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
뭐 어떻게든 되지 않겠나, 싶었지. 라고 편하게 생각을 했지만, 이틀이나 지나고 나니 역시 뭘 좀 알아야 되기는 해야 겠다 하는 생각이 간절한데, 도서관은 이제 더 이상 갈 수가 없고, 애들은 다 데리고 돌아다녀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에 머릴 짜봤지만 특별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어.
미호나 진윤이나 초롱이나 모르고 있는 건 매한가지인데 대화가 되나. 뭔가 이런 저런 것들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사람이 절실하긴 했지. 그렇다고 미호 속의 존재를 불러오자니, 부르는 법도 모르고 미호는 그 존재에 대해서 물어보면 응? 뭐가? 이런 표정이고. 헐.
직장도 때려친지라 뭘 해야 하나 멍하니 있던, 여느 날 같은 하루,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있는 동안, 미호는 초롱이와 함께 인터넷을 보면서 낄낄거리고 있었고 진윤은 조용히 만화책을 읽고 있었어.
이거, 가만 보면 내가 완전히 하인이잖아! 승천혈이고 나발이고 이건 뭐 아무것도 없잖어. 도대체 좋은 게 하나 없잖어. 이런 생각에 잠시 젖어있을 때쯤 설거지는 끝났고.
방으로 들어온 내게 진윤이 문득 고개를 들면서 진지한 눈빛으로 말을 걸어왔지.
“성소.”
“응?”
“만화란 건 정말 재밌어! 내일은 더 많이 빌려와야 되겠는데!”
하아아아. 뭐야. 이런 타이밍에.
“그러던가.”
“많이 초조한가?”
“아무래도, 그렇지. 그런 이야기들을 들은 이상은....”
진윤은 조용히 만화책을 내려놓았어.
“확실히, 지금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정보들은 우리에겐 쓸모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해. 그렇다고 미호 속의 존재를 불러낼 수도 없는 상황이고.”
“그래. 그 말이 맞아.”
“그렇다면 문제는 간단해지지 않을까?”
“응? 어떻게?”
“알고 있는 사람을 찾는 거지.”
진윤의 말을 듣고 나서야, 나는 퍼뜩 깨닫게 되었어. 맨처음에 날 만났던 무당. 그래! 그거였어! 그 무당이 뭔가를 알고 있었듯 세상에는 분명히 이런 상황들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 거야.
“정말 머리 좋잖아? 제법이야, 진윤.”
“그럼, 이제 정보는 초롱이에게 찾아보라고 해야겠지?”
우리는 즉시 초롱이에게 무당집 등에 관한 정보들을 찾아보라고 주문했어. 초롱이는 무슨 뜻인지 알았다는 듯 바로 회선을 접속했어. 난 끽해야 지도서비스 같은 거나 띄우고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이나 할 줄 알았는데, 상황은 전혀 달랐어.
인공위성 카메라로 직접 연결을 해버리더라고. 허헐.
“연결포트와 프로그램은 위성통제센터 것을 사용하고 있어서 상태는 괜찮을 거에요. 포털 사이트 등의 위치정보와 대조까지 하니까 조금 시간이 걸리겠지만, 뭐 금방 끝나겠죠?”
초롱이는 자신의 엄청난 실력을 보여 주겠다는 듯 손가락 마디를 우두둑 거리더니 손을 얹고 컴퓨터를 마구 주므르고 있었고, 미호는 모든 게 다 어리둥절하다는 식으로 이것도 살펴보고 저것도 살펴보고 있었지.
한 30여 분만에 모든 작업은 끝났고, 전국의 무당 관련 정보들을 모두 싸그리 모아놓은 지도 이미지를 보는 순간, 나는 혀를 빼물었어.
교회.....만큼은 아니지만, 작은 점들이 지도상에 아주 빼곡하게 표시되어 있는 거야. 이게 모든 무당집들의 위치정보라니. 다 찾아볼 수는 있는 걸까. 그 때 진윤이 또다시 머리를 썼어.
“여기서 걸러보자. 사주나 풍수, 토정비결 같은 일반적 정보를 올리는 곳들은 1차적으로 제외하고, 무슨 역술관 같은 식으로 운영하는 곳도 제외하고. 소규모로 제대로 하는 굿집이나 신내림을 제대로 받은 무당들 위주로 한 번 찾아봐야겠어.”
“그럼 전화통화 상의 정보나 이런 부분들도 체크해야 하니까 한 3시간쯤 걸릴 거에요. 가망성이 없는 곳들은 모두 빼 볼께요.”
의외로 이런 부분에서 진윤과 초롱이가 손발이 척척 맞는 모습을 보이자, 샘이 나는지 미호가 생떼를 쓰기 시작했어.
“뭐야! 뭐하는 건데! 나도 좀 가르쳐줘!”
초롱이의 어깨를 흔들고 있는 미호를 보던 진윤이 슬쩍 내게 눈짓을 했어. 네가 전담방어 하라는 노골적인 눈빛. 하아......별 수 있나. 나라는 존재는 지금의 작업 상황에서는 전혀 도움이 안 될 터이니 이런 역할이라도 해야지.
두 팔을 벌린 채로, 애기 다루듯이 나는 미호를 얼렀어.
“미호! 이리와. 동생들 방해하면 안 되지.”
“히잉~”
참나. 몸매는 호리호리 쭉쭉빵빵 다 큰 가스나인데 말투랑 정신상태는 어린애 같다니. 그래도 그런게 싸악 안겨오니까 따스하니 기분은 좋더라. 주저앉은 채로 그렇게 미호를 안고서 대강 화면을 보고 있노라니, 지도 이미지 상의 빨간 점들이 하나 둘씩 느린 속도지만 줄어가고 있었어. 그 광경과, 식후의 포만감이 주는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나는 잠시 미호와 함꼐 잠에 빠져들고 있는 찰나,
진윤이 어깨를 흔들었어.
“성소. 일어나봐. 다 됐어.”
정확히 3시간 만에 모든 정보가 처리되었고, 빨간 점들이 드문드문 나있는 지도 이미지가 완성되어 있었지.
“의외로 그래도 좀 많긴 한데, 그래봐야 한 50여 군데 정도밖에 안되네요. 덕분에 위성센터와 전화국은 지금쯤 난리가 났을 거에요, 히히히힛~”
민폐를 전국적으로 끼쳐놓고 무슨 히히히힛. 하지만 열심히 해놓은 결과물을 보면 고마워할 수밖에 없었지. 그런데 서울지점에 딱 한 군데, 빨간 점이 있는 게 보이는 거야.
“여기, 한 번 확대해 봐줘.”
초롱이가 지도 이미지를 시, 구, 동, 건물 단위까지 확대하고 나자, 초롱이부터 놀랄 수밖에 없었어.
“이 동네 근처네요?”
나는 초롱이에게 대체적인 정보와 전화번호를 찾아보라고 했지만, 전화번호 같은 건 그 어디에도 없고, 이 점집은 홍보 같은 것도 안하고, 어떤 정보도 없다고 대답했어. 심지어는 전기조차 연결되어 있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어.
“이 집이 점집인 걸 알 수 있는 건 단서가 이것뿐이었어요.”
초롱이는 포털사이트의 로드맵에 나오는 사진정보를 보여줬어. 로드맵은 원래 큰 길로만 다니면서 찍잖아. 그 사진을 회전시켰을 때, 저 멀리 나지막하게 앉은 집 앞쪽에 다 깨져가는 아크릴판 같은 간판이 하나 서있었고, 거기엔 초영도사-무당 이라는 간단무쌍한 내용만 나와 있었어. 위치는 우리 산동네 중에서도 개발 얘기 따윈 전혀 나오지 않는 변두리 중의 변두리.
그 간판과 주택의 이미지를 봤을 때, 어렸을 적 어머니가 해주던 이야기들을 떠올리면서 난 직감했어. 이거다, 하고.
그렇게 오후의, 그림자가 길게 끌리는 시각.
난 애들을 데리고 그 곳 앞에 있었어.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이미지 상의 주택은 그 점집이 아니었어. 그건 다 쓰러져가는 다른 건물이었고, 그 옆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하나 있었어. 아크릴판 간판은 정확히 그 앞에 있었고.
우리 집 상황보다 3.5배는 덜 좋아 보이는 그 곳의 계단을 내려가니 감옥에서나 볼 법한 철문 같은 게 곰팡내 속에서 떡하니 현관문이라고 우리를 가로막고 있었어. 나는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지.
“누구세요.”
짜증이 묻어나는 남자의 목소리가 내 노크에 반응해왔어.
“저, 일단은 좀 상담드릴 게 있어서 왔는데요.”
“영업 안 합니다.”
“저, 그래도 좀 얘기를 나눴으면 합니다....”
“그러니까 영업 안한다고.”
갑자기 말이 짧아지는 거? 나도 살짝 필이 꽂혀서 다시 문을 두들기면서 대들었지.
“일단 말할 게 좀 있는데 문 좀 열어보라고!”
강하게 어필을 해봤는데, 반응이 역시나 격하게 나오더군
“아놔 이런 제기랄.”
가시돋힌 남자의 음성, 그리고 그가 다가오는 기척. 초면에 대단한 실례를 하는 게 아닐까. 이러다가 진짜배기여도 도움도 못받는 거 아닐까, 뭔가 마구 조바심이 났는데,
“영업 안한다는데 왜 자꾸 지랄....”
철문이 열리면서 나랑 동갑내기 정도로 보이는, 긴 머리를 한 예쁘장한 얼굴의 남자가 나왔어. 그리고 우리를 향해 욕을 하려 했지....만. 그 욕은 나오다 말고 끊겨버렸어. 우릴 한 번 쓱 훑어보고 난 뒤였지.
“뭐야...이건. 뭔데 왠 잡귀들을 이렇게 몰고 다녀.”
“그러니까, 좀 나눌 말이 있다고 했잖아요.”
남자는 역시 제대로 찾았다는 확신에 차있는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어. 그리고는 직감적으로 뭔가를 깨달은 듯 했지. 아까 전만큼의 짜증은 아니더라도, 표정은 많이 부드러워졌다는 것도 느껴졌고.
“들어와.”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