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괴한 망상의 둥지 - 지구 vol.1
넘실거리는 파도. 강하게 반사되고 있는 햇볕. 뭔가, 짠 내음. 이 곳은 너른 바닷가. 갑자기 장면이 바뀐다. 이번엔 아주 높은 산. 반사되는 햇볕은 마찬가지. 다만 눈이라는 점이 다를 뿐.
기괴한 암석들이 융기하여 튀어나온 땅. 그거라면 여기에도 있다. 그러나 모든 느낌은 사뭇 다르다.
나는 이 풍경이 가져다주는 느낌들에 취해있다가,
갑자기 사라지는 모든 것으로 인해 다시 되돌아온다.
"이용시간이 완료되었으니 퇴실하시기 바랍니다."
기계음성으로 만든 여자의 목소리에 나는 가방을 챙겨 일어선다. 안에는 별 것도 없다. 작은 크기의 물질 분석기와 함께 들어있는 디바이스 정도.
그렇게, 도서관을 나와서도, 눈앞에 펼쳐진 다섯겹의 강화유리 너머로 보이는 붉고 살풍경한 현실이 뇌리를 짓눌러도, 나는 여전히 그 느낌에 취해있다.
화성의 아침은 그렇게 밝아온다. 시간이 되면 모두들 자원 하나라도 더 채취하기 위해 작업복을 걸친 채로 나서는 무리와, 그런 사람들을 관리하고 조정하기 위한 사람들이 거대한 '금속 건물' 안으로 향한다. '금속 건물'은 이 강화유리관 콜로니 안에서 유일하게 금속을 이용해 만들어진 건물이기에 그렇게 부른다. 다른 건물들은 전부 암석을 짜맞추어 만들어져 있다.
먼지와 돌부스러기가 널린 길의 풍경은 그 때문에 흔하다. 도서관의 입체체감 부스를 나와서 그 흔한 풍경과 작업복 속을 헤쳐나가 내 사무실로 가고 있다. 벌써 집세를 못낸 지 3개월이 되어가는 사무실로.
여전히 어지럽게 전선과 중고 하드디스크 따위들이 널려있는 공간. 퀴퀴한 냄새가 감도는 이 공간에서 나는 예전의 사건 파일을 뒤진다. 몇 개의 살인사건을 해결했을 때는 나도 꽤 괜찮은 상황이었지만, 탐정 일이란 항상 그런 일들이 꼬리를 물고 나타나 주진 않는다. 결국은 여느 흥신소들과 다름없는 일을 하게 마련이고, 지겨운 일들이었지만 그나마도 요즘은 뚝 끊겼다. 사건이 없다는 건, 이 행정부가 잘하고 있다는 증거다. 하지만 그것은 그렇게 좋은 상황은 아니리라.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것일 뿐.
화려한 과거를 스크랩해놓은 ,벽에 걸린 싸구려 홀로그램 액자들은 흙먼지로 인해 재생에 문제가 있는지 버벅거리고 있다. 그것이 깜박거리는 것이 몹시 신경쓰여 끄려고 일어선 찰나, 누군가 사무실 문을 두드린다.
"들어오시죠."
누가 봐도 아름다운 몸매와 얼굴의 여자. 금발. 짙지는 않으나 붉은 립스틱이 포인트를 주고 있는 화장. 다이아몬드 반지.
펜트하우스 출신이군.
"미스터 알테우스의 사무실이 맞나요."
"맞습니다."
여자는 주위를 둘러보지만 미간은 찡그리지 않고 있다. 서두른다는 티를 팍팍 내고 있다.
"디바이스 부탁드려요."
나는 쌓여있는 물건더미들을 뒤적거려 가방에서 디바이스를 꺼내든다. 그녀가 다가와서 내 디바이스에 그녀의 디바이스를 툭 건드린다.
사진 한 장 전송. 그녀의 몸에서 나는 장미의 향기도 함께 밀려온다.
"메레디스 세퍼드라고 해요. 제 남편을 찾는 일을 의뢰드리려 왔어요."
디바이스 속의 사진은 누가 봐도, 범생이 과학자 정도라고밖엔 할 수 없는 인상의 안경잡이 남자 사진이 뜨고 있다. 마르고, 머리가 산발이며, 대중 속에 섞여 있어도 장발 외에는 딱히 특징없는 인상.
"착수금은 10만 크레딧입니다."
무뚝뚝한 내 말에 주저함도 없이 그녀는 자신의 디바이스를 만지작거리더니 내 디바이스를 한 번 더 건드린다. 10만 크레딧이 구좌로 입금. 일단 급한대로 집세는 마련되었고.
"사라진 지는 얼마나 되었습니까?"
"1주일 째요."
"경찰에 의뢰는 하셨습니까?"
"그 사람들 어떤지 아시잖아요."
펜트하우스 출신 치고는 경찰에 꽤나 부정적인 태도.
"그 사람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얘기했지만 그 쪽도 벌써 1주일째죠."
"그렇군요. 원한을 사거나, 짚이는 쪽은 없으십니까?"
"전혀 없어요."
"그렇다면 가정불화나 개인적인 돈사정은?"
메레디스의 얼굴이 살짝 구겨진다.
"죄송합니다만, 일은 모든 것을 살펴봐야 하는 법입니다."
"그런 것쯤 내가 모를 줄 아나요?"
메레디스는 디바이스를 한 번 더 건드렸다. 텍스트 문서가 하나.
"이제까지 묻고 다닌 흥신소만도 한두군데가 아니에요. 아예 여러번 말하기 싫어 문서로 만들었죠. 따지자면 댁이 착수금을 받은 열두번째 사람이에요. 이렇게 해줘도 열한번째 사람은 두시간만에 포기하더군요. 당신은 뭔가 더 다르길 바래요, 미스터 알테우스. 3개월치 집세를 도로 내게 주기 싫다면."
나를 조사해봤다. 그런 것에 대한 당황함을 감추려 화제를 돌려본다.
"열한 번째는 누구였습니까?"
"빅터 요한슨씨요."
"당연하게도, 난 그 친구랑은 다릅니다. 그 친구는 전문이 바람난 사람 도청질이니까."
나는 천천히 텍스트를 훑어보았다. 크레이그 윌킨슨. 텍스트 파일에는 남편의 프로파일과 함께 메레디스가 겪었던 모든 정황이 나와있다. 시간엄수가 생명인 친구. 집과 금속건물 외에는 어딜 가본 적이 없는 친구다. 정말 털어낼 것이 아무것도 없는 자. 그러나 사람은 모르는 법.
뭔가 더 있을까 찾아보다가 눈에 띄는 점을 발견한다.
"소속부서가 독특하군요. 역사정보심의회라니."
"민감한 부분이죠. 다른데서는 발설하지 말아주세요."
역사정보심의회. 역사에 관한 정보를 심의한다.정보에 대한 공개여부를 심의하는 곳. 상식에 어긋나지만 이 유리관 속 세상에는 그런 것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게 현실이었다. 3년 전쯤 자유주의자들로부터 맹공을 받았던 부서이기에, 구린 구석이 없지는 않다. 그래서 현재 공식적으로는 절대 회자되지 않는 곳.
요한슨이 왜 일을 포기했는지 알만한 대목이다. 아마도 처음 보여 줬을 땐 제대로 읽지 않았다가 나중에사 알고 헐레벌떡 전화했겠지. 뚱뚱한 녀석이 비지땀을 흘리는 광경을 상상하니 우스워졌다. 아마 착수금도 떼어먹었겠지. 미련한 자식.
"일과 관련해서 문제가 있을 수도 있었겠군요. 이럴 경우는 조사가 더 어려워집니다."
"역시 미스터 알테우스도 포기하겠다는 말인가요?"
"그 반대죠."
나는 디바이스를 대기 상태로 되돌리며 미소를 띄운 채 말한다.
"의뢰비가 더 높아진다는 이야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