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유리 너머로 보이는 붉은 하늘은 미처 필터링이 다 되지 못한 하늘이라고 한다. 냉각제를 넣었다고는 해도 고온으로 외피가 계속 흐물흐물 녹아내리고 있어 그 붉은 빛도 제대로 투과되고 있지 않다.
그건 차라리 다행이다. 만약 진짜 화성의 살풍경한 모습을 계속 본다면 돌아버릴지도 모를 일이니까. 24시간으로 세팅된 데일리 시스템의 해가 지기 시작한다. 단언컨대, 이 모습은 언제 보아도 불길하고 장엄하다.
그 풍경을 만끽하며 스쿠터를 달려 온 곳은 6블럭 떨어진 자기 공장. 광석을 모래로 만든 후 점토질로 만들어 도자기를 만드는 곳. 거대한 가마와 거기서 나오는 열기가 뜨겁다.
이 곳 어딘가에, 살바도르 달리가 있다.
취향도 고약하다 싶었다. 20세기 초현실주의 미술가의 이름이라니. 그런데 그 곳에 온 순간 그 심정이 이해가 되어 버린다. 열기로 인한 아지랑이가 주변 풍경의 모든 것을 비틀고 있다. 과연. 시계가 녹아내린 그림 같은 그 느낌인가.
일단은 작업자들의 락커로 향한다. 락커룸이라고는 해도, 샤워를 위해 냉각복을 아무렇게나 내던져두는 자가 한 사람쯤은 있게 마련. 그런 냉각복을 하나 훔쳐입고, 디바이스가 가리키는 곳으로 가서 사람들을 살펴본다.
다른 사람들도 전부 얼굴까지 덮인 냉각복을 입은 채여서 잘 알아보기가 쉽지 않지만, 도자기가 구워지는 가마 앞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사람 하나가 그인 것 같다. 다행인 건 가마 앞에는 그 자 하나 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나는 뭔가 일하는 척 옆에 놓인 박스를 하나 들고 가마 쪽으로 가서 그 작자의 이름표를 본다.
앨리스.
앨리스라니. 그럼 여자?
슬쩍 박스를 두고 나오면서 나는 음성파일 속의 남자 목소리를 떠올려본다. 음성변조까지 썼다는 말인가. 크레이그 윌킨슨의 숨겨놓은 여자? 그런 건가? 그런데 왜 금속건물이 고작 직원의 스캔들 하나에 이렇게까지 매달린단 말인가?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궁금증은 묻어두고 나는 공장을 빠져나온다. 이제는, 퇴근시간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앨리스가 가진 디바이스의 신호가 문 밖을 나오는 순간 나는 미행을 시작한다.
냉각복을 벗은 앨리스의 모습은 의외로 요염했다. 다만 그것이 펜트하우스의 처음부터 끝까지 관리받은 여자의 인공적인 미가 아니라, 땀흘리며 일하는 건강미라는 것이 차이일 뿐. 빨간 머리와 가는 허리에서 흘러내려온 풍만한 골반이 인상적인 여자. 아무리 샌님같은 크레이그라도 이런 여자를 만나면 환장할 수밖에 없겠지.
앨리스는 공장에서 내 사무실과는 반대방향으로 여섯블럭을 더 간 빈민가로 접어든다. 대낮에도 사람들이 쉽게 나다니지 못하는 곳을 앨리스는 무섭지도 않은 지 편한 자세로 걸어다닌다. 이 때쯤이면 깨달았어야 했다.
내 미행이 너무 쉬웠다는 걸.
앨리스는 갑자기 움막인지 동굴인지 모를 집들이 늘어선 골목 어딘가에서 모습을 감췄다. 급하게 디바이스를 켜 신호를 보는데 갑자기 화면에 명령어들이 한 바닥 뜨기 시작한다. 역해킹.
급하게 디바이스를 끈다. 제길. 함정에 빠진 건가. 나는 가방을 끌어안고 급히 좁은 골목 모퉁이로 몸을 숨긴다. 좌우로 이곳저곳 살펴보기 시작하는 순간,
뒤통수에 바위가 떨어진 듯 싶다. 무진장 아프다.
정신을 잃으면서 나는 뒤에 있던 사람을 필사적으로 움켜쥔다. 옷의 장식같은 게 움켜쥔 손 안에 뜯겨져 남아있다는 느낌. 해는 완전히 없어졌고, 주변은 어둡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