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습하고 더러워 보이던 출입구 쪽과는 달리 안쪽은 뭔가 아늑해보였어. 다만, 어머니가 기억하던 그런 점집 같은 모습은 아니었고.
불상이나 조각상, 탱화들, 이런 것들은 눈 씻고 찾아보려 해도 없었고, 일체의 장식이나 인테리어 같은 것도 없었어. 그저 진짜 나무로 된 바닥과, 몇 개의 촛불, 그리고 경전 같은 게 수두룩하게 꽂힌 책장, 그리고 편안해 보이는 소파세트가 있을 뿐이었어. 정말 특이할 것이 없는 내부였다고.
딱 하나, 그 남자의 어깨 위에서 둥둥 떠다니는 여자귀신의 존재만 빼면.
“얘가 보이지?”
소파에 앉아서, 그 여자귀신이 건네준 찻잔을 받으면서 나는 고개를 좀 오버해서 끄덕거렸어.
“그래, 그럴 테지. 그런 피니까. 이젠 제대로 부림이의 능력이 올라오고 있군 그래. 아, 내 이름은 초영이라고 해. 얘는 지희라고 하고.”
초영으로 자신을 소개한 박수무당은 여자귀신에 대한 소개도 덤으로 해줬어. 물론 진윤이도 귀신이긴 하지만, 진윤이는 이렇게 영체로 되어 있는 형태가 아니라서 좀 적응이 안 되었었지.
“그건 그렇고......”
초영은 고갯짓을 하면서 말을 했어.
“저 애들 좀 어떻게 안 되나?”
미호는 바닥이 넓다면서 이곳저곳 뒤지고 뛰어다니고 있었고, 진윤은 고서들이 즐비한 서가를 뒤져 벌써 한 권 꺼내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고, 초롱이는 전파도 인터넷도 통하지 않는 이 지하에 공포를 느꼈는지 구석에 쳐 박혀서 또 무릎을 껴안은 채 바닥에 앉아 있고. 하아......하는 내 난감한 표정에 초영도 같이 난감해하면서 말했어.
“구미호에, 처녀귀신에, 도깨비까지. 아주 골고루 모아놨군. 지희. 아무래도 지금은 어쩔 수 없으니까, 쟤들 좀 상대해줘.”
“그걸, 다 알 수 있나요?”
“나도 명색은 무당이라고. 일반적인 무당과는 좀 틀리지만, 구구절절이 말해줄 필요는 없을 것 같고. 그래, 왜 날 찾아 왔는지도 대강 알 것 같다. 하지만 역시 본인 입으로 듣는게 낫겠지.”
“제가 뭘 어떻게 해야 하나 싶어서요.”
“네게 그걸 말해주려던 사람이 벼락을 맞지 않았나?”
“그......그건 또 어떻게.....”
“천기누설하면 당하는 몇 가지 급살 중의 최고봉인데, 아무래도 너에게 알려주려던 정도면 그 정도는 하지 않았을까 싶어서. 벼락 맞은 사람의 인상착의를 알려주겠어?”
나는 그 무당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 최대한 알고 있는 것을 다 말해주었어. 초영은 얘기를 듣다말고 콧방귀를 뀌었고, 그 사이 지희는 마치 보모처럼 모두들에게 말을 걸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더군. 역시 초롱이가 제일 어려서 그런지 초롱이부터 잘 보살펴 주었고.
“훗. 역시 그 아저씨였구만. 결국은 무덤을 팠군. 그렇게 나대면 안 된다고 말해줬는데도 불구하고. 그건 그렇고, 그런 꼴을 앞에서 보고도 나한테 묻는다는 건 내가 벼락을 맞길 원한다는 건가?”
“아니, 저 그런 뜻은 아니고....”
“농담이야, 농담.”
초영은 미소를 띄면서 말했어.
“네 앞으로의 천기는 내가 다 안다고 해도 말해줄 수 없어. 말 그대로 나도 벼락을 맞을 수 있으니까. 대신, 약간 도와줄 수는 있지.”
초영은 벌떡 일어나서, 촛불들이 켜져 있는 곳으로 가서는 붉은 색의 먹을 갈았어. 그리고는 뭔가 입으로 계속 중얼대면서 종이에 글씨를 휘갈기기 시작했어.
그 사이 지희라는 귀신을 비롯해서 셋은 아주 잘 놀고 있더구먼. 둘러앉아서 뭔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더라고. 그리고 초영의 알 수 없는 작업이 끝난 후, 초영은 손에 종이뭉치를 가지고 왔어. 벌써 빨간 먹물이 확 말라버린 노란 종이의, 부적이라는 놈들.
“일단은 10개 정도로 만들었어. 내 힘으로는 아직 이 정도가 한계지만.”
“뭐, 어디다가 붙여놓거나 해야 하는 건가요?”
“아니, 지니고 있다가, 써야 될 때가 오면 던져. 그럼 부적이 힘을 빌려 줄 거야.”
나는 다시 부적을 살펴보았어. 일단 일반적으로 길쭉한 놈의 부적들과는 좀 큼지막하다는 게 다를까, 그 이외엔 별 것은 없었어.
“때에 따라 네가 진짜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있으면 이 부적들이 도와줄 거야. 하지만 그 부적들은 내가 다시 만들어주거나 할 수는 없어. 그러니까 아껴 써야 해.”
“감사합니다.”
“나이도 나랑 동갑인데, 뭘 그렇게 존댓말은 하고 그래. 할 필요 없어.”
초영은 도와준 게 기분 좋다는 듯 씩 웃었어. 그러면서 좀 더 조언도 아끼지 않았지.
“일단, 내 핸드폰 번호 저장하고. 여러 사람이 필요한 큰 일이라고 생각되면 전화해. 많이는 불러올 순 없어도, 아마도 두 셋 정도는 불러올 수 있을 거야. 사람 수가 적어도 여러 사람 몫을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고....고마워.”
“고맙기는 무슨. 진짜 본론은 이제부터야.”
초영은 미호를 한 번 보고 나서 말을 이었어.
“저 구미호 속에 있는 존재에게서 대강 말을 들었겠지만, 나조차도 느낄 수 있을 정도면 상당히 심한 거야. 넌 이제 완벽하게 세상의 온갖 잡귀들을 끌어 모으는 안테나가 되어버렸어. 그러고 그건 저 애들도 마찬가지야. 이게 무슨 뜻인지 알아?”
“잘 모르겠는데....요.....”
“널 중심으로 해서 끊임없이 아주 조그만 잡귀 하나까지 계속 모여들 거라는 이야기지. 그것들은 너희들에게 해는 끼치지 않아. 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조종하고 해하게 될 거야. 너랑 딱히 연고가 없어도 그놈들에겐 상관없어. 말하자면 항상 어두운 기운이 모여 있는 우물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달까. 그리고 그것들은 네 기분이나 모든 것들에 반응해서 주변을 해하기 시작할 거야. 네가 잘못하는 건 아니지만, 너에게 반응해서 그렇게 되는 거니까. 네가 밝으면 그들도 밝게 있을 수 있어. 네가 어두워지면 그들은 상고시대부터 이제까지 쌓아왔던 한을 다 쏟아 낼 거야.”
그 얘기를 듣고 나자 갑자기 우울해지기 시작했어. 이거 그 이야기를 괜히 들어서 손해보고 있는 거 아닐까 싶기도 했고. 그런 나를 초영은 지긋이 쳐다보다가,
느닷없이 소릴 빽 질렀어!
“갈(喝)!”
갑자기 그러니까 깜짝 놀라서 난 소파로 몸을 튕겨 올렸고, 애들 쪽도 우릴 돌아봤어. 하지만 애들 쪽은 벌써 지희가 수습을 하고 있었고, 초영은 배를 잡고 웃어댔어.
“푸하하하하핫!!!! 큭큭큭큭큭큭큭!!!!!!!”
날 비웃는 것 같아서 뾰루퉁하게 있다 보니, 초영은 낄낄거림을 멈추고 날 쳐다봤어.
“네가 그런 얼굴로 있으면 잡귀를 다 끌고 온다, 이 말이야. 그럼 저 애들이 지켜주고 싶어도 못 지켜줘. 무슨 수를 써서라도 즐겁고 밝은 기분을 유지하고. 항상 최선을 다하라고. 네가 지금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일이야. 알겠어?”
머쓱해진 나는 머리를 긁으면서 대답했어.
“응....알았어.”
“어쨌건 참 고생이 많겠다. 힘내고.”
초영은 축원을 하는 약식 굿을 내게 해준 후, 악수를 한 번 크게 하고는 작별인사를 했어.
“이제 가봐. 날 찾을 일은 당분간 없을 거야. 아, 그리고, 나에 대해서 말을 퍼뜨린다든가 하는 건 삼가줘. 일반적으로 무당들이 하는 일을 하는 무당이 아니니까.”
조금은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애들을 챙기려고 돌아섰는데, 뭔가 자기들끼리 소곤소곤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내가 오는 순간 미호부터 달려와서 몸통박치기를 해왔어.
“성소! 이 언니 너무 좋아! 재밌는 얘기 많이 해줬어.”
나는 지희라는 귀신에게 인사를 했고, 지희도 공손하게 인사를 받았어.
확실히, 느낌이 진윤과는 많이 달랐어. 손각씨이긴 한데, 한이라던가 하는 어두운 감정들이 느껴지지 않고 순백의 생령 같다는 느낌이었지. 뭔가, 제대로 저승에 갔어야 하는데 아닌 채로 일부러 붙잡아둔 느낌 같았어.
지하로부터 나와서 집으로 다시 가는 길. 품속에 넣어둔 부적들을 매만지면서 이걸 사용할 수 있는 때란 게 어떤 때일까를 곰곰이 생각해봤어. 아무래도 안나랑 미호가 싸우던 그런 때 정도일까. 하지만 그 땐 내가 알아서 할 수 있는 상황이었으니 그 정도는 아니고, 뭔가 더 큰 일이 벌어진다는 얘기. 적어도, 그런 일이 있을 때 쓸 수 있는 아이템을 얻었다는 게 마음속으로는 좀 부담이 덜해졌지.
그러면서 걷고 있는 순간.
갑자기 앞에서 고급 중형차가 급정거를 하는 거야.
급브레이크로 찢어질 듯 타이어가 마찰하는 소리. 심장이 덜컥거리는 걸 느끼며 벌써 부적을 써야 할 때가 온 건가 부적을 넣어놓은 근처를 꽉 움켜쥐었고, 방과후 삼삼오오 짝을 지어가는 학생들도 전부 이쪽을 쳐다보기 시작했어. 모두들 무슨 일인가 하면서 나름 대비를 하려고 하는데, 문이 벌컥 열리면서 누군가가 내리는 걸 본 순간, 이맛살을 찌푸리면서 말을 꺼낸 건 진윤이었어.
“모두들, 괜찮아. 강지은의 엄마야.”
강지은, 진윤의 몸이 이 세상에서 불리고 있는 이름. 그 강지은의 부모는 우리 쪽으로 다가와서는 진윤을 보고 있었어.
“너 여기서 뭐하는 거니?”
“내가 있을 곳이라서 있는 거니까 참견하지 말아줘요.”
“네가 있을 곳? 얘가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다음에 연락할게요.”
“가출해서 살고 있으니까 좋니! 아주 얘가 집안에 먹칠을 해도 유분수지!”
뭐 대화가 딱, 질풍노도를 만난 청소년과 그 부모, 뭐 이런 식이긴 한데, 뭔가 이상하다는 점을 느꼈어. 진윤이 사람을 조종할 수 있는 자신의 힘을 쓰고 있지 않았던 거야.
자신의 힘을 써서 저 아줌마를 조종한다면 편하게 지나갈 수 있는 상황을 어렵게 풀고 있다니. 뭔가 이상하다, 생각하고 있는 순간,
짝 하는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어.
지은이 엄마가 진윤의 뺨을 때려버린 거지.
“너......너란 애는 정말......왜 이렇게 되어버린 거니!”
이 정도쯤 되면 이제 끼어들지 않을 수가 없지.
“저, 죄송합니다만, 너무 심하신 게 아닌지....”
“넌 또 누구야!”
흐흠. 반말이라. 뭐 충분히 그럴 수도 있지.
“진.....아니, 지은이를 보호하던 사람입니다. 이성소라고 하구요.”
“보호? 오라, 네놈이 우리 딸을 꼬여낸 바로 그 놈이구나!”
“아니, 이건 말하자면 깊은 사정이....”
“깊은 사정? 아니, 설마, 그럴 리가.....지은이 너.....이 남자한테 뭔가 당한거니! 그런 거야?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같이 있는 거니!”
이 어머님이 참. 착각도 참 스케일 크게 하시네....
“그런 게 아니라, 이게 참 깊은 사정인데, 정말 깊은 사정인데, 말로 할 수도 없고....”
“뭐라고! 정말 그런 거구나! 얘! 빨리 대답해! 그런 거니? 그런 거야?”
“성소. 더 말하지 않아도 돼. 내가 알아서 할게.”
진윤이 나를 말리려고 하는 데, 그 순간, 아주머니의 손이 허공으로 치솟았어. 그리고는 내 싸다구를 향해 * 듯이 날아오기 시작하더군. 그래 올 것이 오고야 마는구나 하며 눈을 질끈 감았는데,
어째 손바닥이 격돌할 때가 한참 지났는데도 오지 않길래 실눈을 떠보니,
미호가 그 팔을 잡아채고 있었던 거야.
“뭐지 이 인간은? 아까부터 자꾸 얘기를 들어볼 생각도 안하고!”
“큭! 이거 놔!”
발버둥을 치다가 미호가 손을 놔버리자 뒤로 벌러덩 누워버리는 아주머니.
“아이고~ 이년이 사람 치네! 아이고~”
아아아. 드디어 사고가 터지고야 마는군. 미호가 더 열이 받았는지 성큼성큼 다가서기 시작하고, 나도 미호를 말리려고 했지만 왠지 한 타이밍 정도 늦어 있는 그런 상태. 그런 미호의 앞에 진윤이 나섰어.
그리고는 미호의 뺨을 있는 힘껏 때렸지.
나나, 초롱이나, 미호나 어리둥절한 채로 입만 뻐끔대며 진윤을 바라보고 있는데, 진윤은 어깨를 떨면서 외치는 거야.
“엄마한테 손대지 마!”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