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레아의 시청, 새벽녘의 터오는 동녘이 카나이 산맥을 비추기 시작하고 있는 것을 시장 집무실에서 바라보고 있던 다이슨은 그제야 자기가 한숨도 자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가 생각하고 있는 불안의 가능성과 그에 대한 대비를 해두려면 취침은 잠시 미뤄둬야 했다. 그리고, 그가 기다리도 있는 전갈도 있었다.
그가 산에서 눈을 돌려 지도를 보기 시작했을 때 그 전갈은 도착했다. 칼레아 시 앞편의 카나이 산맥 중 몇몇 포인트로 척후를 보냈던 시 소속 병사 중 한 명이었다.
"어찌 되었는가?"
"시장님, 발견했습니다. 알려주신 표지가 최종방어선으로부터 약 400케타(주: 약 10킬로미터 정도) 정도 떨어져서 숨겨져 있었습니다."
다이슨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비로소 의혹은 부정하지 못할 사실이 된 것이었다. 그것도 크나큰 재앙이 되어버릴.
"일단은 정보가 새나가지 않게 해야 한다.시민들에게는 내가 말하도록 하지. 시민들의 동요를 막고 준비를 하려면. 피곤할텐데 가서 쉬게."
병사가 물러간 후 다이슨은 양손으로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400케타에 표지. 그것은 카나이 산맥 너머에 있는 훔족이 드디어 군사의 정비를 끝내고 진군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칼레아 시는 야수족인 훔족과 마주하고 있는 가장 최전방의 위치에 급조되었던 도시였다. 카나이 산맥 저쪽 너머는 언제나 어두운 날씨와 거친 땅으로 된 훔족의 영역이었다. 시민들은 제노스 제국에 패배했던 나라의 평민들로 구성되었다. 그런 위치의, 그런 사람들의 도시란 건 결국 방파제 정도의 역할 외에는 더도 덜도 아니라는 의미였다. 중앙에서 파견된 관직자들이 통치하는 다른 제노스 제국의 도시들과 달리 이 곳이 지역자치를 하고 있는 것도 그런 연유가 작용한 것이었다.
그 때문에 처음 시민들의 상태는 패배주의와 체념 그 자체였다. 그 도시가 훔족으로부터의 방파제라는 것을 바보가 아닌 이상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속에서도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다. 거기에 희망까지 더하여 나아간다면, 얼마든지 더 좋은 모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다이슨은 칼레아 시를 그렇게 만들었다. 교역을 넓히고, 시민들의 삶을 열심히 챙기며, 어떤 일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중앙정부의 지원이 없는 것에도 굴하지 않았다. 칼레아 시가 제국 내의 어디보다도 살만한 곳이 되게 하기 위해, 그렇게 뛰어오고 결실을 맺으려 하는 10년이었다. 자신과 칼레아의 시민이 바랬던 희망을 물거품이 되게 할 수는 없었다.
다이슨은 감았던 눈을 부릅떴다. 해야 할 일은 산더미 같았다.
데미앙은 조그만 단검과 안주머니 지갑을 챙겨 붉은 갈기 여관을 나섰다. 여관방안에만 있는 것 보다는 구경이라도 다녀볼까 싶어서였지만, 실은 메리니를 다시 만나야 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어찌됐든 사과는 해야 하니까. 그 때문에 팔크람에게 몇가지 물어보기도 했었다.
성 외곽의 건물들은 제국의 여느 화려한 대도시들에 비하면 그저 평범한 집들이었지민 나름의 특색은 있었다.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이 모였기에 여러가지 건축양식들이 혼합되어서 다른 곳에서는 잘 볼 수 없는 특이한 모습의 집들이 많이 있었다. 그리고 그 집들이 십자로 늘어선 한 가운데 칼레아 성이 있었다.
칼레아 성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건물 세 모퉁이 정도를 지났을 때쯤인가. 데미앙은 미행이 붙었음을 깨달았다. 일단은 귀양지를 떠나 도망자 신세가 되었으니 어쩔 수 없다 쳐도 이런 변방까지 뒤따라오는 자들이 있다는 것은 데미앙의 신경을 적잖이 건드리는 것이었다.
노점상에서 물건을 고르는 척 하며 데미앙은 미행자를 훔쳐보았다. 두 사람. 하나는 빨간 후드를 썼고 하나는 얼굴에 칼자국. 아무래도 정부의 사람 같진 않았지만, 그들은 개를 쓰는 데도 능숙했다.
혼쭐을 한 번 내줘야 겠다고 생각하고 데미앙은 나지막하게 주문을 외웠다.
"스파크."
최상 등급의 마법사들이 하는 속성 영창을 외우자 조그맣고 푸른 불꽃이 손에 일렁였다. 데미앙은 골목을 돌자마자 그걸 하늘로 던져올렸고 불덩어리는 하늘에서 멈춰있었다. 타겟팅은 이미 완료되어 있었다. 데미앙은 다시 골목을 돌았고, 곧이어 보이지 않는 골목 모퉁이에서 두 사람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이 골목을 도는 순간 몇 배는 확장되어 있던 불꽃놀이를 뒤집어 쓰게 해놓았던 것. 데미앙은 미소를 지으며 총총이 걸음을 옮겼다.
칼레아 성의 문지기 타레크는 열려진 성문을 오고 가는 사람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그 자리엔 특히 눈썰미와 경험 있는 자들이 추천되고 있었는데, 혹시나 범죄자나 주목할만한 자들이 들어올 때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이 특히 중요했다. 그리고 타레크는 자신의 몫을 잘 해내는 자였다.
그런 그의 눈에 띄는 자가 있었다. 훤칠한 키와 장발, 얼핏 보기엔 부랑자 같았지만 자세와 걸음걸이에서 느껴지는 고귀함은 타레크가 아닌 누구의 눈에라도 뜨일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가 누군지를 정확히 알 수 있는 것은 타레크 뿐이었다.
눈을 크게 뜨고 타레크는 다시 한 번 그 사람을 눈여겨 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판단이 맞다는 것을 확인했다. 타레크는 조용히 옆사람을 불렀다.
"시장님께 보고하게. 전 친위기사단장이 여기 있다고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