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천혈 (6) - 과거

NEOKIDS 작성일 11.05.29 23:5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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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가려고 지하철을 탈 때도 가장 위험한 건 아무래도 사람들이었지. 분명히 놀이공원에서만큼 또 미쳐버릴 거 아냐. 그런데 이상하게 주변이 아무렇지도 않더라. 그다지 시선이 쏠리지 않는 것도 좀 신기하기도 하고. 그런 내 생각을 눈치 챘는지, 진윤이 조심스럽게 말했어.

 

“구미호의 색기 때문이라면 걱정하지 마. 내 힘으로 최대한 억눌러두고 있어서, 그냥 어린애처럼 보일거야.”

 

그 뒤로, 집에 가는 동안 김진윤(이라고 부르는 게 실체적으로도 그렇고 훨씬 나을 것 같았어)은 신통하게도 아무 것도 묻지 않았는데 스스로 말을 다 해주기 시작했어. 좀 정확히 말하자면, 미호가 하품을 찢어져라 하고 나자 바로 내게 기대서 잠이 들기 시작한 때부터. 나야 뭐 아무래도 좋다는 식으로 있었지만, 곧 그녀의 이야기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지.

 

그녀는 자신이 정확히 말하자면 손각씨귀신, 즉 시집도 못가고 죽은 처녀귀신이라고 하더군. 그리고 자신의 모든 생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어. 그녀는 조선시대에 살았던 기생이었다는 거야. 어릴 때부터 신동처럼 글을 비롯해 예술에 재주가 있었고 나름 뼈대 있는 가문이기도 했는데, 몰락 이후에는 빚을 지고 사는 아버지 때문에 더 이상 방법이 없어 가족들은 흩어지고 자신은 관기로 들어갔대.

 

이것이 그녀의 한이라는 것일까 잠시 물어보기도 했었어.  우리나라 귀신도 마찬가지지만, 귀신이란 건 보통 한이나 사념이 응집된 초자연적 형태라고 만화나 어디서 주워본 것 같아서.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어. 자신의 한은 그런 게 아니고, 아직 그 핵심의 이야기 근처에도 가지 않았대. 그래서 또 찌그러져서 듣고 있어 봤지.

 

그녀는 관기로 들어간 이후 두각을 나타내서 문물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동인을 만들기도 하는 등 여러모로 활동을 했었고, 그 때 기록이 지금도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기록이 남아있다고 하더래. 나도 나중에야 찾아본 거지만 그 말이 확실히 맞더라. 그녀의 시조 동인에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있었어. 대부분은 어떤 집안의 안주인 식이라서 어디 손씨, 어디 임씨 이런 식으로만 남아있기도 했지만, 놀랍게도 그녀의 호와 작품은 확실히 많지는 않아도 남아있더군. 그녀는 그 때의 동인의 부인들이 정말 시대를 앞서갔던 사람이라고 칭찬했어. 자기가 기생이라는 신분임에도 불구, 자기 재능을 보는 순간 그것을 인정하고 대수롭지 않게 어울려준 그녀들의 대담함에 대해서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이 때 조금 졸아버릴 뻔 했음)

 

어쨌든 그거야 옛날 이야기고,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흠흠. 중요한 건,


그녀가 짝사랑을 했었다는 거야. 어떤 선비를.


가문도 좋았고 앞날이 창창한 선비였대. 너무 좋은 사람이어서, 쉽게 몸조차 허락할 수 없었던 그런 사람이었대. 여기까지 듣는 순간 이건 또 말 그대로 춘향전이 아닌가, 하는데 크게 부정하진 않더군. 춘향전은 그냥 자신의 이야기를 후세에 들은 누군가가 왜곡시켜 만들었다고 하더라고. 허허헐.

 

그러다 선비는 한양으로 올라가고, 자신은 상사병에 걸려 죽어버렸대. 이게 끝~이면 다행이게. 이제 귀신이 되고 난 후지. 진짜 저승으로 가지 못하는 이유는 이제부터였어. 그녀의 말을 그대로 옮기면.


“그 선비는 내게 온갖 감언이설로 사랑을 속삭이고 꼬드기며 하룻밤을 요구했어도 정작 내가 죽고난 이후로는 단 한 번도 나를 생각하지 않았어. 나는 그의 삶을 곁에서 지켜봤지. 그리고 깨달은 거야. 처음엔, 나보다는 내 위신과 명예와 몸을 사랑하려 했던 그 남자를, 그 다음엔 그 남자를 그렇게 만들어놓은 세상을, 그 부조리함을.”


그 다음 말에 나는 더더욱 할 말이 없었어.


 “그 후, 난 내가 상사병에 걸려 죽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얼토당토않고 하찮은 것이었나 깨달았어. 사랑이란 거? 그런건 애초에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거지. 사랑이라 이름 붙인 건 항상 나중에 증오나 환멸로 변해갔고, 사랑이 없는 곳에는 계산이란 놈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고. 그런 쓸데없는 사랑이란 것 때문에 내가 죽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분노가 치밀었어. 그것은 그 남자를 향한 것도, 조선시대의 세상을 향한 것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을 향했던 것이었고.”


 

어째 한이 맺힌 것치고는 참으로 무시무시하다는 느낌이 들었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기 자신한테 화가 나서 구천을 떠돌며 사람을 인형 꼴로 만드는 처녀귀신이라. 이건 뭐 지구촌 급으로 으로 굿을 해도 저승 보내긴 글러먹은 존재잖아. 자기 자신이 미워서 귀신이 된 건데 이 한을 어떻게 풀어줄 수가 없잖아. 넌 그럴 필요가 없어! 하고 쏘아붙이거나 고래도 춤추게 하는 칭찬으로? 푸훕. 게다가 진윤의 그 생각은 아무리 봐도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정작 말로 꺼낼 순 없었어. 그렇게 오래 존재해오면서 인간을 살펴본 진윤이라면, 아무래도 나보다는 많은 걸 느꼈을테지. 나야 이제 고작 스물 여섯해 살아온 존재에 불과한 걸.

 

 

그 뒤로 살아오면서 그녀는 일단 목말랐던 지식욕을 다 채우려고 노력했대. 책도 열심히 읽었고 신문명이 유입되던 조선시대 말기부터 벌어졌던 임진왜란부터 시작해서 한국의 근현대사까지 모든 지식을 습득하면서 그녀는 고스란히 살아왔어. 하지만 절대로 인간을 돕거나 접촉하진 않았대. 그녀가 가장 행복했던 때는.....6.25가 일어났을 때였다는데. 허헐.


“그 땐 아무도 나라는 존재를 신경 쓰지 않았거든. 생기도 천지에 쌓여 있었고. 그저 죽어가는 시체 몇 개를 뒤져서 다 죽어가는 것들을 조금만 빨아내면 됐던 거야. 나는 그 속에서 많은 것을 보아왔어. 이념이란 것이 사람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그리고 그것 때문에 이후에도 어떻게 변해갈지, 모든 것이 보였지. 어리고 젊은 애들이 전쟁터 속에서 죽어가다 나를 붙잡고, 내게 생기가 빨렸을 때, 그 때 짓던 표정은.......후우........”


그녀는 전쟁 속에서 죽어가는 모든 것들에 가끔씩 참배를 하기도 한대. (혼령이 혼령을 참배한다.....라니.....) 그러다가 보초서는 군인들한테 오밤중에 들켜서 오해하지 말라고 다가가면 기절이나 해버리는 등, 참으로 요즘 애들은 과거 사람들에 비하면 배짱도 포부도 수준이하라고 또 악담을 하더군. 그리고 그럭저럭 지금까지 존재를 유지해 왔다는 거지.


그녀의 말이 끝나고, 한동안 입을 다물고 생각했어. 진윤도 더 이상은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 지하철의 사람들도 많이 빠져나가서 덜커덩거리는 소음만 더 심해졌고, 이제 역은 대여섯 정거장만 가면 끝나는 그 시간, 나는 진윤이 살아왔던 시간들에 대해서 생각했어. 자기 자신을 향한 분노를 죽이지 않고 되려 지식욕으로 불태우는 사람이란 어떤 마음의 사람인 것일까를.


복잡해져 오는 머릿속으로 일단은, 왜 진윤이 악담만 그렇게 늘어놓는지는 알겠더라. 그게 이해된 순간, 그것보다 좀 더 궁금한 것이 아직 하나 있었어.


“그런데, 사람이랑 접촉하지 않았다고 했잖아? 그런데 그 몸은 어떻게 얻고 왜 인간들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거야?”


진윤은 현재 좀비처럼 썩은 살덩이나 다름없는 자신의 ‘껍데기’에 대해서는 의외로 짧게만 설명했어.  

“처음에도 그럴 마음은 아니었는데, 이 아이가 나와 같은 것을 깨닫기 시작하는 순간, 맘이 달라지더라고.”

“무슨....?”

“긴 이야기지만, 간단히 이야기하면, 이 아이를 이용해서 모든 걸 복수해주려고 했어.”

이야기는 잠시 끊어졌어. 더 이상 물어본다고 해도 이야기해 줄 것 같지 않은 상황. 뭔가 말을 잇고 싶어서 계속 머리를 굴리다가 겨우 생각한 게,

“그래서, 복수는 했어?”

“응. 몇 놈만 골라서 혀를 잘랐지.”


히이이이이이이익!!!!! 어깨를 한껏 움츠리고 기겁을 하고 있는데 진윤은 여전히 얼음장 같은 얼굴로 나를 노려보면서딱 한마디를 쏘아붙였어.

“농담인데.”

휴우. 조금 어깨가 풀리면서 안도하고 있는데, 되려 진윤이 얼굴을 붉히면서 얼굴을 가리고 미안해 하더군.

“미안.....원래는 웃길려고 한 건데, 난 이런 게 서툴러서...”

웃어야 할지 정색을 해야 할지 난감한 상황 속에서도 지하철은 잘도 달려가고 있더군. 그리고 미호도 잘만 자고 있고.

 

그렇게 잘만 달려서 이제 내릴 역이 다가왔고, 나는 미호를 깨워보려고 했어. 그러나 미호는 아예 이제 눕다시피 해서 하얀 배를 다 내놓고 자고 있더군. 엉거주춤 미호를 일으켜서는 업고 일어나는데, 진윤이 나를 도와주면서 같이 일어났어. 그러더니 같이 내가 내리는 데 내리지 뭐야. 뭐 다음 차를 타고서 집으로 가겠거니 했어. 아무래도 일단은 살아있는 몸도 신분도 있잖아. 집도 절도 없이 살아온 것도 아니고. 그런데 계속 쭈볏거리고 있는 게 어째 영 수상해서 말을 걸어봤지.

 

“......집에 안 가?”

“사실 그것 때문인데.....”

 

얼굴만은 엄청 싸늘한 표정인 채로 몸을 모로 돌리면서 말하는 걸로 봐서는 뭔가 진짜 부끄럽다, 라는 행동 같은데, 얼굴이 그 모양이니 나도 자연스레 정색이 되어버리고.

 

“이 몸을 유지하려면 네 생기가 필요하긴 한데.....필요할 때마다 때맞춰서 찾아가 볼까도 생각했지만, 그것도 힘들 것 같고, 역시, 가장 좋은 건.....”

“가장 좋은 건?”

“네가 사는 데서 같이......같이 사는 게......”

 

허허허. 이거야 원. 놀러 나갔다가 군식구 하나 더 딸려들어오는 건가. 뭐 복작거리는 거야 좋겠지만, 여자 몸이라서 왠지 내가 더 힘들 것도 같고, 얘가 오면 그나마 겨우 추위를 막고 있는 집안이 더 썰렁해질 것 같기도 하고, 일도 하긴 해야 하고, 미호처럼 귀찮지는 않더라도 혹처럼 되지는 않을까 등등등의 이런저런 잡생각들이 냄비에서 물끓듯 끓어올랐지만, 그런 내게 짜증도 나고, 그러다 보니 얼굴은 쓸데 없이 정색을 하고 있고, 그래서 그냥 나는


“그래, 같이 살자.”

 

하면서 활짝 웃어줬어.

 

뱉어놓고 보니 기껏 한 말이 참 뭐랄까, 의미가 희한하기도 했지만 일단은 인연이라고 했잖아. 그런 건 쉽게 내칠 순 없지. 또 진윤의 말을 듣다보니, 왠지 그렇게 사랑이 없거나 계산만 하며 살면 안되겠다, 하는 오기가 생기기도 했던 것 같고.그런 내 웃음을 보면서 진윤의, 그 딱딱하게 굳어있었던 입가가 아주 희미하지만 예쁘게 올라갔어.

 

“고마워.”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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