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2-17 글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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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엿보게 된 세상의 비밀 한조각 하나.
이 돌은 굉장히 변덕스럽다.
버뮤다 삼각지대를 항행하고 있는 배의 선상에 나타나 선원들 전부를 없애 배를 물속으로 수장시키는데도 한몫을 하고, 중요하고 유명한 인사들을 실종시키기도 하며, 테러를 저지를 용기가 없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기도 하고, 어떤 자들에게는 평생 감당도 하지 못할 재능을 선물해주기도 한다. 모차르트, 마이클 잭슨 같은 사람들이 이 돌을 만났을 가능성은 아주 높다.
당신이 만약 이 돌을 만난다고 가정해보자.
돌은 당신이 손을 대어 건드리지 않고는 못 배겨나게 당신을 유혹할 것이다. 나는 벗어날 수 있다고 벌써부터 당신의 에고가 이 현실을 밀어내고 있는 중이라면 당신은 그만큼 아무 것도 모르는 무지함에 빠져있다고 충고해 주겠다. 당신의 에고가, 안 된다는 걸 이미 알면서도 저지르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조금이라도 깨닫고 있다면, 그렇게 쉽게 얘기하진 못할 테니까.
돌에 손을 대는 순간, 일단 당신의 눈에 비춰지는 영상은 길고 길어서 스크롤을 참아내기도 힘든, 흔히 말하는 ‘스압’의 형태로 이루어진 이용약관이다. 이 돌은 이미 당신이 이 이용약관을 읽지 않을 것을 알고 있다. 당신은 그것을 참지 못하고 돌을 한 번 더 건드릴 것이다.
그 후, 다채로운 메뉴가 펼쳐진다. 그 돌은 하나의 거대한 홀로그램 시스템이다. 도대체 어디서 그 서버의 공간들을 얻어오는지는 모를 일이다. 아마도 지구의 의지? 혹은 신의 의지? 하여간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거대한 어떤 시공간 자체가 그 돌이 제공해주는 홀로그램의 서버이고, 우리는 그 안에서 허우적대는 꼴이다. 그래, 영화 매트릭스를 대입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영화 매트릭스와 틀린 점이 있다면, 이 돌은 당신에게 메뉴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검색창 역시 제공한다. 검색창에 글자를 쳐넣는 키보드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 당신이 생각하는 대로 검색창에 글자들이 뜨는 상황을 당신은 아주 신기하게 받아들일 것이니까.
기본적인 메뉴에는 큰 단위항목들이 나와 있는데, 모두 당신의 기본적인 욕구들을 충족시키는 것이다. 몇 가지 큰 것들을 보자면, 부, 이성, 식욕, 휴식, 여행, 기타항목이 가장 큰 메뉴들로 구성된다.
당신이 너무 많이 지쳐 있다면, 여행과 힐링에 관한 메뉴들이 압도적으로 많이 나올 것이다. 푸르른 자연, 당신이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태고적의 자연풍경들이, 뉴질랜드 따위는 견줄 수도 없을 정도로 당신의 눈앞에 펼쳐질 것이다. 당신은 모든 것을 만지고 느끼고 자극받으며 즐길 수 있다. 삼림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위험 따위들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그 속에서 풀내음과 삼림욕을 즐기며 느긋하게 앉아 쉴 수 있는 것이다.
당신이 연애가 절실한 사람이라면?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당신의 취향과 의지에 완벽하게 맞춰진 여자가 당신 앞에 나타날 것이다. 당신이 그녀에게 지루해질 때쯤엔 수많은 역동적인 이벤트들이 마치 미연시 게임들의 플래그마냥 척척 다가와서 당신을 정신 못 차리게 할 것이다.
연애는 관심없고 섹스에만 관심이 있다? 당신은 무한히 체력이 샘솟는 변강쇠가 되어 예전 아랍의 할렘을 휘어잡는 남자가 될 수도 있다. 예쁜 연예인 여자들을 메뉴에서 골라 뇌가 녹아버릴 듯한 밤을 즐길 수도 있고, 현실에서는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더럽고 추잡한 성적 취향까지 그 돌은 일말의 주저함도 갖지 않고 맞춤서비스해 줄 것이다.
돈을 원하는가? 당신은 엄청난 부의 소유자가 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들을 뻐기면서 살 수 있게 만들어준다. 사회를 뒤집는 혁명을 원하는가? 기타항목 메뉴를 골라서 들어가 검색창에 쳐넣어보라. 그 돌은 당신에게 그 혁명을 이룰 수 있는 힘과 자금과 사람들을 붙여줄 것이다.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당신의 의사에 반하는 개거지같은 존재들에게 손쉽게 복수할 수 있는 환경과 상황까지, 그 돌은 제공해준다.
하지만 돌이 제공해주는 서비스가 끝나고, 다시 칙칙하고 어두운 현실로 돌아와 우두커니 서서 이 모든 것들이 매트릭스에서도 그러하듯 허상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당신은 당신 앞에 나타나 강렬한 정신적 마약을 던져놓고 사라진 그 돌을 좀 더 원하게 될 것이다. 만약 당신의 조심성이 발동하여 이용약관을 떠올린다고 해도 별 상관은 없다. 그 돌은 다시는 이용약관을 보여주지 않을 테니까. 당신이 다시 보려고 해도 어떤 방법으로든 그것을 다시 볼 방법은 없다. 그쯤이면 당신이 포기하고, 그저 자신의 마력에 당신의 정신을 또 한 번 맡기려 든다는 걸 돌은 이미 계산하고 있으니까.
무한하고도 끝없이 이어지는 당신의 욕구에 돌은 적절한 스토리텔링을 넣어가면서 당신을 지루하게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돌은 이 부분에서 몇 번 실패를 한 경험이 있었다. 기원전부터 기원후까지, 돌은 인간이란 것에 대해 당신의 사고로는 측정할 수도 없는 다양한 경험을 가지고 있고, 그 경험에서 배운 것을 토대로 당신에게 모든 것을 제공하는 것이다. 너무 먼치킨처럼 술술 잘 풀려도 인간이 쉽게 지루해 한다는 것을 아는 영악함을 간직한 채로.
그리하여 그 돌이 제공해준 환상 속에서 당신이 100일 정도를 허우적거렸을 때, 다시 이용약관이 한 번 더 뜨게 될 것이다. 그 때쯤이면 당신의 모든 것은 끝난 것이다.
이용약관은 당신이 100일의 경과 이후 이 서비스를 더 받을 때 당신이 지불해야 할 가치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그 가치들을 다시 읽어본 당신은 경악할 것이다. 당신이 감당할 수 없는 막대한 가치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그것을 지불할 능력이 없노라고 돌에게 의사를 전달할 것이고, 돌은 단 한 가지 방법이 있다고 말할 것이다. 당신의 자아, 정신체를 내놓으라고.
당신이 흔쾌히 응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당신은 역시 멍청함이 토네이도급인 사람이라고 밖에는 정의할 수가 없다. 당신이 내놓은 당신의 자아가 영원히 그 서비스들을 제공받을 수 있을 거라는, 김칫국조차 비웃을 얄팍한 설정에 빠져 있다는 게 눈에 띄기 때문이다. 당신의 자아는 돌에게 제공되는 즉시 조그만 입방체의 독방에 가둬져 영원한 연옥의 고통을 맛보게 할 것이다. 당신의 혼이 빠져나간 그 몸에는 돌이 넣고자 하는 조작된 영혼이 들어간다.
그 조작된 영혼이 꼭 당신의 몸을 아주 곱게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JFK를 저격해 암살한 자가 과연 자신의 자아를 가지고 있는 자였을까. 911을 저지른 자가 과연 제정신이라고 무기를 소지하고 기장을 협박해 건물 비행기로 들이박게 만들었을까. 모두 평상시엔 멀쩡하고 사고가 되는 인간들이었을 터였다. 아무렇지도 않은, 그저 평범하게 세상 살아가는 인간들이 한 순간 꼭지가 홱 돌아서 몬스터가 되어버리는 일을 정신건강의학상에서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아직도 순진하게 치부하는가.
돌은 만족스럽게 당신을 집어삼키고는 다시 유유히 다른 사람들을 만날 것이다. 그렇게 변덕스럽게 역사를 조종하고 인간을 조종하는 것을 즐기면서.
고로, 돌을 만날 때는 주의할 것을 당부한다. 약관을 꼭 읽고, 돌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거부하라. 돌은 잠시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다시 평상시와 같은 현실만이 당신 앞에 남아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기쁘게 받아들여라. 기쁨의 힘만이 당신을 바꿀 수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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