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바라보던 학생들의 구경꾼 무리도 어느새 다시 흩어져 가고, 지은엄마를 차에 태워서 보낸 진윤도 우리와 함께 다시 집으로 향했어.
그렇게 되기까지는 정말 쉽진 않았어. 지은엄마는 자빠진 후에는 진윤을 붙잡고서는 내가 정말 잘못했다, 다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신경쓰겠다. 그 일 때문에 그러는 거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 제발 돌아오기만 하면 된다 등등등, 당최 나로서는 사정을 알 수 없는 말들만 했어.
진윤은 그런 어머니에게 여전히 힘을 쓰지 않고, 정리해서 들어갈 일이 있고, 나쁜 일 당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정말 중요한 일이 있어서 그러는 건데 지금은 말할 수 없으니 믿고 기다려 달라, 뭐 이런 식으로 한참 설득을 하고 진정을 시켰고, 덩달아서 나도 인사를 하고 제가 책임지고 잘 돌보겠다고 말하고 주소도 가르쳐 주고 하여간 갖은 생쑈를 한 끝에 돌려보낸 거야.
미호는 입만 삐죽 내밀고는 초롱이도 껴안지 않은 채 성큼성큼 앞서갔어. 진윤은 그런 미호를 보고도 미안하다거나 하는 표정이 아니었고, 초롱이는 초롱이대로 우왕좌왕하다가 뭔가 반짝 생각났다는 듯, 핸드폰을 꺼내서 현실도피를 하고 있고.
이거 뭐, 팀웍이 이렇게 하루아침에 박살이 나다니.
하지만 무슨 사정인지 물어볼 염두도 나지 않았어. 그야 그럴 것이, 그다지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사정일수도 있잖아. 진윤이 미호의 뺨을 때려야만 했을 정도로, 뭔가 사정이 있다면, 아마도 내가 묻는다는 것 자체가 많이 껄끄럽겠지.
“미안해. 그런 모습 보여서....”
진윤부터가 먼저 이렇게 말을 걸어온 건, 미호가 한 발 앞서 집으로 들어가 버리고, 초롱이는 같이 이야기를 들어볼까 어쩔까 하고 망설이고 있는 걸 내가 단둘이만 이야기 해볼테니 들어가 있으라고 하고 난 후였어.
“괜찮아. 일단은 큰일이 난 것도 아니고. 하지만 미호에겐 제대로 사과해야 할 거야.”
“응. 알았어.”
그래도 진윤이 뭔가 머뭇거리길래, 나도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물어봤지.
“어디서부터 이야길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래, 왜 힘을 쓰지 않았는지부터 해보자.”
“성소라면,”
진윤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날 쳐다봤어.
“사람을 조종할 힘이 있다고 해서, 그걸 엄마한테 쓰겠어?”
“그럼, 그 분이 진짜 어머니인거야?”
“아니. 하지만, 너무 닮았어. 그 막무가내인 점, 날 키우기 위해 억세게 굴어야 했던 점, 그러면서도 끝내 내가 관기로 들어가는 걸 막지 못해서 억장을 토하면서 뒤돌아서던 그 모습. 너무 많이 닮았어.”
진윤은 눈물을 닦아내면서 말했어.
“이렇게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항상 그 사람은 볼 때마다 날 이렇게 만들지. 그래서 곤란했어. 그런데 미호가 그 사람을 치려 할 때, 옛날 생각이 떠올라서 그만....”
이제야, 모든 것이 이해가 갔어. 아마도, 진윤이 살아있을 때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겠지. 딸을 붙잡는 엄마를 이방이나 그런 인간들이 치도곤하고 데려갔다든가. 시대가 시대이니만치, 꼴에 그래도 양반이라고, 관기로 딸을 팔았다면 동네 창피해서 진윤을 피해 떠났을 수도 있고.
그런 저런 상황들을 떠올리며, 나도 내 어머니가 떠올라서 눈물이 났어. 그 때로부터 아무리 멀어졌다고 해도,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게 있겠지.
그런 진윤을 껴안아 주려고 다가서서 팔을 뻗었을 때.
골목에서 누군가 소릴 지르는 게 들렸어.
“강지은! 야이 개잡년아!”
돌아보니, 왠 교복을 입은 애들 떼거지가 뭔가를 던지고 있었고, 진윤이 날 감쌌어.
내 눈앞에 마치 무중력 상태처럼 붕 떠 있는 핏방울들이 보였고,
그것들은 이내 바닥에 흩뿌려졌고,
그 피를 뿌린 주인은 완전히 쓰러져 버렸어.
난 놈들이 던진 것들을 멍한 눈으로 바라보았지. 바닥에 구르고 있는 그것들은 반으로 쪼갠 벽돌이었어.
바닥에 구르고 있는 그것들은 반으로 쪼갠 벽돌이었어.
“야야야, 이 싸이코 같은 년, 이제야 찾았다.”
교복 중에 대장 같아 보이는, 뚱땡이 한 놈이 쉰목소리를 내고 있었어.
“왕따 좀 했다고 사람을 *을 만들어놓고 도망가면, 잘 살 수 있을 것 같았냐?”
이 정도 대사가 나올 때쯤이면, 지은엄마가 그 일 때문에 그러냐고 어쩌고 저쩌고 했던 것들도 대강 눈칫밥으로 꿰어맞출 수 있었어. 분명히 진윤이 지은이의 복수를 해준 놈들의 한 패거리겠지.
내 품에 안겨있는 진윤의 상태는 좋지 않았어. 방심하다가 직빵으로 맞은 탓도 있지만, 요근래 생기를 보충해 주는 걸 여러모로 깜박하고 있었거든. 아마도 그 전에 날 처음 만나서 내 피를 마셨던 그게 전부. 효력이 떨어져 있었는지, 진윤은 고통을 느끼고 있었어.
“아까 그 난리칠 때 단박에 알아봤다. 너네 엄마아빠가 잘 숨겨줬는지는 모르겠지만, 나한테 들킨 이상 넌 뒤졌어 썅년아. 어이 형씨, 비켜! 안 그러면 같이 죽는다!”
아주 준비도 제대로 해 온 게, 쇠파이프에 어디서 가져왔는지 식칼에. 완전 조폭질을 해도 손색없겠더군.
“너네 부모도 죽여버릴 테니까 두고 봐 잡개썅년아.”
이런 소릴 지껄이는 한 편으로 옆의 벽에 쇠파이프를 치면서 뛰어오기 시작하는데,
“안돼......엄마만은 제발.....”
진윤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려오는데,
나, 철 들고 나서 처음으로, 완전 빡이 돌아버렸지.
나는 일단 진윤의 입에 키스를 했어. 갑작스런 풍경에 녀석들도 잠시 정신이 팔린 듯 발걸음을 멈추더군. 뭐, 예상했던 효과는 아니었지만, 아주 타이밍이 좋았던 거.
그리고는 진윤을 살며시 내려놓고 멈춰선 놈들을 마주하며 뛰어갔어. 내 기세에 그 녀석들의 눈은 다시 광기로 물들기 시작했고, 싸우려는 기세도 다시 높아졌지만, 그런 것에 두려움을 느끼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어.
그딴 소리를 하며 뛰어드는 그 뚱땡이 대장놈. 그 놈에게 주먹 한 번 뻗지 않는다면 내 속이 시원해지질 않을 것 같았으니까.
제일 처음 달려오는 놈을 냅다 걷어차 버리고, 그 다음 놈은 휘두르는 파이프를 피한 후 늑골에 팔꿈치를 먹였어. 한 놈, 한 놈, 착실하게 두들겨 패주기로 맘먹었지. 이래뵈도 소싯적엔 한 싸움 했었으니까. 어머니께 폐가 되지 않도록 아주 조심했을 뿐.
그래도 오랜만에 하는 싸움인데 실력이 제대로 살아나 있을까 싶기도 했지만, 이내 내 주먹이 한 발 한 발 먹혀든다는 데 쾌감이 일어났어. 녀석들의 사각을 치고 들어가 한 발, 또 정면에서 한 발, 또 다시 다가오는 녀석을 한 발. 내지르는 족족 주먹이 먹혀드는 것뿐만 아니라 점점 녀석들의 움직임이 슬로우 모션으로 보이는 것도 놀랍고 즐거울 뿐이었어.
거기다 그 한 발 내지를 때마다 놈들의 뼈마디가 부러지거나 장기가 박살이 나거나 하는 느낌도 주먹으로 그대로 전해져 왔지. 그 모든 것은 쾌감으로 연결되었어. 내가 이렇게 잘 싸울 수 있다니. 내가 이 스무명 남짓 되어 보이는 인간들을 묵사발을 낼 수 있다니. 속으로 우월감까지 느껴지고 끓어오른 분노가 완벽하게 사라지는 것 같았지.
하지만 아직 멀었던 거야. 그 뚱땡이 놈을 죽여버리기 전까지는.
그 의지를 그대로 밀고 나가 놈들을 개박살을 낸 후 마침내 그 놈 하나만 남았을 때. 골목은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어.
그놈은 바닥을 기어서 도망가려 하고 있었어. 바지는 이미 오줌까지 지렸는지 흥건하게 젖은 기척이 눈에 선했고. 나는 그런 놈의 뒷덜미를 잡아 던져버렸어. 그 거구가 쓰러진 같은 패들 사이로 내팽개쳐져 뒹굴고 있는 모습이 어찌나 웃기던지.
다시 그 놈에게로 다가가 이번엔 벽에다 던져버렸어. 놈의 살이 출렁출렁거리면서 완벽하게 데미지를 입고 있는 모습을 느린 화면으로 감상하는 맛이 또 일품이었지. 이제, 마무리를 지어야 할 시간.
놈의 목덜미를 한 손으로 잡고 높이 치켜올렸어. 벌써부터 목뼈들이 우두둑거리는 느낌, 중력이 그놈의 몸무게를 아래로 잡아당기는 걸 자기 스스로도 이기지 못해 지르는 비명. 흐르는 피. 모든 게, 정말 멋지고 황홀했어. 이제, 이놈의 목을 꺾기만 하면 되는 순간,
“귀.......귀 시이이인.........”
놈이 핏대선 눈으로 날 쳐다보며 쉰목소리로 내는 그 소리. 그 소리를 듣고 나는 얼핏 정신이 들었어.
늦어도 너무 심하게 늦었다 싶었어. 골목은 아직 그렇게 어두워질 시간이 아니었음에도 이미 칠흑처럼 변해 있었어.내 주변은 어느새 검은 색의 안개로 모두 뒤덮여 있었고, 내 눈에서 나오는 노란색 안광이 그놈의 눈에 비칠 정도.
나는 다른 손도 살펴보았어. 손에 뭔가 비죽비죽 올라오기 시작하고 있는 그것은 해골의 형상을 한 죽은 자들의 영체였어.
마치 거대한 물집들이 부풀어 오르듯, 그렇게 그들은 내 살갖 속에서 밖으로 뚫고 나오려는 기세를 늦추지 않았고, 그렇게 내 몸이 울룩불룩 변하는 것을 느끼며 나는 그 놈을 던져버리고 내 몸을 양팔로 감싸며 웅크렸어. 이게 초영이 경고했던 바로 그것인가? 이렇게 끔찍할 줄은 몰랐어! 뭐가 어떻게 되어가는 거지? 그 느낌 또한 내 것들이 아니었단 말인가? 나는, 이대로 당하는 건가?
쾌감의 느낌이 빠른 속도로 통증이 되어 온 몸을 뒤덮을 즈음 목소리들이 들려왔어.
뭐하는 거야, 저놈을 죽여! 지금이라면 할 수 있어! 죽이면 너에게 상상도 못할 쾌감을 줄께! 상상해봐, 신나지 않아? 제발! 그냥 죽이라고!
계속 이런 말들이 한꺼번에 여러 명이서 외치는 것처럼 머릿속에 울려왔어. 심지어는 고막까지 터져버릴 것 같은 그런 고통까지 몰려왔어.
자, 손을 뻗어 목덜미를 잡아! 저놈을 죽여! 그럼 이런 고통은 없을 거야! 지금 네가 느끼는 고통은 모두 우리가 죽어가며 느꼈던 고통이야! 그걸 저놈에게도 안겨줘! 신경 하나끼지, 뇌세포 하나까지 모두 느껴버리게 하라고! 제발! 목을 부러뜨려! 심장을 파내라고! 창자를 꺼내서 씹어버려! 사지를 찢어버려! 죽여! 죽이라고!
여기까지 듣고 있던 순간, 그 혼미한 상황에서도 난 내 품안의 부적을 겨우 떠올렸어. 부적을 써야 할 상대가 내가 될 줄은 상상도 못했지만, 이것저것 따질 겨를이 없었어. 고통으로 비틀리고 있는 내 팔을 겨우 끌어당겨 품안으로 집어넣자, 원한의 영령들이 외치기 시작했지.
안 돼! 부적을 쓰지 마!
그놈들은 자신의 부피를 한껏 부풀려 팔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려고 했지만, 그래도 내 의지를 완전히 꺾지는 못했어. 막대풍선처럼 되어버린 손가락으로 겨우 품안의 부적뭉치를 꺼냈지만, 그것들은 바닥에 흩어져 버렸어. 어디선가, 진윤과 모두가 소리를 지르는 것도 들려오는 것 같았지만, 제대로 들리지 않았지.
부적뭉치 중의 한 장을 겨우 손에 들었음에도 영체들의 반란은 여전했어. 이제 내 팔을 움직일 수 있는 의지의 힘도 한계에 다다른 상황.
“으아아아아아아악!!!!!!!!!!!!!!!!!”
소리를 지르면서 나는 내 목덜미에 부적을 내리쳤어.
벼락이 내리치면 이런 느낌일까, 싶은 충격을 받으며 나는 그 자리에서 쓰러져 버렸지.
그리고 쓰러지는 한 편으로 어렴풋하게, 골목에 들어찬 어둠을 발기발기 찢어가며 내게로 달려오는 미호의 모습도 보였고.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