셔 무비 따위에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체질이라서, 그녀의 존재 자체도 내 주위를 흐르는 퀴퀴한 공기처럼 그냥 받아들여버렸다.


몇 번 그런 적은 있었다. 그녀의 손처럼 보이는 것이 내 목덜미를 몇 번이고 조르려 했다. 그러나 말했듯, 그녀는 귀신이다. 귀신이 이승의 나를 붙잡으려 해봤자 연기가 나를 감싸듯 할 뿐 내 목덜미는 그녀의 손에 잡히지 않았다. 어쩌면, 이런 상황은 그녀도 예상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니, 분명히 그러고 있었다. 그것은 그녀가 내 목을 졸라보려는 시도를 딱 세 번 만에 때려치우고 더는 하지 않던 때 느낀 것이었다.


그렇다, 나는 보통사람이긴 하지만, 

나는 애초부터 그 어떤 것에도 두려움이란 것을 상실한 놈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그 두려움이라는 걸 알고 싶었다.


6개월 동안, 나는 문득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볼 때가 늘어갔다. 그녀도 지지 않고 나를 쳐다봤다. 길게 늘어뜨린 머리카락 사이로 수챗물에 불어터진 것 같은 희뿌연 눈동자가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좀 전에도 분명히 말했듯,


그런 것이 왜 무섭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저 그녀가 있어도 편리한 점은, 그녀가 살아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밥을 지어주고 먹이고 입히는 걱정 따윈 전혀 없다는 데 있었다. 그녀는 나를 노려보는 것 외에는 일체의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나를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내 수명이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나름의 꼼수가 돋보이게 행동하는 것도 그랬지만, 집으로 돌아온 내가 밥통에 밥을 지어 그릇에 퍼담고 냉장고에서 김치와 남아있던 찌개를 꺼내 데워 상을 차리고 밥을 먹는 동안에도 내 수명은 전혀 줄어드는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그녀가 왜 내 곁에 있는지 알 수 없을 때가 많아졌다. 단순한 원한? 나를 끌고 저승에라도 가려고? 뭐 귀신이니까 그 정도야 이해한다 치더라도, 그녀가 내 곁에 있어도 그런 효과는 지금까지도 나오고 있지 않다. 이렇게 효율성 없는 짓을 왜 하고 있는 것일까. 그게,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물어보았을 뿐이었다.


“지루하지 않아?”


6개월 만에 트는 말문. 내가 말을 건 것에 그녀는 내심 놀라고 있는 눈치였다. 하지만 그녀의 대답은 예상했던 대로 들을 수 없었다.

다시 tv로 눈을 돌리고 멍하니 있었던 게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등 뒤에서 나직하게 말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지루해.”


나는 그녀 쪽을 다시 돌아보고서는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내 얼굴의 근육이 나도 모르게 움직였다. 아마도 앞에 거울이 있다면, 지금 웃고 있는 내 얼굴이 보였을 것이다. 그걸 깨달은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산책이라도 갈까.”


낡은 연립주택을 나오면 산동네의 모든 풍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지대가 높은 곳이니 당연한 이야기지만, 나름 밤풍경의 불빛들은 그럴싸한 곳이었다. 고층빌딩의 멋진 스카이 라운지도 부럽지 않은 풍경이었다. 어스름이 끼는 일요일의 저녁을, 나는 그녀와 함께 걷기 시작했다. 그녀의 경우에는 그걸 걷는다고 볼 순 없지만, 어쨌든 같이 길을 가고 있었다. 마지막 여름의 바람은 너무나 시원했고, 그것 때문에 딱히 기분이 좋았다고 할 순 없지만, 그래도 나름 괜찮았음은 알 수 있었다. 코에서 콧노래가 흘러나온 것을 보면. 그녀는 여전히 같은 무표정으로 내 옆을 걷고 있을 뿐이었지만, 그래도 나는 뭔가 조금은 발전된 것 같아서 다행이라는 생각 외에는 들지 않았다.

모든 게 딱 그대로 흘러갔다면 좋았겠지. 하지만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문득 우리 앞에 한 존재가 나타나면서 흥은 깨지고 말았다. 그 존재의 정체는, 항상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쓰레기를 뒤져 하루하루 배를 채우는 * 한 마리 때문이었다.

그녀는 개를 보자마자 몸을 움츠렸다. 개는 그녀를 똑바로 보고 있었다. 동물은 귀신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개는 그녀를 보자마자 마구 달려와서 송곳니를 드러내며 한껏 적의가 가득 찬 소리를 내며 그녀를 을러대려는 듯 했다. 그리곤 이곳저곳 뛰어다니며 그녀를 견제했다. 그녀는 개가 개거품을 물고 개지랄을 떠는 광경에 더욱 무서운 듯이 한껏 몸을 움츠리며 피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예 머리를 감싸쥐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는 게 맞겠지.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죽어도 내 뒤로 숨진 않았다. 아, 그녀는 이미 죽었군.

그러니까 세 번째 말하지만, 나는 겁대가리가 없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게 설령 * 개였다고 해도 내겐 상관없는 문제였다. *개가 아닌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겠지만, 어쨌든 내 청량감을 짓밟고 있는 놈을 그저 너그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발을 있는 힘껏 휘둘러, 초등학교 때 발야구 하던 기분으로 그 놈을 냅다 걷어찼다. 개는 깨갱거리며 저 멀리 피했다. 그 놈의 눈동자가 마치 날 구해주려던 건데 왜 이러냐는 듯한 억울함을 담았던 것도 같다고 생각했다는 걸 깨닫고는 황당한 기분이 되었다. 돌겠군. 개가 사람도 아닌데. 그 개가 어떤 마음을 품든, 내 알 바는 아니었지만, 그 묘하게 신경 쓰이는 눈을 하면서 동네 떠돌이개는 멀어져 갔다.

그녀는 머리를 감싸쥔 채 계속 주저앉아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그녀에게 동네 개를 쫒아냈다는 말을 해주고 싶진 않았다. 그저, 그녀의 옆에 멍하니 서있었을 뿐이었다. 주변이 조용해지자 슬며시 고개를 드는 그녀의 눈을 나는 바라보았다.

“이젠 괜찮아.”

그리고 나는 길을 걸어갔다. 그녀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조용히 내 뒤를 따르고 있었다.


조금 입맛이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아무래도 이제 슬슬 그녀가 내 곁에 있는 효과가 나오는가 싶었다. 하지만 그 정도는 차라리 견딜만 했다. 예전엔 밥굶는 때도 자주였는데 이 정도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내가 평상시보다 밥을 적게 먹는다는 사실을 눈치챘던지, 그녀는 내 밥그릇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가 어떤 저주를 걸고 있는지도 몰랐지만. 어쨌든 밥을 한 술 퍼 입으로 넣으려는 순간, 그녀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입맛이 없는 거야?”

나는 밥숫가락을 놓았다.

“그러네.”

“나 때문인가?”

“그럴지도.”

그녀는 내 수긍 아닌 수긍에 대단히 기쁘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젠장. 왜 난 저 여자 살아생전에 저런 미소를 못 본 거지. 그녀가 살아있었을 때의 그 미소를 보고 싶었지만, 어차피 그러긴 틀린 일 아닌가.

“그게 그렇게 기쁘냐?”

“기쁘고 말고.”

“그렇군.”

나는 밥상을 물리고 자리에 누웠다. 그녀는 누워있는 내 얼굴 위로 자신의 얼굴을 드리웠다. 머리는 치렁치렁하고, 핏기 없는 퍼런 피부에 전보다 더 퀭해진 듯한 눈알이 내 눈과 마주치고 있었다.

“이건 무슨 뜻이냐.”

“네가 죽었으면 좋겠다는 뜻.”

“그런다고 죽겠냐.”

“죽어줬으면 좋겠는데.”

나는 그 말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녀도 가만히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이 상황이 잠시 혼란스러웠다. 내가 죽으면 그녀는 행복해질 수 있을까. 아니, 그 이전에 그녀는 귀신이다. 행복이고 뭐고의 문제와는 상관없는 존재잖아.



그리고, 마침내, 입안의 먼지 씹히는 맛이 사라질 때쯤에,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


식음을 전폐하는 날이 많아졌다. 이미 회사에도 나가지 않은지 오래 되었다. 그렇게 방바닥에 누워있었다. 시간 계산도 되지 않는다. 한 달쯤 지난 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힘들었다.

문득 일어나 밥을 짓기 시작했다. 쌀은 아직 조금 남아있었다. 묵은 쌀이 물에 풀어져 누런 땟물을 내기 시작했다. 나는 쌀들이 물에 풀어지는 꼴을 한참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 뭔가가, 내 가슴을 때렸다. 드디어 나는 알게 된 것이다.

두려움이라는 놈을.

그 감정은 내 심장을 쥐어짜다가 * 듯이 가라앉게 만들었다. 맥박이 느려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실제로는 널뛰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손목을 짚어보며 알게 되었다. 피는 거꾸로 흐르는 것 같았고 초조감과 상실감이 한데 어우러져서 뭐가 뭔지조차 알 수 없게 되었다. 나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무엇이 이렇게 두려운 거지. 손을 가스렌지의 불에 갖다 댈 때도 이렇지 않았다. 높은 곳에 올라가 한 발로 서 있을 때도 이렇지 않았다. 무대에서 많은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짓도 해봤다. 두려움을 느낄 수 있는 짓은 모두 해보았다. 그럼에도 느끼지 못한 감정이 왜 이제 와서야 솟아나는 걸까. 나는 신체의 변화에 따른 혼란스러움을 억누르면서 원인을 생각해보려 애썼다. 그리고 그제서야 깨달았다.

그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달은 즉시 나는 후회했다.


왜 그녀를 죽였던 걸까.

그녀를 죽이고 있을 때도 느끼지 못했던 두려움이었다. 그 때는 공포와 흥분 따윈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의 팔과 다리를 쇠톱으로 썰어낼 때도, 염산에 녹여서 뼈만 골라낼 때도, 잘라낸 머리를 통째로 삶아 그녀의 눈알이 압력을 이기지 못해 터지는 광경을 볼 때도 이렇지는 않았다. 죽은 고깃덩어리가 언제나 전하고 있는 불가해함과 불결함과 불쾌감만 잔뜩 받아버렸을 뿐이다.

그런데 지금은 거대한 돌덩이가 날 짓누르고 있는 것처럼 두려운 것이다. 그녀가 없는 내가, 그리고 그녀가 없는 이 공간이, 그녀가 없는 이 시간이.


그녀가 들어온 건 그 때였다.


나는 달려가 입맞춤이라도 하고 싶었다. 나를 이 두려움이라는 감정 속에서 해방시켜준 그녀에게 어떻게든 답례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는 귀신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현실만큼, 내 발의 움직임도 인색해져 버렸다.

그녀는 날 노려보면서 천천히 들어왔다. 그리고는 씻고 있던 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미 가라앉은 쌀 위로 차오른 물이 넘치고 있던 시간이 꽤 된 광경이었다. 그녀는 천천히 그 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는 거기에 담긴 쌀을 들어보였다.


쌀과 물이 뒤섞여서 그녀의 손에 담긴 채로 허공으로 떠오르고 있었고, 그 광경을 보고 있던 나는 기쁨으로 벌리고 있던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그런 나를 보며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이걸 배우려고 돌아다니다 왔지. 처녀귀신이라니까 다른 귀신들이 눈이 벌개져서 가르쳐주더라. 덕분에 이젠 처녀귀신도 아니게 되었지만.”

그녀의 입꼬리가 심하게 올라가 있었다. 자꾸 잊게 된다. 그녀가 귀신이라는 걸. 그녀는 그 입꼬리를 숨기지 않은 채 내게 말했다.

“죽이기 전에 물어볼 것이 있어.”

“뭘?”

나는 그녀가 어떤 걸 물어볼지 이미 알고 있었다.

“왜 나를........죽였니?”

나는 입을 다물었다.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몰라서 그랬다고, 말하기가 저잣거리에서 엉덩이를 까고 똥을 싸는 행위보다도 더 창피한 일처럼 느껴졌다. 두어 번 내 입술은 달싹거렸지만 끝내 그 진실한 말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쭈볏거리는 나의 목덜미 위로 그녀의 손이 느릿느릿 다가왔다.

“나를......왜......죽였어?”

나는 그제서야 그녀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 딱 하나 남아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말해줘.......나를.....왜 죽였니?”

그녀의 손이 내 목덜미를 휘감아 오며 분명한 압력을 전한다. 나만이 그 질문에 대답해서 그녀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온전히 나만의 것이어야 한다. 이 대목에서 말한다면, 이 대목에서 모든 것이 밝혀진다면, 그녀는 행복하지 못할 것이다.그녀를 만족시키는 것만으로 끝내야 한다. 이 이상, 그녀를 괴롭히면 안된다.


“말해줘........말하란 말이야.......”


점점 강하게 죄어온다. 앞이 흐릿해져 온다. 하지만 죽어도 여한은 없다. 나는 두려움을 알았고,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내가 알았던 그 두려움이라는 감정에서 해방될 것이다. 그리고,

그녀도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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