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
놀러 나갔다가 군식구 하나를 더 데리고 돌아오는 길은 이미 어두운 밤. 추운 밤바람이었지만 산꼭대기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그렇게 춥지 않았어. 뭐 여자사람 모양을 한 존재가 둘이나 있다고 해서 그런 건 아니었고. 업고 거기까지 올라가느라 죽을 맛이었다는 게 더 맞는 말이었겠지. 등 뒤에서 내 땀냄새에 잠결이라도 입맛을 다시며 이빨을 세우고 그르렁대고 킥킥대는 미호의 모습만 느껴지지 않았다면, 뭐 세상은 평온한 상황이었지.
그렇게 집으로 들어와서 진윤의 타박을 받으면서 저녁밥도 준비하고. 참나. 귀신한테 인간이면 인간답게 좀 먹고 살라고 타박받기도 난생처음이었지. 그래봐야 남아있던 라면 끓인 거고, 먹을 것도 얼마 없었는데 뭐. 그러다가 내일은 꼭 일을 나가야 겠다는 생각도 하던, 그런 밤이었어.
하지만 그런 평온함도 오래 가지는 못했지. 그건 갑자기 대문을 주먹으로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울리면서 끝났어.
“누구세요?”
오밤중에 날 찾아올 사람이 대체 누가 있을까 생각하며 난대문 쪽으로 나가서 문을 열어봤어.
“여어.”
흉흉하고 우락부락한 20여 명의 남자들. 유머게시판 같은데서나 간혹 보던 근육질 게이 같은 인간들이 추운데도 얇고 비싸 보이는 옷들을 입은 채 한 떼를 이루고 있고, 그 맨 앞에는 역시 그런 옷차림의 굉장히 호쾌해 보이는 턱수염의 중년 사나이가 한 손을 들어 내게 인사를 했어.
“자네가, 그, 구미호랑 같이 다니던 인간 맞는가?”
인사를 하는 사나이부터, 그 뒤의 사람들까지 한 가지의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나는 알아차렸어. 옷차림? 뭐 그런 거면 내가 사색이 되지도 않았지. 문제는 전혀 다른 거였어.
그들의 머리통 꼭대기쯤에 떡하니 붙어있는 외뿔.
그걸 보는 순간,
나는 꼿꼿이 선 채로 그냥 대문을 닫아버렸어.
“어.....어이.....요로코롬 박대하기냐?”
당황하는 사나이의 목소리.
“문 좀 열어보랑게.”
쾅쾅쾅쾅. 주먹으로 대문 두드리는 소리.
“야이 호로새퀴야, 울 성님이 친히 여기까지 와서 대화 좀 하자는데 이게 뭔 개짓거리당가!”
“성님, 다 때려 엎어불까요? 아우 썅.”
그 뒤의 패거리들이 한마디씩 지껄이며 뭔가 주변의 쓰레기라도 작살을 내고 있는 듯 소란스런 소리들.
“어이. 아그들이 성깔이 치솟고 있난디, 상황 좀 봐서라도 문 좀 열어보더라고. 별일 없을 거잉께.”
“성님, 다 필요 없고 동네 깨박 함 쳐붑시다.”
“맞소잉. 지가 동네 챙피해서라도 열어주겄지라.”
“동네사람들, 여거 아주 인간말종이 있어라!”
이걸 무슨 재주로 견디냐고. 더 시끄러워 지기 전에 나는 다시 대문을 열었어. 아까 전엔 그나마 어색하게 웃으려고 하고 있던 자들이 이번엔 험악한 인상도 숨기지 않고 있었어. 그 중 뒷줄에 있던 양아치 스타일 하나가 와서 나를 을러대기 시작했지.
“너 이샹누무새갱이 심장이 한 다섯갠갑다? 어서 확 디져불라고 방방 떠부러, 엉?”
을러대는 놈의 이런저런 모습들은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어. 눈에 들어오는 건 오로지 머리통 위의 뿔 뿐이었지. 아, 나름 귀엽게도 튀어나왔구나. 드디어 올 것이 온 건가? 도깨비라는 거겠지? 하지만 이렇게 우락부락한 놈들이 떼로 올 줄은 몰랐는데? 군식구 둘만으로는 모자라서 아예 기둥뿌리까지 뽑으려는 건가? 하하하. 도대체 뭐 어떻게 되어먹은거야, 나의 천기라는 건!
대체로 이런 식의 생각이 혼란 속에서 떠오르고 있는 찰나, 나를 신나게 을러대던 한 놈이 갑자기 퍽 소리와 함께 앞으로 고꾸라졌어.
“주둥이 좀 싸물어라.”
그리고 두목처럼 보이는 호쾌한 턱수염은 씨익 웃으면서 손짓을 했어. 그러자 그놈들이 뭔가 보호하듯 둘러싸고 있던 곳의 길이 트였어.
“일단은, 내 딸을 소개해주려고 왔응게, 잘 부탁허드라고!”
여자사람 모양. 중학교 2학년......정도 되어보이는 새초롬한 표정과 얼굴만큼이나 크고 둥근 안경, 그리고 정말 중학생처럼 짧고 단정한 머리. 머리통은 역시 똑같은 뿔....이라기 보다는 뭔가 좀 더 작고 귀여워서 혹이라고 해도 믿을만한 그런 뿔. 계속 뭔가 부끄러운지 한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는 그런 애를 데리고 부친 도깨비는 우리 집으로 들어왔어. 물론 ‘아그들’ 한테는 바깥에 남아있으라는 엄명을 내리고. 뻘쭘한 상황에서 그들을 데리고 안방으로 안내했을 때의 풍경이야, 미호는 옹알거리며 자고 있었고, 진윤은 도깨비들을 보고도 뭐 표정이나 분위기에 변화가 없이 얼음장 그대로인 상황.
부친 도깨비는 그런 둘을 보더니 한 마디를 뱉었어.
“어따, 벌써 다 만났구마잉? 그나저나 집도 참 좋구마잉. 음기(陰氣)도 산꼭대기임에도 아주 충만한 것이, 완전히 운명이구마잉.”
그리고는 방바닥에 주저앉아서 나를 올려다보면서 말했어.
“손님 왔는디 마실 것도 안주는가?”
네,네, 드려야지요....의 문제가 아니라!
“저, 일단 오신 용건부터 말씀해 주시는 게.....”
“아, 순서가 그런가잉?”
부친 도깨비는 씨익 웃으면서 말했어.
“일단 그럼 앉더라고.”
주섬주섬 앉자마자 다짜고짜 부친 도깨비는 내 손을 덥석 잡았어.
“그럼, 이제부터 우리 딸을 잘 부탁허네?”
“예? 무슨 말씀이신지?”
정색하고 물어보는 내 표정을 보며 부친 도깨비는 싱글거림을 멈추지 않았어.
“다 알고 있었음시롱 내숭은. 이미 도깨비 만나는 것만 남은 건 알고 있었을 거 아닌가 말이여. 그래서 내가 데려왔제잉.”
그러면서 옆에 앉아있는 조그만 여자아이의 어깨를 꽉 움켜잡았어.
“거시기, 나는 이름이 천보라 하고, 요쪽이 내 여식, 이름은 초롱이.”
초롱이라고 뜬금없이 소개를 받은 그 여자아이는 여전히 내 쪽을 보지 않고 바닥만 쳐다보고 있었어.
“얼라, 이눔자슥 아주 부끄럼을 타는구만? 시작이 아주 좋아부리는디? 껄껄껄~”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는 부친 도깨비. 기분이 좋은지 그 때부터 뭔가 주절주절 말을 하기 시작하는데, 그 정신 못 차릴 것 같은 와중에서도 들은 정보를 종합해 볼작시면,
어디서부터 야그를 해야 쓸끄나. 응, 그렇지. 나가 거시기 인간들 노는데 뭐시기냐, 클럽인가 뭔가에 함 놀러갔다가 그만 인간 여자랑 배가 맞아부렀네. 그란디 엄맘마, 임신을 했지 뭔가. 그래서는 나 살고 있는 데를 용케 찾아 온 거여. 내치기도 황망스럽고, 요게 요 아그가 제법 내 자슥이다 생각허니 아무리 나가 도깨비라 혀도 눈에 밟히지 않겠는가 말이여.
그런데 요게 말이 쉽제, 엄청 고생했어야? 여자아이지마는, 원래가 도깨비들은 남자들만 있당게. 우락부락한 놈들 사이에서 키우자니 참 힘도 들고, 야가 또 피가 반반씩 섞여서 썩 주변에서 좋은 소리도 못 듣고 다녔고. 그라다 봉게 인자 방안에서만 지내면서 거의 그 뭐시냐, 방에 콕 쳐 박혀서 안 나오는 거? 그렇게 살고 있었제잉. 그런데 야가 그 방안의 컴퓨터에서 뭘 봤는지 어느 날 갑자기 나와서는 자넬 찾아달라고 하지 않겠는가 말이여. 그래서 뭘 봤는가 했더니....
이 대목에서 초롱이가 잠시 아이폰을 만지작거리더니 부친 도깨비한테 건네주더군.
아, 맞다. 나도 본거. 이걸 보여주더라니께. 이걸 보고 나서야 자네가 승천혈인 걸 알았지. 정확히 말하자면 자네에게 달려드는 이 구미호를 보고.
아이폰 속에는 트위터와 연결되어서 동영상이 바로 뜨고 있었어. 그 동영상에는 낮에 놀러갔던 놀이공원에서의 해프닝들이 그대로 뜨고 있었어. 현기증이 일었지.
그래서 아, 내 여식이 바로 선택받은 아이구나, 하는게 느껴지더라고잉? 앞뒤 따져볼 것도 없이 아그들 동원해서 주소 알아내서 와부렀고. 뭐 두 말할 필요 있겠능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수습을 해본 결과, 적어도 한 가지는 마지막 단락에서 깨달을 수 있었어. 그래서 물었지.
“저, 그렇다면, 승천혈이 뭔지 알고 계신 겁니까?”
“얼라. 몰랐는가?”
“예.”
부친 도깨비는 뭔가 난감하다는 듯이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어.
“아직 자각이 덜된건가, 누가 가르쳐주다 만 건가. 알고 있는 줄 알았드만. 뭐 이런저런 이야기는 길어질 거 같고, 간단하게 줄여서 야그해불면.....”
정리를 하느라 힘들다는 듯 머리를 벅벅 긁어대는 부친 도깨비가 말하기를 기다렸다가 들은 결과.
“자네는 고조선 때부터 내려온 선인의 순수혈통이라고 할 수 있제.”
헐.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