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갑전기 헤로스 외전 - 쥬마리온 (15)

NEOKIDS 작성일 12.05.14 19:4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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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전 속에서도 로카치오는 병사들에게 큰 목소리로 외치며 일자진형을 갖추라고 소리쳤고, 어렵사리 진형이 갖춰지는 순간 팔크람은 선두에 나서며 훔족들을 베어 나갔다.

마치 물이 갈라지는 것처럼 훔족의 무리들이 갈라지면서 진형이 그 속을 뚫고 들어가기 시작했지만 희생 또한 만만치 않은 것이었다.

방패를 양 옆으로 하여 4열종대로 늘어서 종심을 찌르는 진형은 양옆에서 다가오는 훔족의 압박을 이겨내기엔 진형의 두께가 너무 얇았기 때문이다. 아직은 로카치오보다도 어린 병사들은 특유의 혈기와 끈기, 그리고 평소의 훈련으로 어떻게든 버티고 있었지만 백전노장들의 싸움에 비하면야 일사분란함은 아직 한참 모자란 것이었다.

데미앙과 팔크람, 두 사람과 함께 싸울 수 있다는 걸 명예로 삼고자 했던 자든, 실전의 경험을 해보고 싶었던 자든, 그들은 수업료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셈이었다. 훔족의 발에 짓밟혀 깨져나가는 동료의 머리와 꺾여지고 부러지는 사지. 검을 쓰지 않기에 아예 짓뭉개지고 으깨지는 옆사람의 시체. 그 광경을 참아내기란 아무리 전황으로 정신이 나가있는 상태라도 힘든 일이니 말이다.

그렇게 으깨지고 박살이 나면서도 그들은 전진했다. 녹색의 피와 붉은 색의 피가, 잘린 회색빛의 팔다리와 허연 색의 내장과 뇌수가 흙먼지와 뒤섞여 질척하게 뒹구는 바닥을 헤치며, 살아있다는 증명으로 한 번이라도 무기를 휘두르며, 더 움직여지지 않을 것 같은 팔과 다리를 움직여 상대를 해하는, 사투였다.

그 사투가 계속되며 길이 열리고, 데미앙이 약간의 후방에서 복잡한 라이트닝 애로우의 영창이 끝나가는 순간. 팔크람은 문득 등 뒤에서 비춰 오는 강한 빛을 느꼈다.

"모두 방패를 위로 하고 엎드려!"

데미앙의 일갈을 들은 병사들이 전부 옆의 병사들을 끌어잡으며 황급히 엎드리고 팔크람조차도 슈파스를 던진 채 몸을 날린 그 찰나.

빛의 마법 계열 최강의 공격인 라이트닝 애로우의 강렬한 빛들이 전격을 뿌리며 훔족의 무리로 짓쳐들어갔다.

사방을 빛으로 메우면서 수십 개의 광탄들이 엎드린 병사들의 위로 지나가는 그 파공음으로 인해 주위의 공기는 회오리와 빛, 먼지가 뒤섞여 요동을 쳤고 엎드린 병사들은 겁에 질린 채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그 광탄들은 정확히 훔족 특유의 높이 만든 가마 주변을 집중적으로 목표삼아 날아갔다.

광탄의 빛이 가마와, 그것에 탄 훔족의 우두머리와, 주위의 땅으로 빨려들어가듯 사라지는가 싶기가 무섭게.

모든 것은 아까전보다 더 지독하게 흔들렸다. 흙먼지와 찢겨나간 사지와 훔족의 곤봉 따위들이 거대한 화염의 기둥 속으로 쓸려들어갔다가 터져나왔다. 그것들이 떨어져 엎드린 병사들의 방패 위로 떨어져 내리며 둔탁한 소리들을 냈다. 그 뒤로 병사들을 습격한 건 지독한 훔족들의 피비린내였다.

그 소리들이 멎었을 즈음. 데미앙은 숨을 몰아쉬며 흙먼지 안개의 사이를 주시했다. 아직 저쪽의 진형은 정비되지 않은 듯 했지만 방심할 순 없었다. 한꺼번에 많은 마력을 소모한 후유증을 견뎌내면서 자신의 검 브라이거트를 의지한 채 자세를 흐트리지 않았고, 뒤이어 엎드렸던 병사들도 하나둘씩 일어나 자세와 진형을 유지하려 애쓰고 있었다.

로카치오 역시 망토에 묻은 먼지를 털고 일어나 가이스나드를 굳게 움켜쥐고 자세를 잡았다. 아직 주변은 고요했고 훔족 쪽에서의 움직임도 그의 눈에 뜨이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 느꼈다고 잠깐 생각했다.

그러나 갑자기 땅이 울리기 시작했다.

"다가온다!"

그 말을 끝내자마자 로카치오의 옆구리로 곤봉이 날아들었다. 로카치오는 최대한 곤봉을 막아내려 가이스나드를 왼쪽 옆으로 세웠지만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곤봉은 가이스나드와 그것을 쥔 로카치오를 함께 쳐날려 보냈고, 로카치오는 사람 키의 두세 배 정도 공중으로 붕 떴다가 바닥의 시체 사이에 구겨지듯 쳐박혔다.

"로카치오!"

팔크람은 급히 자세를 잡았으나 자신이 슈파스를 던져놓았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그 사이에도 흠족의 진격은 병사들의 진형 옆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팔크람이 슈파스를 황급히 찾아 쥐었을 때는 훔족의 일단이 이미 병사들의 진형을 분쇄하고 있었다. 다시 난전이 시작됐고, 로카치오의 지휘가 있었던 아까 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으로 병사들은 무참히 유린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유린당하는 중심에 다른 훔족보다 더 화려한 가죽갑옷을 입고 두 배 더 큰 몸집을 날렵하게 움직이며 누구보다 더 살벌하게 곤봉을 휘둘러 병사들을 짓이기고 있는 덩치가 있었다. 그 위압만으로도 병사들은 이미 전의를 잃은 채 진형을
이탈해나가고 있었다. 팔크람은 직감적으로 그 놈이 지휘자라는 것을 알아챘다. 그러나 가마 위에 앉아있던 놈의 모습은 아니었다.

"가짜......였단 말인가?"

팔크람의 입에서 허탈감에 찌든 말이 튀어나왔다.

데미앙 역시 그런 상황을 조금 떨어진 후방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진짜 지휘관이 나타났음을 직감하면서 느낀 허탈감도 팔크람의 그것에 못지 않았다. 데미앙은 필사적으로 머릴 굴려보았지만 이제 자신들에겐 남아있는 패가 없는 것 같았다.

시체들이 널린 한가운데서, 병사들이 훔족 지휘관을 비롯한 훔족의 군대에 처절하게 찢겨지는 상황을 보며 데미앙은 검을 움켜쥐었으나 땅이 흔들리는 것 같은 느낌에 귓청에건 귀울림이 전해져 아무것도 들려오지 않았다.

망연자실하게, 데미앙은 들려오지 않는 비명을 지르며 날려가거나 우그러진 짚신인형 꼴이 되어 죽어가는 병사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데미앙은 자신의 양손과 그 참혹한 광경을 번갈아 바라보며 마침내 결심한 듯 읊조렸다.

"미안.....메리니.......그 명령.......아무래도 지키지 못할 것 같다."

그리고는 다시 자신의 몸에 남은 마력을 짜내어 운행했다. 아까 난전에서 빛과 어둠의 마법을 한 번에 하나씩 운행하던 것과는 달리, 이번엔 두 기운을 모두 끌어올려 각각의 손에 집중시켰다. 점점 데미앙의 한 쪽 손에는 빛의 기운이, 한쪽 손에는 어둠의 오오라가 아지랑이처럼 피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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